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반일기
345회 원조 왕사남, 단종 납시오! 정태우의 영덕 밥상
<345회 원조 왕사남, 단종 납시오! 정태우의 영덕 밥상>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의 보물 창고 영덕!
왕의 위엄은 잠시 내려놓고 친근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39년 차 베테랑 배우 정태우 씨와 함께 바다 밥상 유람을 떠났습니다.
아역 시절부터 전국 팔도를 누비며 다져온 그의 남다른 미식 내공 덕분에,
영덕 앞바다의 짭조름한 진미들을 한층 더 깊이 있게 음미할 수 있는 유쾌한 시간이었지요.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축산항에서 48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박한 백반집입니다.
여든을 앞둔 노모가 매일 새벽부터 손수 찧은 마늘로 나물을 무쳐내는 정성이 대단하더군요.
특히 누런 물과 떫은맛이 다 빠지도록 200~300번씩 치대어 무친 미역무침은
부드러운 식감에 바다 향이 물씬 배어 일품이었습니다.
은쟁반 위를 꽉 채운 단돈 만 원의 11첩 반상.
거기엔 거친 바닷바람을 맨몸으로 견뎌낸 어머니의 청춘이 담겨 있었습니다.
투박하지만 뜨끈한 그 밥정에 먹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습니다.

이어서 사방이 탁 트인 푸른 바다를 병풍 삼아
영덕의 명물, 물가자미(기름가자미)의 진수를 맛보러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뜻하지 않은 병마를 이겨낸 전직 프로 축구선수 남편과 그 곁을 지킨 억척스러운 아내가
차려내는 15,000원 가자미 정식은 그야말로 오감 만족이더군요.
해풍에 반나절 말려 겉바속촉으로 구워낸 가자미구이도 훌륭했지만, 단연 백미는 찌개였습니다.
회를 뜨고 남은 가자미 뼈를 오븐에 한 번 구워내 육수를 빼는 것이 이 집의 숨은 비법이더군요.
구운 뼈에서 우러난 묵직한 감칠맛이 찌개의 격을 한 단계 높여주어,
영덕 바다를 온전히 들이켜는 듯한 시원함을 선사했습니다.

영덕 유람의 대미를 장식한 곳은 바다가 아닌 한적한 도롯가에 자리한 횟집입니다.
30년 칼잡이 주인장은 쥐치, 성대, 장치 등 활어의 신경을 찔러 마비시키는
전처리 비법을 고수하는데, 덕분에 생선 특유의 쫀득한 찰기와 감칠맛이 한껏 극대화되더군요.
여기에 식감이 약한 장치는 도톰하게, 기름진 농어는 얇게 썰어낸 칼질의 변주는
주인의 정교한 솜씨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유자청과 마늘을 배합해 해산물의 비린 맛을 잡은 특제 소스와
20여 가지 해산물 찬까지 더해지니,
8만 원이라는 가격이 무색할 만큼 극진한 수라상을 대접받은 기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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