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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3 이*주 조회수 104 |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네요. 김대중은 여러 여자들에게서 진아 정아 은영이 등등 많은 자손들을 봤는데 결국 자기 자식을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김대중은 말할때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거짓말 중에서 대표적으로 1. 훗날 5.18 회고에서 그들(전두환 일당)과 절대 타협하지 않고 굴하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1982년에 전두환에게 올린 편지를 보면 요양을 위해 가석방을 요청하고 다시는 정치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 해군에서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6,25 당시 목포해상방위대 복무를 대통령 후보때 TV에서도 언급하고 계속 거짓말을 했습니다. 3, 그의 호적에는 도장이 9번 찍혀 있는데 그만큼 호적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자기 여동생(워낙 집안이 개족보라서 실제로는 사촌여동생)이 이화여대에 들어갔다고 했으니 이것도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이 외에도 온갖 거짓말과 사기로 살아가다가 죽었는데 아직도 모 지역에서는 이런 자를 선생(슨상)이라고 칭송하고 있다니... 그 어머니 장노도(장수금)는 다섯 명이나 되는 남자를 갈아탔고 결론은 슨상님이 호주제를 폐지한 이유중의 하나가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일겁니다.(그 어머니의 남자들이 복잡하니)
1. 도요다: 일본인 형사. 장노도가 16세때 이 일본사람의 첩이 됐는데 도요다 사후 친정집에 안돌아가고 바로 제갈성조와 결혼. 도요다의 친 자식일 수도 있음.
2. 제갈성조: 염전업자. 장노도가 18살때 맞이한 첫 남편으로 원래 하의도 뱃사공인데 이 사이에서 딸 2명이 태어났습니다. 제갈성조가 죽자 친정아버지 호적으로 다시 올라간게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손충무 손창식씨가 각각 확보했음. 제갈성조의 친 자식일 수도 있음.
3. 윤창언: 제갈성복의 친구로 임신한 것이 동네 소문나자 재빨리 장노도는 염전을 하는 소금쟁이 윤창언과 재혼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의도 사람들에 말에 의하면 이미 제갈성복과 살면서 배가 불러왔으니 제갈성복의 아이라고 합니다. 일단 제갈대중은 '윤대만'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라왔고 어릴 때까지 윤대만으로 삽니다.
4. 제갈성복: 제갈성조가 일찍 죽자 그 동생이자 시동생 제갈성복이 장노도와 같이 살면서 도와줬는데 윤창언이 죽자 제갈성복이 식당하나 차려줌.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바로 '제갈대중'.
5. 김운식: 윤창언이 죽자 장노도는 목포 사람 김운식에게 붙어 셋째첩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김운식은 이미 본처 김순예 사이에서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윤대만은 김운식의 아들이 되어 '김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 공식적인 기록에서 김대중은 김운식과 장노도 사이에서 1924년에 태어났으며 본생부일 수도 있는 도요다의 성을 따 도요타 다이쥬(풍전대중)으로 창씨개명하고 6.25때 목포에서 목포해상방위대 고위직을 맡았다고 하지만 그건 해군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거짓말이며 원래는 사생아이자 서자인데다가 그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던 유권자들 때문에 50년대 후반 목포에서 국회의원을 낙방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호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계부 김운식은 6월 1일 본부인 김순례와 협의 이혼을 하고 6월 5일 첩으로 있던 장노도와 정식 혼인신고를 하여 정부인이 됨과 동시에 서자였던 김대중은 적자 아들로 승격합니다. 결국 김순례는 혼자 쓸쓸히 묻혔고 장노도는 1970년대 사망하자 마지막 남편 김운식과 합장됩니다.
1971년 박정희는 전직 헌병 수사관 하영조 등 5명의 비밀요원을 목포와 하의도로 급파하여 주민 등에게 김대중의 출신을 알아내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여 김종필에게 줬고 김종필은 초안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여 박정희에게 보냅니다. 박정희는 공식 발표를 꺼리고 중앙정보부와 보안사령부에 한부씩 보관하게 했고 공화당 내에서는 이게 조금씩 밖으로 흘렸습니다.
1980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보안사령부에 있던 때 이 보고서를 봤기 때문에 김대중에게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자기 성씨와 아버지부터 찾으시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더 웃기는건 김대중 본처가 차용애인데 차용애는 김대중의 1960년 선거빚때문에 농약먹고 자살한 여자임.
그런데 더 재미있는 사실은 차용애는 장성희, 장영자와 사촌인데 차용애 친정엄마와 장성희, 장영자 자매의 친정아버지가 남매입니다. 장영자는 목포 출신이고. 장성희는 이규동의 부인으로 이순자의 작은어머니인데 이순자가 바로 전두환 부인 이순자입니다.
