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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국 천제국은 대한민국(서남해=>한반도=>압록강=>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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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7윤복현 조회수 410



하나님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사이비들이 판쳐서 가르는 것이지


보수와 진보는 본래 하나인 것이다


진정한 보수 진정한 진보 진정한 한민족주의자인


동방의인 시대는 3신1체 양심 하나님 시대


 

자유 베트남은 국론을 조장하기 위하여 데모로 날밤새운 내부 간첩들과 땅굴로 망했다!

 

 

공산화 이후 야당 대표는 후지민의 명령을 수행한 간첩으로 밝혀 졌다

 

 

고로 김정은과 대남통전부가 대통령으로 내세울 인물은 문죄인이다



한류 세계화는 한민족 시대


피라미드는 하나님께 제사지낸 제천단


피라미드 상단의 제단이 남방식 고인돌


산이 많은 동방 에덴동산 한반도는 제천하는 지성소였다!


북진하며 전 지구촌으로 이주해 간 한민족이 제천단으로


삼았던 한반도 산을 평지.강가에 흙벽돌로 쌓은게 피라미드


 

나일강 옆에 있는 이집트 대 피라미드의 원형이 대강 저 지역에 있을 것으로 본다.저 원조 피라미드는 바다 속에 있으므로 비교적 온전히 있을 것이다.발견은 시간문제로 본다.마문명 제2중심지였던 부산, 마산, 울산 앞바다에도 상당히 큰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다.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 천사들의 지상천국 건설


먼저 하나님의 나라(한국)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



한국을 건국하시고 제천단을 쌓아 하나님께 감사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와 기도를 드린 국조 대제사장 단군왕검




탐욕(암)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느니라!







의학적으로도 100% 맞는


이 성구는 김정은과 문죄인,그리고



대한민국보다는 권력욕에만 취한



정치꾼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유와 해방의 영이시다!


자유와 해방을 억압하는 세력이 바로


하나님에 대적하는 악령들인 것이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한민족은 모든 정신적 사대주의에서 해방하고 당당하라!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 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백두산 천지

[영원히 살 것처럼 계획하고, 하루 살다 죽을 것처럼 실천하라.]

[ 이상 없는 현실은 무의미하고 현실 없는 이상은 존재할 수 없다.]

------------------------------------------ 

 

 

산동지방을 중심으로 한 [소호(少昊)]족의 문명이 동이(東夷) 즉 고대한국과 유사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하겠다.

그들은 중국학계에서도 예전부터 동이(東夷)계로 말해지는 사람들.

 

사마천의 사기에도 4천수백년전 인물인 [황제헌원씨]가 소전(少典)의 자손이라 했는데 

지금 중국 꽁정파도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소전(少典)이란 압록강 유역에서 홍산지역을 거쳐서 중국 서안, 함양 지역으로 이동한

고대한국인의 통칭인 것이 더욱 더 드러났다 하겠다.

 

압록강 유역   ->   홍산   ->    서안, 함양

 

 

꽁정파가 요하 유역 홍산문화를 중국고대문화라고 우기더니

이제 탐원꽁정 백두산꽁정 어쩌고 하면서 이제 압록강 유역도 중국고대문명이라 우기는데 

어쨌던 그들도 중국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 '실토'한 것은

잘된 일로 본다.

그들에 의해서도 이제 [소호(少昊)]는 물론 [소전(少典)]도 고대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이라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겠다.

물론 요하와 압록강 유역의 유물유적이 계속 발굴되므로 꽁정파도 더 이상 

만주고대문명이 중국으로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숨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저번 글에도 밝혔듯이 요임금은 소전(少典)의 후예이고 순임금은 소호(少昊)의 후예인데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준 것은 친자식이 아닌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준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에서 중국으로 문명이 전파된 2갈래 즉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통합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중국고대사의 큰 분수령을 이룬다 하겠다.

 

물론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본격적인 통합은 그보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소호(少昊)족인 순임금이 소전(少典)으로 가서 임금이 되었다는 것은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의 통합을 시작한다는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본다.

요순임금의 왕위계승은 후대에 중국이라는 개념의 하나의 나라가 탄생할 수 있게 한 초석이 되었다 하겠다.

 

소전(少典)은 [황제헌원씨] 때 고대한국에서 독립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하겠는데  

그 과정에서 [황제헌원씨]와 [치우씨]의 대결이 있었다 하겠다.

[황제헌원씨]는 독립에 성공했다고 보이는데 그래서 중국인들이 [황제헌원씨]를 그들의 시조라 칭해오고 있다고 본다.

