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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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의 여자 “친필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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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3 황*인 조회수 439


미국 로스앤절레스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코리아나 (발행인 정채완, The Koreana News U.S.A.)신문은 

2001.10월 "맹활약 사기꾼 조폭 DJ정권 핵심에"하는 기사를 2페이지에 걸쳐 보도 했는데 한 페이지에 

문제의 여인 최정민씨가 (50) 지난 96년 4월 국회의원 선거 때 뿌렸던 한 맺힌 진정서를 공개했다.

코리아나 신문은 기사를 통해 “뉴욕 한인회장을 지낸 박지원 수석은 청와대를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의 실세이다. 

그러나 그의 권력 장악 뒤에는 한이 맺힌 여인의 울부짖음이 있고 한빛은행 압력뿐만 아니라 뉴욕 외환은행

서울은행 융자에도 권력의 입김이 서려 있다”라 보도 했다.


코리아나 신문은 또 문제의 여인 최정민씨가 쓴 진정서를 사진판으로 보도 했다. 

보도 하기 앞서 코리아나 신문 정채환 발행인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최여인의 어머니로부터 딸 최정민씨가 쓴 자필 진정서임을 확인해 주었으며 최씨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말해 최씨의 자필 진정서임이 밝혀졌다.


▼=70년대 아시아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경력의 당시 톱스타 최정민씨가 박지원  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와의 관계에

대해 눈물로 밝힌 호소문. 1996.4월 박지원 대표가 부천 지역구에 출마하자 최정민씨가 부천시민신문에 증언과 함께 제보. 




-최정민씨 호소문 워드-


“저는 힘이 연약한 홀로 사는 한 여성입니다. 단지 평범한 여자가 되지 못하고 세상에 제 이름이 알려질까 두려워서 이글을 진작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과거에 유명 연예인이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1977년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N.Y. 한인회 회장이었던 박지원 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1978년경)


그분과 동거를 하면서 저희는 양가 가족들의 후원 받으면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그분은 저를 사랑했습니다. 한데 몇 년이 흐른 후 그에겐 가정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부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저는 헤어질 것을 결심한 후 다른 사람과 선을 보도록 권유를 받고 선을 봤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박지원 씨는 사람을 시켜 청부 살인을 하려고 계획하고, 어느 날 9시경 내가 경영하는 스타꽃집에 괴한 최 모 씨가 들어왔습니다. 살인 청부업자인 최 모 씨는 가게 문을 걸게 만든 후 총을 들이 대며 죽인다고 말하고 지하실로 끌고 내려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차라리 나를 먼저 죽이고 딸을 데려 가라’고 최 씨에게 애원하며 호소하며 매달렸습니다. 그러니까 엄마의 호소에 최 씨는 우리 모녀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고 엄마의 모습에 감동되어 저의 목숨을 구해 주었습니다.


그 후 그 청부업자는 또 다시 박지원 부인의 부탁을 받고 저를 또 다시 처치해야 되는 처지가 되어 (2천불or2만불) 저의 가게로 왔으나, 그때도 제 약한 처지를 깊이 알고 동정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우리 모녀를 보호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지만 저는 늘 불안 속에서 공포에 질려서 박지원 씨의 노예 마냥 끌려가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85년 말 한국에서 영화 출연교섭이 와서 저는 그와 헤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 한국에 나와 삼촌 집에 거처하고 그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박지원은 자신이 꿈꾸던 정치의 길이 보이자 나를 과감히 버리고 그 길을 택하려고 저가 급히 하던 모든 작품을 중단시키고 미국으로 들어가서 뉴욕서 멀리 떨어진 서부 쪽으로 이사를 보냈습니다.


저를 설득해서 아무런 위자료 없이 헤어지지 않은 것처럼 위장해 저를 동부 쪽에서 서부로 쫓아냈습니다. 못난 저는 매일 매일 찾아줄 것을 기다리며 차 사고를 내는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그를 기다렸지만 매정하게 버림을 받고 저는 세월이 흘러 88년경에 N.Y.에 다시 가서 까페를 경영했는데 그가 다시 찾아왔습니다.”<전문>


그 후 박지원의 협박과 회유에 넘어간 탓인지, 아니면 사랑의 힘에 노예가 되었던지 최 여인은 박지원과 다시 만나며 서울 친척집에 머물고 있었으나, 결국 박지원의 배신에 치를 떨고 있었다. 1996년 4월, 국회의원 총선 전 때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불쑥 찾아와 자동차 안에서 반 강제적으로 CAR SEX를 당한 후 “박지원이 같은 인물이 정치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매몰진 마음으로 호소문을 써서 선거 때 뿌렸다고 전해진다.


http://www.frontiertimes.co.kr/news/htmls/2012/05/201205278508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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