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월남참전 사과에 화를 내던
고(故)
채명신(蔡命新) 장군의 추억
趙甲濟
월남 주둔 한국군 사령관을 지냈던 蔡命新(채명신) 장군이 87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월남전에 참여한 한국군은 연 30만 명이었다. 이들은 지금 60~80代이다.
채명신 장군과 함께 '맹호는 간다'라는 노래를 함께 불렀던 세대이다.
"자유통일 위하여 길러온
힘이기에 조국의 이름으로 어딘들 못가리까."
2001년 8월23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방한중이던 월남의 찬 둑 루옹
대통령에게 [불행한 전쟁에 (한국군이) 참전하여 본의 아니게 베트남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보도되었다. 사실상 사과를 한
셈이다.
그 직후 만났던 채명신 장군이 화를 내던 장면이 떠오른다.
金대중 당시 대통령의 발언은, 정통 역사관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과도 맞지
않았다. 첫째, 대한민국이 국군을 월남전에 보낸 것은 월남의 자유뿐 아니라 한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고 우리의 체제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미군은 주한미군 2개 사단 중 1개 사단을 빼내
월남에 보내려고 했다. 이것을 간파한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철수를 견제하기 위하여 전투 사단 파견을
결심했던 것이다. 둘째, 박정희 정부는, 월남파병을 계기로 하여 많은 實益(실익)을 챙겼다.
월남특수란 것이 일어났다. 월남에 많은 한국 회사가 진출하여 돈을 벌었고, 미국 존슨 정부는 한국에 많은 원조를 주었다.
한국의 공업화에 큰 기여를 한 KIST 즉 한국 과학기술원은, 월남전 파병에 대한 존슨의 선물이었다. 월남전에 진출한
장병들과 노무자들이 벌어들인 돈과 배운 건설 기술이 경부 고속 도로 건설에 투입되었다. 월남전선에서 한진-현대 같은 회사들이
성장했다. 특히 건설회사들이 이곳에서 기술을 터득하여 70년대에 중동으로 뛸 수 있었다. 셋째,
월남전에 대한민국이 파병한 것은 정의로운 일이었다. 미군은 6.25전쟁 때 5만 명의 젊은이를 희생시켜가면서 한국을
구해주었다. 그 미국이 파병을 부탁하는 데 혈맹인 한국이 의리를 지킨 것이다. 이 일 덕분에 韓美 동맹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월남전쟁의 도발자는, 17도선 이북의 공산 월맹이었다. 그들은 국제협정을 무시하고 정규사단을
17도선 남쪽으로 내려보내 공산혁명을 노린 게릴라 전을 주도했으며, 월남의 베트콩 부대를 부렸다. 명백한 남침이었다.
이 침범행위에 대해서 자유세계가 군대를 보낸 것이다. 호주-필리핀 등도 파병하였다. 1975년 월남 전역이
공산화되면서 미군 편에 섰던 한국은 勝戰國(승전국)이 되지는 못했으나 결코 사과할 나쁜 일을 한 적은 없다.
넷째, 한국군은 국제법을 위반한 월남 공산군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다. 바로 우리가 피해자인 것이다.
그들은 전쟁규칙을 위반하여 군인 복장을 하지 않고 민간인으로 행세하면서 우리 국군을 괴롭혔다. 약 5,000명이
전선에서 죽었고 1만 명 이상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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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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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2013.11.26 11:32
고인이 되신 채명신장군의 영령에 삼가 조의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