엄마의 봄날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50분

엄마의 봄날

‘엄마’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아들.
국내 최고의 노인척추전문의 신규철 박사가 전국 각지의 아픈 어머니들을 찾아 직접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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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작고하신 아버님뵈러 현충원에 가보고 싶어하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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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5김창수 조회수 766
참 불쌍한 노인분이 계십니다..
잘안보이는 시력이지만 vod로 영화 국제시장 가끔 틀어드리면 자주 눈물을 훔치시는 저희 어머님이십니다. 6.25때 함북에서 피난오시다 가족과 떨어져 .. 전쟁통에 육군소위였던 아버님과 사랑을 꽃피워 부산(기장)으로 혼자 시집을 오셨습니다.(그래서 모친은 처가가, 저는 외가가없습니다)

그 꽃다운 엄니를 아버님은 혼자 엄마를 시집에 데려다놓고 월남으로 가버리셨습니다.그 시집살이가 그래도 양조장을 운영하던 시동생4 시누이1 대가족.. 쫌 사는(?)집에 시집을 오셨지만 눈물 쏙 빼는 시집을 사셨습니다. 외가가 없다보니..더 서럽고 외로운 시집살이셨죠 ..

그때는 시어머님은 물론 시아버지도 매를 대던 시절이라 .. 맞기도 맞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들은 얘긴데 그리 쫌 사는집이라도 수박빨간건 시집사는동안 한번도 못먹어보셨고 시부모와 시동생들 다먹고나면 그 껍질을 들고 설탕을 부어 하얀 수박(ㅜㅜ) 몰래 긁어드셨다는 웃지못할 얘기도ㅜㅜ

그리 혹독하고 외로운 시집살때 저희 아버지는요 ?
월남전에 가셨네요.(월남전참전으로 고엽제후유증인 당뇨와 신부전으로 고생하시다 결국 투석받으며 투병중 작년10월 작고)
아버지는 엄마가 그런 힘든 시집을 사시는지도 제대로 몰랐죠.. 술좋아하시고 군인이라 전근도 많았고 .. 처가도없는 처지라 아버지가 많이 감싸주셨지만 아버지가 월남가시거나 원격지 근무가시면 정말 삼촌들한테도 맞기도 한
말도 안되는 시집살이셨다네요..그래도 다 참고 ..저희들 보고 지금껏 아버지곁을 지키셨다네요..

선친은 독한 고엽제후유증으로 당뇨합병증으로 국가유공자판정은 받으셨지만 늘 병상생활을 하다시피 고생하셨습니다. 최전선 6.25와 월남 전쟁통에 삶과 죽음사이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도..
(가끔 올림픽에서 금메달따서 꽤 많은 경제적혜택을 보는걸 보면 이러셨네요.. 국가를 위해 두번이나 목숨걸고 전쟁터에서 병을 얻은 본인이나 장님이 되거나 다리나 손이 날아간 전우들의 처우를 비교하시며 이� 아닌거같다며 쓸쓸히 소주를 기울이시던...)

여튼 콧물까지 쏙빼는 시집살이 후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는 술과 사업실패등으로 그리 순탄친않았지만 박봉의 군인가족으로 3남매를 데리고 아버지 근무지를 다니면서 고생많이 하셨죠 ..

그런데 정말 가슴아팠던 기억은 .. 국제시장에서도 나오지만
남북이산가족찾기할때(그때 티비만 틀면..그거밖에 안했습니다) 다른분들이 가족을 찾으면 본인일처럼 기뻐하셨고 못찾으신분보면 본인일처럼 그리 슬퍼하셨습니다. 저녁에 식구들 모여서 밥상차려 밥먹을때 그때 타이틀음악이 "누가 이 사람을 오르시나요 ... 그러면 엄니는 슬그머니 나가셔서 부엌으로 혼자 우시곤 했습니다. 그러면 목이메어 밥을 먹다가 ..
그래도 저희 아버님이 달래러 들어가시곤 했습니다.
참 그땐 저희 어머님이 불쌍해 저도 많이 울었습니다.