1980년 9월 11자 경향신문 3쪽과 1986년 공화당 중앙위원 출신 이한두가 유신공화국이라는 책에서 그 보고서를 그대로 인용했고 이 저서에 약간 더 추가하여 1997년 10월 한길소식 제2호에서 '김대중 출생 및 가계의 비밀을 밝힌다'고 몇 페이지에 걸쳐 보도했는데 발행인 손충무는 이 보고서 복사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김대중은 1997년 12월 19일 당선됐으며 다음날 아침 당선 제1성으로 '정치보복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 또한 거짓말... 다음날 전과 7범의 민원비서실장 오길록을 검찰에 보내 손충무, 함윤식, 손창식, 이도형 등 언론인, 출판인, 소설가 등 14명을 형사처벌하라는 고소를 했고 검찰총장에게 야당 국회의원 5명을 보내 자신이 고소한 그들 14명을 해외 출국금지, 긴급구속 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함윤식씨가 1차로 구속되고 손충무가 몇 개월 후에 2차로 구속되었다. 손창식씨는 불구속 기소가 됐고 손충무는 징역 2년, 함윤식은 징역 1년 6개월, 이도형은 집행유예 2년, 손창식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김대중은 보고서 복사본과 자기에게 불리한 자료를 찾기 위해 검찰 수사관들은 손충무의 집과 사무실을 3일 동안 뒤졌지만 이미 손충무는 그 자료를 다른 곳으로 모두 빼돌렸으며 사본을 미국과 일본에 한부씩 갖다 두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의 명령 하에 국가정보원, 즉 과거 중앙정보부에 있던 원본 보고서와 보안사령부에 있던 보고서는 모두 흔적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신안군 하의면과 목포지방 법원에 보관되어 있어야 할 제갈성조와 김운식의 호적이 모두 개정되었거나 멸실로 사라져 새로 작성했다는 것만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결국 이렇게 남아있습니다. 만약 김대중이 살아있다면 입을 열게 할 수도 있으나, 이미 고인이 됐고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과오나 거짓말 등을 하나도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갔습니다. 그나마 그가 쓴 자서전에는 스스로 '나는 첩의 아들이었다'라는 언급이 전부입니다.
그 외에 1989년 일왕 히로히토가 죽자 국내에서 유일하게 조문을 갔으며 1999년에는 한일어업 협정으로 동해를 일본에 반쯤 팔았으며 2000년에는 6.15 공동선언이란 미명과 햇볕정책이란 전대미문한 정책으로 북괴에게 엄청난 퍼주기식 지원을 해줬고 정작 여러번 뒤통수륾 맞고 비전향 장기수를 여러번 북으로 송환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에 있는 납북자나 국군포로 한명 데리고 오지 않고 유골 한조각 조차 가지고 오지 못하는 등 여러 악업을 달성했습니다. ㅡ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후광 김대중 선생은 본관이 김해이시다. 아버지는 김운식 공이고 어머니는 장수금 여사이며 1924년 1월 6일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도에서 태어나셨다ㅡ
이건 국립묘지에 안장된 전 대통령 김대중, 아니 제갈대만, 아니 일본인 도요다 다이쓔일 수도 있는 이놈의 묘비의 첫 글입니다. 결국 이 인간은 생년월일과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거짓말과 사기, 온갖 추태를 남기고 간 현대사 최악의 인물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막장 드라마를 넘는 출생의 비밀부터 시작해서 그 어머니를 닮은 엄청난 성욕까지... 대체 김대중의 진짜 이름은 무엇일까요?풍전대중, 풍전대만, 제갈대중, 제갈대만, 제갈성만, 윤대중, 윤대만, 윤성만, 김대중, 김대만, 김성만...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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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2013.11.14 03:36
그래서, 씨도둑은 못한다는 말이 있는게지요, 지난 데모쟁이 독재 20년 정말 참혹 하지 않았습니까, 희망을 가지고 산다는 자체가 불경스러움으로 취급 받던 암흑기 였지요, 저격수다에서 박정희 치적 뿐 아니라 지난 데모쟁이 독재 20년의 아픔도 함께 이야기 했으면 싶은데 아직 떨거지들이 많다 보니 거기까진 안되는 모양 입니다, 중산층 말살정책의 성공이 오늘날 중산충 붕괴로 이어지질 않았습니까,해서, 그들이 이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수고 했다 하는것은 바로 반역적 행위 인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