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소재로 만든 노래가사 몇편 |
---|
2015.05.25 최*순 조회수 859 |
* 이산가족 및 북한인권 문제를 소재로 쓴 노래가사 몇편을 소개합니다 1) 위령가 (*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스러져간 국군포로,납북자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지어본 노래가사) 1. 하늘아래 그 어느곳 허망하게 스러져갔나 부모형제 그리워서 먼 하늘만 바라보았소 말로 다 하지못할 이 피눈물 어이할꼬 혼백이여 ! 혼백이여 ! 이 사연을 어이할꼬 영령들아, 찾지못한 지난날을 용서하오 이 술 한잔 받으시오. 천상에서 꽃이되오 2. 이름조차 알 길 없고 흔적조차 찾을길 없네 두고온 옛 임들은 그 얼마나 그리웠소 설움이 쌓이고 쌓여 돌이 되었나 꽃이 되었나 혼백이여 ! 혼백이여 ! 이 슬픔을 어이할꼬 내 친구들 백발되어 찾아온 이 용서하오 내 형제들 찾지못한 지난날을 용서하오 설명 : 제가 북한인권 및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게 대략 북한 식량난이 극심해지고 그 문제가 매스컴에 오르내리기 시작 하던 90년대 중,후반경 부터의 일입니다만, 그때부터 틈틈이 각종 신 문기사나 책자들을 통해 접한 탈북자들의 수기를 보다가...문득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스러져간 국군포로,납북자들의 존재와 의미를 생 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가 남북한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이슈화 되지 못하고 종종 묻히고 잊혀져간 점에 대해 늘상 화가났는 데, 그러다 문득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스러져간 국군포로,납북자 의 넋을 기리는 그런 주제로 노래가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흔히 이산가족,실향민 하면 6.25때 북에 고향을 등지고 남으로 내려온 그런 이산가족,실향민을 생각하곤 하지만 생 각해보니 북에 있는 국군포로,이산가족들 그분들도 이산가족이고 그분들도 실향민이더군요. 즉 북에 고향을 그리워도 가지 못하는 남한의 실향민(失鄕民)이 아닌 북에 억류되어 남쪽 고향의 부모, 형제,친구들을 만나보지 못하는 그런 실향민 말입니다. 바로 그렇 게 정치범 수용소에 억류되어 무엇보다 이산과 실향의 한과 아픔 그리고 설움을 갖고 스러져갔을 이름조차 흔적조차 알 길 없는 그 분들의 넋을 기리는 의미로 만들어본 노래가사입니다. 노래가사의 화자(話者)는 백발이 되어 북한에 억류된 국군포로 또는 납북자 친구를 찾으러 간 남쪽 동료가 그들을 조상(弔喪)하며 부르는 그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가사에 ‘백발되어 찾아온이 용서하오... 내 형제를 찾지못한 지난날을 용서하라’는 내용을 담은것입니다. 그 의 미를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2) 이제는 시간이 정말 없는데 (* 남북 이산가족 찾기의 상봉속도는 더뎌만가고, 그러는 동안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이산가족. 그렇게 부질없이 흘러만 가는 시간에 대한 안타 까움을 담은 노래가사입니다) 1. 이제는 시간이 정말 없는데, 세월을 막아 버릴까 아스라이 사라져간 그 이름들, 사연은 어떻게 할까 언제쯤일까 정말 만날까 차라리 포기를 할까 만난뒤에 더 아파만지는 사연은 어떻게 할까 2. 이제는 시간이 정말 없는데, 모두다 만나야 하는데 소식한번 생사한번 주고받으면, 한은 좀 수그러들까 60년 세월 너무나 짧아 속절없이 흘러갔는데 똑딱똑딱 부질없이 흘러만 가는 시계소리 너무나 아파 설명 : 남북 이산가족 찾기가 진행될때마다 늘상 답답했던것이 이렇게 한정된 공간에서 어쩌다 1,2백명씩 만나주게 하는 상봉으로 어느 세월에 그 많은 이산가족을 만나게 해주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한 10년만 더 지 나면 이산가족 찾기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게 대 략 벌써 2천년대 중반경부터의 일입니다. 