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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륙과 열도의 영유권은 역사적으로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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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1윤복현 조회수 727
  • 기사등록 2017-06-11 08:41:44
  • 윤복현 칼럼
  • 문헌과 고고학적 결합을 통한 사실입증으로 승리해야 하는 한-중-일 역사전쟁은 영토와 미래로 직결되는 문제다. 여신(마고)숭배와 석관묘(피라미드)와 옥 장식과 봉황토템과 햇살토기를 사용한 요서 한민족 문명의 젖을 먹고 자란 중국의 역사는 한민족의 역사로 중국대륙의 영유권은 한국에 있으며, 한반도 영산강지역의 마한문명의 젖을 먹고 자란 열도 영유권 또한 한국에 있는 것이다. 장차 세계 공용어가 될 한글과 한식과 한복을 즐기는 한류문화가 지배하면 한국화가 되는 것이다.

     

    영산강 유역은 역사적으로 단군3한국 중에 한반도 마한(馬韓)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마한 중에서도 해산물과 농작물이 풍족하여 경제적으로 가장 부유했던 지역으로 한반도 마한의 중심세력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만이 단군한국의 서토인 요서의 기자조선을 찬탈하여 나라를 빼앗긴 기준집단이 대거 한반도 마한으로 이주하여 마한이란 국호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남한지역에 단군3한국을 모방한 리틀3한을 만드니 남3한이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국제해양세력답게 다양한 무덤형태를 보여 주는 전남 나주 영산강지역

     

    서남부지역의 마한을 상국으로 삼고 경상도에 진한과 번한이 생긴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마한의 중심세력이였던 호남세력은 북방에서 이주해 온 남3한 지배집단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왕국을 유지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주에서 기마집단인 부여족(백제)이 남하하면서 열도로 이주해 가기전까지 대형 옹관묘로 상징되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왕국을 형성했다고 본다.

     

    열도이주 이전까지 한반도 마한의 중심집단이였을 '왜'는


    '해(태양)'의 중국식 발음으로 사람.농경.마고(여)가 결합된 한자


    전남 나주 반남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과 거대한 옹관들은 당시 영산강지역에 거대한 토착지배세력이 존재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그리고 달갈모양의 거대한 옹관은 알에서 태어나듯이 사람 역시 따뜻한 어머니 뱃 속에서 태어나고 죽어서 다시 편하게 안식하기를 바라는 모성의식의 무덤양식이다.

     

     옹관묘에 묻힌 사람들은 유전학적으로 모계중심의 가족 무덤이였음이 증명되었다. 따라서 나주 영산강집단은 1만년전 마고로 상징되는 마고집단임을 무덤양식으로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의 사서『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한전(韓傳)은 마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韓은 대방(帶方)의 남쪽에 있는데, 동쪽과 서쪽은 바다로 한계를 삼고 남쪽은 왜와 접해 있으며(南與倭接) 면적은 사방 4천리쯤 된다. (한에는) 세 종족이 있으니 마한·진한·변진이며 진한은 옛 진국이다. 마한은 (삼한 중에) 서쪽에 있다. 지금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頭·납작머리)이고, 왜와 가까운 지역(近倭)이므로 역시 문신을 하기도 한다. (변진의) 독로국은 왜와 경계가 접해 있다(與倭接界).”

    또『晋書』 장화전(張華傳)에 나오는 기록에는


    "동이마한 신미제국은 산에 의지하고 바다를 끼고 있으며 유주와는 4천여리였는데, 역대로 내부하지 않던 20여국이 함께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쳐왔다." (東夷馬韓 新彌諸國 依山帶海 去州四千餘里 歷世未附者二十餘國 竝遣使朝獻.)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 나오는 신미국은『삼국지』에 나오는 마한의 54국과는 다른 이름으로 서해안 지대에 분포한 마한제국읍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또한 이를 중부지방에서 이동한 마한의 잔존세력으로 보는 견해도 제시되었으나 신미제국은 ‘신미의 여러 나라’란 의미로 마한조의 마한과는 별개로 영산강 유역에서 성립한 단일 정치세력으로 보기도 한다.


