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77회 맛이 샘솟는다! 내장산의 고장 정읍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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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관리자 조회수 2646

<맛이 샘솟는다! 내장산의 고장 정읍 밥상>


옛말에 ‘봄에는 백양, 가을에는 내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을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내장산을 품은 넉넉한 고장 정읍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에는 특별히 정읍을 아주 사랑하시는
멋진 신사 배우 박근형 씨가 함께 해주셨는데요.
저보다 형님을 모시고 한 백반기행은 이번이 처음이라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출발했습니다.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면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을 법한 게
논두렁의 우렁이를 잡던 추억일 겁니다.
호남평야가 드넓게 펼쳐진 정읍은 논도 많고 우렁이도 참 많은 곳인데요.
정읍 사람들은 물론 내장산을 찾는 관광객들까지 발걸음하게 만든다는
우렁이쌈밥정식을 맛봤습니다.
구수한 청국장과 고소한 쌈장에 우렁이가 곁들여져 근사한 별미로 완성됐더군요.
특히 버섯과 곡물가루를 넣어 뚝배기에 자작하게 볶아낸 우렁쌈장이 이 집을 생각나게 만드는 각별한 음식이었습니다.


정읍의 산자락 중턱에 간판도 없이 떡하니 자리한 전원주택.
아는 사람만 찾아간다는 멋진 식당입니다.
뼛국물과 고깃국물을 따로 고아 합쳐내 도합 14시간을 끓인 소머리국밥은
이 집을 찾아온 노고를 단번에 날려주더군요.
정읍에서 키운 소의 은근한 육향이 아주 감칠맛 도는 국물 맛을 완성시켰습니다.
사장님의 사위가 가게를 차리자고 할 정도로 맛있게 먹었다던
‘장모님 된장비빔’도 별미인데요.
소머리육수에 직접 담근 6년 된 된장으로 한 번 끓이고 식혔다가
다시 끓인 깊은 맛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읍 하면 한우를 빼놓을 수 없지요.
박근형 씨의 소개로 고부면의 한우집을 찾았습니다.
주인 내외가 직접 기른 채소와 소고기를 내어준다니, 아주 믿음직스럽더군요.
당일 도축하고 3-6시간 이내에만 즐길 수 있다는 ‘생고기’는
싱싱한 맛과 식감이 최상이었습니다.
마무리는 6시간 동안 끓여낸 사골로 맛을 낸 사골우거지국.
정읍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밥상이었습니다.


정읍에는 우물 정에 고을 읍, 정읍의 이름을 딴 샘고을시장이라는 큰 시장이 있습니다.
시장을 걷다 만난 팥죽집은 큰 솥에 팥죽을 끓여내는 것이 아니라
오는 손님마다 팥죽을 끓여주더군요.
귀찮을 법도 한데, 시장을 찾는 손님들에게 곱빼기도 없이
그렇게 팥죽을 팔아온 지가 언 20년이랍니다.
그 세월이 고스란히 담긴 팥죽을 한술 뜨니, 정말 어머니가 눈 앞에 계신 것 같았습니다.
음식에는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깊이 스며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백반기행을 떠나는 이유고 기쁨이 되어주지요.
음식은 짙은 추억이자, 그리운 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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