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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














이것이 정치다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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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통령의 조상 박혁거세 외조부는 부여 동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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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2윤복현 조회수 632








고두막 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대한민국 헌법전문]"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 국민은.."



 

부여인 박혁거세의 후손 박근혜 대통령

고두막 한무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인류의 어머니 마고 이래로 1만년간 인류문명사를 홍익인간으로 선도해 온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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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검(양심검) 청동거울(생명의 햇빛) 청동방울(양심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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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 이래로 9천년 한민족 기록한 [단군신화]에 기록된 환인.환웅.환검(단군왕검)의 3성조

한나라 부여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한민족 고유 영토-생존 거주지






지구촌 최고의 농경.수렵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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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조상 박혁거세 외조부는 한나라 침략 물리친 부여 동명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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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비]"추모왕은 북부여 출신으로 천제의 아들"



만주지역을 중심지로 삼았던 단군한국 국호 변경/한=>조선=>부여


고로 단군한국의 서토로 망명한 기자.위만은 단군한국의 대통령이 된 적 없다


요서지역은 단군한국의 서토로 부단군 번한들이 만주의 단제의 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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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방 고조선 유민들의 유입으로 남쪽으로 밀린 토착 한반도 마한세력을 열도까지 이어진 왜로 기록


마.번.진한의 단군3한국 중에서 한반도와 열도를 영역으로 삼았던 마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만집단에게 나라를 빼잇기고 서해를 건너 한반도 서남부에 정착한 기준집단이 국호는 마한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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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국(탁리국) 출신의 동명왕 고두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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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한국의 서토(번한국=기자.위만조선)를 점유하고 단군한국의 중심(진한국=부여=고구려)를 공격한 한무제를 물리친 고두막


고두막의 깃발만 봐도 한나라군은 도망쳤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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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동명왕 고두막의 천도/길림=>환인

동부여에서 부여 황도인 환인으로 망명한 고추모(해모수 손자)가 고두막 아들 고무서의 후계자가 되어 국호를 고리(고려)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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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를 침략한 한나라군을


용맹하게 물리친 부여 동명왕


고두막이 박혁거세 외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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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정통사서인 [환단고기]를 위서 취급하는 매국매족사관 집단은 사학계에서 이제 사라져야 한다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와 아버지 거서간의 아픈 사랑과 이별을 생각하며..


 

한민족 정통사서[환단고기]는

 

 

사로국(4세기에 남하한 흉노족이 신라로 변경)시조인

 


박혁거세는 부여공주 파소의 아들임을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경주에는 박혁거세가 태어난 나정이 있고,

 

박혁거세 집단이 정착한 지역에서는 부여 기마유물이 출토되기도 했다.



 

재야사학으로 포장하며 천년 신라의 개국지를 지나땅이라 주장하는 자들 역시

 

중공의 동북공정에 종노릇하는 자들이다.부여의 박혁거세집단은 한반도로 남하


 한민족 정통사서 [환단고기]는 신화로 포장된 박혁거세의 뿌리사도 구체적으로 밝혀 준다


박혁거세의 외할아버는 한나라의 부여침략을 물리치고 부여 왕에 오른 고두막.부여 동명왕이 바로 고두막이다

 

파소(婆蘇)는 박혁거세의 어머니였다. 파소가 부여를 떠나 온 때는 바로 고두막골본 부여시대다. 고무서는 딸이 셋 있었는데, 첫째 딸이 바로 파소로 추정되고, 둘째 딸은 소서노로서 고주몽의 둘째 부인이다. 파소가 북부여를 떠날 때 "북부여 제실녀"라고 하여 제녀, 황제녀, 황녀, 왕녀 등으로 적은 것이 아니라 제실녀라고 적고 있으므로 파소는 동명 고두막한의 딸이 아니라 손녀가 되는 것이다. 즉 파소는 고두막한의 아들인 고무서의 딸이 되는 것이다. 고무서는 딸이 셋 있었는데, 첫째딸이 바로 파소로 추정되고, 둘째딸은 소서노로서 고주몽의 둘째 부인이며, 셋째딸은 아직 미상이다. 고구려 개국시조 고추모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이모부다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가 부여의 제실녀라고 기록하고 있으니 시기적으로 해모수의 북부여를 접수하고 골본 부여를 개국한 동명성왕 고두막(한=칸=안=간) 단군의 손녀이자, 고두막 단군의 아들인 고무서 단군의 딸이다.

