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41회 맛있는 파죽지세! 담양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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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관리자 조회수 4321

<맛있는 파죽지세! 담양 밥상>


이번 백반기행은 사시사철 푸르른 대밭이 펼쳐진 청정지역 담양으로 향했습니다.

이 맘 때면 꼭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죠.

담양에 도착하니 촉촉한 봄비가 내립니다.


봄비만큼이나 반가운 이번 식객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친구인데-

대한민국에서 이 양반을 빼놓고 먹방을 논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식신이라 불리는 정준하 씨입니다.

그 명성에 입증이라도 하듯 본격 촬영 전,

아침 댓바람부터 도넛을 한 끼 식사처럼 하고 있는데-

괜히 식신이 아니더군요하하하.


봄비가 내리니 살짝 냉기가 도는 게 따끈한 국물이 당깁니다.

담양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64년 전통의 국밥집으로 갔는데

이곳은 직접 수작업으로 만든다는 막창순댓국이 인기입니다.

막창순댓국을 주문하니 기본 찬이 나오는데

국밥집 치고 제법입니다김치만 해도 얼갈이배추 겉절이,

김장김치깍두기무생채까지 네 가지나 되는 게 남도에 왔다 싶었습니다.

무생채와 김장김치는 시큼한 반면에 풋풋한 겉절이가 입맛을 돋우더군요.

반찬을 하나씩 다 맛봤을 때쯤 타이밍 좋게 순댓국이 나왔습니다.

이집 막창순대는 피순대 스타일로 나오는데 어찌나 크고 튼실한지-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일단 국물부터 한 숟갈 떠서 맛보는데 충격입니다.

새우젓이나 양념장을 더할 필요도 없이 완성형입니다어쩜 그렇게 구수하던지-

이어서 막창순대도 맛봤는데 피순대 특유의 비릿함도 느껴지지 않고,

속에 가득 차 있는 선지도 부들부들겉을 싸고 있는 막창도 질기지 않고 야들야들한 게

제 입에 딱이었습니다어떻게 돼지 누린내를 잡았는지 그 비결이 참 궁금했는데

사장님께 여쭤보니 어머니 대부터 내려오는 죽염이 비법이라더군요.

대개 죽염이라면 대나무에 소금을 넣어 고온에 구워내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집은 직접 대나무를 캐와 3~4년 묵혀 간수 뺀 천일염을 꾹꾹 눌러 담아

3시간 정도 푹 쪄낸답니다요 소금으로 막창을 씻어야만 잡내가 사라진다고 하네요.

대나무에 쪄낸 소금은 짠기도 덜하고 단내가 단다고 하는데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집의 매력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가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단골들만 안다는 히든 메뉴가 하나 더 있다는데

바로 냄비 비빔밥입니다양은냄비에 각종 채소를 넣고

직접 짜서 쓰는 참기름 한 번 둘러 넣고

그 뒤를 이어 결정적 펀치를 날리는 하나가 있으니

자박자박 국물에 졸여내는 항정살입니다갖은 고명을 얹은 양은냄비는

뜨끈하게 데워 내는데 덕분에 비빔밥이 부드럽고 맛깔스럽게 비벼지더군요.

맛 또한 좋았습니다정준하 씨는 양은냄비 바닥까지 싹싹 긁어 먹는데

참 먹을 줄 알더군요하하 지난 번 구례에서의 순댓국밥이 국밥의 종착점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또 만났습니다종착점은 자주 나타날수록 좋습니다.



이어 담양을 찾는 관광객들이 빠지지 않고 들린다는 국수거리로 향했습니다.

역사가 오래 된 국수 명가들도 많지만 이번엔 이 거리의 후발주자이자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는 국숫집으로 향했습니다.

정준하 씨와 둘이 가니 메뉴 고민할 필요 없이 물 국수비빔 국수 하나씩!

대나무의 고장 담양답게 댓잎 가루를 넣은 생면을 쓴다는데색감이 참 곱더군요.

생면은 뜨거운 육수를 만나면 빨리 퍼진다니 물 국수부터 맛봤는데

면발이 부드러우면서도 탱탱한 게 일반 소면보다 식감이 훌륭했습니다.

육수 또한 비리지 않고 담백했는데 맛의 비결은 중멸치랍니다.

