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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두언,김유정의 이것이 정치다














이것이 정치다 - 시청소감

이것이 정치다 - 시청소감
4.3좌익폭동사건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사이비 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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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3윤복현 조회수 483




자유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승만 대통령이


지하에서 분노,통곡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4.3좌익폭동사건을 국가기념일로 정하고


찬동해 온 사이비 정치권과 종북역적 언론들





빨갱이 김달삼이 주동한 4.3좌익폭동사건이


대한민국의 국가기념일이라니 북한이야?





4,3좌익폭동사건을 국기기념일로 제정하고

 

좌익빨갱이들이 묻힌 묘소에 참배한 정치꾼들을

 

보고 김정은 일당이 얼마나 비웃으며,반드시

 

집어 삼키겠다고 결의를 다질것인지 생각해 봤어?

 

 

 

 

월북하여 1948년 9월 2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조선최고인민회 제 1차회의’에서


김일성, 허헌 등과 함께 49명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으로

선출되었고,국기훈장 2급 훈장을 받았던 김달삼이 주동자가 되어 일으킨 4.3폭동사건은

자유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할 목적으로 소련괴뢰인

김일성-박헌영의 지시로 일으킨 국가전복사건이다!


따라서 4.3좌익폭동사건을 대한민국 국가기념일로

제정했다는 것은 반국가 이적행위에 불과하니 당장에

폐지하고 4.3제주폭동의 진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고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반국가 이적행위자들로 형법93조를 적용,사형해야 한다!


입법 제정자가 현재 더민당 대표 추미애는 아니겠지?


4.3사건의 본질과 실체를 공부 안해서 무식해서  

 

 

주사파에게 이용당하여 법안을 제정했다면

 

 

국민양심에 입각하여 사죄하고 폐지에 앞장서라!

 

 

국가기념일을 박근혜 대통령이 내용도 모르고

 

 

추인했다면 역시 대국민 사죄와 함께 당장 폐지하라!

 

 


 
1.jpg



(1) 제주 9연대 41명의 탈영
1948년 5월 20일 김달삼의 지령을 받은 문상길이 9연대 안에 있던 남로당원 병사 41명을 탈영시켜 박진경이 연대장 직에서 해임되게 하려 하였다. 탈영병 41명은 99식 소총 1정씩을 가지고, 실탄 1만4천발을 트럭에 싣고 산으로 올라가려 하였다. 그러나 문상길 중대장과 연락이 안되어 헤매다가 주민의 신고로 포위되고 말았다. 경비대는 도망치는 21명에게 집중사격을 하였고, 체포된 20명은 전원 군법회의에 기소, 박진경 연대장은 상부의 명령대로 20명 포로 모두를 총살하였다.

 
(2) 연대장 박진경 대령 피살
또다시 김달삼으로부터 박진경 연대장 사살 명령을 받은 문상길 중대장은 남로당원이었던 정보계 선임하사 양회천 상사를 불러 이를 하달하였다. 양 상사는 즉시 남로당원 손선호 하사, 신상우 중사, 강규찬 중사, 배경용 하사에게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 지령을 내렸다.

“17일 저녁(박진경 연대장이 성공적인 진압 작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령을 진급한 것에 대한 축하연이 있기로 예정) 술을 많이 먹고 오는 박진경을 사살하라. 신상우는 부대 정문에서 연대장이 오는 것을 확인하고 강규찬은 이것을 확인받아 배경용, 손선호에게 알리고, 배경용은 불을 켜주고, 손선호가 총을 쏘는데, 두 발을 쏘면 잠을 자던 사람들이 놀라니 한 발로 끝내야 하며, 죽은 후에 피가 많이 흐르면 보기가 흉하니 머리에 딱 한 발로 죽여야 시체가 험하지 않고 증오심이 적을 것이다.”

이 지령대로 이들은 빈틈없이 움직여 1948년 6월 15일 새벽 3시 15분 깊이 잠든 박진경 연대장을 암살하였다.

박진경 연대장 피살 이후, 7월로 접어들면서 제주도민은 밤낮으로 공포에 떨어야 했다. 밤이면 폭도가 두려워 숨어 지내고, 새벽에야 집에 들어오면 경찰서에 호출될까봐 집안에 있을 수도 없었다. 4월 이후 7월까지 좌우 양측의 틈바구니에서 양민들도 수천명 죽었지만, 군경합동 소탕작전에 폭도들도 한풀 꺾일 만큼 섬멸되어 7-8월에는 상황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3) 최경록 연대장을 암살하려는 문상길의 음모
박진경 연대장이 갑자기 암살되고 곧바로 6월 21일 후임으로 최경록 연대장이 부임하였다. 최경록 연대장은 경찰과 경비대를 총동원하여 360개의 오름을 뒤져 1454명의 폭도들을 연행, 600명을 기소하고 나머지는 수용소에 보냈다. 문상길 중위는 최경록 연대장을 박진경 연대장처럼 암살하려고 두 차례나 시도했으나, 최 연대장이 데리고 있는 독일산 셰퍼드 때문에 실패했다.
 
(4) 포로수용소장이 된 오일균 소령의 음모
오일균 소령은 군에 침투한 남로당의 핵심분자로 4.3 사건 진압 차 부산 5연대 휘하 제2대대를 제주 9연대로 편성할 때 대대장으로 파견된 자였다.

박진경 암살 사건 이후, 최경록 연대장이 부임하자 오일균 소령은 집중 수색을 견디다 못해 대대장직을 사임하고 포로수용소장을 지원해 부임하였다. 그곳에서 오일균은 폭도가 아닌 일반 양민을 대신 수감시키고 폭도들은 합법적으로 석방하여 인민유격대의 김달삼에게 보내는 음모를 꾸몄다.

이 사실은 한 양민이 송요찬 연대장에게 보낸 진정서에 의해 발각되고 말았고, 오일균 소령은 곧 보직 해임되었다가 군법회의에 넘겨졌고, 보안법에 의해 사형을 선고받아 1949년 2월 수원에서 총살당하였다.
 
(5) 한의사를 통해 총과 실탄을 빼돌린 김창봉 대위
손영로 중대장이 조천 지서의 다급한 지원요청을 받아 중대원들을 이끌고 출동했는데, 2대대장 김창봉 대위는 상관의 명령없이 움직였다고 지나치게 호통을 쳤다. 이를 수상히 여겨 뒷조사를 한 결과 한의사를 통해 총과 실탄을 공비들에게 공급하였고 9연대 작전 기밀도 빼돌렸음이 드러났다. 김창봉은 군법에 넘겨져 사형 당하였다.
 
(6) 해주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차 월북한 김달삼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모인 가운데 선거는 남북한을 통틀어 해야 한다고 합의하여 남한에서 각 시군에서 5-7명의 대표자를 최고인민대의원으로 선출하자고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박헌영은 김삼룡에게 “이남에서 비밀리에 선거인의 선거를 하여 대표자를 해주까지 파송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7월 중순부터 남로당, 전편, 전농, 민애청 등이 중심이 되어 전국적인 남로당 지하 서건가 시작되었다. 제주도 대표 대의원의 한 사람으로 해주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한 김달삼은 제주도 폭동의 진상을 보고하여 대의원들의 열광적인 갈채를 받았다.

9월 2일부터 평양에서 열린 ‘조선최고인민회 제 1차회의’에서 김달삼은 김일성, 허헌 등과 함께 49명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위원회 헌법위원으로 선출되었고 김달삼은 국기훈장 2급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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