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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매주 목요일 밤 8시

탐사보도 세븐

「세븐」은 각종 범죄와 비리 의혹을
탄탄한 구성과 심도 있는 현장 취재로
파헤치는 탐사고발프로그램이다.

시청자의견

시청자의견
ㅡㅡ518회장이 조폭?ㅡ민주당 이회찬은 여태껏 조폭 방패막이?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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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8김정훈 조회수 1828



<5.18 당시 전남도청 보건과 공무원 정의환씨 증언이 정말 사실이였네> 



518회장이 조폭?
조폭을 518회장으로?
그렇다면 518유공자중에 조폭이?
그렇다면 518 유공자조사도 철저히 해봐야되는것아냐?


조직 폭력배 두목이 5.18 단체 회장 이라고 이걸 경찰이 검찰이 시장이 

구청장이 지역 국회의원 더불어 민주당 집행부가 몰랐다고 정부도 몰랐다고 이게 말이 되냐. 

수 많은 사상자 난 것도 부족해서 조직 폭력배가 5.18 단체 회장에 철거까지 맡았는데 

사고나자 마자 바로 미국으로 튀었는데 이걸 몰랐다고 기가 찬다


518 추모가 아니라 518비즈니스 였군... 518 일련법안들 다 저런 사람들 혜택수혜자잖아. 절대 반대한다


5.18의 희생자와 숭고한 정신을 깎아 먹는 놈. 저런 놈을 솎아내야하는데. 

저 놈은 잡아다가 법처벌 이전에 먼저 광주시민들 손에 넘겨야 한다.


다 짜고 치는 고스톱.
경찰이 어물어물 하면서 도피시간을 제공해 준 것이겠지.
조폭출신이 5.18단체 회장이었다는 걸 보니 5.18도 별 것 아니네.


5.18 단체가 마구잡이로 생산하는 방패막이용 유공자들

이해찬과 김경수가 5.18유공자라는 소문이 있고 이해찬은 답변으로 자기가 신청도 안 했는데 5.18단체에서 

그냥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이해찬의 답변이 맞을 것이다. 5.18단체에서는 이해찬 뿐만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인사들에게도 방패막으로 5.18유공자증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충분히 심증이 간다.

모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5.18사태 주동자 및 시민군의 실체와 시민군 본부, 시민군 본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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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이 깡패같은 시래기도 나쁜넘이지만, 

평범한 광주시민을 선동하여 폭동으로 몰아간 소수 불순한 세력들도 아주 나쁜넘들이다..



5.18 당시 전남도청 보건과 공무원 정의환 씨 실제 증언>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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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후식 5.18관련 단체, 부상자, 유가족협회의 회장이란 자?

김후식은 80년경 나이가 40세쯤으로 충장로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던 이발사였는데 5.18때 부상자로 접수가 되었던 자이다. 

그 때 처음으로 5.18관련 단체로 5.18관련 부상자 및 유가족협회가 결성되고 초대 회장으로 선임된 자가 김후식이다. 

어떤 경로로 부상자가 된 줄은 모르지만 경상으로 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회장 직을 역임해 오다 

십 몇 년 전에 유공자 부정 지정 사건으로 회장 직에서 사퇴하였는데 그 후 얼마 안가서 다시 회장으로 복귀하여 지금까지 35년여 간 동안 

회장을 역임하고 있고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되어 5.18 민주화운동 단체의 왕으로 군림하고 있다.

 

■ 5.18관련 단체에 관하여

▶이 세상에서 가장 부패하고 저열하고 저속한자들로만 구성된 단체다;-

이 단체 회장 김후식은 광주전남에서는 가장 거물급 유력인사이고 단체 소속된 임원들도 많지만 이들은 절대로 매스컴이나 

표면에 나타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력도 없고 똑똑하지도 않고 사람들의 인식 등도 좋지 않기 때문 등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각종 이권 개입 등은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고 따낸다. 예를 들어 충장로 지하상가는 광주에서 최고로 꼽는 

알짜배기 사업권인데 거기에 황금 알을 낳는 자판기 사업까지 따내고 그 외 광주 전남 이권개입에는 안 끼는 곳이 없을 정도고 

5.18회관, 국립아세아문화전당 등 수많은 운영 매체 등에서 어마어마한 이권을 챙기고 정부 지원 자금도 가장 우선적이다.

또 호남출신 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인사들은 이들에게 삥을 뜯겨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많은 사람들 특히 광주 전남민들은 5.18 관련 자들을 극도로 혐오 기피해 엮이지 않는다

첫째, 전라광주민들은 5.18에 대해서 대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둘째, 5.18관련자들에 대해서 대개의 사람들은 심한 기피증을 갖고 있다. 그들과의

접촉을 극히 꺼리고 그들과 연관 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길 정도다.

셋째, 5.18관련자들과 일반 시민들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다. 오일팔에 관련해서는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의 요구는 거의 무조건 들어주는 식이다. 그들은 상대할 가치도 없고

조금이라도 엮기기 싫어서 이기 때문으로 본다.

 

▶5.18 단체가 마구잡이로 생산하는 방패막이용 유공자들

* 이해찬과 김경수가 5.18유공자라는 소문이 있고 이해찬은 답변으로 자기가 신청도 안 했는데 5.18단체에서 

그냥 만들어 준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아마 이해찬의 답변이 맞을 것이다. 5.18단체에서는 이해찬 뿐만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이나 유력 인사들에게도 방패막으로 5.18유공자증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충분히 심증이 간다.

