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21회 이거 하나면 거뜬하다! - 수원밥상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9.10.18관리자 조회수 6100

<이거 하나면 거뜬하다! - 수원밥상>


수원은 어떤 도시인가?

수원하면왕갈비가 떠오른다.

오래 전 전국 최대의 우시장이 있었던 까닭이란다.

정조는 수원에 화성을 지으며이 도시가 잘 먹고 잘 살길 바랐다고 한다.

그래서 농업도상업도 번성시켰다.

성 안에 물 맑은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고,

팔달문 주변으로 시장을 만들어 활성화시켰다.

이런 역사적 배경이 수원의 음식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그 자취를 따라가 보는 여정이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였다.

첫 집은 역시나 왕갈비 집이겠지했는데웬 걸 민물새우던질탕’?

수원에서 민물새우라니 뭔가 싶었는데던질탕은 또 뭔가.... 일단 들어갔는데...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늦은 오후,

식당 안에는 오육십 대 남성들이 소주 한 잔씩 걸치고 있다.

안주로는 뭘 곁들이고 계시나했더니, ‘민물새우던질탕이란다.

비 오는 날이면 민물새우던질탕이 은근히 생각이 난다나-

던질탕이 뭔지 궁금해서 주인장에게 요청했더니 보여주겠다고 해서 주방으로 갔다.

갯것들이 그렇듯 민물새우도 가을이면 슬슬 맛이 들고 잘 잡힌단다.

제철에는 냉동을 안 쓴다니지금 딱 먹을 일이다.

육수도 없고별다른 양념도 없다.

민물새우와 무를 넣고고춧가루와 다진 마늘 등을 넣고 끓이면 된단다.

별다른 조미료가 없어도 민물새우가 훌륭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그럼이제는 던질탕이 뭔지 알아볼 차례.

수제비를 던져서 넣는다고 해서 던질탕이라는데 -

미리 반죽을 하지 않고 부침가루에 물을 타서 묽게 반죽을 만들어

숟가락으로 휙휙 던져서 끓는 탕 안에 넣는 게 아닌가.

아무렇게나 던져 넣어도 탕 안에서 몽글몽글 모양을 잡는 게 신기했다.

거기에다가 소면까지 넣고딱 보면 어죽 같았다.

맛은 좋았다.

민물새우 하나는 작을지 몰라도뭉쳐놓으면 큰 새우 보다 더 맛이 난다.

얼큰하면서도 개운하고시원했고민물새우에서 나는 달큰하고 구수한 맛까지...

거기에 부드럽게 넘어가는 몰캉한 수제비도소면도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비가 오면 수원에 가고 싶어질 것 같다.



수원에는 중국 화교들과 화상들이 참 많이 산다.

수원과 인천을 잇는 수인선 협궤열차가 있었던 터라,

개항장이었던 인천을 통해 들어온 화교들이 수원으로 많이 넘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공식적인 명칭은 아니지만수원에도 차이나 거리라고 불리는 거리도 있다.

수원 통닭거리 인근에는 하얼빈 출신 주인장이 운영하는 만두가게가 있다.

알음알음 찾아오는데 입소문을 타고 젊은이부터 중년까지 많이들 찾아오고 있단다.

육즙만두를 고기는 빙화만두(군만두)새우육즙만두는(찐만두)로 시켰다.

마침 단골손님을 만났는데건두부 요리와 소고기 장조림을 추천해주기에 것도 시켰다.

만두는 우리 입맛에 좀 짤 수도 있다.

그런데 단골들이 오면 슬쩍 내준다는 고수 뿌리 무침이랑 함께 먹으니,

짠 기운도 중화되고향채 특유의 향이 느끼함도 잡아주어 좋았다.

건두부 요리는 포두부를 채 썰어서 마치 면처럼 데치고,

간장 소스를 뿌린 후다진 마늘과 다진 파를 올린 뒤

뜨겁게 달군 기름을 부어서 만드는 요리.

비벼 먹으면 짜다고 소스에 건두부를 찍어 먹으라고 했는데

깜빡하고 비볐더니 역시 짰다.

