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신청
신영리 부녀회장 억척김순녀 여사!!
제가 17살때 아버지께서 위암수술 2번 하시고 2년후 제나이 20살에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가난한 살림에 수술비 수천만원을 준비한다는 것은 엄마한텐 큰 짐을 지는 것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은 두가지..
하나는 수술 비용으로 들어간 수천만원을 파산 신고하고 맘 편히 살라는 것과
또 하나는 형제간에 우애있게 살라는 것 이었습니다.
엄마는 젊은(당시45세) 나이에 혼자 우리 6남매를 책임저야 했습니다, 오빠나이22살~~~~막둥이가 10살 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유언을 받아드렸다면 엄마는 지금쯤 시골이 아닌 도시 할머니가 돼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엄마는 남의돈 안 갚으면 어떻게 맘 편히 눈뜨고 살수 있겠냐고 하시며 파산에 파 자도 못 꺼내게 했습니다.
그렇게 억척이 엄마가 되어 바보같은 세월 눈물의 세월의시작을 하셨고..
농사일과 마을 부녀회장직으로 25년을 넘게 바쁘게 보내시더니 한푼 두푼 갚아 그 많은 돈을 25년동안 다 갚았습니다.
우리가 물어봐도 대답도 안해주시고 몸이 부서저라 일만 일만 하시며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자녀들 결혼도 시키고 손주도 보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엄마 생각만 하면 가슴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죄송하고 감사하고 평생 업고 다녀도 부족하지요.
정말 열심히 사신 결과는 허리와 다리가 변형이 되어 너무도 아파하시는 모습만 보입니다.
영원면 신영리 부녀회장으로 25년을 봉사하며 마을일과 영원면 일 마다않고 하셨지요.
이젠 힘이 딸려 더 이상 못하시겠다고 2015년을 마지막으로 사퇴하셨습니다.
지금 연세74세 이지만 다른 어른들 모습과 많이 다른 엄마의 모습 정말 가슴 아픕니다.
봄 여름 가을은 일이 많아 병원 보다는 파스가 친구이자 보호자 역활을 했고,
한 가한 겨울이 되어서야 병원 물리치료를 다니시며 다음 해 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농사일좀 그만 하시라고 해도 엄마는 시골서 농사 안지면 뭘 먹고 사냐고 저희한테 한 소리 하십니다.
지금은 마을회관에서 동네 언니들 친구들과 점심도 같이 해드시며 지내시지만,
집안행사가 있어 서울에 오실 일 있어도 자기 모습을 남한테 보이기 창피하다고 피하십니다.
어떻게 해 드릴수가 없어 항상 마음으로만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 엄마도 희망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곱던 20대 적 허리쭉편 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큰딸 박영선 010-9722-9240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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