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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민의 시사탱크 - 인터뷰 전문

장성민의 시사탱크 - 인터뷰 전문
6/25 고위탈북자 "국내 A 기업, 1999년 북에 200억 비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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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관리자 조회수 471

<장진성씨 주요발언>

“2부류 5과생 여성들, 남측인사 성접대 공작에 동원

“35호실 , 남한 이외의 유럽이나 동남아 국가 침투를 위한 씨받이공작활동

70년대 북한의 자금지원받은 국내 한 중견기업, 몇 해 전 북한에 200억 비밀지원.”

“2천년 남북 정상회담 열리기 한 해 전인 1999년에 북한에 자금지원했다.”

노무현 정부때 국정원에서 비밀리에 조사받았다.”

현대처럼 큰 대기업은 아니고 중견 기업이다. 그러나 이름을 밝힐 순 없다.”

그 기업체 회장이 이 방송이 나가면 자신 얘기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북한에 한번 코가 꿰고 나면 좀처럼 거기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남한 사람들이 알았으면 한다.”

 

---------------------장진성씨 인터뷰 전문--------------------------

(장진성씨 소개:2004년 중국으로 탈북해 한달만에 남한 입국, 북한 통전부 대남 심리 부서에서 핵심간부로 활동, 국정원 산하 국가 안보 전략연구소에 일하다가 2011년 12월 국내 최초로 탈북자 인터넷 신문 '뉴포커스' 창간)

 

) 국내에 들어온 탈북자들이 지금 한 24000명 정도 되죠? 언제 오셨습니까?

) 2004도에 탈북을 했고요. 그리고 6개월 조사과정 마치고 20051월경에 한국사회로 배출이 되었습니다.

 

) 어디가 고향이십니까?

) 고향은 황해도 사리원이고요. 여덟 살 때부터 평양에서 쭉 근무를 하다가 왔습니다.

 

) 어떻게 해서 고향에서부터 평양에서부터 공부를 하시게 되셨습니까? 전학을 가신 겁니까?

) 집이 그쪽으로 이사를 가면서 대학을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김일성종합대학을 가면서 그쪽에서 평양에서 쭉 지내게 되었습니다.

 

) 김일성대학에서 전공은 뭘 하셨습니까?

) 국문과 전공을 했습니다.

 

) 언어가 우리나라 한국하고 많이 다르시던가요?

)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 특히 언어장애를 느낀 적이 없습니까?

) 아무래도 북한은 신격화국가이기 때문에 신격화용어가 따로 있고, 일반 주민들이 쓸 수 있는 일상용어가 따로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 차이에서 아마 좀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 중국을 거쳐서 들어오셨습니까? 아니면 서해안이나 이쪽을 통해서 들어오셨습니까?

) 아닙니다. 국경을 넘어서 중국에 한 1달 머물다가 어떻게 운 좋게도 1달 만에 한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 근데 어떻게 한국으로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 제가 통전부에 근무하면서 남한서적을 읽는 과정에 체제 비교의식이 생기는 겁니다.

그때부터 체제 고민을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한국에 가야 되겠다.'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 장 선생님께서 북한에서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에서 일을 하셨다고 방금 말씀하셨는데, 거기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 제가 했던 일은 대남심리전이었습니다. 북한은 통전부 산하에 대남문화침투연락소라고 한국의 70년도부터 6.25전쟁 때 월북한 작가들 그 사람들을 모체로 만들어졌는데 101연락소에선 한국의 과거 운동권, 거기에 불온서적들을 만들어서 침투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남한 사람들이, 남한의 운동권에서 쓴 책인 것처럼 위장을 해가지고 그것이 북한체계라는 것이 의심이 안 되도록 일본에서 자제들을 다 수입을 해서 활자도 한국식으로 다 찍어가지고 그렇게 만든 불온서적들을 일본 경유해서 남한에 침투시키는 그러한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101연락소입니다.

 

) 탈북자 인터넷 신문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그게 뉴포커습니까? 어떤 쪽에 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신문입니까?

) 우선 북한 뉴스, 북한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의 시각에서 본 북한, 그러한 실상을 남한에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두 번째는 탈북자가 24000명에서 3만명을 준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직 탈북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권리를 주장할 그런 신문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신문 만들어야 되겠다.'해서 북한문제, 탈북자문제, 탈북자 지원정보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 최근에 국내 인터넷 신문,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20년간 북한에서 문수초대소에서 근무하고 101연락소에서 근무를 했다고, 탈북을 한 분이 남한에서 방북한 인사들에 대한 북측에 '성 접대 행위가 있었다.'라고 하는 목격정황을 다 털어놓는 그런 뉴스를 보고 상당히 충격적인 상황을 맞았는데요. 사실입니까?

