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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매주 토요일 밤 9시 10분

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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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박건영 조회수 1412

진중권은 지금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기소중이고 오마이는 특정지역 친야권 성향에 인터넷 신문인데 존재감도 없어서 취급도 안한다 박대통령시절에 문화재를 훼손했다고 하는데 그 당시에 문화재 발굴을 가장 많이 했으며 가장 많이 보존했었다 요즘에도 가끔 건설 현장에서 문화재가 나오게 되면 건설장비 멈추고 문화재를 보호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 돌아 다니거나 진중권의 말이나 오마이 뉴스 기사 펌질해서 박 대통령 험집낼려고 왜곡,조작 악의적으로  쓴 기사나 말을 인용해서 사자를 명예훼손 하는 것은 친인공노할 일이다..최소한 대한민국에 살면서 박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없더라도 그분을 욕되게 하는 반역행위는 하지 말고 살아야지 그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도리가 아닌가?아무리 네놈이 특정지역 다른 생각을 가진인간이라도 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타고난 리드쉽으로■

우리나라는 1950년대에 6.25전쟁으로 인해 모든 곳이 황폐화되었고

사람들 또한 대부분 가난하였다 이 당시 우리나라는 후진국의 대표적인 나라였는데 최빈국 아프리카보다 못햇다

하지만 하지만 박대통령이 대통령 되시고 1960년대에는 경공업 1970년~1980년대에

중화학 공업으로 크게 일어섰고 그뒤로 1990년대에는 다른 선진국과 버금가는 경제규모를 달성했으며

외국사람들은 이러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의 저력을 보면서 박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산업화의 아버지라고 했다

 

한국은 GDP로 1953년의 13억 달러에서 2007년 1조 달러로 성장하여 770배나 성장했으며,

1948년 2,300만 달러에 불과했던 수출규모를 2008년 3,720억 달러로 성장 시켜 16,000배나

성장했다. 이밖에도 1차 산업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산업구조에서 2차, 3차 산업이 주를 이루는

선진국형으로 발달하였으며 조선업, 제조업, 가전제품 등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이기도 하다.

 

 

박정희 대통령께서 만든 해외 우리영토! 여의도 67배! 알고 계세요?◈ 100 년미래를 내다본 위대한 대통령

<< 해외식량기지 아르헨티나에서 '첫삽' >>

한국도 해외농지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부는 아르헨티나 소재 '야타마우카' 농장을 식량 생산기지의 중심으로 본격 개발키로 한 것. ‘야타마우카’는 지난 30여 년 박정희 정부가 쌀 증산사업을 위해 212만 달러를 들여 구입했으며 여의도 면적 67배에 이르는 대규모 농지로써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서북쪽으로 방향으로 약 980㎞ 가량 떨어진 센티아고 지역에 위치해 있다.

▲ 아르헨티나 Salta 근방에 우리의 식량기지 위치
농촌공사는 예산 3억원을 들여 내년 상반기 안에 전문가들을 아르헨티나로 보내 현지 실사를 마칠 계획이다. 현지 실태 조사가 끝나는 대로 활용방안 연구에 들어가 이르면 2009년부터 시범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농림부는 야타마우카 농장의 가장 유력한 활용방안으로 옥수수 콩 등 곡물 재배를 꼽고 있다.

칠레 테노(185ha)등 5개 농장(2만 5천304ha)

이후 국외농장으로 구입한 땅이 영농 부적지 이거나 이주자들까지 농장을 이탈하면서 정부 주도 국외 농업기지 건설 사업이 중단돼(박대통령의 서거때문인것 같습니다.) 3개 농장은 매각 처분되고, 현재 야타마우카와 테노 등 2개 농장만 남아 있는 실정이다.
아르헨티나 야타마우카사진

박정희대통령께서 아르헨티나 야타마우카의 땅을 1978년8월에 구입하시고 1979년10월26일에 서거 하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5곳의 땅을 구입하셨으나 지금은 2곳만 남아 있습니다.

대한민국 山河의 나무 84%는 朴正熙 대통령 심은 것.


박정희 대통령의 산림 육성에 대한 열정


미국의 한 하원 의원이 지난 1997년 여름 특별기로 북한을 방문한 후 바로 공해를 거쳐 한국 땅에 진입하면서
“지옥에서 천당으로 들어왔군” 이라는 탄성을 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가 탄성을 내뱉은 이유는 더욱 주목을 끌었다.
얼핏 식량난에 시달리는 북쪽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풍요로운 한국 영토로 들어왔기 때문일 것으로 짐작들을 하고 있었지만
실은 남북한 간에 천양지차인 산림 녹화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산하는 온통 붉은 빛을 띤 반면 남한은 녹색 일색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5.16혁명을 일으킬 때만 하더라도 남북한 사정은 정반대였다.
한국의 산이 오늘의 북한처럼 벌거벗은 상태에서 푸른 옷을 입게 된 것은 불과 20년 안팎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1984년 임업 통계 요람’에 따르면 남한 전체 임목 면적의 84%가 20년생 이하,
즉 나무 10그루 중 8그루 이상이 박정희 시대에 심어진 것이다.
그래서 유엔은 한국을 이스라엘과 함께 20세기의 대표적 녹화 사업 성공 국가로 꼽고 있다.


산림 녹화에 대한 박정희의 의지는 1964년 12월에 서독 방문을 마치고 산림 관계자들에게 한 오기 서린 말 속에 배어 있다.


“산이 푸르게 변할 때까지는 유럽에 안 간다.”


경제 개발 자금을 얻기 위해 잔뜩 기대를 걸었던 서독 방문에게서 기대이하의 차관을 약속받은 이유가 가장 컸지만,
그는 이후 다시는 유럽을 방문하지 않았다.
당시 대통령 경제 고문으로 서독 방문 때 통역을 맡았던 백영훈(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씨는
“박대통령은 서독의 정돈된 농촌과 푸른 산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렇게 될 수 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집권 초의 박정희는 산림 녹화 의욕에 비해 경험이 못미쳤던 듯하다.
녹화 촉진 임시조치법(1963년 2월부터 1964년 12월까지의 한시법)을 마련하여 공무원, 학생, 병역 미필자들을 나무심기 사방 사업에 투입하는 등 강력한 산림 보호 시책을 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농산물 증산을 위해 개간 촉진법(1962년 2월)을 시행, 산지 야산을 망가뜨리기도 했다.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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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CHOSUN 박건영 2014.03.07 07:41

    슨형순 군대,사회생활 하면서 적응 못한 후유증 앓은 것을 싸질러고 다니더만 ㅋㅋ정신이 오락가락 횡설수설 슨형순 넌 그냥 전라도 염전에서 일해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TV CHOSUN 박건영 2014.03.06 21:07

    슨형순 더 미치기전에 병원 가봐 인마 ㅋㅋㅋㅋㅋㅋㅋ

  • TV CHOSUN 박건영 2014.03.06 15:24

    으따 시큼한 냄새 나부리는 코구멍을 톡 쏘우는 따라쟁이 기질? ㅋㅋㅋㅋㅋㅋ

  • TV CHOSUN 박건영 2014.03.06 14:30

    슨형순...부모에게 학대 받고 자랐냐?....너 군대시절이나 사회생활할때 부적응으로 후유증을 앓고 여기서 싸지르는것 같은데 더 망가지기전에 빨리 병원에 가서 상담받으 인마..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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