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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파일 24

우리 주변에서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사고들.
언론인 정찬배와 함께 사건들의 이면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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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녁 무신론 권세는 왜 무너지나?평양에 정착한 단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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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2윤복현 조회수 1151






북녁 무신론 권세는 왜 무너지나?평양에 정착한 단지파


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다시 선조의 땅 한반도까지 이주해온 배달족 소호씨 후손-이스라엘 단지파

우리를 자유케하는건 양심과 진실이다

이스라엘 문자는 배달한국 녹도문자로서

배달한국 말기에 압록강지역에서 서진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소호씨(슈메르) 후손으로 조상은 해불함(아브람)

 

 

1. 김규진 (金圭鎭 1868~1933)선생이 저술한 『서법진결(書法眞訣,1914년 간) 에 "고조선 신치체"로 기록. 참고로 김규진 선생은 고종의 황실서예스승이오.



2. 백두용(白斗鏞) 편, 『해동역대명가필보 (海東歷代名家筆譜, 1926 간)』에 "고조선 신치자"로 기록. 해동역대명가필보는 삼국시대부터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역대필적을 엮은 책이오.



3. 평양 법수교비는 1942년 간행 북한 평안도 영변군지(구 영변군지)의 "고조선 신치전" 으로 기록된 것이오.



4. 나머지 중국그림들은 "창힐글자" 혹은 "창힐"과 관련되어 명칭이 기재되어 있소. 앞의 두분들은 저서와 행적에서 보듯, 분명한 분들이고, 그분들이 "창힐고문자" 혹은 "귀갑문"이 아닌 "고조선 신치체"라 기록해 놓았소.

 

 

 

 

 

 

 


 

 


 

고대 히브리 문자가 씌어진 와당(瓦當)과 단군지석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과 광주 박물관에는 아주 희귀한 고조선시대 와당(瓦當)이 소장되어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古代 )히브리 문자가 씌어 있다.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으로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라.’ ‘도착했다.’, ‘성도가 모여서 기도함으로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이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대략 B.C. 1천년경에 사용했던 것으로 그 당시의 것에서 약간 진보된 것도 있다. 이 문자는 야곱의 12지파만이 사용한 것인데 그 문자의 사용시기가 성경상에서 갑자기 사라진 단지파의 소멸시기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대동강뿐 아니라 백두산에도 히브리어가 씌어 있다. 일제치하 고정록 선생에 의해 발견된 ‘단군지석’이 바로 그것이다. 1911년경 일본인들이 백두산에서 벌목하다가 뜻을 알 수 없는 글이 씌어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 의주에 있는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는데, 그 지석에 음각된 글이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니어서 아무도 해독하는 사람이 없어 모두들 궁금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던 중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었던 프랑스인 천주교 신부가 그 지석의 글을 판독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이 글자는 ‘히브리’ 문자이며 내용은 ‘단군지석’인데 판독해보니 제작연대는 약 3천년 전이라고.

 그런데 비단 이런 유물들 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말 속에서 사용되고 있는 히브리어가 있다. 요즘도 시골에 가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로 애비, 애미, 애기 등이다. 이것은 히브리어와 발음뿐 아니라 의미까지 같다. 그리고 장례를 치를 때 ‘아이고 아이고’하고 곡을 한다든지,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남아있는 ‘고수레’ 등의 용어가 그러하다.




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국조이자 인류대제사장이였던 단군왕검 천왕

동상을 부시는 무지한 기독교인들도 인류문명과

연결되는 1만년 우리 한민족사부터 바로 알기 바란다!
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 제천문명은 모두 한반도 농경

제천문화에서 나온 만주 압록강지역의 제천문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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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천년전 지구기온이 높아서 바다물이 들이찼을 때 지형도를 대강 그려본 것. 

흔히 중원이라 불리던 중국의 넓은 평야지대는 지대가 낮아서

특히 대강 [ 5~6천년전]을 중심으로 상당히 오랜기간 물에 잠기는 기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 곳에는 당시 고대문명의 계승, 발전이 어려운 점 많았다. 

