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박정희는 왜 독립군이 아닌 일본군이 되었는가? |
---|
2013.11.04 황*인 조회수 59 |
>>
(박정희의 숨겨진 진실 재조명)
박근혜 대통령 취임후 보수를 자처하는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란 프로에서 박정희에 대한 재조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가 60,70년대에 이룩한 경제발전 부분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하지만 한 인물을 재평가하기 위해서는 그의 명과 암이 숨김없이 노출되어야만 국민들과 역사가 제대로된 평가를 할수 있다. 어느 특정한 정파의 이해관계에만 맞춘듯한 재조명은 결코 역사를 위해서나 박정희를 위해서나 국민들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박정희의 일제시대 행적과 해방후의 행적에 대하여 그의 명과 암중 암부분을 집중 조명해 보고자한다.
1. 만주국의 실체
만주국은 일본이 청일전쟁승리후 중국을 지배하기위해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내세워 만든 꼭두각시 나라로서 일본국에 군사외교권이 종속되어있는 나라임은 모두가 알고 있는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만주군은 사실상 일본천황(사실 왕이라 불러야 함)에 충성하는 일본군 소속의 꼭두각시군대라고 보면 된다. 만주군관학교 졸업시 일본천황의 이름으로 상장이 수여됨을 통해 알 수 있고, 박정희도 일본측 인명사전 등에 따르면 졸업시에 천황에게 상장을 받은 걸로 되어있다.
2. 일본측이 발간한 각종사료에 등장한 박정희(다카키마사오)에 관한 행적
1) 일본측 인명사전과 일본육해군통합사전으로 확인된 사실
-대구사범학교졸업 -문경심상소학교 교사 -일본군산하 만주국 만주군관학교졸업(졸업시 일본천황상 수여) -1944년 4월 일본육군사관학교졸업 -1944년 7월 일본군산하( 관동군소속) 소위임관, 1945년 6월 중위진급 -1944년 7월~8월 일본군과 만주군으로 구성된 팔로군대토벌작전에 소대장으로 참전
2) 기타문건으로 확인된 사실
(1) 일본군관리하의 만주군관학교합격자 발표후 혈서로 일본천황에게 충성맹세(이 내용은 당시 만주신문에 게재- 항간에 만주일보라 하기도하나 만주일보는 1908년에 폐간, -만주신문에 게재된 내용은 현재 일본국회도서관에 마이크로필름으로 보관중
(2) 박정희가 창씨개명을 두번했다는 내용의 근거 박정희가 창씨개명을 했다는걸 욕하기보다는 그가 첫 번째 창씨개명한 다카키마사오란 이름이 조선인냄새가 난다고하여 다시 일본내음이 물씬풍기는 오카모토 미노루란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한번 더 했다는게 현재 국민들 사이에 논란이 되는 사항임. 이는 일본측 발간 일본육해군통합사전에 박정희의 한문이름 다음에 오카모토 미노루란 일본이름표기가 나옴. 이는 사실여부를 떠나 이러한 내용이 거론된다는거 자체가 국민정서상 받아들이기 힘듬.(박정희의 출세욕과 친일행적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짙게함)
3) 박정희가 일본군 소속이었음을 확인한 사실
- 1945년 전후로 일본이 발간한 일본인명사전,일본육해군통합사전과 임시육군군인군속계에 박정희(다카키마사오)가 일본육군임을 명시
- 1944년 7월~8월 일본군과 만주군으로 구성된 팔로군대토벌작전에 소대장(부관)으로 참전 -일본육군사관학교수료후 소위 임관(일본육군군인군속계) (참고: 팔로군은 한족의 중국해방군과 대한독립군으로 구성된 연합군대)
3) 박정희의 해방후 행적 (1)해방후 박정희는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수료후 소위임관
(2)군인출신으로 당시 공산당이던 남로당에 가입하여 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형인 박상희는 이당시 이미 남로당 당원)- 정치군인의 시발점
(3)여순반란사건으로 남로당출신 정치군인들이 대대적으로 사형을 당하자 동료들의 적극적 변호로 구사일생 목숨을 건짐. - 이때부터 우익으로 변신
4. 결론
박정희는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1940년대 초중반에 독립군에 입대해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우려하지않고 자기 일신상의 입신양명을 위해 일본군장교가 되기로 결심, 마침내 최종적으로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수료해 일본군장교가 되었으며, 소위임관후에는 당시 나라를 잃은 중국해방군과 대한독립군이 주축이 되어 일본군에 대항하기위해 구성된 팔로군을 토벌하기위한 팔로군토벌대작전에 부관으로서 참전하였다. 그가 얼마나 깊숙이 토벌대작전에 참여했는지 안했는지를 떠나 참으로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당시는 2차대전을 전후로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던 때였고 또래의 뜻있는 젊은이들은 일본군에 입대하기보다는 조국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가족과 개인의 입신양명을 포기하고 독립군으로 들어가목숨을 바치고 싸웠던 사실에 비추어볼때 박정희는 그 어떤 핑계를 대고 자기합리화하려한다해도 독립군이 아닌 일본군이었음은 결코 부인할수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해방후의 행적은 더욱 가관이다. 지금 우파들이 그리도 종북,좌파,빨갱이라 칭하는 원조가 바로 박정희였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때 좌우의 이념정당이 다 존재했고 합법적 정당이었다 하더라도 공산당이었던 남로당에 가입했고 활동했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수 있단 말인가? 그때는 왜 우파정당에 가입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여순반란사건때에 혼자만 살겠다고 남로당출신 군인동료들이 사형당할 때 어떠한 처신을 하였는가? 지금 새삼 이러한 일들을 거론하는 것은 박정희 재조명이란 미명하에 그의 명과 암중 명만 집중적으로 조명되고 5.16 군사쿠데타이전의 행적과 군사독재시절에 그와 그 수하들이 행했던 암울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 관점에서 보았을때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이념도 조국과 민족도 서슴없이 내찼던 기회주의자이자 출세주의자였다. 그나마 그를 칭찬해 줄수 있는 건 자신의 과거 잘못을 반성하고 늦게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해 매진했다는 점이다. |
댓글 2
댓글등록 안내
황*인 2013.11.04 12:45
너 같은 새끼들이 인터넷에서 판을 치고 있으니.. 참 갑갑하다. 본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은 뭐다?? 평생 좀비로 살 뿐이다.
진*하 2013.11.04 12:43
잘 읽어보면 답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