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각별히 우리 민족문화유산을 정비했던 박정희 대통령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3.11.04 신*호 조회수 68

 

 

 

<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보수 또는 정화사업이 추진되었던 문화유적들>

 

 

 


박 대통령은 1960년대의 제1,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성공적인 추진으로 경제개발과 고도성장에 대한 자신을 얻었으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한 선인들의 자립정신과 투신보국의 호국정신을 되살리고자 했다.

이런 취지로 국난극복의 역사적 문화유적 및 선현유적에 대한 보수, 정화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였다.

 

 


1. 국난극복의 유적

(1)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을 모신 곳인 충남 아산군의 현충사(사적 제155호)
(2) 고려 명장 강감찬 장군의 출생지인 서울 봉천동의 낙성대(지방문화재 제4호)
(3)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4년동안 삼도수군의 본영으로서 제해권을 장악했던 곳인 경남 통영군의 제승당(사적 제113호)
(4)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무찌르다 순절한 칠백의사의 유해를 모신 묘역인 충남 금산군의 칠백의총(사적 제105호)
(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김덕령 장군을 모신 전남 광주시의 광주 충장사
(6) 매헌 윤봉길 의사가 탄생하여 자란 곳인 충남 아산군의 윤봉길 의사 유적(사적 제229호)
(7) 유관순 의사의 추모각과 생가지 및 봉화지가 있는 충남 청원군의 유관순 의사 유적(사적 제 230호)
(8)기타 행주산성, 진주성, 강화전적지, 남한산성, 해미 읍성, 부산 충렬사, 최영 장군 유적, 임경업 장군 유적, 해남 표충사, 곽재우 장군 유적, 충무 충렬사, 항몽순의비 등 21개소

2. 민족사상 선현유적

(1) 삼국통일의 대업을 시작한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능인 경북 경주시의 무열왕릉(사적 제20호)
(2) 율곡 이이 선생과 그 어머니 신사임당께서 태어나신 곳인 강원도 강릉시의 오죽헌(보물 제165호)
(3) 율곡 이이 선생의 덕망을 섬기면서 제사지내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인 경기도 파주군의 자운서원
(4) 기타
경주의 통일전, 오릉, 김유신 장군묘, 세종대왕의 영릉, 이퇴계 선생의 도산서원, 조헌 선생 유적, 양진당, 문무대왕릉

3. 전통문화유적

경주의 불국사, 대릉원, 방황사의 삼존불, 포석정지, 그리고 팔만대장경, 무령왕릉, 광한루, 추사 고택, 익산 미륵사지, 부석사 직지사, 법주사, 내장사, 백양사, 송광사, 화엄사, 쌍계사

4. 6.25동란 기념유적

벨기에 및 룩셈부르크,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콜롬비아, 에디오피아, 프랑스, 그리스, 네덜란드, 필리핀, 남아프리카공화국, 타일랜드, 터키, 미국 등 16개국의 한국전쟁 참전기념비, 의료지원단 참전기념비,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춘천 6.2525 전적비, 영산 6.2525 전적비, 왜관 6.2525 전적비


명승, 고적, 사찰 등을 정화, 보수할 때에는 근처에 잡다하게 운집해 있던 여인숙, 음식점, 매점들을 완전히 철거하고, 상당한 거리를 두고 관광단지를 조성해서 이를 수용, 영업케 하여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도록 하였으며 국립공원 관리공단을 창설하여 국립공원의 보호, 정화를 도모하였다.

조경과 관광단지 조성 등에 있어서는 문화공보부, 건설부, 시, 도, 군과의 절충이나 현지 답사, 현장 지도 등 업무량이 적지 않아 적은 인원으로 조경전담 비서실을 창설해 볼까 검토도 해 보았으나 뛰어난 전문성이 필요한 점에 비추어 오휘영 씨를 경제 제1수석비서실의 조경, 건설비서관으로 임명하고 혼자 모든 것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즉 조경에 관한 한 수석비서관 격으로 대우했다.

