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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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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8이영건 조회수 228

이승만 건국 대통령의 하와이 30년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설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소개로 더 많은 내용이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몇자 적어봅니다.

조선왕조시대의 유학과 사대주의 가치관속에서 자라난 청년 이승만은 과거시험에 몇 번 낙방 후 배재학당을 다니며 외국의 사상과 문명을 접하게 됩니다. 

그 영향으로 23세에 매일신문을 창간하고 24세에 입헌민주주의 정치개혁 운동을 하다 고종의 미움을 받아 반역죄로 한성감옥에 투옥되었고 탈옥을 

시도했다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 

감옥 안에서도 러일전쟁 후 벌어질 국가 존립의 위태함을 걱정하여 '독립정신'을 저술하여 국민들이 변화화는 국제 상황에서 깨우쳐 나가야 할 길을 호소하였다. 

5년 7개월간 감옥 안에서 제국신문의 주필로 비밀리에 기고 활동을 하면서 '청일전기'를 번역하였다. 

3.1운동 독립선언문의 33인 중 절반이 넘는 목사들이 그에게 감옥 안에서 전도 받은 사람들이다. 

그는 일본의 조선합병을 막기 위한 임무를 받고 특별사면으로 출옥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국가의 자주독립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미국의 정치 지도자들을 설득하였고 미국 언론에 1200편이나 되는 글을 기고하였다. 조선의 독립을 향한 열정과 노력이 그의 삶이었다. 

1941년 'JAPAN INSIDE OUT'을 저술하여 일본의 미국 기습침공을 예견하였고 진주만 공습 이후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미 정계의 주목을 끌게된다.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고 양반과 종의 굴레가 당연시 되던 세상에 이 젊은 청년이 목숨처럼 여겼던 국가관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의 모태가 되는 과정은 

숱한 질곡 속에서 일어난 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소작농을 없애는 토지개혁과 교육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한미동맹과 심지어 원자력발전을 위해 원자력연구소를 건립하고 미국에 유학생을 선발하여 보낸다. 

그들은 귀국하여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추적 인력이 되었다.

그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른다. 

전근대적 군주 국가에서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으로 번영의 토대를 놓은 그에 대해 좀더 많이 알려지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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