 

사마천 사기의 주석에 보면 소전(少典)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제후국(諸侯國)의 이름이라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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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전(少典)은 제후국 이름이고 사람이름이 아니다.

( 少典者 諸侯國號 非人名也 )

----------------------------------

 

약 4천7백년전 인물인 [황제헌원씨]가 제후국(諸侯國)인 소전(少典)의 자손이라는 얘긴데

그럼 당시 본국(本國) 은 어디인가.

 

중국에서는 [황제헌원씨]를 중국의 시조라 칭해오고 있고

그 이전에는 세상(동북아)에 나라가 없었다는 듯이 '이미지 메이킹'을 해오고 있지만

 

사마천 사기만 봐도 [황제헌원씨] 이전에도 '나라'가 있었다.

 

제후국(諸侯國)인 소전국(少典國)이 있었고

또한 소호국(少昊國)도 있었고

그리고

그 나라들의 뿌리인

본국(本國) 이 있었다.

 

꽁정파도 스스로 밝혔듯이 [황제헌원씨] 부족 즉 소전국(少典國)은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고 

그럼 본국(本國)도 만주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겠다.

 

필자는 고대한국 제3차 중심지를 압록강 유역( 특히 집안, 환인 지역)으로 비정해 왔는데 

위 사실과 일치한다 하겠다. 

 

당시 천제의 나라인 본국(本國) 즉 고대한국의 임금으로 [치우씨]가 거론되는데 필자는 아직 단정하진 못한다.

[치우씨]는 당시 고대한국의 임금이었거나 아니면 군 총사령관

또는 당시 고대한국의 [서방군 총사령관] 또는 [서부지역을 관할하는 제후국의 왕] 이었던 것으로 본다.

 

[황제헌원씨]는 독립하려했고 그 독립을 막으려했던 [치우씨]

사기의 주석을 봐도 [치우씨]를 중국인들은

 

1. 치우는 제후국 임금이었다. (諸侯號)

2. 치우는 옛 천자다. (蚩尤 古天子)

3. 치우는 구리(九黎)의 임금이었다. (九黎君號蚩尤)

 

-----------------------------------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치우씨]가 제후였다는 주장과 천자였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구리(九黎)는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 즉 고대한국의 통칭.

 

어찌됐던 제후국 소전의 자손인 [황제헌원씨] 시대에 이미 [원조 황제의 나라]인 본국(本國)이 있었고

본국(本國)은 [황제헌원씨] 부족의 원래의 고향인 만주에 있었으며

꽁정파의 백두산꽁정, 탐원꽁정 등을 보아도 본국(本國)은 압록강 유역에 있었다 하겠다.

 

( 탐원꽁정 : 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것으로 압록강 유역을 문명의 발상지로 보는 것.

지금까지는 집안 위 통화 지역을 여명문화(시작하는 문화)라 이름 붙이며 발굴하고 있고 

결국 고대한국 피라미드들이 몰려 있는 [집안]을 노리고 있는 듯.

[집안]은 장군총 등 수많은 피라미드가 있는 곳. - 1만기가 넘는다.)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전 작품 <- 관련글

 

 

[치우씨]가 당시 고대한국의 최고임금이었던 아니던 간에

분명한 것은 제후국 자손인 [황제헌원씨]가 독립할 때 만주에 본국(本國)이 이미 있었고

그 나라는 구리(九黎) 즉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였다는 것.

 

즉 중국에 '나라'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고대한국은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의 시조라 칭해져 온 [황제헌원씨]가 그 본국(本國)의 제후국의 자손이었다는 얘기.

 

 

 

 

 

 

 

 

중국문명의 시조가 만주에서 왔다.

 

사실 이 사실은 예전에도 중국 지식인들이 상당히 많이들 알고 있었던 사실이라 하겠는데

사실 동북꽁정은 현대에 들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최소한 2천년 이상 계속되어 온 것.

 

중국 사서의 고대한국 관련 기록들이 삭제 축소 은폐된 것 많고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중국의 압력에 의하여 조선 조정이 전국에 영을 내려서

《고조선 비사(古朝鮮秘詞)》등 한국고대사서들을 모두 거두어 들인다.

( 소각 또는 창고에 쌓아두고 국민들이 못보게 한 것.) 

 

 한국고대사서는 한국과 일본에 아직도 많다?! <- 관련글

 

 

동북꽁정이 시작된 것은 2천년이 넘었다 하겠는데

지금의 한국고대사 밝히기가 이리도 험난한 것은 그 영향 크다 하겠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한국인들 자신이 한국의 태고(상고)역사의 영광을

잘 믿지를 못한다는 것.