요 중멸이 육수용으로 쓰기에는 값이 좀 나갈 텐데

대멸보다 비릿한 맛이 적어 비싸더라도 중멸만 고집한다네요.

여기에 육수 맛을 헤치지 않기 위해 간장이 아닌 소금으로 맛을 낸 양념장을 쓴다는데

이 거리에서 쟁쟁한 국수 명가들과 겨뤄야 하니 양념장 하나도 신경을 많이 쓴 듯 합니다.

매콤하면서 새콤달콤한 비빔국수는 고명으로 승부를 걸었는데

물 맑은 담양에서 나는 우렁이와 죽순을 넣었는데 식감이 일품입니다.

면을 좋아한다는 정준하 씨 면치기의 정석을 보여주는데 제가 따라하기엔 역부족이더군요.

이곳 국숫집국수거리 명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다크호스로 떠오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한 끼였습니다.


지역 맛집은 택시 기사님들이 꽉 잡고 있다지요.

담양의 한 택시 기사님께 추천을 받아 터미널 인근에 부부가 운영한다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아침점심에는 백반저녁에는 돼지 머리 고기를 판다는데

메뉴판을 아무리 살펴도 돼지 머리 고기가 없더군요.

잘못 왔나 싶었는데 주인장 하는 말이

굳이 메뉴판에 넣지 않아도 소문이 나서 다 안다고 하네요하하하

머리 고기 1인분에 단 돈 5,000동네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라고 하더니

참으로 놀라운 가격입니다머리 고기도 2종류누른 거 안 누른 게 있는데

저희는 누른 돼지 머리 고기로 시켰습니다.

금세 오봉 쟁반에 담아 나오는데요즘 유행어로 하면 이 상차림실화인가요?

분명 만 원어치 시켰는데 접시 넘치도록 담아준 머리 고기에

곁들여 먹는 젓갈과 장 종류만 5가지주인장의 인심에 입을 다물 수 없더군요.

그런데 가격만 놀라온 게 아니라 맛 또한 훌륭했습니다.

주인장이 직접 삶아 눌러 준다는 누른 머리 고기는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적절합니다.

젓갈과 장 종류가 다양하나보니 하나씩 맛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제 입맛에는 주인장이 직접 담근 어리굴젓에 고기를 싸먹으니 딱이더군요.

먹다보니 주인장이 국도 하나 퍼주는데 점심 장사 때 팔고 남은 닭곰탕이랍니다.

건더기가 어찌나 푸짐하던지게다가 국물 맛은 또 어떤지요.

바지락과 무를 넣어 참 시원했습니다.

준하 씨가 말하기를 삼계탕과 소고기뭇국의 중간쯤 된다는데 그 표현이 딱입니다.

주인장의 솜씨를 보아하니 이집 백반은 어떨지 참 궁금하더군요.

반찬 몇 가지만 내어달라고 했는데 백반 한 상을 내오지 뭡니까.

1인분에 6,000원이라는데 제육볶음부터 조기구이가오리무침까지 훌륭합니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생선조림까지 내주는데 아니 글쎄 붕어조림이라네요.

또 한 번 충격...

친한 택시 기사님들이 집에서 손질해 먹기 성가시다며

낚시 다녀오면 갖다 주고는 한다는데주인장의 손맛을 만난 붕어조림은

흙냄새랑 비린내가 잘 잡혀 맛이 괜찮았습니다.

담양장날이면 반찬에 더욱 힘쓴다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장이 열리는 날이라 횡재했습니다.

시골 반찬이라 화려하지 않다고 말하는 주인장의 인심은 뉴욕 스타일입니다.

담양에서 넉넉한 고향의 맛을 만났습니다.


담양하면 떡갈비부터 생각난다는 정준하 씨!

사실 만났을 때부터 떡갈비 안 먹느냐고 계속 물어보더군요.

결국 저녁으로 고기를 먹으러 갔습니다.

저 또한 당연 떡갈비인줄 알았는데 손님들이 드시고 계시는 거 보니

웬 돼지갈비를 뜯고 계시더라고요저희도 주저 없이 숯불돼지갈비를 시켰습니다.

곧이어 반찬이 나오는데 고깃집 치고 반찬이 꽤 나오는데

담양에 와서 눈만 높아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는 나와 줘야 남도 밥상이지 싶더군요반찬들도 정갈하니 괜찮았습니다.

