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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건국자 고추모 생일을 어린이날로 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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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5윤복현 조회수 518

 

한국의 여성들은 인성 좋고

 

씩씩한 사내들을 만나 좋은

 

 

 

 

아이을 낳아 양육해야 한다 

 

국가는 혼인하고 자식들을

 

양육할 수 있는 경제여건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민족이 모래알처럼 번성한다

 

 


한민족 정통사서[환단고기/북부여기]"고리국 사람인 해모수는 4월 8일에 웅심산에서 북부여를 세웠다...해모수 차남인 고진은 고리국 제후이며, 고진의 손자로 고모수라 불리우는 불리지와 하백의 딸인 유와가 서압록에서 정분을 통해 5월 5일에 고추모를 낳았다.."

 


4월 8일도 본래 석가모니

 

탄생일이 아니라 고추모

 

증조부 해모수가 부여를

 

건국한 날로써 불교가

 

한국문화와 결합됐다

 

 


한민족 가치관은 양심 해

 

지구촌을 널리 이롭게 하는

 

본심본태양이 다 되야 한다


대한민국의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정한 역사적

 

배경은 5월 5일이 고구려를

 

건국한 고추모 성제가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들이

 

동방의 중심국가를 건국한

 

고추모 성제처럼 씩씩하고

 

늠름한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라면서 일제 치하에서

 

국조 단군왕검을 모신

 

항일 운동가들이 정했다



한민족 정통사서[환단고기]가 전하는 뿌리사


삼성기전 상편/편찬자: 안함로(安含老)


환국(국호의 기원) 개창

吾桓建國 最古

有一神 在斯白力之天 爲獨化之神 光明照宇宙 權化生萬物 長生久視 恒得決樂 乘遊至氣 妙契自然 無形而見 無爲而作 無言而行

우리 환족(桓族)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



한 신(神)이 있어 사백력(斯白力)의 하늘에 있으며 홀로 우주의 조화를 부리는 신이다. 광명으로 우주를 비추고 권화(權化)로 만물을 낳으며, 불로장생하사 항상 즐거움을 누린다. 지극한 우주의 현기(玄氣)를 타고 노닐고 자연에 오묘하게 부합하며, 형상 없이 나타나고 무위로 만물을 지으며 무언으로 행했다.



안파견 환인


日 降童女童男 八百於黑水白山之地 於是 桓因亦以監羣 居于天界 掊石發火 始敎熱食 謂之桓國 是謂天帝桓因氏 亦稱安巴堅也 傳七世 年代不可考也

어느 날, 동녀동남 800명을 흑수(黑水)와 백산(白山) 사이에 내려 보냈는데, 이 때 환인(桓因)이 감군(監羣)이 되어서, 천계(天界)에 거주하며 돌을 쳐서 불을 만들어 처음으로 음식을 익혀 먹는 방법을 가르쳤다. 이를 환국(桓國)이라 이르고, 이 환인을 천제(天帝) 환인씨(桓因氏), 또는 안파견(安巴堅)이라 칭하였다. 환국은 7세(世)를 전했으나, 연대는 고찰할 수가 없다.



환웅과 배달 개창

後 桓雄氏繼興 奉天神之詔 降于白山黑水之間 鑿子井女井於天坪 劃井地於靑丘 持天符印 主五事 在世理化 弘益人間 立都神市 國稱培達 擇三七日 祭天神 忌愼外物 閉門自修 呪願有功 服藥成仙 劃卦知來 執象運神 命群靈諸哲 爲輔 納熊氏女 爲后 定婚嫁之禮 以獸皮爲幣 耕種有畜 置市交易 九域貢賦 鳥獸率舞 後人 奉之爲地上最高之神 世祀不絶 神市之季 有治尤天王 恢拓靑邱 傳十八世 歷一千五百六十五年

뒤에 환웅씨(桓雄氏)가 이어서 일어나 천신(天神)의 명령을 받들어서, 백산과 흑수 사이로 내려와 천평(天坪)에 자정(子井)과 여정(女井)을 팠고 청구(靑邱)에 정지(井地)를 그었다.