 

오랜 세월 거대중국의 압박을 받고 사대주의 시대도 오래였다 보니 

정신적으로 '한국은 원래부터 중국의 아래였다'는 듯이 '세뇌' 된 것.

 

수십년 일제치하의 찌꺼기 '친일식민사관'도 문제지만

수천년 중국의 동북꽁정에 의한 '세뇌'는 더 문제라 하겠다.

 

그러나 원래 역사적 진실은 영원히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

이제 세상이 점점 더 개명되다 보니 수천년 이어온 꽁정파는 예전 방식으로는 꽁정이 어렵다 판단하고

아예 만주고대사를 중국고대사에 편입시키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보고

무리한 저기를 하는 것 같은 데

어쨌든 꽁정파의 주장들 즉 

[황제헌원씨] 부족이 만주에서 왔다, 여명문화(시초 문화)는 압록강 유역이다, 백두산이 중국민족의 영산이다 는 등의 주장들은

어쨌든 중국문명의 뿌리는 고대한국에 있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실토'하는 것이고

때가 되니 당연히 벌어지는 일들이라 하겠다.

 

6~5천년전은 최근 10만년 동안 지구기온이 가장 높았던 시기라 압록강 유역이 고대한국의 중심지였던 것이고 

예를 들어 8~6천년에는 6~5천년전보다 지구기온이 추웠기 때문에

( 1만2천년 전부터 6~5천년전까지 지구기온이 크게 보면 계속 올라갑니다.) 

기온상으로도 문명은 [한국 남부지방 -> 한강 ->대동강 -> 압록강]으로 전파되었다 볼 수 있고 

실제로 1만5천년전 쌀, 2만년전 신석기 등 최고대 유물은 모두 남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즉 꽁정파가 만주꽁정(백두산 꽁정)을 아무리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

 

 

사실 제발 '남한 꽁정'도 좀 하라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다.

이는 중국고대문명이 남한에서 전파된 것이라는

즉 남한 지역이 문명의 시초라는 것을 그들 스스로 밝히는 것이므로.

 

이리보면 동북꽁정 만으로도 꽁정파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만주고대문명이 전파된 것이 중국고대문명이라고 그들 스스로 밝히고 있으므로.

  

 

소전(少典)의 자손이라 전해오는 [황제헌원씨]는 고대한국인의 후손이라 볼 수 있고

따라서 민족적으로도 [황제헌원씨] 역시 우리 한민족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치우씨]는 우리편이고 [황제헌원씨]는 남의 편이다' 하는 식의 구분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그런데 당시 본국인 고대한국 문명의 혜택을 더 많이 받았다 할 [치우씨]의 군대는

당시 중국인들 눈에는 경이적으로 보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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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우는 노산의 쇠(철)로 병사들을 만들었다." ( 蚩尤受盧山之金而作五兵)

 

" 치우는 형제가 81인 이었는데 짐승의 몸에 사람 말을 하고 

머리는 구리로 되어 있고 이마는 철로 되어있고 돌가루를 먹었고 병장기를 만들었다." 

(蚩尤兄弟八十一人 並獸身人語 銅頭鐵額 食沙石子 造立兵仗刀戟大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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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귀절들은 사기 주석에 나오는 글들인데

 

" 쇠로 병사들을 만들었다.", " 짐승의 몸"  얘기는 [철갑옷]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 머리는 구리로 되어 있고 , 이마는 철로 되어있다"는 얘기는 발달된 [금속 투구]

" 돌가루를 먹었고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는 철광석을 퍼다가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로 본다.

 

이는 당시 중국땅보다 훨씬 더 발달된 구리(九黎) 즉 구이(九夷) 즉 동이(東夷)

고대한국의 금속문명에 대한 당시 중국 땅에 살던 사람들의 놀라움으로 본다.

 

약 4천7백년 전에 고대한국에서는 이미 철과 구리로 갑옷과 병장기를 만들었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되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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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이 소전(少典)족은 약 4천7백년전에 고대한국에서 독립했다 하겠고  

소호(少昊)는 그 후로도 오랬동안 고대한국( 후에는 고조선)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는데

이는 소호(少昊)족이 지리적으로 소전보다 한국땅에서 더 가까이 있어서인지

본국인 고대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으로 본다.

