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조: 해외의신사(海外の神社), 소립원성삼(小笠原省三), 1933 
       대경성공직자명감, 경성일보사, 1936

*박원순 28억 전세공관은 

  초대 경성신사 대제위원장 전성욱의 집이며 

  박정희 시해범 김재규의 딸 김수영은 손주며느리다.

  전성욱의 5남 2녀 중 막내 전신용이 김수영의 시아버지다.

  자식들 모두가 일제 강점기에 높은 관료를 지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금번 서울에 일본의 신사를 모시는 

  일련교 서울지부를  허가에 주었다~!!

  이땅에 신사를 세우고 초대 대제위원장이 살던 집으로

  대한민국 서울시장이 공관으로 임대하여 들어 간다고~!?

  이게 대한민국입니까~!?

  박원순이 대한민국 서울시장 맞습니까~!?

* 이글을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성신사 대제위원장

건물/신사 2009/07/02 11:32 태허


1926년(소화 원) 경내를 확장하고 신전 신축을 기회로 조선 국토개발의 시조 국혼대신을 합사한 경성신사는 그들 일본인 만으로 구성된 씨자조직에 조선인에게도 참여를 강요하였다. 1931년(소화 6) 가을 10월 15일~17일 3일간의 경성신사 예제를 조선인 주축으로 제사를 모시게 하였으며, 이때 제사를 치른 조선인은 내지인에게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마음에 내지인보다도 일층 긴장된 정신으로 예제를 무사히 마쳤던 것이었다. 

이때 조선인으로 제전위원장으로 추대된 전성욱은 이미 수송정총대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업무에 협조해오던 인물이었다. 그가 제전 종료 후 발표한 고백문에 의하면 그의 친구 또는 선배가 제전을 모신 것에 의해 병이 완쾌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들었다. 또, 모자와 두루마기는 내지인 고관의 복장으로 들었기에 평소는 반감을 품고있었으나, 막상 자신이 착용하고 보니 그의 마음이 이전과는 변했다 라고 고백하고 '눈부신 경성부민의 대표자로 제1인자가 되어 옥대(玉臺-임금의 자리)에 오른 느낌'이라 하였다. 


수송정총대 구 한국 정3품 전성욱(全聖旭, 1877~1945)은 원적이 경성부 소격정 117, 현주소가 경성부 인사정 228 이다. 

본관 정선. 무과에 급제하고 사천현감을 역임한 전학규(全學奎, 1840~1910)의 장남으로 태어나 유학에 뜻을 두고 중국식의 영산법(影算法), 천문학, 명법 등을 공부했다. 1900년(명치 33) 개화에 뜻을 세워 경성학당에 입학하였다. 졸업후에 상경하여 수리를 연구하고 귀국후 구 한국에서 법부주사, 법관양성소 강사, 충북 학무총감 등을 거쳐 1909년(명치 42)부터 동척회사 참사로 12년간, 1920년(대정 9)부터 조선상업은행 지점장 5년간 또 경성상협의원 6년간, 정동총대 16년간을 역임했다. 1929년(소화 4) 조선박람회 경성협찬회 이사, 1931년(소화 6) 경성신사 대제위원장(조선인 제1대)이 되었다. 또 군은 현재 경성신사 상담역, 경성부정회 연합회 고문, 재향군인회 명예회원, 애국부인회 고문, 경성북부 교화구 상임위원, 중앙위생조합 연합회 부회장, 국민협회 전무이사, 대정친목회 부회장, 갑자구락부 간사, 민중신문 주간 등 다수의 공직 및 명예직을 가졌다. 

자식으로 5남 2녀가 있으며 아들들은 일본의 신호고상(神戶高商, 코베), 구주법대(九州法大, 큐슈)를 졸업하고 나라를 잃은 것과는 별개로 일본에 협조하며 잘 지냈다. 그들중에 특히 셋째 아들 전예용은 1910년 1월 3일(음1909년 11월 22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팔판동 62번지 2호에서 태어났다. 1930년 3월 경성고등상업학교를 졸업(현 서울대 상대의 전신)하고 1930년 10월 일본 구주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하여 졸업전인 1933년 9월 일본 고등문관 행정과 시험에 합격하였다. 1937년 2월 경기도 광주군수, 1943년 12월 경상북도 재무부장, 1944년 10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회과장을 지냈다. 

해방이 되고는 1945년 9월 미군정청 학무국장 보좌관, 1947년 9월 국립1948년 9월 외무부 통상국장, 1949년 9월 서울특별시 부시장, 1951년 9월~1956년 4월 한국은행 부총재, 1960년 4월~1960년 9월 부흥부장관, 1960년 9월~1961년 5월 한국은행 총재, 1965년 8월 민주공화당 당의장 직무대리, 1966년 12월 건설부장관, 1967년 10월 대한상공일보사 회장, 1968년 7월 대한국제법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전예용은 2008년 4월 29일 발표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포함되어있다. 

참조: 해외의신사(海外の神社), 소립원성삼(小笠原省三), 1933 
       대경성공직자명감, 경성일보사,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