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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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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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신*호 조회수 141

 

 

 박정희와 김대중의 비교


1. 친일과 관련하여

박정희-자질이 우수한 인재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였다. 당시 조선은 법률상 일본국이었기 때문에 그가 일본육사를 졸업한 것은 법률상, 도덕상 아무런 하자가 없는 것이다. 일본 육사를 졸업한 뒤에 소위로 임관해 처음으로 부임한 곳은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보병 8단이었다. 보병 8단의 주요 임무는 모택동 산하의 팔로군 제17단을 방어 토벌하는 것이었으며, 박정희 매도자들의 독립군 토벌 운운 하는 것은 날조된 거짓말이다.
오히려, 박정희는 교사시절 학생들에게 태극기, 애국가, 우리말을 가르치며 민족주의적 신념을 심어 주었고, 일본인 교장과 싸우고 난 뒤 만주로 간 후에는 독립군들과 인간적 유대관계를 지속했다는 것이 사실로 여겨 진다.



김대중-조선이 일본국이었을 시절에 창씨개명을 하고 회사에 취직하고 사업을 하여 일본국에 상당한 금액의 세금을 바쳐서 살았으므로, 충실한 황국신민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김대중 씨의 창씨개명은 도요다(豊田)이며 당시 대부분의 한국인이 마지못해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에 석 자로 된 이름에 한 글자를 더 넣어 일본인처럼 넉 자로 늘리는 편법을 사용했지만 김대중씨는 완벽한 일본인 이름으로 바꾸었다.
김대중씨는 만주 여순에도 있었는데, 여순은 만주 침략을 위한 일본의 군사기지였다. 때문에 軍 정보기관이나 경찰의 特高(특고ㆍ사상범을 다룬 경찰) 등을 제외한 민간인은 출입통제지역이었다. 당시 여순의 실태를 아는 사람들은 여순에 있었던 조선인은 거의가 일본군이나 경찰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고 증언했다.
김대중씨는 만주 여순에서의 활동에 대해 이제는 스스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한 사람은 군인으로, 한 사람은 일본국에 세금을 바치는 샐러리맨으로 살았는데, 군인은 친일이고 샐러리맨은 애국자인가?
내셔널리즘을 떠나서 순수하게 인간적으로 생각해보면, 전시상태에서 죽을 확률이 높은 군인의 길을 택한 사람하고 그렇지 않은 길을 걸은 사람하고 비교한다면 나는 전자에게 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일본국 시절이나 지금이나 정치가는 정치가적인 자질, 사업가는 사업가적인 자질, 예술가는 예술가적인 자질...등 개인의 능력에 따라서 국가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일본국 시절에 자질이 우수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했다고 지금에 와서 매도하고, 무능력하여 백수나 일반노동자로 살았다고 그게 무슨 유세거리인가?

그 당시에 성실하게 노력하여 고등고시 패스한 사람은 친일파이고 대가리가 나빠서 말단공무원도 못한 사람은 친일파가 아니라는 말인가? 한국이 해방되자, 무능한 돌대가리들이 일본국 시절에 출세하지 못한 한을 풀려고 자질이 우수했던 사람들을 친일파라는 딱지를 붙여서 매도했던 것이다.


2. 국가경영과 관련하여

박정희- 조국근대화를 위하여 자기 희생을 자처하신 분이다. 최고권력을 쥐었지만 부정 축재는 단돈 1원도 하지 않았고 노벨상 같은 상을 받을려고 쇼도 안했다. 오히려 독재자라는 누명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조국근대화를 이루려고 온몸을 불살랐고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민주화를 이루는데 100% 공헌하신 분이다.

김대중-박정희의 뛰어난 자질을 시샘하여 박정희의 조국근대화 작업을 사사건건 훼방 놓고 딴지를 걸어서 괴롭힌 파렴치한 인간이다. 모든 점에서 흠잡을데 없이 완벽한 박정희를 모략할 방법을 강구한다는 것이 고작 친일파라는 허구적인 딱지를 만들어서 공격하였던 것이다. 친일파라는 것은 얼핏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그 허구성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3. 민주화와 관련하여

박정희- 민주주의는 빵이 없으면 이룰 수 없는,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누리는 사치품이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는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실질적으로 노력하신 분이다.

김대중-한통련의 초대 의장을 지낸 좌익적 경력 때문에 즉, 국가보안법을 위반해서 감옥 갔다온 것 말고는 민주주의를 위해서 한 일은 단 한 건도 없다. 오히려 박정희의 조국근대화 작업을 방해하였고 지역감정을 일으켜서 남남갈등을 조장한 민족의 역적이다. 그는 민주주의를 이룰 토대를 쌓는 작업을 훼방한 민주주의의 공적이다.
김대중씨는 60-70년대에 북한과 내통되었고, 북으로부터 정치자금을 받고, 미국 일본으로 다니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고 다니는 등 국익에 반대되는 짓을 한 사람이다. 또한 보릿고개를 없애고 산업화를 추진하는데 반대하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극구 반대하는 등 국익에 해가 되는 짓을 한 사람이다.

김대중은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박정희를 시샘하여 그를 독재자, 친일파라는 누명을 뒤집어 씌우고 매도하였고, 평생의 라이벌인 김영삼을 물먹일려고 악동처럼 사사건건 딴지를 걸어서 IMF를 초래하여 국민경제를 도탄에 빠뜨렸다. 그리고 음흉한 방법으로 노벨상을 사취한 사악한 인간이다. 그리고 일부러 무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추대하여 자신의 상대적 우위를 확보하려고 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자가 일국의 대통령이었다는 것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김영삼과 김대중이가 없었다면, 국민의 GNP는 2만달러는 넘었을 것이고, 박정희가 10년 정도만 더 일했다면 3만달러는 거뜬히 넘어서 세계의 선진국 중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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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CHOSUN 정*택 2013.11.14 07:54

    팩트

  • TV CHOSUN 이*호 2013.11.14 03:57

    박정희 대통령 시절 북쪽은 김일성이 통치했으니 김일성과도 비교해야.. 북한보다 못살던 대한민국을 개도국 이상으로 발전... 김일성때부터 북한은 아직도 경제파탄으로 대한민국과는 경제력 차이가 수십배 북한은 아직도 말한마디 잘못하면 정치범 수용소로 글려가거나 공개처형.자유도 없슴 대한민국은? 정치범 수용소도 없거니와 자유민주주의 국가

  • TV CHOSUN 진*하 2013.11.13 22:26

    스스로 입신양명위해 일본육사 나온 일본군장교인걸 인정하는군요... 다행입니다. 스스로 일본군장교가 되었다는건 무얼 의미하는지 잘 아시리라 봅니다. 그가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간 주요원인입니다. 애국심이 있었다면 독립군이 되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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