 

순임금의 부친은 본국인 고대한국에 대한 애정 때문에 

아들 순임금이 고대한국에서 이미 독립해 나간 소전(少典)의 임금이 되는 것이 탐탁치 않아 반대한 것으로 보는데

그리하여 후대에 중국인들의 미움을 사서 '아버지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식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지 않나 싶다.

 

하지만 순임금은 그 부친과 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전(少典)의 임금이 되었고 

이는 후대에 중국이 통일될 수 있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겠다. 

 

후대에 거대 중국의 압박으로 우리 한국이 많은 고난도 겪었지만 

본시 명검(名劍)을 만드려면 숱하게 두드려야 하듯이 

많이 두드릴수록 명검(名劍)이 나오듯이 

더욱 훌륭한 한민족을 만드려는 하늘의 뜻으로 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지난 세월 한민족이 받은 고통은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것 같다.

  

현재 한민족은 세계최고의 지능지수를 가지고 있고 - 언론 기사 참조

세계제일의 순발력, 적응력, 인내심 등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데

즉 대체적으로 그 저력이 세계제일이라 보는데  

이는 숱한 고난을 이겨낸 산물이 아닌가 싶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한국민 평균 지능지수(IQ) 세계 1위 <- 관련글

 

 

우리가 수십년간 일제치하라는 수치스런 고난을 겪었지만

그 덕분에 결과적으로 독립정신을 더욱 새롭게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아직도 친일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점도 많다 하겠는데 

이것도 단지 시간문제로 본다.

외세를 등에 업고 동족인 한국인 위에 군림하는 자들은 결국 그 댓가를 받을 것으로 본다.

그들에게 빨리 뉘우치라 권하고 싶다.

모든 것이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므로. 

 

 

 

 

[소호(少昊)]와 [소전(少典)]이 모두 소(少)인데

자신들 부족 또는 국가의 이름을 함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니  

이들에게 소(少)자는 아주 큰 의미가 있을 수 밖에 없다 하겠다.

 

소(少)는 무엇인가.

 

소(少) 는 드물다, 귀하다는 뜻.

즉 아무데나 있는 것이 아니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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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少) - 금문]

 

              

 

 

[출처 - http://www.internationalscientific.org/Charac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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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少) 의 고대한자는 이처럼 [물가(강가)의 소(小)]라 하겠다.

 

이는 한강, 대동강, 압록강변에 있었던 [고대한국 1,2,3차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나타낸 글자로 본다.  

 

[버전2] 고대한국 3연성 피라미드 <- 관련글

 

1,2,3차 삼위태백 (버전3) <- 관련글

 

 

 

그럼 [소(小)]는 무엇인가.

 

 

[소(小) - 갑골문]

 

               

 

 

위에서처럼 은 갑골문은 점 3개 찍어놓고 [소(小)]라 한다.

점 3개와 작다는게 무슨 관계인가.

 

[소(小)]는 원래는 작다는 뜻의 글자가 아니다.

 

[소(小)]는 원래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

 

피라미드는 이집트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고대한국의 피라미드가 이집트로도 전파된 것은

이미 많이 드러난 사실이라 하겠다.

 

고대한국계 추정 이집트 왕족들 2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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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小)] - 금문

 

             

 

          

 

 

위에서처럼 [소(小)]는 뭔가 3개가 서있고

그 앞에서 [자(子)] 즉 젊은 지도자가 하늘의 은혜에 찬양하는 또한 춤추는 모습.

여기서 [춤]이란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춤.

 

한민족 전통의 [어깨 춤]은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앞에서 (아래에서)

젊은 지도자 (하급지도자 : 당하관)들이 하늘에 찬양하고 춤추는 모습에서 유래됐다고 본다.

 

피라미드 위에는 최고지도자들(상급지도자들 : 당상관)이 있었고

피라미드 아래에는 젊은 지도자들이 있었다고 본다.

 

좌우당간(左右堂間)과 서자(庶子)와 산신(山神)  <- 관련글

 

 

[자(子)]란 원래는 아들이란 뜻이 아니고

촉망받는 젊은 지도자를 뜻한다.

 

이러한 뜻이 나중에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이 되어

[공자] [노자] 등의 존칭에도 쓰이게 된 것으로 본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서자(庶子) 환웅(桓雄)]의 표현도 그러한 뜻으로 본다.

 

[서(庶)]라는 말은 지금은 서민 즉 일반사람, 가난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격하됐지만

원래는 피라미드 아래의 젊은 지도자(당하관)를 뜻한다.