때마침 주인장이 중국 산시성 곡물 식초를 가지고 왔는데,

짜다 싶을 때 이 식초에 찍어서 같이 먹으면 안 짜단다.

오오진짜 그랬다!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맛도 나면서 짠 맛이 누그러졌다.

건두부의 쫄깃한 식감이 재미있어서 계속 씹었더니

두부의 고소한 맛도 나서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었다.

소고기 장조림은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 힘줄 장조림이다.

소 힘줄을 간장에 졸여서 만든 건데,

우리나라 장조림보다는 중국 음식 특유의 향신료 향이 좀 더 추가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먹으니 밥 생각이 간절했다밥 위에 얹어서 함께 먹으니 역시!

소고기 장조림은 식으면 힘줄이 질겨져서 빨리 먹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대체적으로 이 집은 간이 세다.

그런데 곁들이는 조연들과 함께 먹으면 우리 입맛에도 충분히 잘 맞을 거라 생각한다.


드디어수원에서 고기를 맛본다.

세 번째 집은 소고기를 파는 오래된 집이었다.

식당으로 들어가니고기를 들여온 날이라며

여든의 노모와 며느리가 나란히 앉아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49년 된 칼은 세월이 느껴질 정도로 닳았다.

이 집은 치마살제비추리토시살을 팔고 있었는데

고기를 들여오면 웬만한 모든 기름을 직접 다 제거한다고 한다.

근육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힘줄지방을 제거하는 건데

정말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손질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소고기의 맛과 식감을 힘줄과 지방이 헤친다는

여든 넘은 주인장의 고기에 대한 철학 때문이다.

손님들 앞에서 소고기를 손질하다니믿음이 팍 갔다.

손님들에게 물어보니주문도 그냥 알아서 달라고 하면 주신단다.

그날 들여온 고기 중에서 제일 상태가 좋은 것으로 주인장이 알아서 주신다는 것

허재 감독과 나도 그냥 알아서 달라고 했는데곧바로 불고기가 나왔다.

간장양념에 담겨 있는 소고기의 색깔이 선홍빛으로 살아 있다.

구워서 먹었는데 우와이런 불고기는 정말 처음이다.

양념 맛보다는 고기 맛으로 먹는 불고기육즙이 살아 있다.

진한 육향과 함께 고기가 부드럽게 넘어간다.

양념에 미리 재우는 것이 아니라 주문과 동시에 곧바로 양념에 무쳐서 낸단다.

지금껏 먹어봤던 불고기 중에 가히 최고다.

맛있는 집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고파무침도 쪽파를 무쳐서 내온다.

그런데 쪽파무침에 식초가 들어가서 새콤하니,

소불고기와 궁합이 잘 맞았다.

가격은 세다하지만 만족감은 더욱 세다.

어디서 목돈 들어오는 날손주 데리고 한번 와야겠다.



대도시 수원에서 시골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파트로 둘러싸여 있는 도시그 속에 섬처럼 논과 밭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 자리한 한 백반집텃밭에는 가지와 고구마가 자라고 있고,

마당으로 들어서면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고구마순을 다듬고 있는 곳-

웬만한 밑반찬들은 식당에서 키운 것으로 만든단다.

들어가 콩비지백반을 주문하고 밑반찬을 보니하나하나 다 맛있어 보였다.

고춧잎무침늙은 호박전열무김치노각무침 등등 딱 내 스타일.

이 집 콩비지찌개는 매일 아침 바깥주인장이 직접 콩을 갈아 만든 것으로,

제철 채소들을 넣어서 끓인단다.

채소가 들어가 심심하지 않았고콩도 지나치게 곱게 갈지 않아서 씹는 맛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 담근 새우젓으로만 간을 한다니더욱 깔끔했다.

바깥주인장이 직접 만든다는 손두부는 떫은 맛이 없고 고소했다.

나물 위주의 밑반찬이 너무 좋아양푼 하나 달라고 해서

나물 몇 가지 넣어 밥을 뚝딱 비벼 먹었더니 만족감이 더욱 크다.



수원은 상인들의 도시이다.

팔달문 주변으로만 9개의 시장이 모여 있다.

팔달문 시장부터 지동시장영동시장못골시장 등

특화돼 있는 시장들이 모여 있는 그 거대한 규모에 놀랐다.

