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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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회 봄이 왔도다! 통영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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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관리자 조회수 3308

<봄이 왔도다! 통영 밥상>


날이 제법 풀린 걸 보니 봄이 왔다.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외투가 비교적 얇아진 걸 보니 봄이 온 게 확실하다.

봄이 오니 번뜩 그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만큼이나 음식이 맛있는 곳통영이다.

예부터 통영 여행은 부지런히 먹는 게 남는 거라고 했다.

그만큼 해산물도 다양하고 그걸 이용한 음식도 발달해 있단 소리.

그러니 이번 여행이 어찌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있겠나.

특히나 잘먹는 가수 이무송 씨와 함께라면 통영 여행은 필시 즐거울 거란 예상이 된다.


통영의 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2월 말 날이 풀리면 시작돼 딱 두 달만 맛볼 수 있는 음식-

향긋한 쑥 냄새와 입에서 풀어지는 도다리 살이 아주 매력적인 도다리쑥국이 그 주인공이다.

통영에선 봄에 쑥을 세 번 먹으면 1년 병치레를 안 한다고 해

봄이면 어김없이 이 도다리쑥국을 먹는다는데그만큼 이 음식을 내놓는 집도 많다.

그중에서 옥석을 골라내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닐 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르고 골라 이무송 씨에게 선보인 도다리쑥국은

통영 외곽의 깊숙한 골목 안쪽에서 4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여느 노포의 도다리쑥국이다.

쌀뜨물로 끓여 담백하면서도 고소한 국물도 국물이거니와

미끼도다리를 써 탱글하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드는 고기가 아주 일품이다.

그중에 압권은 바닷가 섬에서 캐왔다는 쑥.

해풍을 맞아선지 쑥이 연하고 향이 무척이나 좋다.

가게 들어가면서부터 느껴질 정도니 말 다 한 셈.

아주 삼박자가 잘 들어맞는다.

뿐만 아니라 통영 전통식으로 내놓았다는 반찬도 메인요리 못지않게 훌륭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재젓대구 아가미로 만든 젓갈은 무가 아삭하니 잘 익었고

참기름과 다진 마늘에 버무려 냈다는 대구알젓도 생소하지만 맛이 꽤 괜찮다.

문어무침은 어찌나 또 부드러운지이곳이 통영임을 또 한 번 실감케 한다.

매일 반찬이 바뀐다는데 이런 식의 반찬이면 매일매일 들르고 싶을 정도다.

아주 첫 끼부터 입이 호강했다.



통영의 봄을 알리는 음식이 도다리쑥국이라면 내게 봄을 알리는 음식은 바로 멸치조림이다.

왠지 멸치조림을 먹지 않고 넘어간 해는 겨울에서 여름으로 계절을 하나 건너뛴 느낌이 든다.

마침 통영에 멸치조림 잘하는 집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봄을 맞으러 통영까지 왔는데 봄을 대표하는 음식을 안 먹고 갈 수야 없지.

백발을 곱게 동여맨 주인장이 동네 아주머니처럼 정겹게 맞아주는 이 집은

서호시장 인근에서만 30년을 장사해 나름 이 동네에서는 유명한 곳이란다.

특히 통영은 멸치 전국 생산량의 7, 80%를 내 그만큼 멸치가 맛있기로 소문나있는데

그중에서도 잘하는 집으로 손꼽힌다니기대가 크다.

역시나 한 입 먹어보니 기대만큼 솜씨가 일품이다음식은 간이라더니 간이 꽤나 좋다.

멸치조림을 한 입에 집어넣자마자 행복해지기 시작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게다.

뼈째 먹는 멸치에서 올라오는 구수함도 입에 감돌고,

묵은 김치로 비린 맛을 한 번 잡아낸 뒤 끓여 개운한 것도 마음에 든다.

여수에서는 고사리를 넣었었는데 여기선 묵은 김치를 넣어 색다른 느낌도 들고.

직접 만든 초장에 무친 멸치회는 또 어떤가?!

뼈를 발라내 씹는 맛은 없지만 그래도 달고새콤한 게 만인이 좋아할 듯하다.

그래도 본연의 멸치맛을 느끼기엔 간장만한 것도 없을 터-

주인장은 생소하고 비리다며 주저했지만 그래도 내겐 간장이 최곤 것 같다.

혹시 몰라 구워서도 먹었더니 생물이 좋아선가 프라이팬으로 구워도 맛이 괜찮다.

잠깐 사이에 네 종의 멸치 요리를 다 맛보니 아주 속이 든든하게 차오른 기분.

이 멸치쌈밥 덕에 올 봄은 이렇게 또 잘 보내겠구나!



통영은 바닷가다 보니 음식도 자연스레 해산물 위주로 발달돼 있다.