답답합니다. 솔직히 이산가족, 실향민들...그 수많은 아픈 사연들을 접할 때마다. 정말 마음같아서는 그 많은 이산가족들 단 한번 소식한번 생사한 번 아니면...정말 누구 말마따나 검열을 해도 좋으니 한달에 한번 정기적 으로 전화통화나 서신왕래라도 해주게 하면 좋으련만. 남북관계와 관련해 서 다른 복잡한 문제들은 다 치우고라도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서만은 좀 획기적이고 전향적인 그런 타협안이 나올수는 없는건가요 ? 노래가사 제목처럼 ‘이젠 정말 시간이 얼마 없는것 같아’서 그 답답한 심정을 그대로 진솔하게 담은 노래가사입니다. 하루하루 늙어가는 이산가 족 어르신들...그분들을 볼때마다...부질없이 흘러만가는 시간에 대한 답답 함. 그 마음을 그대로 담은 가사입니다. 3) 할아버지 고향이 보고싶어요 (동요) 1. 할아버지 고향이 보고싶어요 흰 눈이 보슬보슬 내려온다는 진달래 따면서 물장구치던 밤마다 밤마다 눈물지시던 할아버지 고향은 어디인가요 2. 할머니 고향은 어디인가요 앞마을 순이랑 빨래터가고 뒷마을 영이랑 나물캤다던 밤마다 밤마다 한숨지시던 할머니 고향은 그 어딘가요 3. 할아버지 할머니 두고온 고향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해도 밤마다 품에안고 들려주시던 아름다운 옛 고향 그리운 얘기 언젠가 꼭 한번 가고싶어요. 설명 : 6.25가 있은지 어느덧 60여년. 솔직히 이 글을 쓰는 저 조차도 6.25가 있은지 20여년이나 지나서야 태어난 사람이고. 그러니 6.25때 최소한 10 대-20대 이상의 나이라서 그 시절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운 기억이나 가족,친지들을 기억하는 세대는 어느덧 최소한 70-80대 이상이 되어있 을것 같습니다. 그러니 1세대 이산가족들이 직접 고향을 찾아갈 가능성 은 이제 없을것 같고, 그 시절은 아들대에나 올까요 ? 손자대에나 올까 요 ? 여론조사를 할때마다 특히 젊은세대로 갈수록 ‘통일은 필요없다’ 고 대답하는 비율이 늘어나는것을 보며 안타까움을 갖곤 합니다. 전 이산가족은 통일후 남북한의 동질감을 회복시켜줄 중요한 연결고리 로 생각해온 사람입니다. 근데 어느덧 그 연결고리가 점차 하나하나 사라 지고 이제 얼마남지 않았군요. 그러나 그 아들,손자대에라도...결코 저 북 녘땅이 낯선땅이 아닌 할아버지,할머니가 어린시절 자라고 사시던 고향임 을, 한번 그걸 일깨워주고 싶은 의미에서 6.25때 월남한 실향민 할아버지,할머니를 둔 어린 손자(또는 손녀)의 상황 을 가상으로 만들어서 지어본 ‘노래가사’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늘 말씀하 시던 고향. 나중에 어린 손자라도 커서 꼭 가보고 싶다는 다짐을 담아...통일 후 우리가 진정 남북한의 동질감을 회복할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그걸 생 각해보기 위한 함축적 의미를 담아 특히 자라나는 차세대들이 불러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지어본 노래가사입니다. 4) 순덕아 ! 내가 왔단다 (* 탈북 귀환 국군포로의 사연을 담은 노래) 1. 순덕아 ! 내가 왔단다 50년 세월이 걸려 모진세월 다 보내고 이제야 돌아왔단다 너는 아니 저 북녘산 수놓는 가을꽃이 너무나 아름다워 미치도록 울었더란다 이제야 돌아와서 부모님전 성묘하는 못난 나를 용서해라 천상에서 다시보자 2. 순덕아 ! 내가 왔단다 50년 세월이 걸려 개선장군 약속했건만 이제야 제대했단다 니는 아나 설이 되모 울 어무이 생신되모 남녘하늘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카이 이제야 돌아와서 지난약속 회고하는 못난 나를 용서해라 다음생에 다시보자 설명 : 90년대 후반, 국군포로 문제가 한참 사회적 이슈로 부각될때, 한 방송사 드라마 극본 공모에, 바로 그와같은 탈북귀환 국군포로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 대본을 써서 응모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때 그 주인공의 사연을 함께 노래가사로 지어본것입니다. 