    위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왜의 위치가 한반도 밖이 아니라 한반도 안쪽, 즉 삼한의 남쪽인 한반도 남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껏 ‘왜는 일본열도에 있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이 기록을 봐왔으므로 이 기록이 말해 주는 위치 비정을 무시해왔는데 이런 고정관념을 해체하고, ‘(한의)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南與倭接)는 기록을 해석하면 왜는 도저히 일본열도 내에 있을 수 없게 된다. 접’(接)은 육지로 서로 경계할 때 쓰는 낱말이지 바다 건너 있는 지역을 말할 때 쓰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바다 건너 왜가 있었다면 ‘바다’(海)로 동쪽과 서쪽의 경계를 표시한 이 기록이 유독 남쪽 경계를 표시할 때만 바다를 생략할 이유가 없다. 또한 진서 한조(韓條)의 ‘근처에 왜가 있다’(近倭)는 구절과 변진 12개국 가운데 하나인 독로국이 ‘왜와 경계가 접해 있다’(與倭接界)는 구절도 왜가 일본열도가 아니라 진한과 독로국 근처의 한반도라는 사실을 말해 준다.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東夷列傳) 한조(韓條)』에서 왜의 위치를 추측해 보면,


    "마한은 (삼한 중에) 서쪽에 있는데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 진한은 동쪽에 있다. 변진은 진한의 남쪽에 있는데 역시 12국이 있으며 그 남쪽은 왜와 접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왜의 위치는 마한과 진한·변진의 남쪽, 즉 한반도 남부다. 따라서 왜는 적어도 중국의 삼국시대인 3세기까지는 한반도 남부에 위치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송서”(宋書) 왜국전(倭國傳)』은 ‘왜국은 고려(고구려)의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중국 남북조 송나라(420∼479년) 때에는 왜가 한반도를 벗어나 일본열도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려 준다.


    이후에 발간된 중국측 문헌들은 모두 왜가 일본열도에 자리잡고 있다고 기록했다. 위의 기록들은 왜의 중심지가 5세기의 어느 시점부터 한반도를 떠나 일본열도로 이동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내의 왜(倭)는 어디에 있었을까? 그것은 영산강 유역이 되는 것이다.

     

     

     

    신라 박제상이 편찬한 한민족 시원을 밝혀 주는 [부도지]에 기록된 마고는 한민족의 어머니로서 1만년전 마고성의 여제다. 마고성의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는데 마고를 보좌한 황궁씨는 마고성 북문을 통하여 천산으로 가서 도를 닦았고, 그의 아들 유인으로부터 1천 후에 환인씨가 등장하는데, 환인씨가 바로 한민족 건국신화[단군신화]에 첫 등장하는 국조이다. 그리고 한민족 정통사서[환단고기]에서 환인씨의 아홉형제가 번성하여 천해(바이칼호) 동쪽 파나루산(대흥안령산) 아래 만주(환인)를 중심으로 유라시이 지역에 12개의 나라를 세우는데 환인씨의 12연방국이 그것이다.



    마고시대 이후 황궁씨는 한민족의 아버지로 삼는데, 황궁씨는 마고여제에게 복본(본성회복=양심회복)을 맹세하고 마고성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마고성 사람들이 흩어지게 되는 이유는 양심의 상실로 인한 부패와 혼란과 함께 해빙기라는 지각변동으로 인한 마고성의 침수라고 할 것이다.

     


    필자는 그래서 마고성이 소위 재야사학이 주장하는 인류생존이 어려운 만년설의 히말라야산 지역이 아니라, 서남해 지역임을 수없이 강조해 왔다. 요서지역 홍산문명 유적지에서 여신상이 발굴되었고, 여신을 섬기고 제사지내는 여신전도 발굴되었다. 홍산문명은 황궁씨가 정착하여 문명을 건설했을 기원전 7천년까지 소급되는 한민족 문명으로 황궁씨가 도를 닦은 천산은 중앙아시아 천산이 아니라, 홍산문명이 건설된 요하지역의 천산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바다인 서남해 지역이 1만년전의 마고한국(마고성)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영산강을 중심으로 호남의 옹관묘집단은 마고한민족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호남은 농경지역이고 인심이 좋으니 사람이고, 마고를 계승한 당골래들이 여성들이 많으니 형상으로 만들어진 한자 '왜'에 가장 부합한 지역이다. 참고로 '왜'는 중국식 발음이고 우리말은 '해'였다고 본다. '해'는 만물을 비추며 생명을 낳고 자라게 하는 생명의 빛이다. 열도를 지배한 지배집단의 무덤이 영산강 지역의 전방후원분인데 모양이 바다에서 해가 뜨는 모양이다.


     

    직선적으로 비추는 해가 남성을 상징한다면 은은하게 비추는 달은 여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마고를 상징하는 달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손을 잡고 빙빙 도는 강강술래 문화는 서남해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는 문화인데, 중국의 마(묘)족도 강강술래 문화를 가지고 있다.중국의 묘족 역시 마고적이라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말해 준다. 서남해 지역의 성황당에는 마고를 상징하는 달갈모양의 돌을 모시고 있는데, 이를 닭알머니라 부른다. 즉, 마고 할머니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 닭알머니 신앙에서 영산강 중심의 호남에 분포한 계란모양의 옹관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1만년 전 인류문명과 한민족의 뿌리나라인 마고한국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산강지역의 독특한 옹관묘 문화를 사학계가 이해할 수 없다. http://www.kookminnews.com/news/view.php?idx=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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