* 모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5.18사태 주동자 및 시민군의 실체와 시민군 본부, 시민군 본대일 것이다.

 

▶정씨와 절친한 지인이 경험한 소름끼치는 5.18체험담 (폭도들의 근거지?)

* 저보다 몇 살 아래인 사람이 20여 년 전부터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지금까지

매우 친하게 지내오는 사람이 그 때 겪었다는 소름끼치는 체험담을 소개 한다.

 

- 5.18 당시 순수하게 부부가 자영업을 해오고 있었고, 5.21일경에 이사준비로 시내로 볼 일을 보러가기 위해 

집을 나섰으나 모든 교통수단이 끊긴 상태라 할 수 없이 소위 시민군이 운행하고 있는 추럭을 탔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고 나도 그랬었다. 추럭을 탓지만 운전수가 가는대로 가다가 적당한 곳에 이르면 

내려달라고 할 참이었는데 운전수는 자기 맘대로 한없이 화순 쪽으로 차를 몰아 도착한 곳이 생전 처음 와보는 화순 어느 산골마을이었다. 

거기에는 이미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500여명이 와 있었다고 한다. 먼저 와있는 500여명도 모두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차에 탓을 때 차안에는 총, 수류탄, 탄알 등이 수북히 쌓여 있어 일단 호신용으로 총을 들었다고 한다. 마을에 도착하니 처음에는 몰랐지만 

그 마을 이장 가족이 주축이 되어 동네 부인들이 하루 삼시세끼 밥을 계속해주었다고 하고 그곳에서 5월21일부터 5월27일까지 

도청이 수복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1주일 만에 광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시민군(?)본부가 있던 곳은 전남 화순군 살골마을 (주남마을 인근?)

거기에 1주일 동안 아무 하는 이 없이 동네 빈터에서 서로 웅크리고 야영을 하였다고 하고 식사는 끝날 때 까지 동네 부인들이 해주었고,

 500여 명 중에서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고 낮이 설기만하는 건장한 청장년들이 기관총 등으로 무장을 하고 감시 지휘를 하고 

있었다고 하고 그 상황이 하도 무서워 누구하나 말도 못하고 포로수용소도 아니고 군대도 아닌 곳에서 1주일을 감금당한채로 지냈다고 한다.

 

심지어는 당시 대학생인 이장 딸이 식사 심부름을 하고 있었는데 사람들 중 한명이 오발을 하는 바람에 이장 딸이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죽었는데 이장은 그 광경을 목격하고도 눈물도 흘리지 못하고 단지 사람들을 향해 앞으로는 이런 오발 사고가 없도록 

총기를 땅을 향해 관리해 주라고만 했다고 한다. 그 때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자기 딸이 죽었는데도 울지도 못하고 항변도 하지 못한 

상황이 충분히 심증이 간다.

 

지금이라도 그 마을에 가서 확인해보면 당시를 확인할 수 있을 터이고 내 후배도 얼마든지 증언을 해 줄 것이다. 

당시 화순 주남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죽었고 후배말로는 여러 번에 걸쳐서 건장한 시민군들이 사람들을 태우고 

그곳을 빠져나가 주남마을을 통과해서 광주로 진입 할려고 하던 중 주남마을 산중턱에서 미리 매복하고 있던 자들이 추럭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해 우선 타이어를 겨냥하고 차를 전복시킨 다음 차에 타고 있던 시민군들을 향해 시민군들이 무차별사격을 하여 죽였다고 한다. 

그 사실은 겨우 살아온 사람한테 들었다고 했다.

 

그 당시 주남마을 산에서 매복하고 있던 시민군들에 의해 군인들도 죽고 많은 전상자를 냈다고 한다. 요약하면 후배가 머무르고 있던 곳이 

시민군 본부요 시민군 본대였고 후배들은 시민군들이 되어 있었고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기가 있는 사람들은 

낮 설은 시민군 감시원들이 데리고 가 죽여 버린다고 하였고 마을 사람들도 세상이 무법천지고 어디로 나갈 곳도 없고 하니 

시민군 감시원들이 하라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5.18은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5.18 북의 내란 공작(?)사태 방증

*처음 5.18사태의 시발이 된 대학생들은 지금까지 나타난 사실들만 봐도 대학생들은  5.18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다. 

5.18 민주화운동이라 했으나 5.18사태 이전부터 민주화 운동을 해온 사람들도 안 나타나는 것만 봐도 이들 또한 5.18사태와는 관련이 없다.

* 당시 광주시민 어느 누구에게 물어봐도 계엄군이나 순수한 일반 시민군들에게 칼로 찔렸  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명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당시에 장갑차를 몰거나 차량 등을 운전하였다는 사람들도 한명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

* 그 후 5.18이 진압되고 난 후 후배에게도 시민군으로 본대에 있었으니 오일팔 유공자로 된다고 신청하라고 하였으나 

오일팔 민주화투쟁과는 전혀 관련이 없기에 양심상 도저히 유공자로 신청할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 후배가 1주일 동안 그 곳에 갖혀 있는 동안 집에서는 난리가 났었고 온 가족들이 후배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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