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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의 시사탱크 -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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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7 박철언"전두환 대통령이 뭘 잘못했다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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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관리자 조회수 600

 

<박철언 전 장관 인터뷰 주요발언>

 

"노태우 전 대통령, 사돈과 소송에서 이기면 미납된 추징금 즉시 완납할 것"

"전두환 전 대통령 육사생도에 거수경례한 것이 뭐가 잘못이냐?"

"육사출신이고 전직 대통령인데 또 초대받아 가서 후배들에게 거수경례한 것이 뭐가 잘못인가?"

"우리 사회가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 전두환 전 대통령 과도 있지만 공도 있다.단임을 실천한 공도 있다."

"29만원 논란?, 그것은 법정에서 물으니까 통장에 그것 밖에 없다고 얘기한 것이지, 골프치는데 자기가 내나?, 참모들이 내고 그렇지."

"6.29 선언 발표 사흘 전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불러 갔더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노태우 당시 후보를 불러 직선제 받기로 했으니 그렇게 발표하라'고 했다며 그 발표문안작성을 나에게 지시했다." 

"ys , 내가 42억을 주었더니,'아이고 이렇게 신세지면 안되는데..'라면서 고마워했던 양반이..."

"ys와 노태우 전 대통령 화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일방적 피해자다."

" ys,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3천억 지원받고 그런 일 없다고 하는데 노 전 대통령의 증언이 있고 곁에서 이를 증언할 많은 참모들이 있다. ys그러면 안된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병중에 있는데 문안도 오고 그래야 하는데 한번 찾아오지도 않고..안타깝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왜 병중에 있나? 바로 ys에 의해  감옥에 들어가고 이등병으로 강등되고 그 모든 것이 한이 되어서 나타난 것이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가짜?, 그것은 말도 안된다. 내가 그 사건 나고 3개월 후에 김현희를 직접 내방으로 불러 면담했다. 모든 증거가 다 있다. 지금도 그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국가 안보차원에서 엄정히 대처해야 한다."

 

-------------박철언 전 장관 인터뷰 -------------

 

문) 박철언 장관 그러면 국민들이나 관찰자들이 ‘6공화국의 황태자’로 기억하고 있는데, 그 닉네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답) 황태자라는 것은 권세부리고 호강하고 그 다음에 대통령으로 등극하고 해야되는데 사실은 제가 그렇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6공 때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여소야대 극복하고 3당 통합하느라고 야당총재들하고 물밑접촉하고 남북간 긴장완화하느라고 대북밀사생활 42차례 비밀회담, 20차례는 제가 유서쓰고 북한에 가서 김일성 주석 비롯한 많은 요인들 만나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뿐만아니라 북방외교한다고 중국 소련 헝가리 체코 베트남 라오스 수없이 비밀출장 다녔습니다. 그러니 권세부릴 틈이 있어야 하죠 일을 많이 했다는 측면에서 황태자라면 동의하지만 세도부리지는 못했습니다.

문) 권세의 황태자가 아니라 일의 황태자였다고 평가받고 싶습니까?

답) 네 그렇습니다.

문) 6공화국때 실질적으로 기억되는 일꾼은 그리 많이 없습니다. 거의다 모든 일을 전방위적으로 인사, 북한, 외교문제 등 전부 소위 박철언 장관께서 주물렀다?

답)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훌륭한 참모들이 노태우 대통령을 보좌했는데, 힘든 일을 많이 하다보니 그렇게 알려졌죠. 노태우 대통령이 믿어주셨고.

문) 내각 발표하기전 미리 언론에 말씀하시면 그대로 발표되고..

답) 그것도 좀 와전된겁니다. 대통령께서 예를들어 내정자를 그 중 몇사람은 귀뜸을 해주라 라든지 명이 있을 때 조용하게 그분에게 얘기해준게 일부 좀 나가서 그렇게 소문이 났죠. 그렇지 않습니다.

문) 내일 모레 6.29 선언 25주년인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답) 25년전 6월을 생각하면 그때 온 나라가 소용돌이였습니다. 시위도 격화되고 그런 가운데 역사적인 6.29선언. 풀네임은 ‘국민 화합과 위대한 국가로의 전진을 위한 특별선언’이죠. 간단하게 6.29선언이라 하는데, 그 반응들이 7년가뭄 끝에 소나기같은 단비다. 온 국민이, 외국서도 쌍수를 들고 환영을 했죠. 그래서 6월이 되면 25주년 코앞에 앞두고 그때 그 순간 생각이 납니다.

문) 6.29의 한국정치사적 의의를 어떻게 정의하고 계십니까?

