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샘솟는다! 내장산의 고장 정읍 밥상>
옛말에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내장산을 품은 넉넉한 고장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히 정읍을 아주 사랑하시는 멋진 신사 배우 박근형 씨가 함께 해주셨는데요. 저보다 형님을 모시고 한 백반기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출발했습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한 게 논두렁의 우렁이를 잡던 추억일 겁니다. 호남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정읍은 논도 많고 우렁이도 참 많은 곳인데요. 정읍 사람들은 물론 내장산을 찾는 관광객들까지 발걸음하게 만든다는 우렁이쌈밥정식을 맛봤습니다. 구수한 청국장과 고소한 쌈장에 우렁이가 곁들여져 근사한 별미로 완성됐더군요. 특히 버섯과 곡물가루를 넣어 뚝배기에 자작하게 볶아낸 우렁쌈장이 이 집을 생각나게 만드는 각별한 음식이었습니다.
정읍의 산자락 중턱에 간판도 없이 떡하니 자리한 전원주택.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멋진 식당입니다. 뼛국물과 고깃국물을 따로 고아 합쳐내 도합 14시간을 끓인 소머리국밥은 이 집을 찾아온 노고를 단번에 날려주더군요. 정읍에서 키운 소의 은근한 육향이 아주 감칠맛 도는 국물 맛을 완성시켰습니다. 사장님의 사위가 가게를 차리자고 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던 ‘장모님 된장비빔’도 별미인데요. 소머리육수에 직접 담근 6년 된 된장으로 한 번 끓이고 식혔다가 다시 끓인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읍 하면 한우를 빼놓을 수 없지요. 박근형 씨의 소개로 고부면의 한우집을 찾았습니다. 주인 내외가 직접 기른 채소와 소고기를 내어준다니, 아주 믿음직스럽더군요. 당일 도축하고 3-6시간 이내에만 즐길 수 있다는 ‘생고기’는 싱싱한 맛과 식감이 최상이었습니다. 마무리는 6시간 동안 끓여낸 사골로 맛을 낸 사골우거지국. 정읍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밥상이었습니다.
정읍에는 우물 정에 고을 읍, 정읍의 이름을 딴 샘고을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을 걷다 만난 팥죽집은 큰 솥에 팥죽을 끓여내는 것이 아니라 오는 손님마다 팥죽을 끓여주더군요. 귀찮을 법도 한데, 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곱빼기도 없이 그렇게 팥죽을 팔아온 지가 언 20년이랍니다.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팥죽을 한술 뜨니, 정말 어머니가 눈 앞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음식에는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깊이 스며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백반기행을 떠나는 이유고 기쁨이 되어주지요. 음식은 짙은 추억이자,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
댓글 0
댓글등록 안내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