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연일 구설에 오르고 있다. 처음 문 씨의 발언이 보도됐을 때는 비난 일색이었지만, 언론이 발언을 일부만 떼서 왜곡·과장했다며 문 씨를 공개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도 하나둘 나온다. 문 후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역사관과 신앙관이 극우적이라 지적하고, 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말한다.
문창극 후보의 사고는 정말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인가, 아니면 한쪽으로 심각하게 편향된 것인가. 그에게 역사적·신앙적인 문제가 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전 국사편찬위원장이자 기독교계 원로인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에게 물었다. 인터뷰 전, 문 후보가 2011년 6월 온누리교회에서 한 강연 전문을 이 교수에게 보냈다. (관련 기사 : 문창극 총리 후보자 온누리교회 강연 전문)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이 교수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 이만열 교수는 문제가 된 문창극 후보의 강연 전문을 꼼꼼히 읽었다. 전체적으로 기독교인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지만, 몇 가지 발언은 심각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선인의 천성이 게으르다는 문 후보의 말이 '식민지 근대화론'과 닿아 있다고 경계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서재에서 걸어 나오는 이만열 교수의 손에는 문창극 후보의 강연 전문이 들려 있었다.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언론 보도만 봤을 때와는 달리 문 후보의 생각을 좀 더 자세하게 볼 수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몇 가지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크리스천이 생각할 수 있을 법한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몇 가지 문제라는 것이, 아무리 교회 안에서 크리스천으로서는 용납될 수 있다 하더라도, 공인으로 나설 사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언론에서 몇 자만 따서 보도할 때 빠지기 쉬운 오류가 이번에도 있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교회에서 훈련받은 크리스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고 생각된다. 전문을 안 읽었을 때는 (문 후보가) '석고대죄해야 한다'는 말도 했는데, 전문을 읽어 보니까 신문 등에 단편적으로 소개한 글이 글 전체의 문맥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연 뒷부분에서는, 중국과 북한을 위해, 우리나라에 좋은 지도자를 주시도록, 이 땅의 크리스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점들은 일반 목회자들이 하는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만열 교수는 문창극 후보의 몇 가지 표현이 강연 전체를 흐려 놨고, 이는 최고위 공직자로 나설 사람에게 치명적이라며 아쉬워했다. 문 후보가 △조선 민족에게 게으른 DNA가 남아 있다고 한 점 △일제강점기가 이조 시대를 허송세월한 것에 대한 고난이며 이는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점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 미국과의 안보 조약이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 점 △우리나라 경제 발전이 일본을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한 점 등은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친 역사관과 신앙관을 보여 준다고 했다.
문 후보의 발언과 관련, 그를 옹호하는 이들은 교회라는 제한적인 공간에서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내용을 교회 바깥에서 정치적 관점으로 비방·폄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그 말이 타당한 듯 보이지만, 문 후보가 교회 안에서만 칩거할 사람이 아니고 과거 언론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었으며 또 국무총리라는 공인으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고 또 문제 삼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무능한 조선인 강조하는 건 '식민주의 사관'…독립운동이 설 자리는?
문창극 후보는 강연에서 여러 선교사들과 윤치호의 글을 인용하며, 조선 말기 백성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지저분하게 살았는지 설명했다. 이만열 교수는, 그런 기록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민족의 정신과 문화에 감탄하는 선교사들의 기록도 많다며, 문 후보가 한쪽 면만 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민족 자체가 게으르고 무능하다는 말은 일제가 주장하는 식민 사관과 맞닿아 있다고 지적했다. 게으르고 의타적이어서 제 앞가림도 못하는 조선은 마땅히 남의 지배와 지도를 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선이 식민지가 된 이유는 침략자들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타적이고 나태한 조선인에게 있다는 논리로 둔갑한다. 이것은 소위 식민주의 사관의 '타율성론'(他律性論)에 속한다고 했다.
