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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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회 맛있는 교차로! 용산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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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4관리자 조회수 5352

<맛있는 교차로! 용산 밥상>


용산은 교통의 요충지이다.

서울 주요 지역으로 갈 수 있는 큰 도로가 있고,

호남전라선의 시종착역이 되는 용산역,

지하철역만 10개가 넘는다.

길이 모이는 곳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맛이 모인다.

그래서 노포들도 여전히 많이 모여 있다.

이번에는 용산 밥상이다.

용산 토박이인 탤런트 김석훈 씨가 함께 해서

옛날의 용산 모습은 물론 추억까지 얘기해주어 더욱 즐거웠다


용산역에서 효창 공원 역으로 가다보면 조그마한 전통시장이 나온다.

바로 용문시장이다.

용문동에는 용산 3대 국밥집이 모두 모여 있는데,

그 중 용문시장 안에 있는 한 국밥집은 7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시장이 생기기도 전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자리를 잡았단다.

시장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국밥 한 그릇-

큰 소 목뼈와 선지, 우거지가 한 그릇 가득 나온다.

소 목뼈가 고소한 맛을 더하고, 선지가 들어가 진한 국물을 낸다.

함께 했던 김석훈 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이 집에 왔었단다.

이 집에서 특이했던 건, 달걀프라이였다.

소 목뼈가 일찍 떨어지면 손님들을 그냥 보내기가 미안해서

달걀프라이라도 부쳐주었던 것이 지금에 이르렀단다.

손님들은 국밥에 얹어서 밥과 함께 먹는다기에 좀 아니다 싶었는데,

막상 달걀프라이를 넣어서 먹었더니 고소한 맛이 더욱 좋았다.

역시, 오래된 맛집에는 자신들만의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삼각지는 오래 전 회전식 입체교차로가 있던 곳으로, 삼각지의 명물이었다.

길이 있다는 것은 사람이 모인다는 것!

삼각지 일대 골목에 노포들이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삼각지 맛 골목에 접어들면 식욕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데

연탄불에서 굽는 고등어구이이다.

고등어를 굽는 주인장의 솜씨나, 소쿠리에 고추 꼭지를 꽂아서

가지런히 고추를 말리는 내공을 보니 그냥 지나치면 안 될 집이라는 촉이 왔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으니 내어주는 시원한 숭늉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숭늉을 내려면 냄비 밥을 짓는다는 것,

갓 지은 냄비 밥에 된장찌개, 대여섯 가지 반찬, 고등어구이...

고향집 툇마루에서 뚝딱뚝딱 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이다.

제대로 된 백반 한 상 두둑하게 먹었는데도,

제육볶음을 먹는 손님들을 보니 식탐이 올라왔다.

다음에 또 와야지 마음을 먹지만 사실 다음에 오기란 쉽지 않은 법.

무리를 해서라도 꼭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을 보니... 역시 무리하길 잘했다.

따로 양념을 재운 것도 아니고, 철판 위에 재료 올리고,

고춧가루 뿌려서 볶았을 뿐인데.... 양념이 어쩜 이렇게 쏙쏙 잘 베어들었는지!

행복한 밥상이었다




용산 밥상을 함께 한 김석훈 씨의 안내로,

초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는 남영동 쪽으로 갔다.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있던 일대가 바로 김석훈 씨의 주 무대였던 곳.

석훈 씨의 최애 메뉴가 부대찌개라고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다니던 학교 인근에 부대찌개 골목이 있더라.

늘 배가 고팠던 어릴 땐, 라면 사이 두세 개씩 넣고 밥도 두 공기씩 먹었다는데-

부대찌개 골목의 웬만한 집은 다 다녀봤다기에 설마 했는데,

역시나 한 집에 들어갔더니 주인장이 석훈 씨를 알아본다.

주인장의 추천으로 모둠스테이크를 먹고 부대찌개를 후식으로 먹기로 했다.

스테이크라고 하기에 고기 좀 썰어보나 했더니, 웬걸 다 썰어져 나온다.

그런데 이건 스테이크가 아니다. 온갖 채소며, 소시지며, 고기가 먹기 좋게 썰어져

판에 올라오는데- 버터 두르고, 스테이크 소스 뿌려서 볶아 먹는 것.

이런 스테이크는 정말 처음이다.

