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28회 맛은 통(通)한다! 서울 성북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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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6관리자 조회수 5002

<맛은 통서울 성북 밥상>


수많은 문인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동네, 성북동은 극과 극의 매력을 지닌 곳이다

전통적인 부촌(富村)이면서 <성북동 비둘기>라는 시의 배경이 됐던 산동네까지-

다채로운 삶이 얽혀 있다.


늦게 얻은 아이들이 귀한 만큼 마당 있는 집에서 키우고 싶어 성북동으로 이사를 왔다는 배우 신현준 씨

그와 함께 하면 늘 수다 삼매경에 웃음이 그치지 않는다.

동네 주민 신현준 씨와 함께 성북동에서 시작한 여정은 보문동에 이어

정릉 아리랑고개로 넘어간다. 마치 한 편의 우보(牛步)기행이라고 할까...

소걸음처럼 느리지만 여유가 있는 걸음걸이야말로

이 고즈넉한 동네에 딱 맞는 속도가 아닐까 싶다.


신현준 씨의 첫 번째 단골집인 칼국수집으로 향하는 길목.

식당 입구에 즐비하게 늘어선 고급 차량들부터 예사롭지 않더니만...

한 그릇에 10,000원이나 하는 칼국수를 맛보게 됐다.

공들인 만큼 티가 난다더니- 공들인 맛도 역시 티가 난다.

만인에게 평등한 한 끼로 알려진 칼국수라지만

최고급 양지를 우려낸 고기국물은 깔끔하고,

하늘하늘~ 얇은 면을 자랑하는 칼국수는 정갈함 그 자체!

23년 동안 주방을 맡아오고 있다는 조리장도 단정하다.

발로 밟은 반죽은 덩어리로 잘라 20분 간격으로 4~5번씩 치대고 다시 발로 밟아 얇게 편다. 끝이 아니다.

다시 또 홍두깨로 일일이 펴낸 반죽은 살짝 말려주는데- 마치 삼베 보처럼 쫀쫀하다.

반죽에 들이는 공만 해도 여간이 아닌데

이걸 다시 일일이 손으로 곱게 채 썬다.


이른바 한우 투풀양지로 국물을 내고, 곱게 다진 고기 고명을 얹고

애호박은 씨가 많은 속까지 쓰면 국물이 지저분해진다는 이유 하나로 겉 부분만 채 썰어 쓴다.

오로지 칼칼한 맛을 더하는 용도의 양념장은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만 넣어 채 썬 파에 섞어놓으면 파에 남은 수분기로 촉촉해진다니

겉만 단정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정성은 몇 곱절 정갈하다.

이렇게 만들어낸 면으로 만든 칼국수는

이른바 경상도식 건진 국수’!

면을 따로 삶아내 육수를 부어내는 국수를 일컫는데 이 집이 딱 그 짝이다.

무려 51년을 지켜온 전통의 맛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국물이 당기기 마련이다.

만두를 쪄내는 찜솥의 김이 반가운 계절, 12.

4남매가 힘을 보태온 만둣국 노포가 성북천 길가에 자리해 있다.

오래된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은 외관부터 맛집의 기운을 풍긴다.

그런데 대박은 주방을 지키는 3자매!

딸들 중 셋째, 넷째, 다섯째가 하늘로 떠난 언니 둘을 대신해 손맛을 지켜가는 집이다. 이 유쾌한 자매들은 자신들을 3! 4! 5! 숫자로 칭한다.

큼직한 김치만두를 빚는 건 미대를 나온 5.

만두소 담당은 4. 국물 담당은 3번이다.

딸을 내리 다섯을 두고서야 겨우 얻었다는 귀한 아들 6번은 카운터 담당이다.

김치만두와 부추만두가 주 메뉴인데

만둣국의 국물 맛이 일품이다. 간이 딱이라- 쌀쌀한 날씨에 된통 감기에 걸린 몸을 풀어주는데 그만이었다.


옛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사에 매진하는 3자매의 모습이 참 보기 좋은

만둣국 노포. 깔끔한 손맛을 물려주고 간 모친에게서 배운 그대로-

“Everyday Morning Mandoo!" - 매일 아침마다 만두!를 구호처럼 외치며

그날 처음 빚은 만두로 아침을 먹고 만두 맛을 점검한다.

30년이면 물린 만두(?)~~한데 하루도 빠짐없다니 그저 놀랍다.


항상 비어있다는 뜻의 상허라는 호를 쓰는 이태준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 활약한 걸출한 문인이다.

그의 <문장강화>라는 책은, 작가 지망생의 필독서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분의 외종손녀가 선생이 머물던 한옥에 찻집을 열어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했는데...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고풍스런 한옥에서 맛보는 생강차와 단호박 범벅은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게 되는 맛!

아이들 이유식으로도, 어르신들 입맛 돋우는데도 제격이겠다.

선생의 집필실이었던 누마루에 앉아 짧은 겨울해가 지는 것을 보노라니

절로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래서 그분은 항상 비어둔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그분을 따라 비어있는 집이란 뜻으로 호를 지어야겠다. 한자로 하면... ... “허당”?!

내가 허씨이니 더욱 딱이지 않은가...


평소 청국장을 좋아한다는 신현준 씨.

아내가 외국생활을 오래 해온 터라 집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고 해서 함께 찾아간

백반집이 있다. 욕쟁이 할머니집이라는 커다란 간판을 내건 집인데

메뉴는 단 하나! “우렁각시라 부르는 우렁 된장 쌈밥을 백반처럼 내놓는다.

각시가 있으면 신랑도 있어야 음양의 조화가 맞는 법.

우렁각시를 시키면 직접 띄워서 만드는 청국장 찌개가 우렁신랑으로 따라 나온

. 긴 말이 필요 없는 한 상!

이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는 우렁 된장 백반에

나와 신현준 씨가 매긴 점수는 A!!




정릉에도 아리랑고개가 있다. 그 고개 너머에 제작진이 어렵사리 뚫었다는 성북구를 대표하는 고기집이 자리해 있다는데-

성북천 인근에서 장사를 하다 지난 7월에 자리를 옮겼단다.

그런데 고기집이 건물 3층에 자리해 있는 것만 봐도 촉이 온다.

사전에 예약만 받고, 예약을 할 때 아예 고기도 미리 주문을 해야 한다는 이 집.

식사 시간도 2시간으로 한정해놨고, 추가 주문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깐깐하고 콧대 높은 까닭은,

숙성 돼지고기를 내놓기 때문!

우리가 찾은 날은 무려 66일을 숙성시킨 돼지고기 목살을 내주었다.

특별 맞춤 제작한 주물 판은 손님이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예열을 해둔다.

최상의 고기 맛을 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손님이 도착하면, 매콤한 김치부터 불판에 깔고

사장이 춤을 추듯 양념에 재운 숙성 돼지 목살을 초벌실에서 구워온다.

초벌한 숙성 돼지고기는 살짝 더 익혀 매운 김치와 함께 맛을 보는데...

오호~ 통재라!! 3인분만 시켰단 말인가~~~

신현준 씨는 음식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던지더니, 생 돼지껍질까지 맛보고선

성북에서 맛본 가장 맛있는 집으로 순위를 새로 매겼더랜다.

나 또한 칠십 평생에 이런 맛과 식감을 주는 돼지 목살을 처음 맛봤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이 집의 숙성 돼지 불고기 맛은 글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롯이 시간과 정성이라는 공을 들인 맛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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