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김대중의 출생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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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3 이*주 조회수 182 |
역시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네요. 김대중은 여러 여자들에게서 진아 정아 은영이 등등 많은 자손들을 봤는데 결국 자기 자식을 버렸습니다. 무엇보다 김대중은 말할때마다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거짓말 중에서 대표적으로 1. 훗날 5.18 회고에서 그들(전두환 일당)과 절대 타협하지 않고 굴하지도 않았다고 하지만 1982년에 전두환에게 올린 편지를 보면 요양을 위해 가석방을 요청하고 다시는 정치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2. 해군에서도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6,25 당시 목포해상방위대 복무를 대통령 후보때 TV에서도 언급하고 계속 거짓말을 했습니다. 3, 그의 호적에는 도장이 9번 찍혀 있는데 그만큼 호적이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자기 여동생(워낙 집안이 개족보라서 실제로는 사촌여동생)이 이화여대에 들어갔다고 했으니 이것도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이 외에도 온갖 거짓말과 사기로 살아가다가 죽었는데 아직도 모 지역에서는 이런 자를 선생(슨상)이라고 칭송하고 있다니... 그 어머니 장노도(장수금)는 다섯 명이나 되는 남자를 갈아탔고 결론은 슨상님이 호주제를 폐지한 이유중의 하나가 자기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일겁니다.(그 어머니의 남자들이 복잡하니)
1. 도요다: 일본인 형사. 장노도가 16세때 이 일본사람의 첩이 됐는데 도요다 사후 친정집에 안돌아가고 바로 제갈성조와 결혼. 도요다의 친 자식일 수도 있음.
2. 제갈성조: 염전업자. 장노도가 18살때 맞이한 첫 남편으로 원래 하의도 뱃사공인데 이 사이에서 딸 2명이 태어났습니다. 제갈성조가 죽자 친정아버지 호적으로 다시 올라간게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손충무 손창식씨가 각각 확보했음. 제갈성조의 친 자식일 수도 있음.
3. 윤창언: 제갈성복의 친구로 임신한 것이 동네 소문나자 재빨리 장노도는 염전을 하는 소금쟁이 윤창언과 재혼했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의도 사람들에 말에 의하면 이미 제갈성복과 살면서 배가 불러왔으니 제갈성복의 아이라고 합니다. 일단 제갈대중은 '윤대만'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에 올라왔고 어릴 때까지 윤대만으로 삽니다.
4. 제갈성복: 제갈성조가 일찍 죽자 그 동생이자 시동생 제갈성복이 장노도와 같이 살면서 도와줬는데 윤창언이 죽자 제갈성복이 식당하나 차려줌. 문제는 이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바로 '제갈대중'.
5. 김운식: 윤창언이 죽자 장노도는 목포 사람 김운식에게 붙어 셋째첩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김운식은 이미 본처 김순예 사이에서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윤대만은 김운식의 아들이 되어 '김대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 공식적인 기록에서 김대중은 김운식과 장노도 사이에서 1924년에 태어났으며 본생부일 수도 있는 도요다의 성을 따 도요타 다이쥬(풍전대중)으로 창씨개명하고 6.25때 목포에서 목포해상방위대 고위직을 맡았다고 하지만 그건 해군에서도 인정하지 않은 거짓말이며 원래는 사생아이자 서자인데다가 그의 출신 성분을 알고 있던 유권자들 때문에 50년대 후반 목포에서 국회의원을 낙방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호적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계부 김운식은 6월 1일 본부인 김순례와 협의 이혼을 하고 6월 5일 첩으로 있던 장노도와 정식 혼인신고를 하여 정부인이 됨과 동시에 서자였던 김대중은 적자 아들로 승격합니다. 결국 김순례는 혼자 쓸쓸히 묻혔고 장노도는 1970년대 사망하자 마지막 남편 김운식과 합장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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