 

 

[서(庶) - 금문]

 

    

 

 

 

위에서 직각돌 모양은 피라미드 아래부분을 뜻하고

ㅂ 자 형상은 머리에 2개 깃 또는 꽃가지 등을 꽂은 젊은 지도자 를 뜻하는데

지도자의 몸을 그리면서 또한 역시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형상화 하고 있다 하겠다.

 

( 이는 [서자(庶子)]가 아무 피라미드 앞에나 있었던 인물이 아니라 

당시 세상의 중심이었던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앞에 (아래에) 있던 인물이라는 표현으로 봅니다.)

 

[설문해자]도 [서(庶)]자에 대해서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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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庶)]는 마룻대() 아래 무리(眾)를 뜻한다.

[서(庶)]는 广 와 炗( 빛 광)이 합해져서 된 글자인데

광(炗)은 원래 광(光)과 같은 글자다.

광(光)은 무리(眾)가 활발한 것을 뜻한다.

 

( 庶 - 屋下眾也 從广炗 炗古文光字 光亦眾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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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도 위와 같이 [서(庶)]가 마룻대 (屋)아래 무리(眾)라 하고 있고

그 무리는 그냥 무리가 아니라 광(炗)즉 광(光)

즉 [빛이 되는 무리(사람들)]라 하고 있다.

그 무리(眾)가 활발한 것이 광(光)이라 하고 있다.

 

[서자(庶子)]란 고대의 [중심 마룻대]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아래에 있던 

젊은 지도자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고 

이들을 순수 한국어로는 [알이(떠오르는 태양같은 사람)] 또는 [알이랑]이라 했다고 본다.

 

삼국유사에도 [서자(庶子) 환웅(桓雄)]께서 수고롭게도 미개한 지역으로 가서 

그 곳의 빛이 되셨으니 [설문해자]의 해석이 틀리지 않다 하겠다.

 

언제부터인가 꽁정파가 '단군조선도 중국 고대사'라 우기고 있는 등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군사도 너무나 탐난다는 얘기. 

단군사에 대한 꽁정파의 연구도 상당히 진척된 모양.  

그들 입에서도 '단군신화는 신화가 아니다. 역사다.'는 소리가 나올 날이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사실은 이미 그들이 그런 주장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广 (광)

 

필자는 이 글자를 피라미드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는 모습의

간략형으로 비정해 왔는데 

[설문해자]역시 그와 같은 풀이를 하고 있다.

 

广 은 지금 따로는 안쓰이고 광(廣)으로 쓰인다. 

 

广 = 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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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

 

광(廣)- 殿之大屋也

 

" 전각의 큰 집(屋 : 마룻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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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마룻대란 높은 곳을 뜻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 (조선)

 

설문해자가 설명하는 广 즉 [광(廣)] 즉 전지대옥(殿之大屋)은 후대에는 위와 같이 바뀌었다.

 

그럼 원형은 ?

 

태왕릉 복원도 - (복원전문가 박진호씨 그림)

 

압록강변 집안에 있는 태왕릉.

지금은 근거도 없이 고구려 때 것으로 알려져 (오인되고) 있지만

사실은 고대한국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천제단(피라미드).

- 진짜 고구려무덤과는 너무나 다르다.

 

장군총, 태왕릉은 고구려보다 훨씬 전 작품 <- 관련글

 

 

 

 

广 은 위와 같은 고대한국 피라미드 위에 최고지도자가 있는 간략형으로 본다.

 

广 은 지금 따로는 안쓰이고 광(廣)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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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廣) - 금문]

 

      

 

 

 广 즉 광(廣)의 고대형은 위와 같다.

위 형태에서 ㅂ 형상은 머리에 2개를 꽂은 지도자를 뜻하는데

 

놀라운 것은 가운데 부분이 동녁 동(東) 과 아주 유사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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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東) -  갑골문]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또한 놀라운 것은

(고)조선(朝鮮)의 [조(朝)]의 고대한자와도 유사하다는 것.

 

 

[ 조(朝) - 금문(金文) ]

 

                  

 

 

 

형상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조(朝)라는 글자는 후대에 [아침]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지만

사실은 [(고)조선(朝鮮)]을 뜻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                  

 

조(朝)는 (고)조선을 표현하기 위해서 생겨난 글자  <- 관련글

 

 

위에서처럼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 중 하나인 광(廣)자에

고대한국을 뜻하는 동(東)조(朝) 와 유사한 이유는 무엇인가.

 

천제단(피라미드)이 동방의 사람 즉 한민족에게서 시작됐다는 뜻으로 본다. 