나는 박 대통령의 명승, 고적의 조경과 관광단지 조성 시찰 수행시마다 박 대통령의 비전과 오 비서관의 의견이 척척 맞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 박 대통령 자신이 일류 조경가이고 오 비서관도 명 비서관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오휘영 비서관은 우리 나라 조경 전문분야의 육성, 발전을 위하여 1973년에 서울대에 환경대학원을 신설하고 서울대 및 영남대에 조경학과를 창설하는 것을 도왔다. 1996년 현재 3개 대학원, 27개 대학 5개 전문대학에서 매년 1,200여 명의 조경전문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또한 조경 공사업 면허 제도의 확립 및 '한국종합조경공사'의 설립(1974. 7. 2), 한국 조경학과와 한국 조경기사회의 발족, 육성을 지원하고 한국 도로공사, 산업기지개발공사, 관광공사, 토지개발공사, 서울특별시 등의 국영 기업체 및 지방자치단체에 '조경과'를 신설 하는데 조력하였다.


발췌 - 김정렴 비서실장 저서

 

 

 

---------------------------------------------------------------------------

 

 

 

박정희 정부는 조국근대화 후기부터 많은 사업을 벌였는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정희 정부가 '호국문화유적의 복원과 정화'를 특별히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히 이전의 유적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건물을 짓고 기념비를 세우며 주변환경을 정화하는 등 새로운 유적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시기에 조성된 유적들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들을 비롯하여, 금산의 7백의총(1975-76)을 비롯하여, 임진왜란 관련 유적, 여러 시기의 문화유적을 간직하고 있는 강화도의 유적들(고려궁지, 강화성, 광성보, 신미양요 순국무명용사비 등), 유관순, 윤봉길 의사 등 항일독립운동과 관련된 의사들의 사당 건립, 그리고 서울성곽 등 전국 중요 성곽 보수 등으로, 전국의 주요한 호국국방유적은 국민총화기에 거의 모두 보수, 복원, 정화되었다. 또한 이외에도 세종대왕, 강릉 오죽헌, 추사 김정희의 고택 등 민족사상의 선현유적과 불국사, 부석사를 비롯한 전통문화유적이 복원되었다(문화재관리국 1985).


더욱이 박정희 정부는 조국근대화 후기부터 전통문화와 관련된 문화시설을 크게 확충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박물관의 질적, 양적 기능이 대폭 강화되었다. 즉, 박정희 정부는 전통문화의 보존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1971년부터 부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1972), 공주박물관(1973), 경주박물관(1975), 부산시립박물관(1978), 광주박물관(1978)을 개관하였고, 이를 계기로 각종 특별전시회 개최, 공개강좌의 실시, 한국미술5천년의 일본 및 미국전시회 개최 등 민족전통문화에 대한 국내외적 확산을 도모하였다.

또한 박정희 체제는 1975년 문화재관리국내에 기존의 문화재연구실을 개관하여 문화재연구소를 설치하였다. 이 연구소는 전통문화의 계승을 위한 문화재의 학술적 조사연구, 역사적 고증에 필요한 기본적 자료모집, 문화재의 과학적 보존기술의 연구개발 및 관리방법의 조사연구를 목적으로 설립되었고, 전국의 문화유적지표조사를 실시하여 문화유적총람을 발간하는 등 문화재의 과학적 조사와 보존을 담당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왜 조국근대화 후기부터 전통문화유산정책을 전개하였는가?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에서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즉, 박정희 대통령은 1967년 4월 25일 문화센터기공식 치사에서 "민족자립을 위한 조국의 근대화 작업을 수행함에 있어 민족주체의식을 확립하는 일은 가장 긴요한 과제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1970년대부터 무녕왕릉(1970), 거창 고려 벽화고분(1972), 경주 천마총(1973), 황남대총(1973) 등 많은 고대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호국선현과 국방유적의 정화 정책은 조상의 국가수호의지를 국민들이 배워 자주국방의 정신을 고취하도록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 정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 의지를 간접적으로 부각시키려는 효과를 갖고 있으며, 강한 국가--자주국방--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이것은 '민족중흥'이라는 박정희 정부의 국가목표의 당위성을 설득하는 것이며, 특히 북한의 위협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는 국가의 민족중흥 정책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제시하였다.


한편, 박정희 정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그 바탕위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문화중흥을 이룩"하기 위해 호국유산 뿐 아니라 민족사상의 선현유적과 민족문화유산을 복원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우리 민족사를 빛내온 자주적인 민족사상과 그때그때를 지배해온 지도철학,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창조적인 예지가 서려있는 정신의 고향" 이기 때문에, 또 "아득한 민족사를 바로 밝히고 주체적 민족사관에 입각한 자주적 역사를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정립해 나가면서 민족문화에 대한 창조적 슬기를 선양하고 보존하여 인류문화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에 보수 정화하여야 하고 보존 전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댓글 0

(0/10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