그런데 순수한 육지 음식으로 70년 넘게 장사한 곳이 있단다.

외지인이 다니는 큰길이 아니라 현지인이 다니는 뒷골목에 위치한 비빔밥 집.

통영 전통 비빔밥을 판다고 하는데 일명 흰 비빔밥이라고 부른단다.

장 없이 비벼서 그렇다나?

일종의 안동 헛제삿밥과 닮은 통영 전통 비빔밥.

헛제삿밥이 간장으로 비빈다면 통영은 오로지 나물으로 밥을 비벼 먹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두붓국이 들어있어 축축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통영 전통 비빔밥의 특징.

그래서 처음에는 이 맛이 너무 슴슴해 별 맛이 안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곱씹다 보면 맛이 여러 갈래로 퍼지는 게 은근히 매력이 느껴진다.

은은하게 바다향도 나는데 나물을 개조개장으로 무쳤다나?

그야말로 육지와 바다의 환상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물론처음 먹는 사람들은 이 맛을 적응하기 힘들어 고추장을 찾는 경우도 있단다.

무송 씨도 그런 케이스-

뭐 음식이야 개인의 취향이니 어떻게 먹든 자유겠지만

이 맛이 궁금해 찾는 사람들에게 우선 장 없이 먹어보길!!

소머리곰탕에는 특이하게 날계란을 넣었는데 이게 또 통영식이란다.

해방 직후 영양 공급을 위해서 계란을 넣었다고.

나는 이 맛이 비릴 것 같아 계란을 빼고 먹었는데

무송 씨는 이걸 넣어 먹었더니 우유 맛이 난다며 무척 좋아했다.

음식은 역시 취향껏 먹는 게 최고 같다.

그나저나 이 바닷가에서 육지 음식으로 오랜 세월을 버텨냈다니그 내공이 실로 대단하다.


이번 통영 여행을 계획하며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으로 시락국을 꼽았었다.

통영까지 가서 무슨 시락국이냐 하겠지만 그거야말로 모르는 소리!

통영 서호시장엔 새벽부터 시락국 집이 문전성시다.

생선을 베이스로 육수를 뽑아 시래기를 넣는데그 맛이 또 기가 막히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간 집은 장어 머리를 푹 고아 육수를 뽑았다고.

시장에서 손질하고 남은 장어 머리만을 받아다 쓴다는데,

그래선지 여수에서 먹었던 장어국의 맛이 올라온다.

이 집은 시래깃국도 시래깃국이지만 반찬을 추천하고 싶다.

자 구조의 테이블 가운데에 반찬 냉장고가 박혀있는데

그 안에 손 가는 반찬이 무려 18개나 된다.

주인장의 인심이 엿보이는 대왕 계란말이부터 대멸젓해초무침돼지불고기까지-

이 모든 걸 먹어도 5천 원이면 충분하다니.

진짜 통영의 배포에 또 한 번 감탄한다.

통영 사랑이 더 깊어질 것 같다.



마지막 코스는 일전에 한 번 가봤던 집이다.

통영에 사는 후배가 괜찮은 집이라며 데리고 갔던 다찌 집.

이름도 촌스럽고 가게도 촌스럽지만 저렴한 가격에 먹을 만한 것들을 내어주는 집이다.

네 명에 가도 한 상에 5만 원이면 꽤 많은 안주들이 나오니

주머니 가벼운 이들이 한 잔 하러 가도 만족할 듯.

이 집 주인장은 매일 시장에 가서 제일 좋은 생물들을 가지고 온다는데

그래선지 신선할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해삼내장부터

이 집 주인장은 매일 시장에 가서 제일 좋은 생물들을 가지고 온다는데

그래선지 신선할 때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해삼내장부터

이제 막 건져올린 멍게’, ‘세발낙지’ 등 신선한 해산물들을 내어준다.

신선함의 증표(?)라는 지느러미 선 뽈락구이도 맛볼 수 있고

별다른 양념 없이도 맛을 내는 먹장어 수육과 아귀 수육도 맛이 괜찮다.

무엇보다 압권은 이른바, ‘멸 간장’!

김장하고 남은 멸치젓의 멸치만 건져 한소끔 끓여서 간장을 낸 건데 이 감칠맛이 기가 막히다.

이 간장 하나로 생선구이의 맛이 확 달라질 정도.

무송 씨는 뽈락구이는 프렌치프라이’ 가자미구이는 해쉬브라운’ 맛이라며 재밌는 소리까지 하더라.

통영에서 찾은 미국의 맛이라니하하참 재밌다.

역시 통영이다동네 사랑방 다찌도 클라스가 다르다.


늘 정겹고 늘 재밌고 늘 맛있는 통영-

모든 계절이 좋지만 봄의 통영은 압권이다.

이 봄다시 또 통영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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