"문창극 후보가 한국 사람을 두고 게으르다든지, 그런 DNA가 남아 있다든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나.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면서 식민주의 사관을 주입할 적에, 조선의 민족성이 게으르고 당파심이 많고 의타적·의존적이라는 얘기를 하면서 독립할 수 없다고 했다. 문 후보가 식민주의 사관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이와 맥락이 닿아 있다. 둘째, DNA라는 건 변함이 없다는 건데, 한국인의 DNA가 게을러 빠져서 그렇게 되었다면 그 DNA를 그대로 갖고 있을 오늘날 한국 사람의 부지런함, 부지런해서 이런 사회와 경제, 문화를 일으킨 건 어떻게 설명할 건가.
(조선인들이 게을렀던 건) DNA가 아니라 당시 상황과 관련이 있는 거다. 문 후보도 강연에서 예를 들었다. 조선인들이 부지런하게 일해서 돈을 벌면 관리들이 착취한다고 했다. 부지런히 일해도 소용없는 상황이다 보니 부지런히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당시 착취하는 환경을 바꿔 주었다면 얼마든지 부지런히 일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만약 그때 현명한 지도자가 있어서 부지런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점은 문 후보 자신도 말하고 있다. 선교사들과 김약연 목사의 영향을 받은 조선인들이 부지런히 일했다는 것이다. 서구와 같이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 주었다면 부지런히 일하게 되지 않았을까. 현재를 미루어 과거를 유추해 보는 것이다."
조선인을 게으르고 무능하다고 단정해 버리면, 일제강점기는 그런 민족성을 개조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단련의 기간으로 설명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단련하기 위해 일제의 강점을 주셨다는 점에서, 우리가 식민지가 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을 선의로 해석할 여지가 없지 않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니 후회할 필요도 상심할 필요도 없다는 논리가 나온다.
하지만 이만열 교수는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면 숙명론과 무엇이 다른지 의문을 표한다. 하나님의 뜻에는 정의와 심판이 있는데, 일제가 남의 나라를 침략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한다면 거기에서 정의니 심판이니 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고 반문했다. 때문에 '이러이러하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일제강점기를 그렇게 본다면, 일제 침략에 저항한 독립운동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당장 의문이 나오게 된다. 이 교수는 일제의 식민지화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식민지 역사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식민지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라고 묻는 것이 오히려 크리스천의 자세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36년간의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당장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뭐가 되나.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불순종하는 역할을 한 셈이 아닌가. 기독교인 가운데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문창극 후보가 내세우는 이승만도 크리스천이었고, 김규식·김구도 크리스천으로서 독립운동을 했다. 식민 지배를 하나님의 뜻으로 단정해 버린다면, 하나님은 식민지 백성들의 고통에 눈감으시고 침략자의 강포에 동조하시는 분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갖지 않을 수 없다.
일제가 조선을 문명화했기 때문에 한국이 근대화됐다는, 식민주의 사관에 따른 '식민지 근대화론'은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얘기다. 한국사 교과서 문제가 터진 후 내가 지금까지 계속 비판해 온 대목에 이 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 이후에 이 식민지 근대화론이 우리 사회에 편만하게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받아들이면 독립운동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할 수 없다. 문 후보가 지성인으로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다. 그는 주필을 역임한 언론인이었는데, 이런 식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건 여론을 선도해야 할 언론인으로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더구나 지금에 와서 일국의 총리 후보로 지명된 시점에서는 더욱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안부 문제, "몇 백 년이 지나더라도 책임 물어야"
일제강점기에 대해 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창극 후보의 '위안부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문 후보는 지난 4월 서울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굳이 일본의 사과를 받아들일 정도로 나약하지 않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는 2005년 3월 칼럼에서도, "위안부 배상 문제는 이미 40년 전에 끝났다", "해방된 지 6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과거에 매달려 있는 우리가 부끄럽다"고 썼다.
