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20회 제주의 가을은 맛 좋아마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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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1관리자 조회수 4431

<제주의 가을은 맛 좋아마씀>


가을이 찾아오면 바다는 더욱 맛있어진다.

물오른 바다의 진미들이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니

이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오늘의 식객 여행지는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섬제주도다.


는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있다.

4년 전 토박이 지인에게 소개 받은 뒤로 그 맛에 반해 꼭 찾는 집인데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오직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다는 음식 옥돔뭇국이다.

옥돔뭇국은 제주의 제사상에 빠지지 않는 메뉴라는데

옥돔이 워낙에 귀한 녀석이라 메뉴판에 올리지 않고이 메뉴를 찾는 현지인들에게만 준단다.

세 번쯤 우린 사골처럼 뽀얀 국물에 두툼한 옥돔 살을 곁들여 먹으면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일품이다.

여기에 주인장이 강력 추천한 옥돔구이도 상에 올랐다.

살짝 말린 옥돔구이의 쫄깃한 살 맛을 보니

주인장이 왜 그렇게 진짜 맛있다고 외쳤는지 절로 이해가 가는 맛이다.

제주의 보석 같은 맛을 보니이 가을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다 하하.



흔히들 제주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음식 중 하나가 흑돼지라기에-

제주 방언으로는 검은 도새기라 불린다는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중산간 지역에서는 각 집 집마다 이 흑돼지를 키워 왔단다.

일반 돼지와 흑돼지의 맛을 구분하는 것이 영 헷갈렸는데

흑돼지의 두툼한 비계가 씹을수록 쫄깃하고

고소하고 풍미가 입 안 가득 채우니 입맛에 착 감긴다-


주인장이 흑돼지에 꼭 곁들여 먹어야 하는 것이 있다는데 바로 고사리.

기름이 귀했던 시절 돼지를 잡고 나면 모아놓은 기름에

이 고사리를 볶아먹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데,

고사리가 쇠기 전 봄에 따놓은 고사리를 말려놓은 것을 일 년 내내 쓴단다.

양념에 졸여낸 이 집만의 고사리나물을 흑돼지 기름에 구워 맛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38년 간 고사리만 삶다가 나이 먹었다는 주인장,

이 맛은 분명 오랜 세월의 힘이리라-


한적한 바닷가의 한 마을에서 토박이 낚시꾼들을 만났다.

동네 사랑방으로 통한다는 식당을 간다기에 냉큼 동행에 나섰다.

이 집의 주 메뉴는 '정식'.

제주도에선 백반 대신 정식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데

땅이 척박한 탓에 논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까닭이 아닐까-

혼자 한 상을 받기 민망해 정식 2인분을 시켰더니 입이 떡 벌어질 지경이다.

생선구이에 돼지두루치기제주도를 담아낸 반찬이 그득한 정식 한상이다.

사실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예약 손님들만 맛볼 수 있다는 제철 생선회란다.

이 집은 횟감이 필요하면 냉장고로 통한다는 바다로 간다니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제주도기에 가능한 일 아닌가!

마침 동네 주민 분들이 맛보려 잡았다는 독가시치 회 맛을 보았는데

탱글한 바다의 내음이 그득한 것이 비로소 제주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여기에 회를 뜨고 남은 뼈와 껍질 튀김에 바다에서 직접 잡았다는

졸복으로 끓여낸 시원한 졸복탕까지 내어주는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에

상이 더욱 풍성해졌다. 나만 알고 싶은 보물 같은 집이란 게 이런 걸까?


제주도의 숨을 맛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던 찰나

골목 사이에서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게 손질에 한창인 한 식당주인을 만났다.

반찬으로 내어준다는 황게란다.

조연만으로도 기대가 되는 이 집 밥상의 진짜 주연은 한치돼지불백이다.

한치 손질 경력만 30년이 넘는다는 주인장.

제주에서는 오징어는 보리밥한치는 쌀밥이라 할 정도로 그 맛을 쳐준단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한치불백의 맛이 꽤나 입맛을 당긴다.

그 칼칼하면서도 은근한 양념장의 맛이 궁금해 물어보았더니

별 것 없다며 슬쩍 비법이 적힌 수첩을 살짝만 보여준다.

절대 공개불가란다. 하하

이 맛을 내기 위해 오래토록 연구해온 주인장의 지난 세월과

깊어진 손맛이 가장 큰 비법이 아닐까?



예로부터 땅이 척박한 제주에서는

어디서나 잘 자라는 메밀이 효자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 메밀을 빼놓고 제주의 음식을 이야기 할 수 없다 하니

다음 목적지는 메밀을 넣어 만든다는 꿩메밀칼국수’ 집을 택했다.

동네 사람들도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다는 곳인데

이 집 칼국수를 먹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숟가락을 사용한다.

쉽게 부서지는 메밀의 특성 때문이란다.

사실 메밀은 까칠한 맛이 있지만 계속해서 씹다보면 은근한 단맛이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기에 메밀의 독성을 해독한다는 무는 시원한 맛을 책임지니 참 좋은 짝꿍이다.

꿩 뼈를 육수로 우려낸다는 진한 육수의 맛도 핵심이다.

옛날에는 오일장에서 꿩을 파는 풍경이 흔했을 만큼 제주도 사람들에게

익숙한 요리라고 한다닭고기와 큰 차이가 있을까 싶었는데

주인장이 일러주길 살코기 사이 잔뼈는 억세어서 개도 못 씹어 먹는단다. 하하

일일이 손으로 뼈를 발라낸 주인장의 수고로움이 담긴 깊은 육수의 맛에

오늘 또 배가 가득찼다이 음식을 두고 어찌 뒤돌아 설 수 있겠는가!


이맘때 제주도에 오면 꼭 맛보아야 할 생선이 있다-

제주 바다를 더욱 빛나게 하는 은갈치다.

50년 간 한 자리에서 갈치 요리를 해왔다는 한 집을 방문했다.

맛을 위해 갈치는 오직 생물만을 고집한다는 주인장의 고집에

딸은 남는 것이 없다며 귀띔을 해준다.

아무리 손맛이 좋아도 맛의 기본은 재료 본연의 신선함에서 시작되니

밥상의 기다림도 설레이는 순간이다.

양념이 강한 음식을 선호하진 않는데 매콤한 갈치조림 한 입을 맛보니

젓가락이 멈추질 않는다두툼한 갈치 살이 어찌나 달던지.

이 집에서 가장 인기가 좋다는 갈칫국은 그 모양새부터 예쁘다.

갈치와 얼갈이배추늙은 호박으로 맛을 내었는데

생선국은 비리다 라는 편견을 단번에 없애주는 맛이다.

양념이라고 해봤자 간장 한 숟갈이 전부라는데,

재료 맛으로 승부를 내는 주인장의 오랜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50년의 세월을 버텨온 이 집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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