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프로그램 이미지

교양 매주 일요일 밤 9시 10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

식객 허영만이 소박한 동네밥상에서 진정한 맛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프로그램

백반일기

백반일기
4회 '단디' 차린 - 부산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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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6관리자 조회수 7009

<'단디'차린 부산 밥상>



네 번째 백반기행.

이번엔 단디~’차린 부산의 리얼 밥상이다.

나 때는 말이야~’ 소리 하면 요즘 친구들이 노땅이라고 하겠지만

정말 내 시대엔 어디 가서 키 작다는 소리는 못 듣고 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백반기행 식객들이 다 길쭉한 젊은 친구들이다.

이 나이에 깔창을 깔 수도 없고 이거 참 난감하다.

다음에는 입맛 맞는 식객이 아니라 키가 맞는 친구를 불러야 하나




이번 부산으로 백반기행을 오면서 꼭 돼지국밥한 그릇은 꼭 먹고 싶었다.

영도 길을 걷다가 가마솥을 발견했다. 고기를 삶고 있단다. 역시 돼지국밥집.

백반기행에 걸맞게 국물과 돼지고기를 따로 주는 수육 백반을 시켰다.

돼지고기는 항정살과 목살, 앞다리 살을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을 반반으로 잘 삶아냈고,

국물을 누린내 없이 걸쭉했다. 군더더기 없는 밑반찬들까지- 마음에 들었다.

집 앞에 이런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다를 가면 옛날부터 마음속에 품은 로망이 하나 있다.

아침 일찍 바다를 바라보며 신선한 해산물과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

술 좀 마신다는 주당들은 바로 공감할 것이다.

영도에 그런 곳이 있다고 해서 가봤더니, 해녀들이 있다!

제주에서 건너온 물질 경력 50년은 족히 넘은 해녀들이

망태기를 터니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이 쏟아져 나온다




갓 잡아 온 해산물로 샤샤샥 하더니 순식간에 한 상이 차려졌다.

어찌나 해녀들의 손이 빠른지 사진 찍을 타이밍을 놓쳤다.

멍게, 문어, 해삼, 소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여기 다 모였구나.

해산물을 초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게 참 맛.

방금 바다에서 잡아 온 걸 물로만 헹군 거라

양념을 찍지 않아도 간이 딱 맞는다.

신선한 해산물에 바다를 바다 보며 맛보는 소주 한 잔! 잊지 못할 거다



 

72, 83세 할머니들이 물질을 한다.

힘이 넘친다. 그래도 여성들이다.

해녀복을 벗고 나왔는데 그새 화장을 했다.


오이소~보이소~사이소정겨운 부산 사투리가 오가는 곳.

진정한 부산 아지매를 만날 수 있는 자갈치 시장이다.

시장 안 생선구이 골목으로 향하니 소리가 먼저 반긴다.

널따란 철판 위에서 꽤나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생선.

일단 소리부터 맛있다. 부산까지 왔는데 생선구이를 빼놓을 수 없지 않겠나






2만원 하는 작은 걸 시켰더니 빨간 고기, 갈치, 가자미 등 4종류나 나왔다.

양이 많아 손으로 들고 먹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이 중 빨간 고기는 어려운 시절 부산 사람들이 자주 먹던 생선이라고 한다.

옛날 억척스러운 부산 엄마들이 값싼 빨간 고기를 사려고 자갈치 시장을 찾았었다는데

지금은 오히려 귀한 생선이 되었다.

식탁을 가득 채운 생선구이와 매운탕, 갖가지 반찬들.

단순히 여행 왔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부산의 리얼 밥상이다. 




빨간 고기, 갈치, 가자미가

한 접시에 나왔다.

맛의 비교는 한곳에 모아놓고 먹었을 때

차이가 난다.


밀면, 회냉면은 많이 먹어봤어도 회국수는 처음 들어본다.

알고 보니, 비빔국수에 가오리 회를 올려주는 거였다.

주인장이 알려준 대로 가오리 회’, ‘미역을 국수랑 돌돌 말아 한 입에 호로록 먹어봤다.

바다 향과 매콤달콤한 비빔국수가 어우러지니 낯설면서도 친숙한 맛이다.

저렴한 국수 한 그릇에도 회를 듬뿍 얹은 회국수를 보니

음식도 부산 사람들 특유에 야무진 성격을 닮은 거 같다.




밤이 되니 부산의 거리에 낮과는 다른 활기가 넘친다.

남포동 후비진 골목 안 60년 된 오래된 노포를 찾았다.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들.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이끌리듯 들어갔다.

이 집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단 시킨다는 스지어묵탕’.

어려운 시절, 값싼 스지와 부산의 명물 어묵을 넣고 끓인 것이

지금의 스지어묵탕으로 변형된 것 같다.

지금까지 어묵탕은 그저 술안주라고만 생각했는데 스지를 넣으니 식사로도 충분할 듯하다.






노가리와 먹태는 마른안주가 생각날 때 종종 먹는 술안주다.

부산 사람들은 마른안주로 나막스 구이를 많이 먹는단다.

노릇노릇 구운 나막스를 맛보니 냄새도 안 나고 살이 퍽 쫄깃하다.

스지어묵탕이랑 나막스 구이를 먹었지만 분위기가 좋아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메뉴판을 보자마자 궁금했던 다타키를 시켰다.

다타키는 일본말로 두드린다는 뜻.

껍질만 벗긴 광어를 뼈와 살을 두드려서 양념에 버무려 만든 음식이다.

광어로 만든 다타키는 처음 맛봤는데 보물섬 하나 발견한 기분이다.

배가 부른데도 밥을 시켜서 비벼 한 그릇 뚝딱 비웠다.

미처 몰랐던 부산의 맛을 단디하게 먹어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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