답) 6.29는 1985년 중반까지 우리가 산업화, 근대화에 너무 몰두하다보니까 민주헌정사 인권의 측면에서 많은 오점과 얼룩과 아픔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죠. 그런데 서서히 산업화가 성숙이 되자 1987년 무렵 전두환 대통령 말기가 되면 그 민주화를 향한 도도한 국민적 열망, 역사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순응해서 그때 사실 제의는 전두환 대통령이 6.29선언 한 3일전에 노태우 대표께서 급히 오라그래서 갔더니 전 대통령께서 직선제 받아야겠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결심도 굳은거 같고해서 하기로 했다. 또 자기가 구속자 석방, 김대중 총재 사면 복권, 언론 자유 등 모든 걸 다 해야됩니다 얘기를 드렸다. 그러니까 급히 문안 작성을 빨리 철저히 준비해달라고 부탁 받은바가 있었죠. 그래서 제가 실무적으로 초안을 작성했던거죠.

문) 6.29선언 전두환 전 대통령 아이디어는 주고 그 아이디어 받아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받아서 발표만 했다 그래서 이 주체자가 누구냐 명확히 밝혀 주시죠.

답) 직선제라는 아이디어는 그때 야당도 요구했고 시민단체, 언론도 요구했고, 누가먼저 아이디어를 냈느냐 이게 사실 중요한 것이 아니죠. 문제는 이미 6.12에 민정당 전당대회에 의해서 집권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것이니 대통령 된 것과 실질상 차이가 없습니다. 이런 대권의 기득권자가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당당하게 역사와 국민의 심판대에 서겠다 이런 얘기한분이 실질적인 주역이라고 얘기를 해야 되겠죠. 그러나 진정한 주역은 민주화를 갈망하는 도도한 위대한 국민의 흐름, 역사의 흐름 그것이 사실은 6.29선언의 진정한 주역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문) 노태우 전 대통령의 최근 병세는?

답) 상당기간 전부터 사실 처음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투옥하고 나와서 한이 많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엄청난 자금과 인력제공해서 YS 대통령 만들었는데 그에 의해서 감옥에 들어가고 2여년여 옥살이하고 이등병 강등제대해서 나오니까 한이 얼마나 많겠어요. 전립선암이 걸려서 그때 수술을 하고 휴유증이 좀 있다가 그것도 어느정도 좋아지다가 다시 소뇌수축증 6-7년전부터 그래서 언어장애 행동장애 그것이 상당히 심화되었다가 요즘은 다소 그래도 고만고만한 호전된 그런 상태로 줄기찬 투병생활을 하고있고, 김옥숙 영부인이나 그 옆에 수십년 보좌하고 있는 문동희 비서관 두분이 눈물겨운 간호를 하고 있죠.

문) 추징금 2628억 이던가요 당시 박 장관님 증언을 보면 김영삼 대통령과 합당이후 사실상 선거자금을 3천억 지원해줬다고 했는데 지금도 한푼도 안받았다고 얘기하는데요

답) 그건 하늘이 알고, 본인이 알고 주고받은 당사자들이 있는데 그런 말씀을 하면 안되겠죠. 왜냐면 저는 옛날부터 알고있었지만, 저가 회고록 바른역사를 위한 증언 7년전에 쓸 때 제가 직접 YS에 준 40여 억원 플러스 알파 정도만 썼죠.

문) 그때 현찰로 주셨나요 수표로 주셨나요

문) 물론 수표고 수표번호도 다 메모해두었고 왜냐면 훗날 우리나라 여야정치지도자들이 좀더 이젠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를 해야 선진사회 진입한다. 그래서 임기 다 끝나고 공소시효 지나고

저도 정치 그만뒀을 때 언젠가 내가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되겠다 그래서 저도 정치현장떠난게 2000년 12년전에 떠났죠.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은 8년전 2004년 3월 이제는 무대를 떠납니다 발표를 했죠. 그 후 2005년에 김영삼 대통령께 과거에 야당총재에 계실 때 40여억 준적이 있다고 사실대로 썼죠.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께서 주신 것은 제가 안썼죠. 대통령께서 작년 8월 여름이 팔순입니다. 투병중이고 하니까 이제 생전에 역사와 국민께 그 진실을 증언을 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도리다 이런 담백한 심정으로 금진호, 이원조 씨를 통해서 직접 김영삼 당시 총재에게 전달한게 3천억원 이었다고 자세하게 회고록에 썼잖습니까 진실입니다.

