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돌아온 저격수다2 - 시청소감
반면교사(反面敎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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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9 임*수 조회수 133
반면교사(反面敎師)



  62년 생 호랑이가 벌써 50대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박정희와 대통령을 이음동의어로 생각했던 어느 날, 대통령을 부음을 들었을 때는 철이 없던 고교시절이었지요. 금방 나라가 망하는 줄 알았습니다. 촌놈이었걸랑요. 80년대에는 그렇게 존경하던 박정희가 천하의 악당이라도 된 양 독재타도를 외치며 돌팔매를 던졌습니다. 따지고 보면 신군부의 등장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신 분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아닌가 합니다. 80년대의 봄이 정말 현실화 되었다면 진작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되고도 남음이 있었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 같은 시골 학생이 갑자기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돌팔매를 던지지 않았어도 되었을 테고 말이지요.

  최근의 정치판을 바라보며 무명의 글쟁이가 안타까워 글을 썼습니다. 정치성 글이라 아무도 출판을 하지 않겠다고 하여 TV조선의 디지털 신문고에 원고를 올렸더니 어떻게 한 분도 방문을 하지 않네요. 하여 유신시대의 반면교사인 참여정부와 현재의 야당에 대하여 관련 글을 발췌하여 밑에 붙입니다.


  참고로, 저는 양시론자입니다. 


=5.16과 시월유신이 있었기에 오늘 날의 산업화가 가능했고, 장준하 선생, 도예종 선생 등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민주화가 있었다. 이 둘은 수레바퀴와 같은 것이어서 어느 하나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는 것인데, 특히 소위 진보라고 일컫는 사람들은 민주화만 신성시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과 애국역량을 비하하고 부정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독재자라고 교육을 시킨다. 아무 이유도 모르고 아이들은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서 싫다고 말한다. 나의 두 딸들을 통해 듣는 얘기가 답답해서 적는다.



  (전략) 냉정하게 60년대와 70년대, 당시의 상황을 되새겨 보고, 그런 비정상적 유신헌법을 만들게 된 취지를 돌이켜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본 유권자 또한 50이 되기 전까지는 유신헌법은 반민주 악법이라고 생각했고, 유신독재에 돌을 던진 일이 있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유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노무현 대통령 당시였다. 당시 노 대통령이 “대통령 못해먹겠다”고 말했을 때 묘한 감정을 느꼈다. ‘민주주의 하에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결코 쉽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만일 시계를 거꾸로 돌려놓는다면 누구든 독재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겠구나. 마치 노 전 대통령의 얼굴에 그런 유혹이 쓰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정적으로 시월유신에 대해 의도야 어떻든 구국의 결단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배경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였다. 어느 날 난데없이 노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게 연정을 제의했다.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애걸을 하다시피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외교와 대북문제만 관장을 할 테니 경제와 내치문제는 박근혜 대표가 알아서 하라고까지 했다. 마치 효종이 송시열과 기해독대를 통해 밝힌 내용과 유사하다. 이 정도면 정말 ‘대통령 못해먹겠다.’의 실질적인 항복 선언이 아니겠는가? 당시에는 의석수도 열린우리당이 한나라당에 비해 많았었다. 그 격차가 재보선에서 연전연패하면서 줄어들 뿐이었다. 과반이 안 되니 한나라당의 지지가 절대적이었지만 말이다. 그때 유신시대를 되돌아봤다. 솔직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긴 처음이었다.

  70년대 초반 한국의 경제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 간 초보적 수준이었다. 관중이 한 말이 생각난다. 곳간이 차면 백성들이 예절을 알게 되고, 의식(衣食)이 족하면 영욕(榮辱)을 알게 된다는 말. 모든 시작은 의식주가 해결이 된 후에 비롯된다. 대한민국의 의식문제가 해결된 것은 이때가 초보적 단계였고, 주택문제는 아직 초가삼간에 도시는 판자촌이 대부분이었다. 더욱이 한국은 분단된 상태에서 전쟁이 끝난 지 불과 20년이 지나고, 60년대 말 북한의 대규모 무장 침공이 수시로 일어나는가 하면, 청와대까지 공격을 받았었다. 이런 상태에서 덜컥 민주화된 정부가 모든 절차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했다면 과연 성공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런 의문이 자리를 잡고, 지난 5년이라는 세월 정치권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확신이 생겼다. 시월유신은 정당했고, 만일 어정쩡하게 박정희 대통령이 물러났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70년대 어디쯤에선가 정지를 했거나 주체사상에 흡수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다행스럽게 박정희 대통령은 다른 독재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개인의 영달이 목적이 아니라 조국의 선진화였다. 그리고 그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사랑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옥고를 치루거나 희생되기도 했지만, 20세기 이후의 독재자들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름을 알 수가 있다. 자주 비교되던 필리핀의 마르코스가 그렇다. 박 전 대통령 서거 후 수많은 독재자들이 권좌에게 쫓겨났다. 그들과 박 전 대통령을 비교해 보았다.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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