[고대 한국 제 3차 중심지] 즉 [한반도 북부-만주]는 고대에

[대황(大荒)의 중심(中)] 이라 불린다.


먼저 [대황(大荒)]이란 무슨 뜻인가 보자.

대(大)자는 크다 , 위대하다는 뜻인데

원래 大자는 고대한국인들을 뜻하는 글자.



 고대한국은 대방(大方) <- 관련글

[황(荒)]자의 고대형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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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황) - 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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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황) - 전서]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물(水)이 흘러나오는 곳에 山이 있다.

여기서 山은 자연산(마운틴)이 아니라 [3개의 중심 피라미드]를 뜻한다.

피라미드 위에서 두팔을 들고 교화하는 지도자의 모습도 보인다.

압록강변의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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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5 ~ 6 천년전의 문명 전파 중심 위도]

5 ~ 6 천년전에는 지구기온이 최고조에 달했으므로

위 지도의 사각형 부분이 지금의 남한 기온과 비슷했고

고대한국 제3차 중심지로부터 서쪽으로 문명이 전파된다.

- 물론 6천년 이상 전에도 문명은 서쪽으로 전파되었다.



한민족 소호씨 이주:압록강지역=>홍산.산동=>중앙아시아 천산=>중동=>이스라엘


서양문명의 뿌리되는 슈메르족은 한민족 소호씨로 한반도지역에서 이주한 농경족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선조는 한민족 소호씨로 조상은 갈대아 우르에서 이주해간 해불함이다!


소호씨는 문헌에 <동방-한국에 에던동산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백두산의 한반도다


이스라엘12지파 중에 단지파가 동북으로 이주해 왔는데, 대동강변에 남긴 고대 히브리어문자 주인공들이다


이스라엘민족은 1948년 나라를 세울 때 자신들의 선조가 떠나온 만주에 세우겠다고 했는데,


유엔이 승인하지 않아서 팔레스틴에서 세운 배경인 것이다. 자신들의 역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이 가장 많았던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 칭했다



청소년시절에 어린이 교회학교 교사활동까지 했다는


김일성을 포함 김일성가족도 모두 기독교집안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역한 김일성은 북한의 한민족을



김일성 우상화 신격화로 세뇌하고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신의 자리에 김일성 자신이 앉아 버린 것이다



우주에서 최고의 형벌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를 것이다



그래서 세계 예언가들이 북녁의 악의 권세라 칭한 것이고



하늘은 김정은을 제거할 인물로 트럼프를 택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은 미국과 합세하여



북녁 악의 권세를 제거하는데 합심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거부하는 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자격이 없는 것이며



위대한 한민족 미래를 방해하는 악의 세력일 뿐이다




북녁 무신론 권세은 왜 무너지나?평양에 정착한 단지파




기독경 구약성서에서 '단지파'는 이스라엘 지도자였던


삼손을 배출한 지파로써 가장 용맹한 전사집단이였다!


가장 용맹한 전사집단인 단지파가 한반도에 도착하여


오늘날 한민족을 형성하였기에 경천애인의 주역이 되어


위대한 한민족 시대를 여는 피가 될 것이라 확신하는 바다!





[고고학 자료]고조선시대 히브리어 문양의 비밀/선조의 땅을 찾아 온 단지파



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5

 

오엽화(무궁화/신인)와 단결하여 신의 나라(백궁)에 들어 가자!/대동강변 출토 유물-기원전 1000년 고대 히브리어 와당

 

머리글

 

기와(와당)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에 이스라엘 12지파의 한 갈래로 알타이산맥까지 이주한 단지파 민족의 최초 정착지, 지금의 중국 서북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 찾을 수 있다. 애굽에서 벽돌 굽던 기술이 지붕 덮개의 기왓장을 만드는 창의력을 발휘하는 데에 이르렀다.