문) 김영삼 대통령측에선 사실무근이다고 얘기하고 있는데 42억 수표전달할 때 김 전 대통령이 뭐라 그러시던가요

답) 옛날 얘기인데요. 이러면 너무 신세져서 안되는데 겸연쩍어 하시면서 YS도 당시에 야당총재로서 언론도 관리하고 또 자기 계보도 관리하려면 자금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을 받은 YS도 잘못이지만 그런 자금을 준 노태우 대통령께서도 잘못이죠 그러나 여소야대속에서 정치할려니까 야당이 필요로 하는걸 줘야되니까 줬던거고, 저도 이상정치 기획정치 얘기하면서 그것을 전달하는 것도 부끄러운일이죠. 모두의 잘못이 있었던거고, 3천억원도 이게 다 진실이고 허위라면 명예훼손이니까 민사나 형사적으로 지금 노태우 대통령이나 저나 완전히 감옥에 가있고 재산은 다 몰수되고 그랬겠죠. 그런데 말만 그렇지 별 일이 없잖습니까. 그러니까 사실은 이러이러했다 그런데 그때 선거자금으로 쓰고 남은거 얼만데 어떻게 처리됐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또 노태우 대통령 투병중인데 문병도 가고 옛날에 나라 다스리다보니 그런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말씀도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직 문병도 없어서 전 참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문) 지금 두 분 화해할 길은 없습니까

문) 두 분의 화해라 그러는데 어떻게 보면 노태우 대통령은 일방적인 피해자고 가해를 한 분은 YS입니다. 3당통합 전에는 YS가 제2야당의 총재에 불과했습니다. 대통령 도저히 될 수가 없죠. 당시 제1야당 총재는 당시 김대중 총재님이었죠. 그런데 제2야당의 총재로 있는 것을 3당 통합해서 또 대통령 후보로 해서 엄청난 자금 지원하고, 또 민정계 지원하는 5인방 서동권 안기부장, 이원조 씨, 금진호 씨, 이병기 씨 이런 여러분들이 지원하고 이래서 대통령 된거 아닙니까 됐으면 사실은 은혜를 좀 생각해야 되는데 오히려 한 푼도 안 받았다 그러고 (도와준 사람을)감옥에 처넣으니까 그리고 (노태우 전 대통령이)장기간 투병중인데 화해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이제는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두분다 팔순이 넘어서 자연으로 돌아갈 그런 때가 가까워 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유감표시하고 그래서 국민과 역사앞에도 밝히면 좋지않겠습니까

문) 최근 노태우 대통령 추징금 납부하기 위해서, 사돈 신명수 회장 관련해서 뭔 이야기입니까

답) 정식 민사형사소송 제기된 것 없고요, 추징금 2600억 중에서 90여%를 노태우 전 대통령께서는 납부를 하고 230억 정도가 남아있는데, 그걸 갚을 길이 없으니까 그러면 검찰 대검에서는 추징을 해야되니까 옛날에 그런게 있으니 사돈가 신회장에게 맡긴 돈 반환받지 못한 420억원이 있으니 대검에서 내사하는 과정에서 경위를 묻고 하니까 진술이 되고 그런 정도이지 정식 민형사 소송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문) 노태우 전 대통령은 승소하면 자신의 추징금을 전부 납부하겠다는 정신 가지고 계십니까

답) 그 문제로 해서 많은 걱정 끼쳐서 미안하고 국민들께 송구한데 그것이라도 갚고 가야겠다는 심정으로 있습니다.

문) 현재 이 돈을 신명수 전 회장이 자신의 빌딩을 매입해서 자신 개인 빚을 갚는데 사용했다는데 돈이 남아 있습니까

답)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문) 사돈간의 관계가 왜 나빠졌습니까?

답) 관계가 나빠졌다기보다 사위와 딸 두 사람 사이가 요즘 살다보면 좋을때도 있고 나쁠때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두사람사이가 껄끄러우니까 그렇게 비춰졌겠지 뭐 요즘 새삼스럽게 나빠지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문) 김현희 씨가 TV조선에 나와서 증언하고 그랬는데, 칼기 폭파가 87년 노태우 당선시키기 위해 꾸며낸 것이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답) 그건 말도 안되는 어불성설이죠. 본인이 이미 자백하고 국내외 수사결과가 다 발표되고 물증이 있고 사실은 저도 몇 개월후인 88년 2월에 저 방에 불러서 김현희 씨를 제가 직접 면담해봤습니다. 다 명백한 진실입니다. 지금도 아직 그런 얘기하고 있는 분들은 국가안보나 실체진실 정의실천 측면에서도 엄정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남북관계라는 것은 이중적인 관계가 있잖습니까 한 민족이라는 서로 공존해야 되는 관계 통일을 지향하는. 그러나 군사적 적대관계. 그래서 국가안보는 완벽하게 해야하지만 대북정책은 유연하게 해야하는데 이명박 정부가 거꾸로 하고있죠. 국가안보는 허술하기 짝이 없고 대북정책은 대북심리전한다고 전단이나 뿌리는데 정부여당에서 지원하고 그러는데. 시민단체에서는 그보다 더한거 해도 됩니다. 심리전. 그러나 그런 북한 김정일 김정은 코털 뽑는 것 같은 그거보다 가령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있을 때는 즉각적이고도 강력한 응징을 해야죠. 그러자면 군기강도 쇄신하고 군비도 증강해야되는데 그래야 되는데 이거 소홀하죠. 이걸 완벽하게 하고 대북정책은 어떤 경우에도 인도적 차원의 식량, 의약품, 생필품은 최소한의 지원을 하고 이렇게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문) 그때 북한관계 다루시면서 방북한것도 20차레 이상이 되고 90년대 한소수교 92년 한중수교 길을 개척했는데, 만일 6공화국때 천안함 연평도 발발했다면 어떻게 대응했을 것 같습니까?

