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38회 아차차~ 빠져드는 광진구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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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관리자 조회수 4587

<아차차~ 빠져드는 광진구의 맛>


시작부터 내 자랑 같지만 소싯적엔 잡지마다 만화를 줄줄이 게재했었다.


그 당시엔 인터넷도 팩스도 없어서 몇날 며칠 만화를 그리고 나면 그 원고를 들고


잡지사를 직접 찾아갔어야 했었다.


그 때 자주 찾던 곳이 지금은 사라진 어깨동무의 잡지사가 있던 광진구.


어린이 대공원 쪽이었는데 그 때만 해도 이곳이 성동구로 편입돼 있었더랬지.


95년도쯤엔가 이 일대가 광진구로 재편됐으니 아마 내 기억이 맞을게다.


잡지사가 하나 둘 사라지면서 어느 순간 발길이 뜸해졌다.


그럼에도 이곳을 백반기행의 무대로 삼은 이유- 바로 이번 동무가 이 동네 사람이기 때문.


키도 크고 훤칠하니 잘생긴 청년- 일전에 사적인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배우 이정진 씨가 오늘


 내 백반 동무로 낙점됐다.


동네 맛집을 찾아갈 때 그 동네 주민만큼 든든한 천군만마는 없을 터-


이번 여행은 시작부터 마음 한 구석이 꽉 차있는 것 같다.


정진 씨의 안내를 받아 처음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유명한 관공서 맛집.


반경 1km 안에 구청을 비롯해 경찰서, 우체국까지 몰려 있어 점심시간이면


나랏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다는데,


원래 공무원 맛집이 진짜 맛집이라지 않나- 맛 보지 않아도 이미 검증됐을 게 분명하다.


더구나 이정진 씨가 이끈 집이니 두말하면 잔소리.


그런데 이집, 메뉴판을 보자마자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하니 계절메뉴로 주인장의 고향 전남 보성 벌교에서 올라온 참꼬막이 적혀있기 때문.


벌교 꼬막은 전국에서도 알아주지만 그중에서도 으뜸인 참꼬막은


남도에서도 구하기 힘들어 나도 지난해엔 딱 두 번밖에 먹어보지 못한 귀한 음식이다.


그런데 이 귀하디귀한 참꼬막을 서울 한복판에서 맛볼 수 있다니!


갑자기 봄바람이 분 듯 마음이 기대감으로 일렁인다.


진짜 참꼬막이 나올까...’하며 종종 거리며 기다리던 찰나-


깊은 기와 하며, 몇 줄 안 되는 골 하며, 한 눈에 봐도 잘 여문 참꼬막 등장.


서울 토박이인 정진 씨를 위해서 살짝 더 익혔다는데 그래도 참꼬막은 참꼬막인지라


촉촉하면서 식감이 매우 부드럽다.


그러고 보니, 이 집 주인장- 양념을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집 대표 메뉴라는 쭈꾸미구이도 양념이 많지 않은데 달거나 맵지 않고 식감이 부드럽다.


직접 담갔다는 간장게장은 또 어찌나 괜찮은지~


간장에 푹 절였음에도 게가 짜지 않고 은근하니 단맛이 난다.


이 동네서 30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이 맛 하나로 충분히 설명이 되는 것 같다.




광진구 하면 떠오르는 게 또 기사식당.


요즘 서울 시내에서 기사식당을 보기 힘든데 광진구에는 자양동과 중곡동 두 개의 동네에


기사식당 거리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주차빌딩을 세운 기사식당도 있을 정도니 얼마나 성업 중인지는 말 안 해도 다 알 것이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려면 그만큼 경쟁력이 있어야 할 터-


이번에 갈 집은 그런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집이다.

 

30년 동안 기사님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메뉴는 빨갛게 양념을 올린 삼치구이.


솔직히 말해 삼치는 그 자체로도 고기가 담백하고 고소한데 굳이 양념을 해야 했을까 싶다.


그런데 이 자극적인 맛이 오히려 기사님들에게는 훌륭한 별미라고.


그도 그럴 것이 온종일 차 안에서 입 다물고 계시다 보면 입이 까끌까끌할 것.


그 때 달고 짠 소스가 들어가면 없던 입맛도 감돌겠지.


하지만 이 집이 인기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주문 즉시 호박, 콩 등 대여섯 가지의 재료를 얹어 뜨끈하게 익혀낸 솥밥이 히든카드라나?


어떤 메뉴를 시켜도 기본적으로 이 솥밥이 나오는데 갖은 재료들이


 일단 눈을 호강하게 하고 밥과 어우러진 그 맛이 입을 호강케 한다.


인위적인 단맛이 아니라 자연에서 우러나온 단맛이기에 크게 거부감도 들지 않는다.


이 하나만으로 이 식당을 찾는 이유가 납득 간다.


하지만 압권은 따로 있는데 바로 솥밥 아래 남은 누룽지가 그 주인공.