그러한 시도는 일반 백성들의 가옥을 멋있게 꾸미려고 한데서 비록된 것이 아니다. 순전히 하나님을 공경하는 경외심의 발로에서 천제를 지내는 사당(祠堂) 지붕에 와당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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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소호씨의 후손인 이스라엘 단지파은 BC 1073년경에 고대 이스라엘의 최북단 헬몬산 남쪽 기슭 ‘단(라이스)’에서 동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의 레바논에서 시리아, 이라크의 모술과 아르빌, 이란의 테브리즈와 아르다빌,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 이르렀다. 거기서 카스피 바다를 건너 투르크메니스탄의 마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와 타시켄트, 카자흐스탄의 침켄트와 알마티, 천산북로를 경유하여 BC 1065년경 알타이산맥 아래에 위치한 중국서북부의 쿠둔과 부얼진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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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서 알타이까지 7년가량 걸렸지만 남녀노소로 어우러진 수십만의 행군임을 감안한다면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들은 중국북부 알타이산맥에 와서 지친 몸을 풀고 거기서 일시 우거(寓居)한다는 것이 200여 년 동안 살게 되었다


토착민과 물물교환을 위해 알타이계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고 자라나는 이스라엘 단지파 2세들은 히브리 모국어를 점점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배출할 민족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다. 언어가 완전히 교체된 후, BC 850년 전후에 몽고로 옮겨져 살았는데 이미 알타이산맥 아래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불어난 인구는 일백만이 족히 넘었으리라 본다.

 

기원전 9세기 중엽, 단지파 주류의 절반 이상이 되는 50만 명이 중국서북부에서 몽고로 이동할 때에는 카자흐스탄의 세미에서 시베리아알타이산맥의 낮은 지대를 넘어 알타이의 수도 바르나울(Barnaul의 바른Barn은 ‘크다’는 뜻이고, 울ul이란 ‘마을’을 뜻함)을 경유하였다.

 

알타이를 넘은 단지파의 거주공간은 샤안산맥의 남쪽기슭에 위치한 뚜바와 바이칼호수 주변의 이르크츠크와 울란우데 그리고 몽골평원의 광대한 영역으로 확산되었다. 훗날 뚜바¹는 돌궐(투르크)족 시조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고 오늘날에 와서 뚜바인을 한민족 조상의 원류로 파악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뚜바에서 발굴되는 청동기 유물 가운데 청동검이나 문양이 있는 둥근 돌 그리고 몽골반점 등이 한반도의 문화와 너무나 일치하기 때문이다.

 

단지파는 몽골에서 수십 년간 유목생활을 하면서 자연히 말을 다루는 기마민족으로 격상되었고, 마찬가지로 중국서북부와 시베리아 알타이 그리고 몽골초원에서 청동검과 청동화살촉, 제사장의 청동방울과 청동거울 등을 제작하면서 이스라엘에서 출발할 당시 가져온 청동기 문화의 꽃을 피웠다. 중국서북부에서 거주할 때에는 유목생활보다 정착민으로서 집을 짓고 살았다. 그들은 애급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흙 이기기와 벽돌² 굽던 경험을 살려 집 지붕에 기와로 단장하는 창의력을 발휘하였다.

 

 

          모국어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알타이어를 사용하던

          단지파가 훗날 구세주 배출한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보여줄 필요성을 하나님께서 느꼈다

          그래서 '기와'라는 창작물이 탄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중국서북부에는 부얼진 북쪽 하나스 강변 도와촌(圖瓦村)에 도와인³들이 투르크(突厥)의 언어와 몽골(蒙古)의 복장을 고수하며 옛날 풍습들을 잘 지켜오고 있다. 기와 굽는 기술이 와한인(瓦罕人)에 의해서 카스 일대 뿐만 아니라 파미르 남부지방으로 확산되었는데, 인도에서도 수키와(夫瓦)만으로 지붕을 올린 기와집들이 많다. 그리고 중국 서주시대(BC 1015~770년)에 처음으로 기와가 나타나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갓난아기 엉덩이에 푸른 반점이 생기는 이유는 여자들이 아이를 낳을 때에 순산을 위해 삼신할머니가 손으로 아기의 엉덩이를 떠민 자국이란다. 옛날에 히브리인들이 태어난 지 8일째 되는 남아에게 할례의식을 거행함으로써 이방인과 구별하였다. 그런데 단지파의 부족들은 몽골대초원에서 목초지를 따라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며, 간혹 평원에서 서로 마주칠 때에 동족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할례와 같은 증표가 바로 아기들의 몽골반점이었다.