답) 예를 들어 제가 전두환 대통령도 모셨고 노태우 대통령도 모셨는데 전두환 대통령때 1983년 아웅산 폭탄테러가 있었지만, 남북한간 긴장이 격화 고조되면 결국은 군사비 안보부담 국민세금 많이 내야되고 외국투자 줄고 관광객 안오고 엄청난 손해입니다. 그래서 1985년 7월부터 우리가 주도해서 남북비밀회담을 열었잖습니까. 그래서 화해공존으로 가는 그걸 노태우 대통령 때도 계속해서 1991년 12월에 남북기본합의서, 남북 비핵화선언하고 했는데, 물론 천안함 이런 일이 있으면 그 당시도 강력하게 응징해야죠 그러나 때를 다 놓치고 뒤늦게 그런 얘기하면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 전두환 전 대통령 육사 발전기금내고  육사 생도 사열한 것이 논란이 되는 것에 관해서는?

답) 후배들에게 거수경례하는게 뭐가 그래 나쁩니까. 육사출신이고 전직 대통령인데 또 초대받아 가서 후배들에게 거수경례한 것이 뭐가 잘못입니까?, 우리 사회가 너무 부정적으로 봅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과도 있지만 공도 많이 있지 않습니까?단임을 실천한 공도 있습니다. 너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면 안되죠."

문) 추징금도 29만원밖에 없다 그랬는데 5백만원 기금낸 명단에 들어가있고 사열받으니까 사회적 화제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답) 29만원 밖에 없다는 것도 참모들 변호사들이 잘못한 얘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에서 본인명의 예금통장에 얼마있냐고 물으니까 29만원이라 그랬겠죠. 지금 골프치고 헌금하는 것은 자기돈으로 하기도 하지만 주변에 옛날 참모들이 많이 도와드리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유난히 보스기질이 있는 분이고 하니까. 그렇게 이해해야죠.

문) 종북논쟁이 이념논쟁으로 가는데 이석기 김재연 의원 상황 보면서 어떤 생각?

답) 지금도 종북, 친북, 지북 이렇게 나눌수 있겠죠. 북한을 잘 알아야 합니다. 대북정책은 유연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종북이라그래서 북한의 노선을 따라가서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발언과 행동을 하면 안돼죠. 그것은 엄격하게 예를들어 정부에서도 엄연하게 국가안보, 자유민주주의적 헌법질서, 시장경제의 대원칙 이런 것이 있는데 그 근본을 흔든다던지 북한 노선을 따라 가야된다던지 이런 것은 있을수 없죠. 허용될 수 없는 겁니다. 다만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양심의 자유는 있지만 그걸 표현해서 주장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문) 3당 합당 추진하실 때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그때 만일 3당합당 결심해서 했다면

내각제로 가실려 그랬습니까,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역감정 해소차원에서 노태우 대통령 후임으로 만들어 드려야겠다 이런 생각 하신겁니까?

답) 그 당시에 여소야대가 돼서 보혁구도로, 우리 현대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보수도 필요하지만 혁신도 필요하다 보혁구도로 가야한다. 보수당들이 총 단합을 하고, 또 가령 야당에서도 급진 조금 진보 급진그룹은 제야하고해서 한 그룹을 이루고, 이렇게 해서 보혁구도로 가야한다.

내각제로 가야한다. 책임정치를 하고. 남북통일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래서 DJ께 여러차례 얘기했는데 말씀이, ‘나는 야당총재로 대통령 되고 싶지 거기 들어가서 거기서 통합해서 거기서 대통령하고 싶지는 않다’고 거부해서 3당통합으로 나타났던 거죠. 그 당시는 물론 대화해를 하고 내각제를 하기위한것이지 DJ 잠시 활용하기 위했던 것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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