천부(天符)와 도장을 지니고 다섯 개의 일을 주관하여, 세상에 계시면서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다스려 바꾸었으며, 신시(神市)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배달(倍達)이라 하였다.


삼칠일(21일)을 택하여 천신께 제사지내고 바깥 물건을 삼가 꺼렸으며, 문을 닫고 스스로 갈고 닦으니, 주문을 읽어서 원하여 공(功)이 있었고 약을 먹고 신선이 됨을 이루었으며, 점괘를 그어 미래를 알았고 우주의 운동의 비밀을 깨달아서 신명을 부려 인간의 이상을 실현하였다.


명하여 여러 신령한 인물과 명철한 인재들을 모두 모아 보좌하게 했고, 웅씨(熊氏)의 여인을 맞아들여 후(后)로 하였으며, 혼가의 예법을 정하여 짐승 가죽으로 폐백을 삼았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게 했고, 시장을 열어 교역을 하게 하니 아홉 개의 지역에서 공물과 세를 바쳤고, 새들과 짐승들이 모여서 춤을 추었다. 후세의 사람들이 이를 지상의 최고신으로 모시고 세세토록 제사지내기를 그치지 않았다.


신시의 말기에 치우천왕(治尤天王)이 있었는데, 청구를 널리 개척했다.


배달은 18세를 전했고 1565년을 지냈다.



단군왕검과 고조선 개창

後 神人王儉 降到于不咸之山檀木之墟 其至神之德 兼聖之仁 乃能承詔繼天而建極 巍蕩惟烈 九桓之民 咸悅誠服 推爲天帝化神而帝之 是爲檀君王儉 復神市舊規 設都阿斯達 開國 號朝鮮 檀君端拱無爲 坐定世界 玄妙得道 接化群生 命彭虞 闢土地 成造 起宮室 高矢 主種稼 臣智 造書契 奇省 設醫藥 那乙 管版籍 羲 典卦筮 尤 作兵馬 納菲西岬河伯女 爲后 治蠶 淳厖之治 熙洽四表

뒤에 신인(神人) 왕검(王儉)이 불함산(不咸山)의 박달나무가 우거진 곳에 내려 오셨다. 왕검께서 지극히 신성한 덕성과 성인의 자애로움을 겸하시고, 선대 환인, 환웅 성조와 하늘의 뜻을 받들어 인륜의 푯대를 세우시니, 천하에 그 공덕이 우뚝 솟아 찬란하게 빛났다.


이에 아홉 환족의 백성들이 기뻐하고 진실로 복종하여 천제의 화신으로 밀어 올리고 이를 임금으로 추대하니, 이 분이 바로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신시의 옛 법을 되돌리셨고,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세우셔서 나라를 여시고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셨다.


단군께서는 단정하게 팔짱을 끼시고 무위(無爲)로써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아 정하셨다. 현묘한 도를 깨우치셨고,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 팽우(彭虞)에게 명하여 토지를 개척하게 하시고, 성조(成造)에게 궁실을 짓게 하시고, 고시(高矢)에게 농사일을 맡게 하시고, 신지(臣智)에게 글자를 만들게 하시고, 기성(奇省)에게 의약을 베풀게 하시고, 나을(那乙)에게 호적을 관장하게 하시고, 희(羲)에게 괘서(卦筮)를 주관하게 하시고, 우(尤)에게 병마를 담당하게 하셨다.


비서갑(菲西岬)에 사는 하백(河伯)의 딸을 맞이하셔서 후(后)로 하셨고 누에치기를 맡게 하시니 백성을 사랑하시는 어질고 후덕한 정치가 사방에 미쳤다.