 단지파 와당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모국어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알타이어를 사용하던 단지파가 훗날 구세주를 배출한 후에 한반도지역에서 서진한 슈메르족의 후손인 이스라엘민족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남길 필요성을 하나님께서 느꼈다. 그래서 기와 굽는 기술 전승이 끓어지기 전에 BC 830년경 몽골대초원에서 출발하여 중국 요녕성을 경유하여 농사가 가능한 만주평원으로 옮기셨다.


 

하나님께서는 예비한 금수강산 한반도에 무사히 이스라엘백성 단지파를 안착시킨 기념비로 <도착했다><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 잠언을 지휘하는 사사가 통치한다><신의 나라에 단결하여 들어가자5>라는 고대히브리어 글귀를 동그란 기왓장인 수막새에 양각(陽刻)으로 새겨놓았다. 레위지파에서 제사장 신분이 전승되었듯이 천제(天祭)를 맡아온 제사장의 가족들은 대대로 히브리어 모국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경건한 마음을 간직하였기에, 고조선 와당에 고대히브리어를 새겨 인류구원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다.

 

고대히브리어 문양 와당(평양부 림원면 상오리 출토)이 현재 용산국립박물관에서 「고구려 수막새」로 분류되어 유물연대를 1300년 정도 낮추어서 전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루속히 시정되어야 하겠다. 기원전 8세기 초 고조선 성립연대와 기원후 5세기 초 고구려 평양천도연대의 차이가 1300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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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부 림원면 상오리는 대동군에 속하며, 그 대동군 대보산리 반천리움 무덤에서 출토된 〈잔줄무늬거울6(평양 조선중앙력사 박물관 소장)〉은 기원전 3세기 고조선후기 유물이다. 거울이 고대사회에서 제례의식을 행할 때 제사장의 목에 걸었던 상징적 장식품임을 감안하면, 대동군 일대는 고조선의 신성한 소도(蘇塗: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성지)였음에 분명하다. 바로 이곳에서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된다, 잠언을 지휘하는 사사가 통치한다>라는 고대히브리어 글귀가 새겨진 수막새를 발견하였다. 이 수막새(와당)는 한민족이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사실을 고증적으로 완벽히 입증하는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기에, 하나님께서 수천 년 동안 숨겨서 보호했다가 한반도에서 출현한 구세주에 의해서 공개되게끔 예정하셨던 것이다.

 

 

 

 

 

[각주] 

 

뚜바¹ : 수도는 키질이다. 남쪽으로 몽골, 동쪽으로 부랴티야 공화국, 서쪽으로 하카시야 공화국알타이 지방, 북쪽으로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과 접해 있다. 중앙부와 서부는 투바 분지, 동부는 고원으로, 서사얀 산맥동사얀 산맥 등 고산지대가 이 분지를 둘러싸고 있다. - 「네이버 백과사전」

 