이만열 교수는 위안부 문제가 40년 전에 끝났다고 하는 발언에 대해서 의문을 표했다. 40년 전이라면 아마도 1965년 한일회담 때를 말하는 것 같은데, 그때는 '위안부'의 존재 자체가 거론되지 않았을 때다. 어떻게 그때 이미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이건 일본의 말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전쟁에서 성노예와 같이 '위안부'를 동원했다면, 이건 '전쟁 범죄'로서 무한책임을 물어야 하는 성격의 범죄이기 때문에 몇 백 년이 지나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고 했다. 이것은 전 세계의 보편적 죄악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가 포기하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가 세계인의 호응을 얻는 이유도 바로 세계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봤다.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의 관점에서도, 40년 전에 끝난 일이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아마 일본이 이런 경우를 당했다면 오히려 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지 않았을까' 짐작했다.
"위안부, 나는 성노예라고 한다. 이것은 전쟁 범죄다.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단순히 군인들이 서로 싸워서 죽인 것과는 다르다. 민간인 여성을 성노예로 만들었다는 건 무한책임을 져야 할 전쟁 범죄다. 몇 백 년이 가더라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근절시켜야 한다. 이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으로 공조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우리나라가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서 물러나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무책임한 짓이다. 침략은 분명 하나님의 정의에 어긋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일본군 성노예 문제도 하나님의 보편적 정의에 반하는, 심판받아야 할 것이기에 일본에게 계속해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통일=공산 국가'는 반공주의 사고…한국교회, 십자가인가 십자군인가
▲ 이만열 교수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모든 종교인들이 '결정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이번처럼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 버리면, 그곳은 성역이 되어 인간의 어떠한 물음도 개입할 수 없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라고 묻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해방 후 남북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얘기가 넘어갔다. 문창극 후보는 당시 우리가 바로 하나의 나라가 됐다면 필시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라며, 분단과 한국전쟁도 하나님이 주신 고난, 즉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 이만열 교수는 해방 후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지식인이 많았던 건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남북이 하나가 되면 반드시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라는 문 후보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것은 패배주의적 사고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우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반민주·독재와, 포악한 유신, 파쇼적인 신군부의 잔악함도 극복한 저력을 가진 국민이라며, 이를 근거로 보면 문 후보가 언급한 공산주의 국가가 됐을 것이라는 가정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통일된 나라가 됐다면 공산주의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다시 시련을 주셨다', '우리는 6·25라는 시련을 통해서 미군과 안보 조약을 맺게 됐다', '미국의 도움으로 우리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다', 문창극 후보의 역사관은 이런 논리다. 딱 반공주의 입장에 서서 얘기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런 가정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6·25라는 어려운 상황을 겪고도, 우리 민족이 4·19를 통해 민주화를 찾아가는 과정과, 자유와 창의성을 기반으로 독재와 싸우면서 민주화·산업화를 이뤄 가는 과정, 이런 민족적 저력을 볼 때 반드시 공산주의가 됐을 것이라는 문창극 후보와는 견해가 다르다. 선도적 언론인이었고 총리 후보의 물망에 오를 만한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빌려 우리의 역사를 그런 패배주의 역사로 인식해야만 했을까. 그때 통일이 됐다면, 6·25를 통해서 400만 명이나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또 지금까지 내려오는 이데올로기로 인한 국론 분열이 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창극 후보는 미국이 우리를 도와줬고 군사력으로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그 안정 위에서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하나로 단결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경제 발전이 지금보다 더딜 수는 있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남북 갈등에 소요하는 비용은 불필요할 것이다. 또 세대·빈부 간 갈등, 이런 것들을 지금보다는 더 해소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서는 가정이라는 게 용납되지 않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문 후보는 역사를 반공주의적 입장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한다. 이건 우파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확신을 역사 속에 그대로 투영한 것이다. 어떤 비판적인 역사관이 들어갈 수 없는 공고한 자기 체계가 세워져 있다."
문창극 후보는 대북 관계에 있어서도 대화와 협상을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그는 공산주의가 협상을 통해 무너진 적이 없고, 공산주의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무너진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이들의 생각으로는 문 후보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만열 교수는 공산주의가 협상을 통해 무너진 적이 없었다면 기독교에 의해서는 무너진 적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문 후보가 폴란드의 예를 들었지만, 폴란드는 자유화되기 전에도 가톨릭의 세력을 무시 못 할 정도였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 널리 퍼진 '십자군적' 사고가 문 후보와 같은 생각을 낳는다고 했다.
