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친미 고토회복]낙랑공주의 낙랑국은 본래 요서지역에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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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8윤복현 조회수 511 | |
한민족 고대사의 진실을 환하게 밝혀 주는 한민족 정통사서는 환단고기 뿐이다!
* 단제한국의 서토를 침략한 은나라를 정벌하여 단제한민족을 이주시킨 아홀 단제는 고구려족인 색불루 단제의 아들이다! 낙랑국은 위만조선이 단제한국의 서토인 번한국(마지막 부단제는 기준/기준은 한반도로 이주하여 서남부지역에 마한건국)를 장악하자, 낙랑왕 최숭이 유민을 이끌고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이주하니 낙랑공주의 낙랑국으로 고구려 대무신왕 때 망했다. 북한 평양지역에서 발견된 우수한 낙랑유물들은 최숭이 세운 낙랑국 유물들이다. 연나라 사람 위만이 위장투항하여 번한국을 장악하자, 단제한국의 제후였던 최숭 낙랑국왕이 요서지역에서 한반도 평양지역으로 이주하여 재건한 낙랑국이 바로 호동왕자에게 사랑에 빠져 조국 낙랑국을 바치게 된 낙랑공주의 낙랑국이다. 아래는 평양지역에서 발굴된 우수한 낙랑국 유물들이다. 황금 바클을 보면 우리 한민족의 우수한 금제기술을 알 수 있으며, 흉노의 황금문화가 단제한국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윤복현 [보도자료]화제의 유물은 1916년 평양 석암리 9호 옛무덤에서 출토된, 길이 9.3cm의 1세기 낙랑시대 금허리띠 버클(국보 89호)이다.
정밀 판독 결과, 버클 안에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새김된 큰 용 아가리 속에는 혀는 물론 뻐드렁니와 무수한 이빨들이 금판 혹은 금알갱이로 만들어져 붙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훨씬 작은 여섯 마리 새김 용들도 모두 아가리 속에 금알갱이 이빨을 붙이고 있었다. 발톱 달린 용의 다리 언저리에는 미세하지만 듬직한 보주 장식까지 붙여 놓았다. 오영찬 학예관은 “이빨과 다리 장식들은 직경 1mm도 안 되는 금알갱이, 금실로 일일이 짜넣은 것이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버클은 한반도에서 나온 가장 오랜 금속 공예품 중 하나다. 말발굽 모양 금판에 큰 용 1마리와 작은 용 6마리를 두들겨 드러내는 타출기법과 금실, 금알갱이를 붙이는 누금기법으로 수놓았다. 중국 신장, 요녕성, 윈난성에서도 거의 같은 모양새의 버클이 나와 실크로드 교류를 실증하는 대표 유물로 꼽힌다.<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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