말이 많이 길어져 죄송합니다. 본론으로 ㅡㅡ;;

노년엔 선친이 고엽제후유증으로 당뇨합병증으로 늘 병상에 계셨는데 입이 까다로운분이라 매일 아침마다 집에서 반찬을 정서껏차려 가시곤했는데 ..그러다 추운 겨울에도 그 정성을 기울이시다 결국 새벽 찬바람에 와사풍이와서 .. 꽤 고생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간병하시다 일이 터졌습니다.
그 날도 병원에 아버님 좋아하는 새우와 게를 넣은 된장찌게를 끓이셔서 가지고 가시다 병원근처에서 커브 트는 차에 발목이 들어가면서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허리를 다치셨습니다..
1번 요추 압박골절진단으로 ..변두리 병원에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못된건지 ..재활에 대한 의지가 크셔서 운동도 많이하셨는데..그 이후로 허리를 펴실뿐만 아니라 다리도 자주 마비가 와서 꼼짝도 못할때가 많아 응급으로 병원에 업혀서갈때도 .. 허다했습니다. 그동안요..
(알고보니 저희한테 짐되는게 싫으셔서 ..)

사실은 이 얘기는 .. 안하려했는데요..

3남매를 보고 그 모진 세월 다참고 오셨는데
20여년전 막내가 가세가 기울어 대학포기하고
외국송출선원으로 갑판장으로 일을하다가못서른도 안된
꽃다운 나이에 바다에서 .. 장녀는 대장암으로 10년전에 ...

두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사셨고ㅜㅜ 항상 외로워보였습니다..
병상에 늘 계셨지만 아버님을 끔찍이 간병하시면서
한편으론 그렇게 의지를 하신 아버님조차..작년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선친의 생전의 뜻대로 대전현충원으로 모셨습니다..)

그 여파로 우울증도 오시고 몸도 맘대로 안되시니 ..
많이 힘들어 하시는 중이십니다.

그래서 이 프로를보고 저희 어머님도 허리를 펴고 제대로 걸으실수 있다면..그리 가보고 싶어하시는 대전 현충원에 어머님생전에 아버님계신 대전현충원 국립묘지에 참배하러 가실수만 있다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현준씨 팬인데 신현준씨가 우리 모친 손잡고 같이 "걸어서"들어가시는 모습을 그려봤습니다.그런 소망이 이루어 진다면 정말 소원이 없겠네요 ㅜㅜ

어머님도 아버님 누워계신곳에 무척 가보고 싶어하시나
10미터만 걸으면 허리통증으로 제대로 걷질못하시고
무엇보다 부산에서 대전까지 .. 차를 타고 가실수가 없으셔서
..."내 살아 생전에 한번가보겠나"라고 허탈하게 말씀하시는중 그랬으면 하는 어머님의 강한 바램을 보았고 이에 용기를 내어 신청드려봅니다.

연세는 있으시지만 현재 건강하시고 신고의 세월을 이겨내신 의지도 강하신분이라 ... (34년생 우리나라나이로 82세입니다만)

간절히 부탁드려보고요..
어머님을 현충원 아버님묘소에 모시고가서
전쟁통에 만난 초급장교였던 아버님추억하시고 꽃이라도 놔드리고 올수있도록 해드리는게 저와 저의 가족들의 간절한소망입니다.

나이가 많아 치료가 안되시면 어쩔수 없지만..
전형적인 이북분들처럼 억척이시고 허리외에는 또래분들 평균 이상으로 건강하십니다. 그리고 백세시대라보고 나이는 많지만 건강한 노인이라도 저런 병원시스템과 의료진이라면이면 나을수 있고 제대로 걸을수 있다면 많은 노인분들한테 희망을 드릴수도 있을거란 생각도 들고요.보통 저 나이되시면 .. 대부분 다 포기를 하시는 모습보면 많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가슴에 자식둘을 묻고 군인이었던 국가유공자 남편을 극진히 간호하시다 허리를 다쳐 저리 말년에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좋은 소식 있었으면 합니다.

010 3885 9032 아들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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