드디어 갈비가 나오는데 다 구워져서 나오는 거 아닙니까.

물어보니 양념한 돼지 갈비를 석쇠에 구워 손님상에 내는 게 이곳 담양의 전통이라네요.

구워진 갈비를 보니 윤기가 잘잘열탄과 대나무 숯을 섞어 쓴다는데

괜히 불향이 더 좋게 느껴집니다갈비 한 점을 맛보는데... 마치 소고기를 먹는 것 같더군요.

보기와 다르게 자극적이지 않은 양념에 오히려 고기 맛이 도드라집니다.

고기를 연달아 여러 점 집어 먹는데도 양념이 슴슴하니 고기 맛이 쉬이 물리지 않습니다.

45년 동안 맛을 대물림했다는 이 집의 양념 내공이 대단합니다.

은근한 단만의 근원은 채소과일은 넣지 않는다는군요.

특히 무가 중요하다는데 단물이 물컥 오른 겨울 무는

깔끔한 단맛에 육질까지 부드럽게 해주는 일등공신!

그 외 파생강양파 등을 갈아 넣고 직접 담근 매실청에

밝힐 수 없다는 비법 재료 마저 넣으면 소스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양념에 재운 갈비는 초벌을 한 뒤 손님상에 내기 전 재벌을 하는데

이때 비장의 양념장을 덧발라가며 굽죠.

이게 진짜 핵심이라는데 절대 알려주지 않더군요.

이렇게 다 구운 돼지갈비는 마지막 한점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깨끗하게 삶아낸 뜨거운 옥돌 위에 올려줍니다주인장의 배려가 돋보이죠.

후식으로는 주인장이 매일 아침 전날 남은 찬밥으로 눌러 만든다는 누룽지를 시켰는데

구수한게 마무리로는 딱이더군요누룽지와 함께 주인장이 김장김치 하나 내주는데

이게 요물입니다단골들에게만 조금씩 준다는데 제대로 곰삭았습니다.

묵은지를 쭉쭉 찢어 누룽지에 척 걸쳐 먹었더니... 분명 아는 맛이건만 강렬하더군요.

누룽지와 묵은 김치가 이 집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이제 담양에 오면 떡갈비보단 담양식 숯불돼지갈비가 생각날 듯 합니다.



관방천 뚝방길 인근에 79세 노부부가 운영하는 백반집을 찾았습니다.

메뉴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8,000원짜리 백반 딱 하나!

이 집도 역시나 반찬 가짓수가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노부부가 반찬을 내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는데 자부심이 느껴지더군요.

밥상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남도에서 나는 것들입니다.

여수에서 온 풀치 볶음부터 해풍 맞고 자란 여수 섬초,

담양 죽순으로 만든 회무침금산 깻잎으로 만든 조림,

여수에서 온 굴무침완도 곱창김 등 지역 특산물이 다 모였습니다.

이 가게의 간판쯤 된다는 영광 굴비작아도 굴비는 굴비입니다.

간도 적당하니 맛이 좋더군요가장 반가운 반찬은 따로 있었습니다.

옛날 방식으로 지져낸 깻잎 조림인데요.

주인장 친정어머님이 해주던 방식으로 만든 거라는데

멸치 육수에 양파홍고추편마늘을 넣고 액젓으로 간을 한 다음

깻잎을 다섯 장 정도씩 묶어 데치듯 조린다는데

색이 누렇게 변할세라 선풍기 바람까지 쐬준다네요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인정 넘치는 백반집이니 국물도 빠질 리 없죠.

주인장이 직접 담근 저염 된장에 꽃게홍새우로 국물 맛을 내는데

구수하면서도 시원한 맛이 일품입니다거기에 죽순을 넣어 씹는 재미까지 있더군요.

반찬 한 가지씩 맛볼수록 이 집은 건강하지 않은 음식이 없었습니다.

전부 건강한 식재료에 주인장이 된장고추장간장까지 저염으로 직접 담가 쓴다는데

79세 노부부의 건강한 이유가 이 밥상에 있지 않을까 싶더군요.

맛은 두 말할 것 없이 훌륭했고 몸까지 건강해지는 한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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