내용은 6.25때 참전 포로가 된 주인공이 50년만에 탈북 귀환 고향에서 옛 친구와 첫사랑 그리고 가족들을 만나 털 어놓는 감회이자 사연인 셈입니다. 가사를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로 한 것은 주인공을 경상도 출신으로 설정했 기 때문입니다. 국군포로,납북자 문제에 대해 제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깨진 고정관념이 하나 있는데, 우리는 흔히 이산가족하면 6.25때 북한 공산체제를 버리고 남한을 택한 그래서 휴전후엔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게된 그런 ‘이북’ 이 고향인 월남한 실향민 그 이산가족을 생각하곤 하는데, 그러다보니 국군 포로,납북자와 그 가족들도 따지고보면 이산가족이고 국군포로와 납북자의 경우에도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도’ 찾아가거나 만날 수 없는 ‘실향민’이란 점 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만 6.25때 월남해서 남한에 정착하신 분들은 ‘북한’ 이 고향인 실향민이라면 국군포로,납북자 등은 고향은 남한임에도 북한땅에 여러 가지 이유,사연등으로 억류된 상태인 ‘고향이 그리워도 갈수없는’ ‘남한 이 고향인 북한의 실향민’이 되는것이죠. 실제 국군포로 사연중 경상도가 고 향인 어느 국군포로는 명절이나 부모님 생신등이 되면 고향인 경상도쪽 하늘 을 매일같이 바라보며 울기도 했었다는 그런 사연도 있습니다. 이산가족,실향민의 아픔은 남한에 있든 북한에 있든 다르지 않다는것을 깨닫 게되었습니다. 그래서 ‘실향민’에 대한 고정관념도 한번은 깨 볼 필요가 있어 국군포로의 의미 보다는 그도 역시 이산가족이었고 실향민이었다는 점에 중점 을 두어 이와같은 노래가사를 지어보게 된것입니다. 50년만에 탈북,귀환한 국 군포로가 50년동안 하염없이 그리워했을 망향과 이산의 아픔을 노래하는 노래 가사인 것입니다. 5) 형님 편지가 왔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및 서신교환때 치매에 걸린 백살의 할머니가 50년만에 전해온 아들 소식을 접하고도 치매때 문에 알아보지 못하더라는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고 만든 노래가사) 1. 어머니, 형님 편지가 왔습니다. 50년 세월이 걸려 전해온 귀한 편지 큰형님이 소식을 전합니다 얼마나 그리웠어요, 얼마나 사무쳤나요 눈물이 한강이 됐었잖아요 아들딸 자손창성 잘산다고 걱정말라는 큰형님이 안부편지 전합니다 2. 어머니 ! 형님 편지가 왔습니다. 제사를 이어가야할 그 귀한 양반집 장손 큰형님이 소식을 전합니다 눈을 좀 떠보세요, 말씀을 해보셔요 형님이 형님이 살아계셔요 오늘가면 다시는 못올 이 귀한 마지막 편지 큰형님이 안부소식 전합니다. 설명 : 2천년대 초반, 햇볕정책의 성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과 서신왕래등이 이루어졌을때 - 비록 몇 달에 한차례씩 그것도 몇백명 정도 규모로 감질 나게 이루어지는 상봉이긴 했지만 - 북에있는 아들의 편지를 받게 되었 지만 안타깝게도 치매에 걸려 아들의 편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100살이 다 된 노모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아들의 편지를 동생이 대신해서 형님의 소식을 전해주는 모습을 보며 '형님 편지가 왔 습니다'란 노래가사를 지어보게 되었습니다. 6.25때 북으로 간 큰형님의 소식을 백살이 다 되신 어머님께 전해드리며 눈물짓는 작은아들의 모습 을 보며 그 아들 입장의 화자가 되어 지어본 노래가사입니다. 