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가면 매표소 옆에 문화관광해설사의 집이 있어서 무료로 설명을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 또 1박 2일에 나왔던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는데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앞에 스탬프를 꼭 찍으며 관광을 하시면 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9월 18일 대릉원 지구 안에 있는 천마총에 기자들과 함께 취재를 하기 위해서 갔는데 해설사 선생님께서 오늘 마지막 설명이라며 잘왔다고 하시며 우리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다.
천마총은 고 박정희 대통령님께서 1973년도에 아파트 8층 높이 23m인 3고분을 우리손으로 발굴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돌에 깔릴까봐 사람들이 겁을 내어 힘들었다고 하셨다.
천마총이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유는 천마도가 나왔기 때문인데 天 하늘천 馬 말마 塚 무덤총 이라고 쓴다.
뒤에 쓰는 총은 발굴을 하되 누구 능 인지 모른다는 뜻에서 총이라 불린다고 한다.
신라는 56대까지 임금이 있는데 박씨가 10분 석씨가 8분 김씨가 38분 계시는데 여왕이 3분 계세요. 27대 선덕여왕, 28대 진덕여왕, 58대 진성여왕이 계시다.
그 중에서도 29대 무열왕 김춘추는 능에는 이름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들이 똑똑하다보니 능 옆에 비석을 세워 태종무열왕릉비 라고 이름을 적어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고 한다. 왕이든 여왕이든 능이되고 발굴을 했는데 누구인지 모르면 총이 되는 것이다.
천마총 안에는 73년도에 발굴할 당시의 유물이 많이 나왔는데 국보가 4점이 있고 화려한 왕관, 금제모자 금제 허리띠 천마도가 있었다.
무덤의 형태가 모르는데 어떻게 되어 있었나 하면 평지에 3~4cm 정도 파서 모래 자갈들을 배수가 잘 되게 해 놓았고, 그 위에 사람이 죽으면 들어갈 수 있는 널을 해 놓았다고 한다. 또 위에 유리곽을 해 놓았는데 우리 키만 합니다.
사람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곽이 또 하나 있어요. 그 위에 돌들이 많이 얹혀 있었다.
찰흙을 발라 비가 스며드는 것을 막고 흙을 쌓고 잔디를 덮어 하나의 능을 만들었는데 이것을 적석목각본이라고 한다.
또 우리가 이가 예쁘게 나 있는데 하나 더 낫는 이를 덧니라고 하듯이 밑에 널이 있고 그 위에 관이 하나 더 있고 돌들이 많이 있어서 돌무지 덧널 무덤이라고 한다.
4세기에서 6세기에 볼 수 있는 무덤의 형태이고 그 시기는 다 왕이 김씨엿으니 그분들중 한 무덤이라 추측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죽으면 북쪽에 머리를 두는에 이 분은 동쪽에 머리를 두고 계신다. 동쪽을 머리를 두는 이유는 신라시대 때는 불교의 나라였기 때문에 지금 현재에 복을 누리시고 사셔도 다음 생애에도 부귀영화를 누리라고 동쪽에 머리를 둔다고 한다.
널 바깥쪽에 보면 널 삼각형으로 된 검정색 모자가 있다. 얼굴 부분에 돌아가신 발치에는 금동 신발이 있고 손가락에는 열 개의 반지들이 다 끼어져 있었고 금관이 가장 화려한 것이 나왔는데 앞에 4단으로 되었는데 옥도 달려 있었다고 한다.
금관의 무게는 320t 정도 되는데 아주 크다.
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데 현재는 서울에 있다고 한다.
여기서 큰 금관이 발견 되었다는 것은 돌아가신 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특별한 일에만 사용하셨다는 것 금제 허리띠를 보면 길이가 125cm 정도 되는데 아마도 이분은 아주 크셨다는 추측을 해 볼 수도 있다.
또 천마도는 한 쌍인데 걸쳐진다. 말을 타고 진흙이 많은 곳으로 가는데 물이 라든지 진흙이 옷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졌는데 6겹을로 만들어 바느질을 다 했고 끝에도 다 가죽을 입혔었고, 그림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 모양인데 깃털이 날리고 있고 입김이 나오고 있다.
다리쪽에는 먼지가 일어날 것처럼 생동감이 넘쳐서 이름이 천마총이다. 들어가면 말에 대한 부장품들도 많이 있었다.
아쉬운 것은 진품인 천마총 출토 금관이 36년 만에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갔다고 한다.
내년 2월까지 전시를 한다고 하니 집에 돌아가서 시간이 되면 박물관에 가서 꼭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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