 

) 저도 그 기사를 봤는데요. 제가 101연락소에 다녔었는데 인터뷰하셨다는 분이 101연락소에 다녔다고 하는 걸 보고 그 기사에는 모순이 많더라고요.

 

) 이 분이 해외에 있는 한 여성분인 것 같은데요.

) , 일단 어떤 것이 근거가 틀리다고 볼 수 있냐면 그쪽 주장에 의하면 35호실나 101연락소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북한의 101연락소는 통전부 산하입니다. 북한의 대남연락소 명칭들은 숫자를 기본 표기로 하는데 그 이유가 연락소의 목적을 숨기기위해서, 김일성 김정일로부터 싸인을 받은 날짜를 그대로 명칭으로 사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전부에 101연락소가 있는데 35호실 산하에 101연락소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틀리고 두 번째는 문수초대소라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101연락소 문수초대소가 아니라 통전부 산하 문수초대소입니다. 북한통전부에는 의암초대소, 문수초대소, 순안초대소 이렇게 몇 개가 있는데, 제가 문수초대소에서 숙식을 했던 사람입니다. 실제로요. 문수초대소는 뭐냐면 월북자 초대소입니다. 한국으로 치면 하나원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월북자들의 숫자들이 줄어들고요. 또 없으니까 김대중 대통령을 자문하셨던 분 천도교 교령을 하셨던 분인데 '오익제' 라는 분이 마지막 손님이었습니다. 더는 월북자들이 없기 때문에 초대소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해서 문수초대소를 56연락소로 변경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외화벌이초대소로 되었고, 그리고 문수초대소는 대동강구역 아파트단지 내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은밀한 (성접대)행동들을 거기에서 할 수가 없습니다.

 

) 그러면 거기에서 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에서 남측의 방북인사들을 상대로 해서 성 접대행위를 하고 이들을 상대로 매수를 하고 협박을 하고 공갈을 해서 북측의 유리한 방향으로 그들을 활용하려고 하는 어떤 부서나 조직적인 어떤 그 작업들이 있었습니까?

) 그것은 아마 통전부 뿐만 아니라 외부 인사들을 접촉하는 외교부도 마찬가지 일 것이고 35호실이나 대외연락부에서도 통전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 진행된다고 보거든요.

 

) 외국인들을 상대로 해서도 그렇게 진행을 하고 있고요?

) ,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과거 전례로 봤을 때 북한에서 대남공작 조직부, 대남공작부서들이 조직구호가 뭐냐면 현지화입니다. 그런데 이게 현지화가 되질 않으니까 70년대 넘어와서 한 80년대 그 때까지 북한에서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서 어떤 방침이 나왔냐면 '씨받이 전략'이란 게 나왔습니다. 그게 뭐냐면 35호실 같은 경우에는 해외첩보 부서인데 외국으로 주로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간첩들을 양성해서 파견하는 부서입니다. 그런데 북한사람의 외형으로 나가는 것 보다고 외국 사람들의 외형으로 갖고 나가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그래서 나온 것이 '씨받이'인데 외국인들을 상대로 북한미녀들을 동원해서 임신공작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애들은 그 모양으로 봤을 땐 흑인이거나 또 동남아인들도 있을 수 있고, 또 유럽인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씨받이전략에서 나온 그런 애들이 바로 35호실에서 양성을 받은 바가 있습니다. 미국의 '젠킨슨'이라고 6.25전쟁 때 월북했던 분이 있는데 이 분이 얼마 전에 일본으로 돌아가셔서 회고록을 썼는데, 거기서 뭐라고 썼냐면 내가 탈출을 결심하게 된 계기 중에 하나가 내 애들이 서양인, 다시 말해서 자신과 외형적으로 비슷하기 때문에 대남공작부에서 간첩으로 활용될 수 있어서 그것이 두려워서 탈북을 했다. 이렇게 증언을 직접 했었습니다. 이런 씨받이전략도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 우리나라에도 영화 '씨받이'라고 있었는데, 북한에서는 실제로 그걸 현실화 시키고 있군요.

) 추측컨대, 그런 일을 했다고 하면 북한에서 통전부 교류1과에서 할 수 있을 겁니다.