 

 

설문해자는 고대한국인 즉 동이(東夷) 즉 이(夷)에 대한 해석에서

[ 夷 - 平也 ] 라 했다.

 

즉 이(夷)= 평(平)이라 했다.

이(夷)와 평(平)이 같은 뜻의 글자라 하는 것.

 

이(夷)는 민족 이름 즉 한민족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夷)= 평(平)이라 한 이유는?

 

평(平)은 평평하다는 뜻인데

고대한국 피라미드를 가리키는 말 중 하나.

 

피라미드는 동이(東夷)민족의 것 - 설문해자 <- 관련글

 

 

 

근원 원(原)을 보면 

 

 原

 

백(白)의 소(小)

 

고대한국인을 백(白)민 즉 [백(白) 사람들]이라 한 것은 이미 필자의 여러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고대 동방(東方)에 백민(白民)이 살았다. <- 관련글

 

 

백제의 백(百)도 백(白)이 하늘 즉 ㅡ 에 닿았다는 것.

백(白)의 신성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백(百)

그래서 백(百)은 원래 [모든 것]이라는 뜻.

- 백(百)이 지금 100 으로 쓰이는 것은 [많다] [모든 것] 이라는 뜻의 변형. 

 

 

 

이 글자는 백(白) 즉 고대한국 지역에 있는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하는 글자로 볼 수 있다.

이 글자의 广 형태도 물론 피라미드를 가리킨다.

 

즉 근원 원(原)은 [고대한국 중심 3연성 천제단(피라미드)]를 가리키는데

당연한 것이 그곳은 당시 정신문명, 물질문명, 정치문명

즉 모든 문명의 중심지였기 때문.

 

중국 산해경(山海經)의 대황동경(大荒東經)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  

 

 --------------------------------------------------------

 

" 동해(황해) 밖 대황(大荒)의 중심에 대인(大人)의 나라가 있다.

대인(大人)의 시(市)가 있는데 대인(大人)의 당(堂)이라 부른다.

준(踆)이라는 대인(大人)이 지도자다."

 

[東海之外 大荒之中 有大人之國 有大人之市 名曰大人之堂 有一大人踆其上]

--------------------------------

 

위에서 [대인(大人)의 시(市)]라 한 것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웅 천왕의 신시(神市)]와 상통한다 하겠고

[대인(大人)의 당(堂)]은 삼국유사 신단수(神壇樹)의 [신단(神壇)]과 상통한다 하겠다.

 

[대인(大人)의 시(市)] = [신시(神市)]

[대인(大人)의 당(堂)] = [신단(神壇)]

 

한국 삼국유사와 중국 산해경의 내용이 상통하고 있다 하겠다. 

 

[신단(神壇)] = [신시(神市)] = [대인(大人)의 당(堂)] = [대인(大人)의 시(市)]

 

이는 즉 고대한국 피라미드를 뜻한다고 본다. 

 

 

이 글자가 지금도 [근원]이라 쓰이는 것은 다 그 이유가 있다 하겠다.

 

사마천 사기 주석에도 [황제헌원씨]를 [유웅(有熊)]이라고도 불렀다 하고 (號有熊)

유웅국(有熊國)의 임금이고 소전(少典)의 아들(자손)이다 (有熊國君 少典之子)라고도 하니  

이는 곰토템 [웅(熊)족의 웅녀할머니(여성 지도자)]를 연상케 한다.

 

동북아의 최강 동물이 곰과 호랑이 이므로

곰 토템족과 호랑이 토템족이 많았을 것이고

단군왕검 시대 이전에도 고대한국에서 파견된 [알이] [알이랑]

즉 [환웅 천왕과 그 일행]들이 그들을 교화했을 것이므로

만주에서 건너간 [황제헌원씨] 부족을 [웅(熊)]이라 한 것도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이 글자의 근본 뜻을 더욱 확실히 하면

 

源 이 된다.

 

도 근원이라는 뜻인데 

 

삼수 변을 왜 붙였을까.

 

필자는 삼수 변이 3한수(漢水) 즉 3아리수(알이수)인

한강, 대동강, 압록강을 상징한다고 본다.

 

즉 근원 문명이 3한수(漢水)에서 생겨난 것을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1,2,3차 삼위태백 (버전3) <- 관련글

 

 

원(源)자 뿐만이 아니라 여러 한자들에 흔히 쓰이는 [삼수 변] 자체가 생겨난 원래 이유가

고대문명의 중심이었던 3한수(漢水)를 뜻하기 위해서 생겨난 것으로 보는데 

이에 대해서는 차차 정리하기로 한다.

