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저녁 7시 5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5회 반전 매력의 기찬 맛 - 강화도 밥상
  • 페이스북
  • 트위터
  • 이메일보내기
  • URL복사
2019.06.28관리자 조회수 7848


다섯 번째 백반기행.

이번엔 반전이 있는 강화도 밥상이다.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낫다는 말을 들었다.

나보고 40대 같다고 한다.

그냥 하는 말인 줄 알면서도

자꾸만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길이 없다.

칠순이 넘어도 잘생겼다는 말은 기분이 좋다.

......아니, 그런데 내가 화면발이 그렇게 별론가





20년 동안 한자리에서 같은 메뉴를 팔았다는 명성을 듣고 찾아간 집.

메뉴 이름이 참 정직하다.

순두부새우젓찌개라니, 주문하기도 전에 뭐가 들었는지 다 알아버렸다.

특별한 거 없는 조합이라 별 기대를 안했는데

국물을 맛보고 성급한 판단을 후회했다.

두부는 고소하고 국물은 개운하고 시원하다.

내입에 너무 맞아서 체면 불고하고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주인장에게 간을 비결을 물었더니

따로 양념을 하는 게 없고, 간도 하지 않는단다.

직접 만든 순두부에 3년 숙성시킨 중하새우젓을 넣는 게 끝.

중하새우젓이 요술이라도 부리는 걸까.

단 두 가지로 이렇게 기막힌 맛을 내다니,

나만 알고 싶은 집이다





이맘때 10일 정도만 잡힌다는 귀한 녀석 곤쟁이

주인장은 서비스라며 곤쟁이가 잔뜩 들어있는 뚝배기를 내민다.

곤쟁이 찌개다.

한 수저를 뜨면 곤쟁이 백 만 마리가 딸려 올라온다.

감히 미안해서 못 먹겠다, 하고는 호기심에 한 수저를 떴는데...

내 입에 딱이다.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게살과 새우젓의 중간 맛이랄까. 국물도 시원하다.

새로운 맛을 발견했다



 


강화에서는 흔히들 바다를 떠올리는데,

군데군데 37개의 저수지가 있어 민물낚시의 성지로도 불린다.

저수지를 지나 시골길 끝에 있는 종갓집을 찾았다.

80년 전에 평안도에서 3년에 걸쳐 실어온 기와로 지붕을 올렸다는데

고택 분위기가 참 고풍스럽다.

종부에게 시래기붕어찜을 주문했다.

붕어는 잔가시가 많아 먹기 번거로워 즐기진 않는 편인데

이 집은 압력솥에 쪄 붕어 등뼈까지 물렁하다.

열심히 먹는 나를 지켜보던 옆 손님이 참견을 한다.

시래기로 붕어를 돌돌 싸서 국물에 적셔 먹거나

국물에 밥을 비벼 먹으면 더 맛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먹으니 먹는 재미도 있고 맛도 있다.

이 맛있는 방법을 왜 이제야 알려준 것일까




한옥에서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는데,

식객 김영란 씨가 갑작스럽게 캐리커쳐를 부탁한다.

여자들은 보통 과장되게 그린 캐리커처를 보고 상심하는 경우가 크다.

그래서 잘 안 그려주는 편인데, 어찌어찌하다가 커다란 눈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에 안 들어 하면 어쩌나, 잔뜩 긴장했는데

영란 씨가 폭소를 터트린다.

영란 씨는 알까? 주름살 10개 정도 빼고 그렸다는 것을 말이다





14대를 내려온 고택의 대표음식.

시래기를 삶아 얹고 찐 붕어 3마리.

붕어뼈는 센베이 과자같이 입안에서 부서진다.


인삼 밭 너머에 덩그러니 자리한 백반집.

점심시간이 100미터 밖까지 소란스럽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 일꾼들이 저 집으로 몰려간 걸까.

점심 장사만 하고 밥 떨어지면 그날 장사 끝이라는 소리에

얼른 합석을 청했다.

옆 자리 반찬을 슬쩍 보니 처음 보는 반찬이 있다.

삼꽃으로 담근 장아찌라는데 쌉싸래한 인삼 맛이다.

인삼밭 농부들은 버리는 물건인 인삼꽃대로 장아찌를 담근다는 건

칠십 평생 상상도 못해본 일이다.



주인장이 앞 논에서 잡은 우렁이로 무침 반찬을 내왔다.

조미료는 하나도 안쓰고 송홧가루와 하얀 후춧가루, 배즙으로 버무렸단다.

논우렁무침 하나면 밥 한 그릇을 다 비울 수 있을 정도로 맛있다.

쫄깃하고 씹을수록 고소하고 달다.

겨우내 소금에 절인 무로 만든 무짠지 냉국도 내 입맛에 잘 맞는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모르는 시골 맛이랄까.

반찬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농부들의 땀을 식혀줄 초여름 밥상이다.

나는 촌놈이라 그런가 이런 반찬이 참 좋다






난생 처음 맛보는 새 반찬.

삼꽃을 따서 설탕에 발효시킨다.

서울 시내의 밥과는 차원이 다르다.

오랜만에 맛있는 밥을 맛봤다.



밴댕이가 제철이다.

포구에서는 밴댕이가 속속 들어오고 어판장에서는 너도나도 밴댕이회를 주문한다.

밴댕이는 가시가 많고 기름기가 많아 별로 선호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집을 부리면 안 된다.

대세에 따라 밴댕이회를 주문했다.

강화도에 촬영 가자고 할 때부터 밴댕이를 먹겠다 싶어

직접 담근 막걸리 식초를 챙겨왔다.

된장과 식초를 섞어 장으로 쓰면 비린내나 기름진 맛을 잡을 수 있기 때문.

식객 영란 씨가 기름기를 안좋아하길래, 자신 있게 식초를 꺼냈는데...

아차... 식당에 된장이 없다.

구할 수 있는 게 쌈장뿐이라 쌈장 막걸리 식초장을 만들었는데...

식객 허영만이 최초 공개하는 나만의 장.

그 맛은 방송으로 확인하시라.


그나저나 영란 씨에게 배운 젊게 사는 비결, 풍욕은 실천을 못할 것 같다.

아무리 집이라지만 옷을 다 벗고 있으면

아내에게 한소리가 아니라 열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강화에서의 마지막 백반은

45년 동안 강화읍내의 아침을 책임진 집이다.

백반은 정갈한 반찬이 열한가지가 나오고

닭곰탕은 6천 원이라는 가격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닭고기가 잔뜩 들어있다.

강화 읍내 사람들은 참 복 받았다.




식당 안은 그야말로 작품 천지다.

주인장과 함께 나이든 45년 된 양푼이며 일제 강점기때 쓰던 길이가 짧은 젓가락,

세월의 더께가 앉은 그릇 모든 게 다 작품이다.

주인장만 인심이 좋은 줄 알았는데, 손님들도 인심이 좋다.

옆자리 단골 노부부가 나를 보더니 서울에서 왔다고 밥값을 대신 내주신다.

손님들이 모두 단골이라기에 몇 년 단골이냐고 물었더니 코웃음을 친다.

큰 실수를 했다.

이 집에서는 몇 년 단골이세요?’라는 질문이 의미가 없다.

몇 십 년 단골이냐고 물어야했다.

사람이 수십 년씩 이 집을 찾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내가 이집에 가본 바로는

아마도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 손님을 배려한 정성과 정갈한 솜씨가 아닐까.

나도 강화에 갈때마다 들르게 될 것 같다.






댓글 0

(0/100)
  •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