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22회 이 맛에 산다! 여의도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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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5관리자 조회수 4349

<이 맛에 산다! 여의도 밥상>



가을 하늘 아래, 기세등등한 마천루를 자랑하는 이 곳,

한강이 빚어낸 보물같은 섬 여의도다.

과거엔 허허벌판 비행장이었지만 지금은 정치,경제, 방송까지 쥐고 흔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중심지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대단한 동네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사람 사는 동네 아니겠나?

알고 보면 사람 사는 맛이 가득하다.

오늘은 이 여의도에 꽁꽁 숨어있는 식당들을 찾아보려고 한다.

매일 밤 술 한잔 하러 왔던 곳인데, 밥집을 찾으려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다.

그래서 함께할 식객으로 여의도에 빠삭한 식객을 초청했다.

촬영 때문에 여의도를 제 집 드나들 듯 해, 여의도라면 빠삭하다는 박하선 씨.

든든한 여의도 백반기행이 기대가 된다.


오피스 타운이 으레 그렇듯 점심시간이 되면 전쟁이 벌어진다.

사방팔방에 식당은 차고 넘치지만, 맛집은 따로 있기 마련이라-

줄을 서지 않고 맛을 보려면 서둘러야 하는 법.

박하선 씨와 함께 발길을 재촉해 식당으로 향했다.

박하선 씨도 몇 번 가본 집이라는데 점심만 되면 줄을 서서 자리를 잡기 힘들단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아 수제비를 맛볼 수 있었다.

수제비 육수는 진한 사골육수다.

뭔가 고소한 맛이 나서 곰곰이 맛을 보니, 으깬 감자가 들어있다.

회전율이 빠른 여의도의 특성상 감자가 잘 익지 않아 으깨 넣기 시작했다는데,

이 감자가 고소한 육수에 단단히 한몫을 한다.

쫄깃한 수제비와 고소하고 깊은 육수까지.

점심시간에 후루룩 먹고 나니 든든한 한 끼로 충분하다.


여의도 빌딩 숲 너머,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아파트 단지.

저녁이면 회사하러 온 직장인들로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40년이 된 삼겹살집인데, 옛 인테리어를 그대로 살려놔 푸근한 느낌이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물건들이 손때 묻은 옛 것 그대로.

꾸며지지 않은 세월의 흐름이 멋스럽기까지 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40여 년 전 경양식 집으로 시작해,

삼겹살집으로 업종을 바꿨단다. 경양식 집의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삼겹살은 생삼겹이 아니라, 냉동삼겹살이다.

과거엔 냉동삼겹살 하면 싼 맛에 먹을 수 있는 질이 낮은 삼겹살로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맛을 위해 냉동을 택한 집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 집 역시 맛을 위해 일부러 냉동을 한 집이다.

생삼겹살을 구입해 급냉시켜 해동과 숙성과정을 거쳐

육즙은 살리고, 가장 맛있는 식감의 두께로 잘라서 판매한다고 한다.

먹어보니 고소한 육즙을 가득 머금은 채로 바삭하게 구워진 냉동삼겹살이 인상적이다.

회식하는 직장인들이 가득한데,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여의도엔 짜장면 짬뽕 없는 중식집도 있다.

주 메뉴는 오향장육과 군만두. 정말 중식 요리를 제대로 하는 집이다.

식당의 규모가 꽤 큰 편인데, 알고 보니 오래된 노포에서 6개월 전에 이전을 했단다.

노포의 옛 분위기가 사라져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지만,

박하선 씨 말을 들어보면 맛은 그대로라고 해서 위안을 삼았다.

하루에 군만두만 1200여개가 나간다는데 주방장이 매일 새벽 4시에 나와

직접 반죽을 하고 하나씩 빚어 판매한단다. 그 정성을 지켜오니-

노포의 분위기는 사라졌어도 맛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즐거운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붙잡는 맛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집에 가야하는데도 좀처럼 여의도를 벗어나지 쉽지 않다.

결국 생선구이집에 자리를 잡아버렸다.

주방장이 앞에서 꼬치와 생선을 구워주고, 그 앞에 바 테이블에 앉아

술 한잔 할 수 있는 술집이다.

매일 주방장이 새벽 장을 봐서 그날 물 좋은 생선을 골라오고,

닭 한 마리를 손질해 꼬치를 만든단다.

불 앞에서 계속해서 꼬치와 생선을 굽는 주방장.

주방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 한잔 기울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여의도에서 가장 자주 찾는 메뉴 중 하나가, 바로 해장이 되는 음식

저녁에 회식을 하고 다음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출근을 하니 점심은 무조건 해장인 것.

여의도에서 해장으로 유명한 동태전골집이 있는데,

이 집은 주인장이 동태를 매일 아침마다 직접 손질해서 사용한단다.

동태살만 사용하면 국물이 깔끔한데,

이 집은 곤이와 이리, 애를 모두 사용해 국물에 내장기름이 떠있고

국물 맛도 진한 편이다. 속이 확 풀리는 맛은 아니지만

진한 국물이 든든하게 속을 달래기에 좋다.

직장인들이 가장 먹고 싶은 메뉴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메뉴 상관없이 집밥같은 식사 아닐까.

시간에 쫓겨 밥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직장인에게

어머니 손맛 담긴 식사 한 끼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도시에서 그런 한 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여의도에 그런 집이 숨어있었다.

37년 동안 꽁꽁 숨어있었다는 이 집.

여의도 토박이 직장인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집이란다.

테이블 네 개인 집에서 김치찌개 백반을 파는데-

하루 20여명 정도만 맛볼 수 있단다.

자리 잡자마자 따뜻한 물이 나오는데, 보리와 우엉, 옥수수를 넣어 삶은 물이다.

속을 달래기에 좋다. 잠시 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던 것처럼

중탕한 계란찜이 나온다. 주인장이 직접 그릇에 떠주며

김치찌개를 먹기 전에 맛을 보라 권한다.

식기들까지 모두 집에서 만나던 그것...

김치찌개 역시 멸치를 볶아 우린 육수에 직접 담근 김치로 끓여 자극적이지 않다.

식사를 하고 나니, 우리 집을 찾은 손님께 예의라며, 과일을 내민다.

온전히 대접받는 한 끼 식사. 여의도에서 찾은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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