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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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6에 대해서 ...박 변호사 비판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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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1 최*숙 조회수 186

종편방송에서 박모 변호사가 나와서

의회가 살아 있었으나 5 16을 일으켰다며 그때는

명분이 50%인 반면 지금은 명분이 200%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과연 그분이 법조인이 맞는지 한심할 뿐이죠...

지금 군대가 일어날 명분이 200%라면 516때는

그 이상이였다라고 해야 옳죠...

 

그 이유는

4 19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단과 제도로도

부정선거의 결과를 바로 잡지 못해 국민저항권이

정당성을 지니게 되면서 국민 스스로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는 간접 민주주의에서 국민이 권력을 빼았았기에

직접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의미하죠...

4 19는 국민에게 권력이 넘어 갔음을 의미하며

대의 민주주의의 붕괴를 의미하는 의거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4 19 의거 이후 장면 정권이 들어 온 이후

의회는 불법집회를 막지 못하고 공권력은 불법시위를

구경만하죠...

 

왜 이런 일이 일어 났을까요?

4 19 시위대들은 4 19 이후 권력을 가진 집단이 되었고

이들은 이미 정치적 집단 이익을 추구하는 변질된 행동을

하는 불법시위자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의회가 명분이 서려면

대의 민주주의로의 완전한 전환을 이룬 이후

의회 활동의 정당성이 세워지는 것이지

4 19 이후 시민권력과 의회권력이 공존해서

의회와 공권력은 시민권력의 불법성을 주장하면서도

불법시위를 구경만 했기에 의회는 4 19이후 무너진

헌법적 가치를 옳바로 세우지 못한 것입니다..

 

의회의 활동 이전에 의회는 시민에게 넘어간 권력을

계엄령을 선포하든 해서 확실하게 의회가 접수 했어야

대의 민주주의 체제와 헌법을 옳바로 살렸던 것이며

그 체제를 기반으로 의회 활동을 했어야 하지만

장면정권은 그런 과정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5 16은 무너트릴래야 무너트릴 헌법적 가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죠...

 

만약 5 16이 먼저 일어나고 4 19가 1년뒤 일어났다면

5 16은 국민저항권 보다 먼저 일어났기에 그리됐다면

부적절한 군사행동이 명백하지만 5 16은 민주주의 절차상

국민저항권이 잃어났어도 체제를 바로 세우지 못했기에

우리나란 더이상 헌법적 가치를 바로세우고

민주주의 체제를 바로 세울 세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군대가 일어났고 이는 구국의 결단이였으며

완벽한 군사혁명이였던 것입니다...

 

한편 군대라는 선입견으로

쿠데타로 보는 얼치기 지식인들의 농간은

민주화 세력에게 명분을 주죠....

 

투쟁은 민주주의 이념도 아니며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나 제도보다 먼저 하는게 투쟁입니다.

민주주의는 불신해도 국민은 정치적 해결의 결과를

지켜 보고 행동을 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상 맞는 것이지

투쟁은 정치적 해결보다 불신하면 무조건 행동하죠.

투쟁은 정치이론이 아니며 싸우자는 혁명이론이기에

정치이론과 투쟁이론과는 양립할수 없습니다...

 

정치이론은 나와 타인이 평등하게 함께하는 것이지만

투쟁은 나는 투쟁의 주체지만 타인은 투쟁의 대상이죠.

그리고 투쟁을 국민저항권이라 뻥치는데

그렇다면 국회의원저항권은 아니기에 투쟁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은 명분이 더더욱 없죠...

 

그러나

얼치기 지식인들은 반 헌법적이고 반 민주적이고

반 정치적인 투쟁을 신봉하는 민주화 세력들을

마치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미화하여 국민을 세뇌 시켰죠.

 

박모변호사과 같은 얼치기 지식인들로 인해 사실은

국가가 발전을 못한 것입니다...전두환 욕하는데

그분들도 다른 또하나의 국가적 도득늠들을 미화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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