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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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회 살고 싶은 맛! 생거진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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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9관리자 조회수 2863

<살고 싶은 맛! 생거진천 밥상>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있죠

살아서는 진천 땅이, 죽어서는 용인 땅이 좋다는 뜻이랍니다.  

그만큼 사람 살기 좋은 땅이라는 진천

흔히 먹는 재미로도 산다는데, 이 좋은 땅에 맛난 별미가 없을 리가요.  

오늘은 이 땅에 꽁꽁 숨은 '생거진천'의 맛을 찾아보겠습니다


요즘에야, 밀가루 면이 흔해졌다지만 과거의 ''은 잔치 때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이 진천에 밀이 귀하던 시절, 그 구수하고 깊은 밀맛을 살려 칼국수를 만드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부부 둘이서 새벽부터 직접 반죽을 하고 면을 만든다는 이 집.

육수는 그저 단출합니다. 멸치에 갖은 채소 넣고 푸욱 끓여 깊은 감칠맛을 내죠.

여기에 호박 고명에 파 좀 썰어 넣으면 완성되는 이 집 칼국수.

생긴 것부터 어찌나 허여멀건 한지... 처음 봤을 땐 조금 당황했죠.

게다가 맛도, 요즘처럼 깊은 사골이나, 시원한 해산물의 맛이  안 느껴지더군요.

구수한 밀가루의 맛이 국물 가득 퍼져 있달까요.

몇 입 먹었을 때는 조금 낯설었지만 직접 메주를 쑤어 만든 간장양념을 보태어 먹으니

오래전 어머니가 해주시던 그 칼국수 맛이 나더군요.

밀이 귀하던 시절, 다른 부재료 없이 밀 그 자체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던 손칼국수.

그 어머니의 맛을 진천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진천에서 북서쪽으로 시원하게 내달리면 만나게 되는- 천안, 안성, 진천의 경계 지점-

이곳에 커다란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이 저수지에 충청도의 숨은 맛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민물새우탕과 민물새우튀김이죠.

40여 년 전, 이곳에 자리 잡은 주인장이 먹고살기 위해 저수지의 새우를 잡아내다 팔던 것이 그 시작.

요즘도 그때의 그 맛을 그대로 살려 바가지째로 민물새우를 넣어 민물새우탕을 끓여주더군요.

여기에 징거미새우로 만드는 민물새우튀김까지.

함께 한 이필모 씨의 말에 의하면 '술을 부르는 맛'이랄까요?

단맛이 그득한 국물에 밥까지 말아 먹으면 부러울 게 없습니다.

이게 바로 충청도 내륙에서 만날 수 있는 깊은 맛이죠.



이렇게 백반기행을 하다 보면, 의외의 음식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 음식이 그렇죠. 바로 오리목살.

오리 한 마리에서 한, 두 점 나오는 부위인데 이 오리 목살을 숯불에 구워 먹는 집이 있더군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과거 할머니께서 낚시꾼들을 상대로

주변 오리업체에서 남은 뒷고기를 팔던 게 그 시작.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금도 이 오리목살의 명성만은 그대로랍니다.

은은한 불향이 좋은 백탄에 쫄깃한 오리목살을 구워 먹으니,

도통 부위를 짐작하기 어려운 쫄깃하고 탱글탱글한 식감. 여기에 고소한 맛까지 더해집니다.

구이가 지겨울 즈음 오리목살을 넣어 만드는 오리목살 짜글이까지 밥과 함께 먹으면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함이 없달까요?

누군가 이 집에 이런 글을 남겼더군요. '오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천의  작은 마을. 6대를 이어온 집터에서 묵은지 전골을 만들어 판다고 해서 들렸죠.

가마솥에서 끓는 물이며, 직접 만드는 두부며- 분위기부터 맛있을 것 같은 느낌.

역시나 제 예상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묵은지와 갈비를 넣어 끓여낸 묵은지 전골은 깊고 부드럽습니다.

묵은지 역시 식감이 살아있는데도 깊은 맛을 내죠.

몇 년 지인지 물어보니 주인장이 10년을 묵혀 사용한다더군요.

오래 묵히기 위해 고추씨와 천일염만 넣어 묵혔답니다.

10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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