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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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KAIST,대덕 연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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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6 이*주 조회수 83

박정희대통령과  KAIST

1965년 미국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존슨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월남파병에 대한 보답으로 공과대학
설립이라는 선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존슨에게 대학보다는 공업기술연구소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세워진 연구소가 오늘날의 KAIST이다,




 

▲ 1965년 5월 18일 미국 백악관에서 존슨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이 KIST 설립 지원 등 12가지 의제에 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KIST 제공

KAIST는 박정희가 심혈을 기울였던 대한민국의'왕립학교'다.

KAIST의 전신이던 공업기술연구소가 세워진 때는 국민들이
피죽도 못먹어 누렇게 뜨던 60년대였다,

박정희는 굶주린 국민을 위해 밀가루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먼 미래를 내다보며 그
야말로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연구소를 만들었다,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미국에 유학가 있던 과학자들을  대거
데려왔다,

과학자들의 귀국 유인책으로는 당시엔 없던 의료보험 혜택
까지 있었다,

그들에게 책정했던 급여는 미국에서 받던 월급의 4분의 1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국립대학 교수들 월급의 3배 가까운
금액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연구소의 고임금에 국립대학 교수들이
불평을 하며 대통령에게 진정도 들어갔다,

그러자 청와대로부터 KAIST의 월급 명세서를 가져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박정희는 KAIST의 월급명세서를 보면서 "과연 나보다 월급
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군" 하면서 껄껄 웃었다,

 

 

월급명세서를 가져갔던 연구소장은 연구원들 월급은 절대
못깎으니 대신 자기 월급을 깎으라고 부탁 하자 박정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여기 있는 대로 그대로 시행하시요"

박정희 시대를 근대화의 시대라고 부르게 하고,  5.16을
혁명으로 부르게 했던 것, 박정희를 박정희로 만들 수 있
었던 것은 박정희가 추진했던  '과학입국'의 공로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에 박정희는 자기가 싸워야 할 전쟁
을 알고 있었다,

가난과의 전쟁, 근대화의 전쟁, 그 전쟁에서의 승리를
박정희는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선구자
였다,

대통령보다 많은 월급은 박정희만이 할 수 있었던 과학
우대 정책이었다,

 

 

▲ 44년 전 미국의 원조로 세워진 KIST에는 요즘 한국
과학기술 정책의 성공 경험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위는  에콰도르 대통령. 아래는 서영웅
박사(맨 오른쪽)의 지도로 실험을 하고 있는 해외 석·박사
과정 학생들 /K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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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KAIST는 탄생비화에 걸맞게도 한국 최고이자 아시아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KAIST는 최고를 원하는 자들의 것이고, KAIST는 백 마리의
원숭이가 아니라 한 마리의 사자를 길러내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그들에게 국가의 미래와 흥망을 맡기려는 것이다,

감상에 젖은 자, 평등을 부르짖는 자들은 KAIST 대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라! 그곳은 그대들이 범접치 못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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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대통령과 대덕연구단지

 


▲1970년대초 박정희정권부터 1922년까지 개발된 대덕단지

과학기술입국을 실현하려는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구상에 따라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지역에 연구기능을 집중배치하여 서울에
집중되어왔던 고급기능의 분산을 도모하고자 1970년대 초반부
터 건설사업이 추진되었다.

1992년까지 약 1조 원이 투입되어 전체 면적 834만 평(27.6㎢)
에 연구·교육 시설(전체면적의 48%)을 중심으로 과학관, 과학
공원, 과학문화 센터 및 메디컬 센터 등을 짓고 60여 개의 연구
기관과 2만여 명의 연구인력이 결집한 연구·교육·문화·주거
기능을 갖춘 과학기술 전원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속의 과학도시 대전 과학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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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출신 동문들이 2009년 10월 23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KIST 본원에서 ’KIST 설립자 박정희
대통령 국제기념관’ 건립 사업단을 공식 발족했습니다. 

그래서 4천여 KIST 동문이 홈커밍데이 행사를 진행하며 사단
법인 설립인가를 받은 ’KIST 연우회’사무실 현판식을 하는
데 이어 동문 총회를 열어 ’박정희 기념관’ 사업단의 활동
내용을 확정했습니다. 

기념관에는 박 전 대통령의 동상, 과학기술 발전과 관련한
박 전 대통령의 사진 등이 전시된다.

KIST 원장 출신의 박원훈 연우회장은 "기념관 건립은 단지
박 전대통령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면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한 국가 지도자의 정확한 인식이 얼마나 국가
발전에 기여했는가를 알게 하는 살아있는 교육현장이 될 것."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초기술연구회 민동필 이사장은 “오늘날 우리의 번영은
물론이고 우리가 갖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의 자산과 우수
인력이 박 전대통령 당시에 그린 국가대계의 결과”라며  

“우리 모두는 과학기술이 그로부터 40∼50년이 지난 오늘
에도 변함없이 국가발전을 견인하는 원동력이라는 점을 잊어

박 전대통령은 KIST 설립자이자 대덕연구단지 조성 등 우리
나라 근대과학기술 체계를 훌륭하게 구축한 과학기술 대통령
이라는 것이 KIST 관계 동문들의 말이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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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CHOSUN 전*수 2013.11.06 14:34

    정말 잊고 있었네요. 참대단한 업적 중 하나입니다. 중국의 등소평이 문화대혁멩 이후 첫 대학생들을 뽑아 교육 시킨후 졸업후 세계 각국 으로 유학생을 내보낼 때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여러분은 세게로 나가 여러 분야의 공부를 열심히 해라. 뒷바라지는 정부에서 다해결 해주겠다. 그리고 공부 끝난후 돌아오지 말아라. 그곳에서 뿌리를 내려라. 그것이 결국 나라의 재산 이다 라고 말하고 그들을 세계로 내보내고 각국의 영사관에 연락해서 그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공부시킨 결과 그들은 지금 그혜택을 보고 있지요. 우리의 박대통령이나 등소평이나 혜안의 소유자임은 분명한것 같아요. 하지만 좌파정권 십여년에 우리에게 남은것은 뭐가 있나요? 불신과 변명. 혼란스러움, 이기심등등 법과 원칙은 없어지고 예의도 없고 이제 다시 모든걸 다잡아 나가야 할 때인것 같아요. 모든게 잘 정리되기만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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