 

) 통전부 교류1과라는 곳은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 통전부의 해당 과 그리고 여러 가지 연고자과 교류과가 있는데 교류일과는 친북조직 담당과 입니다. 제가 탈북하기 전까지도 명칭을 이야기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는데 알만한 NGO단체들을 담당하는 부서가 바로 교류1과고, 교류2과가 기독교나 불교, 천주교 북한이 주장하는 종교들이 다 교류 2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종교는 대남공작부서 산하에 있다고 보시는 것이죠. 이 교류 1과에서 친북 조직 담당 과들이나 이런 것들을 하기 때문에 아마 여기서 많이 (성접대)했을 겁니다.

 

) 실질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듣거나 목격하신 적은 없으신 겁니까?

) 목격은 한 바는 없는데, 아무래도 통전부 안에 있으니까 이러저러한 소리를 많이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 이러저러한 소리가 어떤 소리입니까?

) 가량 예컨대, 종교 2과에서 거기 계시던 분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런 작전을 하기 전에는 종교인들을 따로 밤에 술을 먹이던지 해서 얼마든지 작업이 가능했는데 어느 날부터 종교인들이 따로 움직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네들이 전략을 바꿨다. 그 전략이 뭐냐 했더니 대체로 호텔에 들어갈 때는 자기만의 공간이기 때문에 샤워하러 들어갈 때 양복을 입고 들어가는 분은 없지 않습니까? 다 벗고 샤워하고 나오면 앞에 아가씨가 서있는 거예요.

그러면 이 목사 분께서 황당하시지 않겠습니까? 당신 이게 뭐냐 나가라. 그러면 한 15분있다가 그 상대 목사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분이 사진을 가지고 들어오면서 아 목사님 사진 빨 끝내주네요. ‘당신들 뭐냐 비열하다’. 그러면 그럼 좋다. 목사님 교회 앞에 뿌릴 까요? 그러면 그 목사님이 그럼 당신들 도대체 원하는 게 뭔데? 그러면서 '단계화 시킨다.' 하더라고요. 처음부터 뭘 어떻게 해줘라 이런 게 아니고, 통일을 위해서 우리 민족끼리 해야 되지 않냐? 지금 조국이 난처한 입장이니깐 쌀 좀 지원해 달라. 처음에는 대북지원을 많이 부탁을 하고 그것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한 단계 높여서 뭘 좀 알아봐 달라고,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그것이 그렇게 다 이뤄지고 나면 3단계로 가서는 당신이 알려준 정보들이 어디어디에 유용하게 쓰였다. 이런 식으로 협박을, 그렇게 단계화시켜서 포섭을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 결과적으로 북측에 그렇게 농락을 당하고 말입니다. 북이 요구하는 그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간다는 거죠? 그러면 거기서 성 접대를 시키는 여자들은 따로 예비해 두고 있습니까? 북측에서?

) 북한의 초대소에 보내지는 여성분들은 대체로 5과생들입니다. 북한의 당조직부 5과가 있는데, 5과는 중학교 13세부터 5과생들을 모집을 합니다. 13세부터냐 면 그 나이는 여성들이 생리를 하면서 생체적으로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13세부터 선발을 해가지고 선택을 해서 중학교 6학년 졸업을 할 때까지 3년 동안을 해마다 관리를 해가지고 중학교 졸업하는 16,17세 때쯤이면 군에서 도로 도에서 중앙으로, 우리 미스코리아 하듯이 이렇게 선발을 해서 1차적으로 합격된 인원들이 김일성, 김정일 5대 초대소에 보내집니다. 그리고 2부류 5과생들이 바로 대남공작부서에 많이 보내집니다. 그래서 초대소에 보내지는 여성들은 비교적 미모가 출중하고 좀 그런 분들로 많이 그렇게 됩니다.

 

 

) 그럼 북한에 이런 성 접대공작이 남한에 자신들의 여러 가지 어떤 그 의사를 관철시키는데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 아무래도 북한 쪽 입장에서 볼 때는 결정적 기여를 할 수 있지 않겠냐. 라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비정상적인 남녀관계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하는데, 하물며 남북한은 지금 분단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념의 문제까지 끼워서 도덕적 문제를 추가해 버리면 아마 그것을 직접 당하고 오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당한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지 않겠냐. 그렇게 생각됩니다.

 

) 그러면 지금 보시기로 남측에 방북인사들이 성 접대를 받고 남한사회에서 지금 활동을 하면서 북측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북한이 요구 하는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그런 활동을 하고 있는 인사들이 많이 있다고 보십니까?

) 저는 제가 직접 보거나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제가 자신있게 대답을 하기엔 좀...

