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내현 동양학연구소장 “관련 기록 없다”
주몽이란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MBC 월ㆍ화 대하드라마 ‘주몽’은 고구려 건국세력 주체들이 시종일관 한사군(漢四郡) 중 하나인 현도군과 쟁투했다고 묘사한다.
고구려 건국과정을 둘러싼 이런 인식은 비단 드라마 뿐만 아니라 한국고대사학계에서도 통설로 군림한다. 즉, 기원전 108∼107년, 한 무제(漢武帝)가 위만조선을 멸한 다음 그 땅에 낙랑ㆍ진번ㆍ임둔ㆍ현도의 이른바 사군(四郡)을 설치했으며, 고구려는 이 중에서도 현도군 영역 내에서 일어나 끊임없이 현도군과 싸우다가 마침내 그 세력을 축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5년 단국대 사학과를 정년퇴직하고 이 학교 동양학연구소장으로 재직 중인 윤내현(68·사진) 명예교수는 “고구려가 기원전 37년 건국하기 이전에 현도군 안에 고구려현(高句麗縣)이 설치돼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해서, 그것이 고구려가 현도군 영역에서 태동했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윤 교수는 고조선 이후 기자조선, 위만조선, 그리고 고구려와 삼한 등의 한국상고사와 관련한 고대중국과 한국의 관련 기록만을 적출하고 그것을 옮기고 해석을 가한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지식산업사) 출간에 즈음해 6일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그에 의하면 한사군 중 하나인 현도군과 고구려가 태동한 지역은 판이하게 다르다.
현도군은 물론이고 그 소속 현 중 하나인 고구려현은 지금의 요서(遼西)에 있었던 반면에 주몽이 고구려를 건국한 곳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졸본부여(卒本夫餘), 광개토왕비문에는 비류곡(沸流谷) 홀본서성(忽本西城)이라 했다. 졸본부여나 홀본은 지금의 압록강 중류 지역이다.
윤 교수는 “고구려가 태동한 곳이 현도군 영역 안이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면서 “그럼에도 왜 고구려가 현도군에서 건국되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지가 의아스럽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다른 근거로 고구려가 초창기에 정복한 지역들을 주목한다. 삼국사기 등에 의하면 고구려는 졸본부여와 비류국을 정복한 데 이어 행인국(荇人國), 해두국(海頭國), 개마국(蓋馬國), 구다국(句茶國), 조나국(藻那國), 주나국(朱那國), 갈사국(曷思國) 등을 차례로 병합했다.
윤 교수는 “고구려가 현도군 영역 안에 있었다면, 이들 국가 또한 현도군 영역에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어떻게 고구려가 현도군의 아무런 저항도 없이 이들 영역을 침탈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고구려가 태동한 곳은 졸본부여 땅이었지 결코 현도군 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도군 안의 고구려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윤 교수는 “고구려 종족이 한 곳에만 거주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중국 동북지역 일대에 퍼져 있었고, 서한이 지금의 요서 지역을 차지하고는 그곳에 현도군을 설치하면서 행정구역을 만들어 고구려인이 많이 사는 곳에 고구려현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데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윤 교수는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고구려ㆍ삼한이라는 한국고대사의 얼개가 고려말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 비롯됐으며(삼국사기는 삼국 이전 기록이 없다), 이런 인식에서는 한국상고사 1천500년이 중국 식민지밖에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이 중에서도 적어도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한사군은 그 중심영역이 베이징 동북지역 롼허와 요하 서쪽 요서 지역이므로 중국고대사에서는 물론이고 한국고대사에서도 변방일 뿐 결코 주류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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