고조선의 후기에 대부여로 국호를 개칭하다

丙辰周考時 改國號 爲大夫餘 自白岳 又徙於藏唐京 仍設八條 讀書習射 爲課 祭天爲敎 田蠶是務 山澤無禁 罪不及孥 與民共議 協力成治 男有常職 女有好逑 家皆蓄積 山無盜賊 野不見飢 絃歌溢域 檀君王儉 自戊辰統國 傳四十七世 歷二千九十六年

병진년(丙辰年, 기원전 425년) 주(周) 고왕(考王) 때 나라 이름을 대부여(大夫餘)로 고치시고 도읍을 백악(白岳)에서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기셨으며, 여전히 8조(條)를 세우셨다.

독서와 활쏘기를 일과로 삼으시고, 하늘에 제사지냄을 가르침으로 삼으셨으며,


농사와 누에치기에 힘쓰고 산과 못을 일반 백성에게 개방하셨다. 죄를 지어도 처자는 벌하지 않고 당사자에게만 미치게 하고,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힘을 합하여 다스리셨다.


남자에게는 일정한 직업이 있고 여자에게는 좋은 배필이 있었다. 집집마다 재물이 풍부하고 산에는 도적이 없으며, 들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고 악기 소리와 노랫소리가 온 나라에 넘쳐 흘렀다.


단군왕검께서 무진년(戊辰年, 기원전 2333년)에 나라를 통일하셔서 다스리신 이래 47세를 전했고, 2096년을 지냈다.



해모수의 북부여 개창과 고두막한의 동명 개창

壬戌秦始時 神人大解慕漱起於熊心山 丁未漢惠時 燕酋衛滿 竊居西鄙一隅 番韓準 爲戰不敵 入海而亡 自此三韓所率之衆 殆遷民於漢水之南 一時群雄 競兵於遼海之東 至癸酉漢武時 漢移兵 滅右渠 西鴨綠人高豆莫汗 倡義興兵 赤稱檀君 乙未漢昭時 進據夫餘故都 稱國東明 是乃新羅故壤也

임술년(壬戌年, 기원전 239년) 진(秦) 시황제(始皇帝) 때 신인(神人) 대해모수(大解慕漱)께서 웅심산(熊心山)에서 일어나셨다. 정미년(丁未年, 기원전 194년) 한(漢) 혜제(惠帝) 때 연(燕) 유민들의 우두머리 위만(衛滿)이 서쪽 변방 땅 일부를 도적질하여 차지했다. 이에 번한(番韓)의 왕인 준(準)이 맞서 싸웠으나 당해내지 못하고 바다로 도망하였다. 이로부터 삼한(三韓)에 속해있던 백성들은 대부분 한수(漢水) 이남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이후 한때 군웅들이 요해(遼海) 동쪽에서 군대를 일으켜 서로 힘을 겨뤘는데, 계유년(癸酉年, 기원전 108년) 한 무제(武帝) 때 한(漢)이 쳐들어와 위만의 손자 우거(右渠)를 멸망시켰다.


서압록(西鴨綠) 사람 고두막한(高豆莫汗)께서 의병을 일으켜 또한 단군이라고 칭하셨다. 을미년(乙未年, 기원전 86년) 한 소제(昭帝) 때 고두막한께서 부여의 옛 수도를 점령하고 나라 이름을 동명(東明)이라 칭하셨는데, 이 곳이 바로 신라(新羅)의 옛 땅이다.



