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 전의원,"노무현 픽업한 난 역사의 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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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4 장*호 조회수 245 |
"노무현 정치입문 시킨 난 역사의 죄인"
(2008년) 김광일 변호사(70)의 목소리엔 착잡함과 회한이 짙게 깔려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미 그의 마음속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인 것 같았다.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는 노 전 대통령 관련 질문에 그는 대답의 절반 이상을 “잘 모르겠다”는 말로 채웠다. 하지만 쏟아지는 뉴스를 보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감정에서 완전히 초탈하긴 어려운 듯 했다. 김 변호사는 13일 <데일리안>과 전화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이렇게 되리라고 예상했느냐’고 묻자 “당연한 결과”라면서 “괜히 대통령 해가지고 패가망신 하는 거잖아요. 나라도 이렇게 어려워지고...안 해야 할 거를 했어요”라고 한탄했다. 그는 ‘변호사 노무현’을 정치에 입문시킨 장본인이다.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YS(김영삼)에게 발탁된 그는 노무현·문재인 두 인권변호사의 동반공천을 요구했고, 결국 김 변호사 자신과 노무현 변호사가 공천을 받아 부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변호사 노무현’에서 ‘정치인 노무현’으로 탈바꿈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에게 “(노무현을 정치에 입문시킨) 나는 역사의 죄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인들이 ‘노무현을 정치인 만든 게 김 변호사 아니냐’는 이야기를 해올 때마다 말버릇처럼 “무조건 미안하다. 내가 죄인이다”라고 대답한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난 2002년 말 대선 직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는 열 가지 이유’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당시 그가 밝힌 성명서를 보면 “그(노무현)는 돌출적인 행동과 무분별한 발언으로 항상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그는 세상 넓은 줄 (외교의 힘) 모르는 우물 안 개구리요, 핵장난의 위험(김정일의 속셈)을 외면하는 철부지”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또 “역사적인 국회 청문회에서 전직 대통령인 증인에게 명패를 던져 깽판을 만든 일을 기억하면서 지금도 ‘깽판’ 소리를 자주 하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 감정의 기복에 따라 언제 무슨 깽판을 벌일지 알 수 없다”며 “노무현 후보의 지지자 가운데,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소수이고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 다수라고 생각한다. 그를 잘 모르는 다수는 그의 정체를 바로 알아야 할 것”이라고 반(反)노무현 선봉에 섰었다. 김 변호사는 이날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 “가난한 사람은 두 가지 경향이 있다”며 특유의 해석을 내놓았다. “하나는 남에게 베푸는 거에 인색한 거고, 또 하나는 죽으나 사나 남의 돈 뜯어 먹는 거”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부터 그를 쭉 지켜봐온 김 변호사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를 하면서도 그런 가난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원초적 책임」이란 표현을 했는데 盧武鉉 대통령과의 관계를 설명해 달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를 알았다. 1978년인가 1979년인가에 그가 사법연수원에 다닐 시절 내 변호사 사무실에서 3개월간 시보 교육을 받았다. 내가 지도 변호사였다. 당시 나는 時局 관련 사건을 많이 맡아 당국의 요주의 대상이었는데, 시보로 온 그를 의식이 있는 친구인지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데 전혀 그런 의식이 없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獨學으로 공부해 개인영달이나 생각하는 俗物(속물)로 판단했다. 그가 판사직을 1년 만에 그만두고 부산에 변호사 개업을 할 때도 내게 찾아왔다. 개업비용을 빌려 달라고 해 좀 빌려 줬는데 두 달 만에 갚았다. 그는 부산 법조계에 알려지지 않았으니까 사건 수임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그는 영리하기 짝이 없는 인물로,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등기·저당 등의 업무는 사법서사들이 주로 했는데, 그는 변호사로서 그 일거리를 처리했다. 부산 법조계에선 그를 「異端兒(이단아)」로 취급했다』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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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 2014.01.16 12:03
김광일 의원님은 크나큰 실수을 하셨군요!!정말 안타깝습니다
이*애 2014.01.15 20:38
우리나라가 존재하는 한은 죄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