 

고두막한은 서기전108년 위씨조선(기자조선)이 망하자 동명(동방의 빛)을 자칭하면서 5천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한나라 도적들을 물리치고 해모수의 부여를 접수하고, 서기전86년 북부여 단군 해부루가섭원으로 내 보내고 제후(동부여왕)로 봉하였다. 동명성왕이 바로 해모수의 북부여을 접수한 고두막한인 것이다. 고두막한은 자신의 고향인 골본을 도읍으로 삼고 골본 부여를 열었다. 고두막에게는 고무서라는 아들이 있었고, 고무서에게는 딸이 3명 있었다. 아마도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는 고무서의 첫째 딸로 추정된다.

 

사로국(斯盧)의 시왕(始王)은 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부여 제실의 딸 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눈수(嫩水)로부터 도망쳐 동옥저(東沃沮)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진한(辰韓)의 나을촌(奈乙村)에 와 닿았다. 이때 소벌도리(蘇伐都利)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데려다 집에서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이에 진한 6부의 사람들이 존경하여 거세간(居世干)으로 삼고, 도읍 서라벌(徐羅伐)을 세우고 나라를 진한(辰韓)이라 칭하고, 또한 사로(斯盧)라고도 하였다.

한단고기 에 따르면 기독교의 마리아처럼 성모(聖母)로 표현처럼 부여의 제실녀(황제의 손녀) 파소가 혼인전에 아이(혁거세)를 임신하여 부여 사람들의 수군대고 의심하면서 부여 황실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니 부여 황실에서 쫓겨나 동옥저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경상도 지역의 진한에 도착하여 소벌도리라는 사람에게 길러져 13세에 왕으로 추대되었다는 내용이다.

 

혼인 전에 임신한 파소의 아들 박혁거세를 [삼국사기]에서는 밝은 알에서 태어난 인물로 신화한 배경에는 혁거세 출생의 부끄러운 비밀을 감추기위한 문학적 치장인 것이다. 성령에 의해 마리아에게서 처녀 잉태했다는 예수 신화도 마찬가지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태어난 아이의 출생비밀을 감추기위한 위장술인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미혼모의 아들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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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가 선도산 성모라고 기록했다는 것은 박혁거세의 어머니가 부여수련집단에서 활동했음을 의미한다. 신라 화랑제도에서 처음에는 여성인 원화가 있었는데 이는 바로 박혁거세의 어머니처럼 여성 수련집단이 존재했던 것이 된다. 박혁거세의 성씨인 '박'은 "밝(박)다"에서 따 온 성씨로 우리 민족의 태양(광명)신앙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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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의 아버지는 미상인데, 서기전 108년부터 서기전 70년까지 북부여와 한나라와의 국제정세로 보면 아마도 한나라 군사와 전쟁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즉, 거서간(居西干)이라는 말은 서쪽에 머무는 간(干)이라는 뜻이므로 박혁거세의 아버지는 북부여의 서쪽을 지키던 간(干)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간은 단지 방어장이며 군사권을 가진 왕과는 차별이 있는데, 나중에 신라도 병권을 부리는 왕의 제도가 이루어진다.




해모수의 손자 해부루가 고두막에게 부여왕위 물려 주고 제후가 되겠다며 동쪽(연해주)에 세운 동부여의 역사

 




우리는 백의 민족/하나님 섬기고 제사지낸 대제사장 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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