투바족은 아시아 대륙의 깊은 지역, 예니세이 강 유역에 살고 있는 투르크 계통의 목축인으로서 사람들은 '우랑하이' 또는 '소요트'라고 부르고 있다. 이는 부족이름 '소욘'에서 비록된다. 예전 우리 한민족을 가르키던 '조선'이란 말은 '선을 향해 가는'이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조선은 원래 한문 이름이 아니라 시베리아 원주민 사얀에서 비롯되었다. 순록의 먹이는 이끼인데 이 이끼는 주로 3~5년 만에 다시 자라기 때문에 순록 치기들은 순록의 먹이를 찾아서 서 시베리아에서 동 시베리아로 이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바로 조선족이라는 것이다. 결국 해뜨는 곳으로 이동해 왔지만 더 본질적인 차원에서 보면 순록의 겨울 먹이인 이끼, 즉  선을 찾아 이동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는 정태적인 조선의 이미지가 먹이를 찾아 계속 움직일 수밖에 없는 수렵-유목민의 의미를 가진 동태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투바인의 외모는 한국인과 너무나 비슷하다. 사얀 족의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만 보더라도 투바의 사얀족은 한민족의 한 뿌리이며, 한민족과 같은 혈통을 가진 잃어버린 형제임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 사야족의 DAN를 검사하고 있는 I.A 자하로프 박사는 조선족이나 몽골족이 이 사얀족으로부터 기원이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베리아-알타이 지역의 사람들은 우리와 동족 혹은 유사 문화권이다. 또한 언어학적으로 보면 투르크어, 한국어, 몽골어, 만주 퉁구스어는 공통점으로 인해 소위 알타이어로 분류된다. 문장의 어순이 동일하며, 조사 등 형태소들이 많이 있으며, 어원적으로 같은 단어들이 많다. 최근의 연구자들은 알타이 언어학자 람스테드가 주장한 것처럼 한국어와 투르크어가 가깝고, 몽골 어와 만주 퉁구스어가 서로 가깝다고 증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국사람이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는 투르크어이며, 그 다음이 만주 퉁구스어, 다음이 몽골어이다. 신라의 창시자 박혁거세는 투르크어의 국가지도자 칭호인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백제의 실제 창시자 고이왕의 고이는 투르크어의 염소인데 이것은 수염을 길게 늘인 국가지도자를 상징하는 말이다. 백제시대 왕비는 어룩인데 이는 고대 투르크어의 왕비를 뜻하는 말이다. 고대국가 중에 하나인 부여도 만주 퉁구스어의 사슴이란 뜻이다. 이 사슴은 시베리아 유목인들이 신성하는 동물이다. 그러므로 국가 이름을 사슴으로 한다는 것은 국가 창시자들이 시베리아 지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고조선의 수도 졸본은 만주 퉁구스어 새벽별이란 뜻이다. 이것을 보면 원시고대 시대에는 한민족, 투르크, 몽골, 만주 퉁그스 부족들이 서로 동일민족으로 생각하며 부족 연합국을 만들어 운명을 함깨 공유하며 살았던 것이다.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에 대항하여 싸울 때 투르크족인 돌궐 족이 연합해서 싸웠다는 것은 알타이 민족의 친근성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출처 http://blog.naver.com/nirvanamir/20022798717


 

 
 
 투바의 돌 문양과 고조선 와당 문양의 유사성
 
 
벽돌²: 이집트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 위에 감독을 세우고, 그들에게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의 박해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들이 더욱 더 번성하게 만드셨다. 그러자 애굽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으로 인해 고민하였으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흙 이기기나 벽돌 굽기, 또는 농사일과 같은 고역을 시켜서 괴롭게 만들었다(창세기8~14장)
 
 
 
 
 
 
 
도와인³: 중국 북방에 속한 도와인은 유목민족 중에 제일 오랜 된 민족의 하나이다. 중국 서북부 신강 자치구에 사는 도와인의 어린이가 착용한 신비스런 의복이 한민족의 색동옷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신강 자치구에서 알타이산맥 너머 동쪽의 투바(Tuva)의 사람도 중국에서는 '도와인'이라고 지칭한다. 투르크족 계통으로 동일민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수키와(夫瓦)

 

기와 얹기 :우리의 기와집과 달리 수키와 만으로 지붕을 올린 집들이 많다.
 인도를 대표하는 인물인 간디가 설립한 아쉬람이다. 사진출처 http://www.koreaface.com/        



      

잔줄무늬거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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