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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한미일 자위대 북진입 물밑 논의설 & 靑‧여야 지도부 5자 회동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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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관리자 조회수 384
일본의 대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대륙진출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대륙진출의 꿈과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는 일본에게 있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대륙진출의 교두보이자, 대륙세력의 일본침입을 막는 완충지대로서 절대적인 전략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한반도의 이런 지정학적 요건 때문에 한반도는 항상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장이 되어 왔고, 세력대결의 각축장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가 바로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었습니다. 한반도에서의 청일전쟁은 대륙세력 청나라와 해양세력 일본간의 전쟁이었고, 러일전쟁은 대륙세력 러시아와 해양세력 일본간의 전쟁이었습니다.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켰던 핵심 이유는 대륙지역에 대한 영토야심 때문이었습니다. 명치유신 이후 청나라 영토 정복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일본에게는 대륙 침략을 위한 교두보로서 한반도 점령이 필수조건이었습니다. 그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일본은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으로 혼란에 빠진 한반도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당시 조선 관군이 동학군에 패배해서 진압에 난항을 겪자, 조선은 청나라에 원군을 요청했고, 일본은 청의 파병을 빌미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게된 것입니다. 일단 조선에 들어온 일본은 조선의 철군 요구를 묵살하고 조선의 내정에 청과 공동으로 개입하려고 하다가, 청이 이를 거부하자 육군과 해군이 동시에 청나라를 공격하여 쉽게 격파함으로써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일본은 청나라와 시모노세키 조약을 맺고, 청국으로부터 랴오둥 반도와 타이완 및 펑후섬등을 할양 받았습니다. 그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에서도 승리하여 북위 50도 이하의 사할린을 할양 받았습니다. 해양세력 일본은 대륙세력인 청나라와 러시아를 한반도에서 밀어낸 후, 북방진출의 결정적 기회를 얻게 되었고, 결국 북방지역에 만주국을 건설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본의 대륙진출 야심은 2차대전 이후 패전당시부터 지금까지도 포기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20일 일본의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서울에 들어와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에서 ”유사시 일본의 자위대가 한반도에 진출하려면 대한민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한 장관의 주장에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면서 ”한미일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고 답변함으로써 자신들의 한반도 진출에 굳이 한국정부의 승인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던져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사실을 우리 국방부가 국민들에게 감췄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야 합니다. 과거 구한말과 같이 북한이 다시 새로운 혼란상황을 맞게 되면, 일본은 바로 이 틈바구니를 이용해 한반도 진출을 시도하려고 할 것이고, 그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미일동맹을 강화시켜 미국의 등을 타고 들어오는 전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을 통한 한반도 진출이 불가능한 현실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바로 북한으로 들어가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으며, 이런 대륙진출의 꿈꾸면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일본에게는 북한이 한국보다는 훨씬 지정학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위정자들은 지금 대일전략, 미일동맹의 강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포석인지를 정확히 읽고 있지 못한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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