"한국 기독교가 역사 속에서 '십자가'였나 '십자군'이었나를 돌아봐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만백성을 구하셨다. 희생과 포기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게 바로 십자가의 길이다. 반면, 십자군이란 뭔가. 정복을 통해서, 때려잡는 걸 통해서 쟁취하자는 거다. 하지만 그건 중세 때 이미 실패했다. 한국교회는 아직도 십자군적, 전투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과 공존할 필요가 없다는 식의 얘기가 나오는 거다."
'하나님의 뜻', 결정론적으로 얘기하는 게 옳을까
이만열 교수는 인터뷰 내내 문창극 후보의 몇 가지 표현들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좀 더 여지를 두는 표현을 썼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해 버림으로, 다른 어떤 사고나 기준이 개입하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역화되면, 인간이 감히 거기에 질문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런 '결정론적' 사고 대신 '그 역사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려고 하신 뜻은 어떤 것인가' 물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물음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필요한 답과 지혜를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했다.
"문 후보가 앞서 얘기한 부분을 조금 순화한다든지 다른 방법으로 표현했다면 이렇게까지 문제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민지화도, 6.25사변도 하나님의 뜻이다'고 하는 것보다는 '이런 고난의 역사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이었을까', '이런 식민지 상황에서 하나님이 보여 주시려는 뜻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식으로 풀어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아쉬웠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단정해 버리니 강연 전체가 하나의 도그마가 돼 버렸다. 사회과학이나 인간의 물음이 개입할 여지가 없어졌고, 그 역사를 통해 현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도 주춤해져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걸 비판하면 하나님의 뜻을 비판하는 셈이 되니까.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신념·신조·역사관을 너무 결정론적으로 강하게 투영해 버리면, 일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괴리감이 생긴다. 기독교인뿐 아니라 종교인들이, 자기들이 갖고 있는 독특한 신앙 체계나 역사관에 충실한 나머지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본다.
한국교회는 역사의 흐름을 구조 속에서 보려고 하기보다 개인적인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설교도 우리 민족 전체를 두고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개인에게 호소한다. 윤리 문제에도 개인 얘기를 많이 하지, 사회윤리는 얘기하지 않는다. 개인이 변해야 사회가 변한다는 생각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는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속에 빠져 버리고 만다. 오늘날의 현상이 바로 그걸 말해 주고 있다. 라인홀드 니버는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개인의 한계를 잘 지적해 놓고 있다. 기독교가 좀 더 구조의 문제를 볼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역사관이나 사회관을 가져야 한다. 구조에서 오는 고통을 단순히 개인적인 연단·시련으로만 간주하고 해결점을 찾으려고 한다면 거기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일제 침략의 경우, 당시 제국주의 사회가 어떻고 그 가운데 일본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넓은 의미에서 보여 주는 게 필요한데 그게 잘 안 되고 있다. 시련이나 고통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결정론적으로 박아 버리고는, 거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더 큰 교훈을 제한시키거나 간과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본다. 구조적인 부분도 같이 얘기해 줘야 하는데, 한국교회는 이런 걸 얘기하면 마치 불온한 사회참여처럼 취급한다든지, 정교분리의 선을 벗어난 것처럼 본다. 이런 관점에 서는 한 기독교 윤리와 메시지는 한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만열 교수는 함석헌 선생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에서 '성서적 사관'을 언급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그 자세한 풀이나 '하나님의 뜻' 발언으로 엿볼 수 있는 문창극 후보의 사관과 비교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고 했다.
문창극 후보는 6월 15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구설에 오른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온누리교회 강연은 교회 내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한 것이고, 기독교인들은 삶의 모든 곳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일본 위안부 문제도 반인륜적 범죄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이 쓴 칼럼은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입장 발표문 바로 보기)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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