입맛에 맞을까 걱정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맛있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고기와 소시지를

다양한 재료들을 섞어 우리 입맛에 맞게 만든 모둠 스테이크.

소시지며 고기며 미제여야 한다는 주인장의 말이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그래야 옛날 맛 그대로를 낼 수 있다니, 원조 맛을 지키려는 주인장의 마음이겠거니, 하니 이해가 됐다. 음식점이 옛날 맛 그대로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다음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식객 취재할 때 의정부에 가서 부대찌개를 먹어본 적이 있다.

의정부나, 용산이나 미군 부대가 있던 곳에서는 어김없이 이 부대찌개가 성행했는데,

각 지역의 특징이 다 다르다.

의정부에 비해 용산은 국물이 새빨갛고, 유난히 많은 재료가 들어갔다.

치즈 덩어리가 들어가서 느끼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또 국물이 새빨갛기에 엄청 매울 줄 알았는데 적당했다.

느끼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양배추가 듬뿍 들어가서 달착지근한 맛이 나서였고,

김치를 씻어 넣어 느끼한 맛을 잡아주었기 때문이었다.

라면 사리에 밥까지 말아먹고 나니... 이런 또 과식했다



삼각지하면 빼놓을 수 없는 시그니처 같은 음식이 있다.

바로 대구탕이다.

대구를 재료로 하는 대구 전문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골목을 형성할 만큼

삼각지에는 대구탕이 유명하다. 그 중 한 곳에 갔다.

좋아하는 부위를 조합해서 주문할 수 있게 해놨던데 아이디어가 좋다 싶었다.

탕이 나오기 전 밑반찬이 나오는데 어라? 동치미와 김치 달랑 두 가지다.

그런데 개수로만 따질 게 아니다. 이 두 가지 밑반찬이 보통이 아니다.

동치미는 새콤하니 잘 익어서 입맛을 돋우었다.

김치는 흔히 아는 김치가 아니라, 대구 아가미로 젓갈을 담가,

그 젓갈로 김치를 담근 장재젓 김치였다.

경상도 토속 음식으로 불리는 장재젓을 서울 하늘 아래에서 맛보다니!

정말 반가웠다.

갓 지은 밥에 이 장재젓 김치 하나만 있어도 한 공기 뚝딱 하겠다 싶었다.

대구탕을 맛보니, 역시, 얼큰함이 가슴 속 깊이 전해진다.

이 얼큰함을 제대로 맛보려면 겨울에 한 번 더 찾아와야겠다 싶었다.

다른 반찬이 없어도 너무나도 훌륭한 한 상이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창성옥 인근에 있는 막걸리 집이다.

들어가자마자 묘한 냄새가 풍기는 곳.

청산도 출신 주인장이 23년간 한 자리에서 해왔다는데

역시나 메뉴판을 보니 홍어에 전복에 꼬막에~ 남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기본 찬을 봐도 그랬다.

갈치속젓에 알배기 배추, 젓갈 듬뿍 넣고 만든 파김치와 열무김치까지.

전이 나오기 전에 기본 찬을 먹고 있는데도 즐거웠다.

녹두는 주인장의 고향인 청산도에서 농사 지은 것으로 만든다는데

연둣빛 녹두 색이 진하게 올라오는 녹두빈대떡이었다.

기름기가 별로 없이, 채소들을 넣고 얇게 부쳐낸 녹두빈대떡.

깔끔한 것은 물론 느끼하지도 않고, 바삭했는데

기본 찬으로 내어준 갈치속젓이나 파김치와 열무김치와 같이 먹으니

끝도 없이 들어가는 게 아닌가!

남도 향 물씬 나는 막걸리집에 와서 홍어를 안 먹어볼 수 없었다.

홍어전을 시켰는데... 무슨 일인지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알고 보니 홍어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손질, 재료 준비를

주문과 동시에 하나하나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미리 준비해놓으면 맛도 없을 뿐 아니라 때깔(?)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나~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야 맛본 홍어전.

.. 그런데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충분히 되는 맛이었다.

홍어전을 성공했으니 홍어애탕도 괜찮으리라-

홍어애탕은 특별히 아끼는 음식 중 하나이다. 정말 특별한 맛!

애타게 기다려서 맛본 애탕은 역시나- 최고였다.

용산 하늘 아래에서 맛보는 남도의 맛과 향... 고향이 그리울 땐 문득 떠오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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