 

) 남측의 여성이 만일 방문하면 북측에 남성을 소개시켜주는 그러한 어떤 일도 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요. 그것도 공작소에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 북한은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순 있겠지만 제가 거기서 근무를 하면서 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 북측을 자주 방문했었던 남측 인사들의 현지처의 어떤 그 조달지랄까? 현지처 마을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던데요?

) 그거는 70년도 일본사회당이 북한에 많이 방북을 했었습니다. 현지처 마을은 북한 평성시 냉천동이라고 있어요. 거기에 현지처 마을이 있고 실제 그 아버지가 일본사회당 그 쪽이라고 했는데, 그 딸 같은 경우는 저와 같이 대학에 다녔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듣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이런 현지처 문제 같은 경우엔 상당히 증언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공공연한 사실이다. 남측방북인사들의 현지처 마을도 이미 다 공공현하게...

) 아니, 제가 알고 있는 현지처 마을은 70년도 일본사회당 그쪽과 인연 맺었던 그런 현지처들이 사는 마을, 그것만 알고 있지 남측 그곳에 대해선 잘 모르겠습니다.

 

) 조심스럽지만 윤이상, 독일의 음악가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의 북한 현지처이야기도 나오던데 그건 소문이겠죠?

) 글쎄, 저는 처음 들어보는 겁니다.

 

) 솔직히 내려와서 이렇게 한국사회를 더듬어 봤을 때요. 요즘은 통합진보당에서 종북파들이 많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석기, 김재연 이런 사람들의 대북과 소위말해서 북한과의 연결고리가 있다고 보십니까?

)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북한 통전부에 근무했던 일원으로써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뭐냐면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를 고발하고 나면 한국의 민주화운동도 (북에 의해)고발당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의 민주화운동은 반정부운동이었거든요. 북한은 사회주의 슬로건을 직접적으로 내건 것이 아니고 우회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격려하고 공언한다는 이런 차원에서 조건 했기 때문에 그때 당시 북한과 남한과의 관계가 굉장히 밀접했습니다. 심지어는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은 내가 북한에서 알고 있는 70년대 그 때 당시 북한으로부터 돈을 받아서 큰 기업이 있어요. 근데 그 기업이 TV의 어느 채널에나 광고가 나오더라고요.

 

) 최근에 그 기업이 tv광고에서 나오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까?

)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어제도 나오고 오늘도 나오고요.

 

) 그때 통전부에 근무하실 때 대남공작금으로 지원해줬었던 그 기업인데 기업이 많이 커서 공작금을 받아서 요즘엔 TV광고까지 공공연하게 많이 나오고 있구나. 그렇게 본다면 그 공작금을 받아서 큰 기업이라면 지금 남한에 들어와 있는 간첩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자금 조달이 남측 내부로부터 얼마든지 조달이 가능하고 해결 한다. 할 수가 있다. 이런 계산이십니까?

)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기업 같은 경우에는 70년도에 이태리와 합병하면서 커진 기업인데 그 때 당시 북한에서, 그 땐 경제적으로 북한이 괜찮았기 때문에 지원을 해주면서 큰 기업인데 한 몇 년 전에는 조국에 은혜를 갚아야 되지 않냐 이런 요구를 북에서 한 것 같습니다. 제가 통전부에 있을 당시, 그런데 그 분이 제가 북한에 있을 때 한 200억 정도를 가지고 왔었습니다. 아마 이 방송을 보시면 그 분이 속으로 좀 그렇겠는진 모르겠는데, 하여튼 뭐 실제 그 분의 누님 되시는 분도 북한에 현재 계시고 있고, 아무래도 북한에 호의적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 그 분은 원래 고향이 북한입니까?

) , 북한입니다.

 

) 제가 이제 예측을 해보겠는데요. 그 분이 제조업사업을 하십니까? 아니면 서비스업을 하십니까?

) 이 정도 얘기 한 것으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한국에서 어떻게 생활을 하고 싶습니까?

) 뉴 포커스가 북한 탈북자들 24000명을 대변하고 있지만은 앞으로 통일되면 24백만을 대표하는 그런 통일신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금 남북한이 통일 되었을 때 우리가 걱정하는 부분은 자꾸 눈에 보이는 통일만 걱정하거든요.

통일 비용이 얼마나 들것인가. 이런 부분만 걱정하는데 사실은 눈에 안 보이는 통일을 걱정해야 됩니다. 남북한의 정서적 통일이 이뤄져야지 정말로 그것이 통일인데, 그 부분은 생각지 않고 자꾸 통일 비용만 계산하는 것은 아직까지 대북정책 기획에 공백이 있다. 저는 이렇게 보고 있거든요. 뉴 포커스가 가교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통일에 대해서, 그렇게 좀 노력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지금 젊은 김정은의 체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 저는 오래갈 수 없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 왜 그렇다고 보십니까?

