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황무지 제주도에 감귤농사 장려하고, 국제관광지로 육성한 박정희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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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8 신*호 조회수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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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제주도의 척박한 땅에서 경쟁해서 이길수 있을만한 사업은 관광산업이라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은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관광산업을 수출과 동격으로 중요시 했다. 외국인 상대관관산업이 수출보다 외화가득률이 높다는 것을 깨달은 박정희 대통령은 1971년7월 정소영 경제 제1수석비서관을 단장으로 하는 경주관광개발계획단을 구성하여 경주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하도록 했고

1972년 제주도에 들린 박대통령은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 개발할 결심을 하고 청와대비서실에 제주도관광종합개발 계획의 입안을 지시했다.

그리고 당시 지금삼성혈옆 하니호텔자리에 비록 30실규모의 호텔이지만 제주관광호텔을 신축함으로 제주도관광이 시작되었다.

관광단지개발법을 만들어  중문관광단지를  개발하였다.



이러한 박정희의 선견지명은 제주도를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도로 만들었고, 숙명적으로 가난에 시달리던 제주도를 국제적인 관광지로 발전하게 초석을 놓은 것이다.


내 나라 국토 어느 한곳도 결코 가벼이 흘려보지 않았던 박정희의 국토에 대한 선견지명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그린벨트, 
헐벗은 산하를 푸르게 푸르게 옷을 입혔던 산림녹화사업을 만들어냈고
그 가난했던 시절, 당장의 끼니를 생각하는 시절에도 수십년을 앞서 내다보았다.


지금 제주도는 '당연히 관광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제주도를 관광지로 만들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도 감귤 농사 착안해서 장려했던  박정희 대통령==

 

 

(61년도 첫 초도순시 때 관광과 축산, 감귤 착안)



정부의 첫 과제는 재해복구와 부흥정책이었으나 골이 깊었던 4.3사태의 사후수습과 50년대의 연이은 풍수해와 흉년으로 민생구호에 매달리다 보니 지역개발과 산업개발에 주력할 여력이 전혀 없었다.



1961년 9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초도순시차 처음으로 제주도를 방문하였는데 체재일정을 연장해가면서 제주도의 실정을 샅샅이 살펴본 후 미개발 자연자원과 민속 등을 자원으로 한 관광개발, 광활한 초원을 활용한 축산, 그리고 따뜻한 기후에 적합한 감귤재배를 진흥시켜 제주도를 개발하고 제주도민의 소득수준을 전국 시 도의 중위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을 결심하였다.



이어 박 의장은 제주북초등학교에서 가진 시국강연회에서 가장 시급한 해상교통의 개선책으로 악천후하에서도 제주해협을 쉽사리 드나들 수 있는 대형 여객선의 필요성을 강조한 후 3만여 명의 도민들에게 제주-부산, 제주-목포 간 대형여객선 투입을 약속하고 제주개발계획을 천명했다.



서울로 돌아오자 마자 내린 박의장의 지시에 따라 조달청은 제주항로에 대형 여객선을 건조, 투입시키기 위해 이를 국제입찰에 붙였다. 입찰 결과 일본의 조선소가 낙찰되고 63년 10월 12일 역사적인 취항을 하게 되었다. 이 배가 바로 제주-부산 간에 취항했던 890톤급의 도라지호이다. 이보다 두 달 앞서 정부는 국고보조로 국내에서 건조된 514톤급의 가야호를 제주-목포 간에 투입, 운항시켰다.
제주와 부산 그리고 목포를 잇는 대형 여객선 취항과 더불어 제주의 관광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기반조성사업의 하나는 62년에 기공해서 63년 10월 11일 개통된 제주-서귀포 간의 제1횡단도로(5.16 도로)의 건설이었다. 이 5.16도로는 제주도의 경제발전과 관광개발의 촉진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4시간 30분이나 걸리던 제주-서귀포 간 자동차 운행시간을 1시간으로 단축시켜 제주도를 1일 생활권으로 만들었다.



해상운송에 있어서는 77년 4월, 3천 톤급의 카페리 1호가 취항했다. 시속 18노트의 대형화객선으로 제주-부산 간 168마일을 11시간만에 주파해 기존 여객선의 운항시간인 15시간보다 4시간이나 단축시켰고 두 달 뒤인 같은 해 6월 3천 톤급 카페리 2호가 같은 노선에 취항해 바야흐로 여객선의 대형화, 수송의 대량화, 여객의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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