차에서 입이 궁금할 때 먹으면 솔찬히 괜찮은 간식일 것 같다.


매번 솥밥 집에 가면 이 누룽지를 다 해치우지 못해 아쉬웠는데 오늘 해결책을 찾았다.


적은 돈으로 후식까지- 꽤나 훌륭한 밥상을 받은 느낌이다.


사실 이 집은 생물이 압권이다.


굴은 싱싱하기가 설명하자면 입 아프고 새조개도 당일 아침 여수에서 버스로 공수해 쓴다.


게 중에 크기가 작거나 죽은 새조개는 따로 또 요리를 해서 내어놓는데


이 음식이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별미 중의 별미다.


이름부터 맛있는 새조개 해물전.


무려 15마리의 새조개를 다진 뒤 섬초, 봄동, 파와 버무려 전을 부치는데 씹는 부위마다 맛이 다르다.


새조개를 씹으면 쫄깃하고 짭쪼름한 맛이 나고 섬초는 섬초 나름대로의 단맛을, 파는 알싸한 맛을,


봄동은 고소한 맛을 낸다.


밀가루 냄새도 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맛이다.


이집에선 매생이 굴 칼국수도 추천하는데, 매생이 사이로 굵직한 굴을 넣은 게


꼭 우리 어머니가 해주신 것 같아 나는 즐겨 찾는 메뉴다.


어쨌든 원 재료가 신선하니 뭐든 맛이 없을 순 없지.


내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여수에서 올라온 거라면 나는 믿음이 간다.



여수의 해산물이 믿을 만하면, 육고기로는 서울에서 마장동이 으뜸이다.


이곳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부위들도 맛볼 수 있고, 다양한 음식들이 발달해 있다.


그런 마장동에서도 수십 년을 버틴 집이라면 필시 그 집 음식은 제대로 됐을 것.


그런데 난데없이 마장동 이야기냐고?


이번에 갈 집이 마장동 터줏대감 사장님의 수제자이자 셋째 며느리가 17년째 영업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죽어가던 골목을 살렸다는 이 집은 퇴근길 직장인들의 힐링 장소로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명성이 높단다.


특히나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제비추리가 인기인데, 입에서 살살 녹는 게 내 나이 또래가 먹어도


참 괜찮을 정도의 식감이다.


색깔은 또 어찌나 선명한지! 한눈에 탁 봐도 신선함은 보장돼 있다.


고기와 함께 나오는 소고기뭇국도 참 괜찮은데- 맑게 끓인 전라도식이 아니라 막판에 고춧가루를 끼얹어


칼칼한 경상도식 소고기뭇국으로 내어놓는다.


그런데 참 재밌게도 이집 주인장이나 시어머니나 어느 누구 하나 경상도 사람이 아니란다.


하긴, 맛에 고향이 무슨 필요 있겠나. 맛있으면 장땡이지!


이 두 가지만 있어도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비울 것 같아 정다운 이와 또 한 번 오고싶다.



이번엔 이정진 씨가 3, 4년 전부터 찾는 단골집을 소개해주겠노라며 앞장섰다.


트렌드에 민감한 건대 번화가에서 무려 25년을 버틴 치킨집이라는데


요즘 같이 프랜차이즈가 시장을 점유하는 이때에 버티고 서있는 동네 닭집이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하다.


게다가 모 사이트에서 서울 5대 닭집으로 선정했다고! 그가 자신만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떤 맛이기에 이토록 자부하는지- 궁금하던 찰나 이집 궁극의 메뉴라는 간장치킨 등장.


요즘 트렌드라는 단짠단짠한 맛인가 했더니, 어라? 그 맛이 아니다.


되려 은근하게 생강 맛이 올라오는 게 찜닭과 궁중갈비 그 맛 중간에 있는 것 같다.


안에 든 치킨은 속살이 촉촉하고 겉에 튀김옷은 바삭한 게


후라이드 자체도 맛이 좋은데 간장소스를 입혀 그 맛이 한층 배가 됐다.


치킨만 훌륭한 게 아니다.


캠핑 갈 때 즐겨먹던 닭똥집도 튀겨놓으니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워 꽤나 괜찮은 별미다.


이정진 씨는 이 닭똥집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다는데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닭이나 닭똥집이나 닭비린내가 하나도 안 나는 게 닭 상태가 매우 훌륭한 편.


원래는 닭집이라서 지금도 생닭을 판다더니 그래선지 닭이 다른 데완 차원이 다르다.



사실 트렌드에 민감한 청춘들이 많이 살다 보니 식당도 트렌드에 따라 휙휙 바뀌는 동네가


바로 이 광진구일 것이다.


그래서 식당이 자리 잡기도, 또 그 안에서 버티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럼에도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번거롭더라도


신선한 재료를 바로바로 무쳐 손님상에 내어주는 주인장의 배려 때문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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