 

한자의 근원이 동이(한민족)글자라는 것은

중국학자들도 차차 인정해가는 마당이니

위 주장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하겠다.

 

 갑골문자보다 천년 앞선 동이(한민족) 골각문자 발표 <- 관련글

 

 

원( )과 원( )의 관계는

 

제( )와 제( )의 관계와 비슷하다 하겠다.

 

백제(百濟)가 제(齊)가 아닌 제(濟)를 쓴 이유는

스스로 한민족 정통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 였다고 본다.

 

 

 

위 글자는 [서울 경]인데

역시 [소(小)]가 있다.

 

서울이라면 大 가 들어가야 할텐데

아니면 중심이라는 뜻의 中 이 들어가야 할 텐데

굳이 [소(小)]가 들어간 것은

위에서 설명한 이유로 그런 것으로 본다.

 

즉 원조 서울 즉 중심지는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라는 얘기.

 

 

 

 위의 ㅗ 형상은 피라미드 맨 위의 최고지도자를 뜻하고

口 자는 원래 피라미드의 간략형.

 

피라미드 위에서 하늘의 뜻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입중의 입, 신성한 입]이라 후대에 차차 [입]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됐다고 본다.

 

兄 이라는 글자도 원래는 형, 동생 할 때의 형이 아니라 [훌륭한 사람]을 뜻한다.

즉 고대 당시 중심지였던 피라미드에 있는 지도자를 뜻한다.

  

그러므로

 

자 역시 [세상의 중심]을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하겠다.

 

현대의 한자가 정립된 것은 중국 한나라 때인데

대체로 고대의 모양의 뜻에 충실한 면이 많아서 필자는 고맙게 생각한다.

 

필자는 다른민족이라 해서 배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대한인이라면 홍익인간의 정신 즉 사해동포주의를 근간으로 살아야 한다고 본다.

 

안중근 의사도 이또를 사살한 이유에 대해서

동양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서 그리했다고 했다.

 

이또를 사살한 것이 단지 적개심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동양평화, 세계평화를 생각해서 불가피하게 그리한 것이라는 설명.

 

그 때에 비하면 우리 한국도 많이 강해져서

이제 외국이 한국을 함부로 침공할 수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 한국이 해결해야할 문제는 내부의 단결이라 하겠다.

지역화합, 세대화합, 노사화합 등 더욱 내부의 화합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겠다.

내부에 문제가 없으면 외부의 침략이 있을 수 없다는 얘기도 있듯이.

 

4×7=27 <- 관련글

 

 

그런데 [소(小)]가 후대에는 왜 작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을까.

 

[소(小)] 즉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보다

더 큰 피라미드들이 중국 땅에 세워졌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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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2장 - 유럽에 문명을 전한 [아리안]의 발자취를 찾아 동북아까지 온

독일학자 하우스돌프 등이 찍은 중국 서안(장안), 함양 피라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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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라미드는 중국 서안( + 함양)에 있는 것인데 ( 위 캡처의 경도 위도 참조하세요)

필자가 전에 구글어스로 캡처한 것.

구글어스는 저것을 [피라미드]라고 설명하면서

한 변 길이가 242미터 라고 설명한다.

이집트의 가장 큰 피라미드보다 밑변길이가 더 크다.

- 이집트 대피라미드는 한 변 길이가 230미터 정도.

 

저것 말고도 서안, 함양에는 피라미드가 많다.

100개도 넘는 것 같다.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2010년 2월에 구글어스로 캡처한 사진.

 

이상하게도 구글에서 피라미드 부분에 화면 상 뭔가를 씌웠다.

중국당국의 꽁정파가 구글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

 

그런데 구글은 여전히 저것을 피라미드라고 하면서 4천년~5천년 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주 서부 요하유역 홍산문화에서는 5~6천년전 피라미드도 발견했다고 중국이 이미 발표했고

 

고대한국 피라미드가 홍산, 서안(장안), 함양으로 전파되다. <- 관련글 

 

 

따라서 저 피라미드는 만주 사람들이 와서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으니

중국당국의 '고뇌'도 짐작할 수 있다 하겠다.

 

그들이 자랑하던 이른바 중원문화가 그들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만주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서

이룩된 것이라니...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그 충격을 받은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겠지만.

 

꽁정파가 [황제헌원씨] 부족 즉 [소전(少典) 부족]이 만주에서 온 사람들이라고 '실토'하면서 

만주꽁정, 백두산꽁정에 열을 올리는 것은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일 것.