권선시장은 팔달문 주변은 아니지만 음식점들과 맛집들이 모여 있는 자그마한 시장.

그 중에서 끌리는 곳으로 들어갔는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늑하니 술 마시기 참 좋은 분위기다 싶었다.

그런데 벽에 온갖 사진들과 낙서들상장들이 어지럽게 장식돼 있고-

더 놀라운 것은 천장도 어지럽다는 것그런데 가만히 보니 지폐다.

외국 돈부터 백화점 상품권까지명함들과 함께 압정으로 꽂혀 있는데

손님들이 돈을 붙이면 주인장이 기부를 하는 것이란다.

언젠가 손님이 팁을 천장에다 붙였는데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손님이 준 돈이라 어쩌지 못했더니 손님들이 따라서 천장에 붙였고-

주인장은 손님들이 준 돈이라 모아서 기부를 했더니 그게 이 집의 문화가 된 것.

허재 감독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기부부터 하고-

그제야 둘러보니 손님들 죄다 닭볶음탕을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닭볶음탕이 나오는데큰 곰솥 같은 양푼이 나와서 무서울 지경.

길쭉한 밀떡이 들어 있는데 그걸 또 잘라서 먹으면 안 된단다.

떡볶이 먹는 기분이다젊은 친구들은 좋아할 거 같았다.

밀떡을 애피타이저 삼고 드디어 닭을 먹으려고 하는데-

닭다리가 무슨 칠면조 다리 같았다!

닭 날개는 무슨 독수리 날개 같지 않은가-

이만한 사이즈는 토종닭이 분명하다.

역시 토종닭이라서 육질이 쫄깃쫄깃하다.

양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맛있어졌는데,

단호박와 감자가 으깨어져서 국물이 걸쭉해지면서 닭에 양념이 잘 베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집 닭볶음탕이 좋았던 게 인공적인 단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단호박과 호박가루만으로 단 맛을 낸다니자극적이지 않고 편안하다.

편안한 맛과 편안한 분위기유쾌한 주인장-

손님들과 얼굴을 트고 술 한 잔 함께 할 수 있는 곳-

화기애애한 곳으로 기억될 것 같다.


수원 백반기행의 마무리는 장안문 앞에 있는 돼지갈비 집.

역시 수원인가소고기닭고기 모두 섭렵하고 이제는 돼지고기이다.

늘 손님들로 북적되는 집이라는데 38년 됐단다.

별다를 게 없는 돼지갈비 집 같은데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 걸까?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특이한 게석쇠 불판이 아닌 불고기 판 같은 게 나온다.

중앙에 돼지갈비를 올리더니 양념 국물을 붓는 게 아닌가.

이 집 돼지갈비는 국물갈비였던 것.

어느 정도 고기가 익으니 고기를 잘라서 국물이 있는 가 쪽으로 빙 둘러서 담가놓는다.

그런데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밑반찬으로 나온 콩나물무침을 불판 중앙에 듬뿍,

그리고 무생채를 또 그 위에 듬뿍올리는 것이다.

함께 구워서 같이 먹는데 그냥 돼지갈비만 먹을 때보다 맛이 좋았다.

콩나물의 아삭함과 무생채의 달달함이 돼지갈비 맛을 한층 살려주는 것.

그런데 국물이 있어서 오래 두고 먹어도 고기가 타지 않았고퍽퍽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양념이 고기에 베어들어 더 맛있어졌다.

국물갈비의 장점이 이런 것이로구나싶었다.

이 집에 또 다른 명물 국물이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물김치!

냉면 그릇에 담아 나오는데 처음에 무슨 물김치를 이렇게 많이 주나 했다.

그런데 이유가 있더라익은 정도도새콤달콤한 맛도 너무나 완벽해서

돼지갈비를 먹으면서 습관적으로 계속 먹고 있는 게 아닌가.

물김치에 소면을 말면 김치국수가 따로 메뉴에 있었지만,

허재 감독과 나는 밥을 시켜서 말아먹었는데 정말 행복한 마무리가 되었다.

역시 수원은 고기의 고장돼지갈비도 뭔가 다르다.

댓글 0

(0/10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