무엇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자체가 특히 부자간 모자간 상봉등의 경우엔 부모의 나이는 대개 90,100살이 가까운 나이고 자녀도 이미 60 ,70을 넘긴 나이인지라 사실상 이생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자 마지막 상봉 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충분히 알 수 있기에, 바로 그런 생각에서 '50년만에 전해진 형님의 마지막 소식'이란 내용의 노래가사를 쓰게 된 것입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때 특히 북의 이산가족은 자진월북자거나 의용군으로 끌려간 사례들이 많아 특히 '20살 때 사회주의자 안 되보면 바보'라거나 '똑똑한 사람이 원래 공산주의 사상에 잘 빠지는법'이란 속설 을 새삼 확인케 하는 모습이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착잡한 감회에 젖었 습니다. 특히 6.25때 행방불명된 북의 가족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집 제사 안 끊겼다'느니 '얼마나 귀한 장손이었는데' 하는식의 남쪽 가족의 인터뷰 를 보면서 확실히 유교중심의 제사문화나 가부장 중심 문화에 아직은 많이 젖어있는 그 세대 어르신들의 사고방식을 엿볼수 있더군요. 그래서 바로 그런 감정까지 섞어서 '제사를 이어가야할 그 귀한 양반집 장손...그 큰형님 이 50년만에 전해온 아주 귀한 마지막 소식'이란 노래가사를 적어본 것 입니다. 여담 : ‘한 10여년 정도만 지나면 남북 이산가족 찾기 자체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다’ 는 말이 벌써 나온게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되기 시작하던 2천년대 초 반 부터의 일입니다. 그러니 벌써 그때부터도 10여년 이상이 지났네요. 더 이상 시간이 지나면 6.25때 월남하거나 가족을 잃은 1세대 이산가족은 거의다 세상을 뜬 뒤이기 때문에 ‘이산가족 상봉’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는. 실제 이제 6.25가 있은지 어느덧 60여년 세월이니 어릴때 두고온 고향,가족,친지 에 대한 기억이라도 있을 세대는 어느덧 70-80대. 진짜 이제 여기서 몇 년만 더 지나면 1세대 이산가족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없을터이니 그런식으로 그 많은 이 산가족,실향민의 한을 제대로 풀어주지도 못하고 부질없이 세월만 흐른다는 점에서 늘상 죄인된 마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종종 이런 노래가사와 시를 지어본것입니 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로 가면 갈수록 ‘통일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여론이 점점 많아진다는 세태. 6.25와 분단이 결코 그렇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이산과 실 향의 아픔이 불과 얼마 안 되는 우리 부모,조부모 세대 그분들이 겪은 일이란것을 그래서 후손들에게라도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에 이런 노래가사를 지어보았습니다. 정말 통일이 될 때 남북간의 이질감을 해소시켜줄 그 ‘중요한 연결고리’인 이산가 족,실향민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분들의 심정을 그분들의 아픔과 한을 노래로 만 들어볼 필요가 있음을 절실히 느껴 이런 노래가사를 지어보게 된 것입니다. * 따라서 어떤 작곡가나 가수와 인연이 닿아도 좋으니 이 가사가 꼭 노래로 만 들어지기 바라는 ‘간절한 심정’을 함께 담아 편지로 전합니다.
|
댓글 0
댓글등록 안내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