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14회 뚝심 있는 맛, 대전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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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관리자 조회수 4112

<뚝심있는 맛, 대전 밥상>


오늘의 목적지는 대전이다-

예전에 대전역에 내리면 기찻길과 기찻길 사이에 우동집이 있었는데-

기차가 서있는 시간,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그 동안 먹던

가락국수 한 그릇이 대전에 대한 유일한 기억이다.


다들 대전으로 간다니, 대전에 우동 말고 먹을 것이 무엇이 있냐고 묻는다-

사실 나도 우동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과연 대전하면 떠오르는 대전의 맛을 찾을 수 있을까


대전의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딱 봐도 연식 좀 있어 보이는 간판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한 쪽 가게는 가게 앞만 가도 쿰쿰한 냄새가 나고

다른 쪽 가게는 고깃집인 듯.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쿰쿰한 냄새에 홀리듯, 가게로 들어갔다.

역시나, 군내 나도록 숙성시킨 총각무로 오징어 찌개를 만들어 파는 곳이란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맛을 지키는 곳이라는데-

도대체 이 군내 나는 총각무로 어떤 음식이 나올지?


테이블에 앉아 아무리 직원들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할머니 밑에서 직원도 없이 딸과 며느리 둘이 일한단다.

몰려오는 손님을 받기 벅차 보인다.

조용히 그저 음식을 내주기만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나온 음식은 군내 나는 총각무 반찬 하나에, 오징어 찌개-

총각무는 한 입 먹고- 엄청난 군내에 이것이 사람이 먹는 음식인가? 하는 생각에 놀랐다

그런데, 옆 테이블은 모두 그 총각무를 찌개에 넣는 것이 아닌가.. 


나도 반신반의하며 그대로 따라했는데- 끓이다보니 찌개 맛이 점점 변한다.

찌개에 들어간 총각무의 쿰쿰한 맛이 얼큰하고 시원한 맛으로 변해

자꾸 숟가락을 부른다. 놀라운 변화다.


60년을 지켜온 군내 나는 총각무의 힘을 알았다.

뭐 먹을 거 있나?’ 했던 대전의 이미지가 바뀌었다







바로 마주보는 가게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놨더니-

함께 마주보며 50여년을 이어온 가게란다.

군내 나는 총각무만큼이나 강렬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고 바로 앞집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괄괄한 사장님의 목소리에 놀라고,

깨끗한 가게에 두 번 놀랐다.

고깃집인데 기름 때 하나 없이 번쩍번쩍 광이 난다.

53년이 된 집이라는데- 가게 분위기만 봐도 사장님의 성정이 보인다.


메뉴는 단 하나, 연탄에 구운 불고기 단일메뉴다

그 흔한 된장찌개 하나 없다. 이 집 사장 참 뚝심있다.

그런데 고기와 함께 나온 간장소스가 반전이다.

무조건 먹으면 기침이 나는 소스인데- 자꾸자꾸 손이 간다

고기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는 중독성 있는 맛에

자꾸 기침을 하면서도 손이 간다.


도대체 무엇이 들어갔는지 묻는데딸한테도 안 알려준 비법이라며

끝끝내 저어하더니나중에는 몰래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여

비법 소스의 재료를 알려줬다


그런데- 마이크를 타고 감독에게도 들어가는 바람에

딸도 모르는 비법을 애먼 감독이 알게 되었네? 하하








지금껏 몰랐던 대전의 맛을 알게 해준 두 집이었다.


골목 사이에 숨은 식당이 있어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이 줄을 늘어선 것을 보니, 내공이 있어도 보통 내공이 아닌 것 같다

들어서니 모두들 <두부 두루치기>에 술 한잔 나누고 있다.

지역마다 다양한 두루치기가 있는데, 대전은 그중에서도 두부 두루치기가

유명한 지역이란다. 그 두부 두루치기의 원조가 이 집이라고 한다.


1대 사장님이 포장마차에서 안주 팔다 손님들이 두부에 양념을 해오라 해서

만들어졌다는데, 그 맛이 강렬하다.

내 입맛에는 조금 매운데- 단맛 없이 매운 맛이라 부담스럽지 않다.

멸치 육수로 두부를 데쳐내 고소한 맛도 남아있으면서 매운맛과 잘 어우러진다.

술 안주로 정말 그만이다.






대전하면 칼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6.25 이후 미군이 밀가루를 원조해주며 칼국수 요리가 널리 퍼졌다.

그러다보니 변형된 이색 칼국수도 있다.

바로 비빔칼국수다. 칼국수에 질린 손님들이 양념장을 좀 섞어달라해서

탄생한 음식이라는데, 쫄면 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식감도 재미있고 양념은 단맛없이 새콤해서 입맛을 당긴다.

걱정했는데, 달지 않아 참 좋았다.





밤 거리 대전을 걷다, 불 밝힌 포장마차를 발견했다.

지나치려 했더니 가락국수를 판다는 글귀를 보고 그대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혹시 내가 기억하던 그 가락국수일까 하는 생각에 앉았는데-

대전에서 포장마차만 40년을 한 집이란다


대전기찻길 사이에서 먹던 가락국수보다 훨씬 맛있어 오히려-

추억은 덜했지만 밤에 포장마차에 앉아 먹는 분위기로도 충분한 집이다






대전의 주택가를 지나다 숨은 간판을 발견했다.

여기도 식당이 있을까? 하는 골목이었는데- 주택을 개조한 식당이 하나 있었다.

큰 주택을 그대로 개조해 작은 방, 큰 방, 방마다 문을 여닫을 수 있었는데,

문 닫고 비밀 이야기하기 딱 좋은 구조였다.

사장님에게 물어보니 역시나-예전에 정치인들이 자주 찾아

나라의 대소사를 논하던 곳이란다


과연 어떤 음식이 나올까 기대가 됐다.

높은 사람들이 먹던 음식이면 뭔가 비싸고, 귀한 음식이 나오지 않을까?

처음에는 갓 만들어 내온 따뜻한 동부묵이 나왔다.

따끈한 간장소스에 부들한 묵으로 부드럽게 속을 달래고

갓 부쳐 바삭바삭한 해물전으로 허기를 달랬다.

과연 메인 메뉴는 무엇일까 기대하는데- 콩나물탕과 콩나물밥이 나왔다.

알고 보니 콩나물밥으로 유명한 집이란다


밥도 인원수에 맞춰 갓 지어 나오는데-

고슬고슬 윤기나는 밥에 숨이 죽지 않아 아삭한 콩나물을 더하니

그 맛이 그 어떤 귀한 음식에 못지 않았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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