추모왕의 북부여 계승

至癸險十月 高鄒牟-亦以天帝之子 繼北夫餘而興 復檀君舊章 詞解慕漱 爲太祖 始建元 爲多勿 是爲高句麗始組也

계해년(癸亥年, 기원전 58년) 봄 정월에 이르러 고추모(高鄒牟, 고주몽)께서도 역시 천제의 아들로서 북부여를 계승하여 일어나셨다. 그리하여 단군의 옛 법을 되돌리시고 해모수를 태조(太祖)로 하여 제사지내셨으며, 연호를 정하여 다물(多勿)이라 하시니 이분이 바로 고구려(高句麗)의 시조이시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이념으로 지구촌을 비추던 단군한국을 회복하겠다는 다물정신과

 

미래정신이 고구려를 위대한 나라로 만들었다. 사람이고 나라고 정신이 있어야 미래가 있는 것이







국통 황통에서 고구려의 정통성



단군한국=>대부여=>고구려

 

 

 

 

사악한 독재권력과 소수 독식 경제는 제거.정화하고

 

나눔과 치유가 필요한 대한민국과 한민족과 지구촌

 

 

 

 

 

 

 

바람의 나라 코리아

 

동방의 빛과 사랑으로

 

지구촌을 비추리라

 

자연스럽게 통하는

 

묘하게 끌리게 만드는

 

오직 성령의 힘으로!





동방의인의 역사 이야기

 

고추모와 고구려

 

 

     

[환단고기/고구려국본기]"이 때(광개토태왕의 고구려)가 해동의 극성기였다. 거란.백제.신라.왜 등 주변 나라들이 모두 조공을 바쳤으며, 평량(감숙성)까지 평정했다."

[광개토태왕비]"북부여 출신인 추모왕(고추모)은 천제(하나님)의 아들이다..태왕은 17세손(해모수의 손자)"

[환단고기/북부여기]"고리국 사람인 해모수는 4월 8일에 웅심산에서 북부여를 세웠다...해모수 차남인 고진은 고리국 제후이며, 고진의 손자로 고모수라 불리우는 불리지와 하백의 딸인 유와가 서압록에서 정분을 통해 5월 5일에 고추모를 낳았다.."

고추모와 광개토태왕의 출생의 비밀이 광개토태왕비와 환단고기 기록을 통해 명확히 드러 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음력 4월 8일은 석가탄신일이 아니라, 해모수가 부여를 개국한 날이고,5월 5일은 고추모가 태어난 날로 우리 어린이들이 고추모의 씩씩한 정신과 기상을 본받으라고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다. 이런 걸 알고 있는 대한민국 대통령.정치인.국민이 거의 없다!

모양은 작으나 유효사거리가 최대인 활이 고구려 맥궁

이 고구려 맥궁을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한 몽골이 사용했고, 로마제국을 굴복시킨 훈족이 사용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몽골과 훈족이 모두 고구려족이라는 의미가 된다.

또한 단석괴의 출현으로 결집하여 대흥안령에서 지나북부로 이주하여 5호 16국 시대에 지나대륙을 지배하게 되는 선비족 역시 2대 유리왕 때 정벌당하여 고구려의 속국이 되어 태조왕 시기에는 고구려의 용병으로 한군현 회복에 8천명이 참전[삼국사기/고구려국본기-태조왕 편 기록]하면서 고구려로부터 기마술을 배웠으니 선비족을 키운 건 고구려인 것이다.

광개토태왕이 정벌하여 속국으로 만든 거란 역시 훗날 요나라로 성장하게 되는데 고구려가 키운 것이다. 훗날 8기군이라는 기마군단으로 부패한 명나라를 무너 뜨리고 지나대륙을 지배하면서 고구려 태왕들에게 제사를 지냈던 청나라 역시 고구려의 용병족이였던 말갈족이니 고구려가 키운 것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대진국 발해까지 망하고, 고구려 백성들(맥시코 아즈텍 문명의 주역 고리족) 이 베링해협을 건너 대거 아메리카로 대거 이주해 가게 되니 말갈족이 만주의 주인이 되어 지나대륙을 차지한 것이다.

지나사에서 위.촉.오 3국 시대에 오나라왕 손권이 고구려에게 국서를 보내어 초원의 주인이라는 의미에서 고구려를 선우라고 칭한 것은 그러한 배경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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