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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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회 신년특집 - 허영만의 고향 밥상! 전남 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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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관리자 조회수 4948

<신년특집 - 허영만의 고향 밥상! 전남 여수>


고향이라는 말만 들어도... 뭔가 애틋하고 그리움이 묻어난다.

내 고향 여수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났다.

나이가 들수록 머릿속의 기억은 흐릿해져만 가는데...

고향 음식을 먹다보면

예전에 먹어봤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마주했던 그리운 사람들의 모습까지 떠오를 때가 종종 있다

음식은 그런 힘이 있다.


고향 밥상을 찾아 떠나는 새해 첫 걸음.

신년특집이라더니- 박영석 대장과의 인연으로 금세 친해진 엄홍길 대장이 식객으로 합류해줬다

호형호제해 온 세월이 어림잡아도 10년은 족히 넘은 듯하다.

히말라야 사나이가 바다의 도시에 왔으니 이거 참~ 대접을 제대로 해야 할 텐데...

다행히 동장군이 위세를 떠는 이맘때면 꼭 먹어줘야 할 음식들이 몇 있다.


엄 대장이 새벽부터 집을 나섰을 터이니

뜨끈한 국물이 좋겠다 싶어 찾아간 곳은 깨장어탕.

깨장어는 붕장어 새끼를 말한다. 씨알 굵은 붕장어는 내다팔기 바빴을 터.

응당, 떨이로 남은 붕장어 새끼는 집에서 해먹는 밥상에 자주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또 별미다.

큼직한 붕장어를 통으로 넣고 끓이는 것도 호사스럽지만, ‘깨장어도 제 몫을 충분히 한다

연하고 부드럽고 고소하다. 너무 기름지지 않은 것도 제격이다.

깨처럼 작고 고소하다고 해서 깨장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아버지들은 깨장어를 주로 연탄불에 구워 안주로 삼곤 했었는데-


이렇게 탕으로 끓여먹는 건, 나도 처음이다.

깨장어탕에 들어가는 조연~ 배추와 무청은 시래기가 아니다.

시래기는 아무리 푹푹 삶아도 질겨서 부드러운 깨장어와 맞지 않는다는 주인장.

된장 풀어 끓여낸 깨장어탕의 구수하고 시원한 맛에 엄 대장의 혈색이 살아난다.

전날 곡차를 마셨다더니 얼굴에 둑이 터진 것 마냥 땀 흘리며 해장을 한다




강연과 산행으로 여수에 몇 차례 왔었다는 엄 대장.

그 때마다 해산물 한정식 같이 거한 상만 대접받았다는 게 아닌가.

나는 동생에게 서대회무침을 대접하고 싶었다.

여수사람들, 서대 참 좋아한다.

가자미의 사촌쯤 되는 납작한 서대를 설명할 때 항상 신발 깔창같이 생겼다고 말하는데

이 담백한 서대의 맛이 좋아 여수사람들이 푹 빠져들었다.

서대가 가장 맛이 좋다는 4~7월은 물론

연중 내내 서대회를 입에 달고 산다. 다행히 서대도 연중 내내 잡힌다.

겨울에는 회무침으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거리의 서대회무침은 1인분에 12,000원쯤 받는다고 하던데

주택가에 자리한 이 집은 1인분에 9,000원이란다. 무침에 들어가는 서대회 양도 아주 실한데, 살짝 얼려서 넣는다고?!

처음엔 살짝 어안이 벙벙했는데- 뜨끈한 밥에 비벼먹으니 사르르 녹는다.




여수에 올 때마다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자극제가 되는 까닭에

여수교동시장에 들르곤 한다. 여기 시장 상인들이 아예 대놓고 먹다시피 한다는

백반집에 들렀다. 주인장의 첫인상은 싹싹하진 않다.

시장 사람들에게는 백반 한 상에 5,000원을 받고 외지인에게는 6,000원을 받는다는데,

한 상이 실하다. 집밥이다.

늙은 호박을 하루 전날 아침에 썰어서 놔두면 단맛이 더 우러난다나?

말갛게 끓여낸, 색 고운 늙은 호박국이 예술이다.

거역할 수 없는 단맛에 한 대접을 싹싹 비우고 말았다.




여수의 1. 꼭 먹어야 할 조개의 황제가 있다. 새조개다.

서울 사람들은 천수만에서 나는 새조개를 자주 접했겠지만,

사실 여수 가막막은 새조개의 주요 산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씨알 굵은 새조개는 모두 일본으로 수출되다시피 했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입소문이 난 새조개는 여수사람들에게 효자 노릇을 쏠쏠히 했다.


찬바람이 들어야 조갯살 주둥이 색도 검게 진해지고 살점도 두툼해지는데

올 겨울이 따뜻한 편이어서 새조개 씨알이 덜 여물었다고 주인장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다행히 상등품 새조개가 들어왔다고 해서 엄 대장과 함께 찾아갔다.


살아있는 새조개 한 점을 회로 맛보는 귀한 기회도 가졌는데

이 집의 대표메뉴는 새조개 삼합!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밥상이다.




내친김에 새조개 삼합에 이어 샤브샤브도 맛을 봤다.

흔히들 접해왔던 맑은 국물이 아니라 육수에 집된장을 풀어 넣고 미나리를 데쳐 함께 싸먹는다

새조개 본연의 달큰한 맛에 향 좋은 미나리가 더해지면서

참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맛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집된장 육수 때문에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다 싶다.




여수의 겨울을 대표하는 새조개에 이어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게 있으니

바로 삼치!

고등어처럼 구워먹던 삼치만 알던 사람들이라면 당혹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여수에서 삼치는 단연코 로 먹어야 한다.

잡자마자 죽기 때문에 활어로 먹을 수 없는 생선을 여수에서는 선어라고 해서

숙성 회로 즐기는데- 가장 대표적인 선어가 바로 삼치다.

삼치회는 대물일수록 맛있다. 구워먹는 삼치는 뱃사람들 말로는 고시라고 하는

소짜! 최소 한 마리에 4kg 정도 나가야 회로 떠먹을 만 하다.

부드럽고 고소한 삼치회는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

한편으로는 그 맛이 단조로워서 여수사람들은 온갖 조합을 더해 삼치회를 즐겼다.

마늘과 참기름이 들어간 양념간장에 찍어먹고햇김에 싸먹고,

묵은지와 갓김치까지 더해 맛의 변주를 끌어낸다.

둘이서 먹기에 충분한 삼치회 한 상이 4만 원인데- 삼치 껍질 무침에 삼치 대가리 구이, 그리고 제철 해산물을 곁들여낸다.

특이하게도 이 집은 삼치회와 더불어 보리멸 튀김도 유명한데,

깨끗한 보리멸을 참 깨끗하게도 튀겨냈다.

나나 엄 대장이나 평소에 튀김을 그리 즐겨 찾지 않는데도

엄 대장 입에서 화룡점정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여수의 겨울바다는 진미가 넘친다.

도저히 한 상에 끝낼 수 있는 맛이 아니니- 여수에 더 남아 그 맛을 마저 볼 요량이다

아직은 여수를 떠날 때가 아닌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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