) 우선 김정은 정권이 과연 성공하겠는가? 했을 때, 김정일 세습 당시 하고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김정일 세습당시에는 국가 조건으로 봤을 때 사회주의 동구권이라는 대외성이 있었고 남한에 비해서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던 대내성, 그리고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고 봉건왕조에서 사회주의로 바로 이양 되었던 역사적인 폐쇄성이 있었습니다. 지금 김정은 같은 경우에는 동구권도 없고 경제적으로도 엉망이고 북한은 너무 폐쇄적이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장이 있기 때문이거든요. 300만이 굶어죽었냐면 최근에도 지금 기사 나오는 거 보면 우리가 북한을 지원해줘야 된다. 북한에 또 다시 대량 아사가 발생 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기만입니다. 300만이 대량 아사가 발생 했냐하면 그 때 당시엔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굶어죽었거든요. 이젠 시장이 생겼고 이 시장 때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면 주민들의 가치관이 다 변화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충성가치관만 알던 사람들이 이젠 물질가치관으로 변했고 이런 국가조건과 지도자조건으로 비교했을 때도 김정일은 30년이라는 세습과정이 있었지만 김정은에겐 3년 밖에 없지 않습니까?

지도자조건, 주민조건으로 다 봤을 때도 김정은 아주 부적합한 세습의 조건으로 지금 시작했고 더구나 북한은 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김정은 체제를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지도자를 상징적으로 내세운 핵심집단지도체제가 다시 말해서 김정일의 아바타로 김정은을 내세웠을 뿐이지 지금 김정일 관성에서 움직여지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가 보는 북한이 다가 아니라는 겁니다.

 

) 북한 주민들도 많은 인식의 변화를 지금 느끼고 있고 한국에 대해서도 많이 인식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까? 체제에 대한 불신이 반감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보십니까?

) 네 전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북한 체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많이 커지고 있다는 거죠.

) 김일성이 죽었을 때에는 이념의 기둥이 무너졌고요. 김정일이 죽었을 때에는 권력의 기둥이 무너졌습니다. 그럼 지금 김정은에게 남은 것은 뭐냐면 이념의 명분과 권력의 명분이 거든요. 이것이 김정은 정권에서 과도적으로 넘어왔으니까 측근들에 의해서 여전히 대내외 정책이 실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여 질 뿐이지, 아마 머지않아 북한 정권의 부작용이 일어나지 않을까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방송 후 제작진이 장진성씨와 추가 전화인터뷰한 내용!)

: )말씀하신 남한 기업이 북에 200억을 지원한 시기가 언제인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있기 바로 전해인 1999년이다.

)2천년 남북 정상회담과 연관이 있나?

)그렇지 않다, 별개의 일이다.

)남한 기업이 북한에 200억을 지원한 경위를 좀 더 자세히 밝혀달라?

)그 기업의 회장은 1970년대 중반 북한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은 적이 있다. 경제사정이 어려워진 북한이 자꾸 신세를 갚으라고 요구하자 1999년에 북한을 방문해 200억을 지원한 것이다. 그 때 그 회장의 조건이 황해도 사리원의 어머니 묘소가는 길에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도로를 포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알고 회장이 화를 내자 나중에 북한이 중국의 값싼 자재를 들여와 도로를 건설한 바 있다. 그 회장의 누이는 현재 북에 살고 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북에 한번 약점이 잡히면 끝까지 북한에 이용당해야 하는 현실을 남한 사람들이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 그 회장은 국적이 외국 국적인가?

) 아니다, 한국 국적이다.

)남한 당국에서 그 회장을 조사 하지 않았단 말인가?

) 노무현 정권때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 이해하기 어렵다. 그가 지금 남한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버젓이 TV광고까지 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 아마도 자신이 처한 어려운 사정을 당국에 잘 얘기한 것 같다. 그런 점을 당국에서 이해하지 않았겠나 싶다.

) 혹시 그 기업이 현대인가?

) 아니다. 현대처럼 큰 대기업은 아니고 중견 기업이다. 더 이상 얘기하긴 어렵지만 이런 내용이 방송에 나가면 그 기업의 회장은 자기 얘기하는구나 하고 바로 알 것이다.

문)충격적이다, 국내언론에는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답) 국내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정말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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