 

즉 이제 '역으로 선수(어거지)를 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 모양.

세상이 개명될수록 그들은 급해진 것.

 

위의 중국 피라미드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보다 더 큰 것으로 본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를 뜻하는 [소(小)]자가

왜 [작다]라는 뜻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하겠다.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 즉 [소(小)]는

중국에 세워진 대형 피라미드보다 작다는 얘기.

 

중국땅에 더 큰 피라미드가 세워졌으니

[고대한국 중심 3연성 피라미드]는 그에 비해 작다는 얘기.

 

중국땅에 고대한국보다 더 큰 피라미드가 세워진 것이 

구글의 설명으로 보아도 4~5천년전.

 

서안, 함양의 피라미드들을 세운 사람들은 [소전(少典)부족]일 것인데

홍산에서 이미 5~6천년전 피라미드들이 발견되었으니

시대적으로 보아도 홍산 -> 서안, 함양의 전파가 확인된다 하겠다.

 

 

 

 

홍산 보다 더 이른 시기의 피라미드들은 압록강변 (특히 집안)의 것들.

 

홍산문화는 압록강변 당시 중심지에 비하면 변방문화라 할 수 있다 하겠다.

 

물론 압록강변보다 더 빠른 시기의 피라미드는 대동강변 에서 발견될 것이다.

필자는 고구려 장안성 터(또는 그 부근)를 주목하는데

땅위의 것은 없어졌을 지라도

땅아래 기단석은 분명 남아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기단석

 

대동강변보다 더 빠른 것은 한강변 에서 발견될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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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백제 때 것으로 '둔갑' 되어 있는 서울 석촌동 피라미드들.

 

그리고 발굴기록으로 보아도 저것보다 더 큰 피라미드들도 있었는데

다른 것들은 강남개발 하면서 모두 없앴다.

하지만 지금도 땅 밑의 [기단석]은 남아있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꼭이 서울 석촌동 뿐만이 아니라

한강변에는 숱한 피라미드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피라미드들의 [기단석]이 발견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고

그 연대는 8천년 전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 땅 곳곳에 8천년 전 고대 피라미드의 [기단석]이

아직도 땅 밑에는 많이 남아있을 것이다.

 

땅을 파다가 넓은 4각형 구조의 기단석들을 발견하면

문화재청 같은 곳에 제보를 하는 것이...

 

그리고

1만년 이상된 진짜 원조 피라미드는 바다 속에. 

 

 

나일강 옆에 있는 이집트 대 피라미드의 원형이 대강 저 지역에 있을 것으로 본다.

저 원조 피라미드는 바다 속에 있으므로 비교적 온전히 있을 것이다.

발견은 시간문제로 본다.

 

마문명 제2중심지였던 부산, 마산, 울산 앞바다에도 상당히 큰 피라미드가 있을 것이다.

 

 

 [원조 고대한국문명 ] 즉 [마 문명] <- 관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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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인 고대한국보다 더 큰 피라미드를 만들겠다고 한 것 중

가장 큰 것이 위 것인데 - 한변 길이 242미터

벌을 받아서인지 한 쪽이 무너져 버렸다.

 

독일학자 하우스돌프가 찍은 사진 중 하나

 

위에 보이듯이 한쪽이 무너져 버렸다.

 

중국판 바벨탑.

하늘의 노여움을 샀다고 볼 수 밖에.

 

꽁정파는 저러한 무너짐을 교훈삼아

진실 앞에 겸허하길 바란다.

 

그대들은 국가에 충성한다고 꽁정을 하고 있겠지만

국가에 충성도 진실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와 화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짜 충성일 터.

그래야 중국의 앞날에도 좋은 것.

그대들의 조국 중국을 역사왜곡이나 하는 비열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어찌 충성일 것인가.

 

중국이 생존 발전하려면 민주화 개방화를 더더욱 안할 수 없고

차차 제3국 사람들도 중국 땅의 피라미드들을 본격 연구할 것이니

눈가리고 아웅하는 역사왜곡 꽁정은 중국을 비참하게 만들 뿐.

 

꽁정파는 진실에 입각해서 진정한 충성을 하길 바란다.

진실 앞에 한없이 겸허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학자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상당히 오랜세월 스스로 대국이라 칭했던 중국의 진정한 자존심이 아니겠는가.

 

사필귀정

 

 

[밝은 앞날][꿈은 이루어진다][꿈은 미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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