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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매주 토요일 밤 10시 30분

강적들

대한민국 최강! 센 캐릭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품격과 저품격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사 쇼!

시청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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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 하늘이 종교를 탄생시킨 이유 ㅡ단군의 가르치심이 중국에 가서 유교가 되고 남방으로 가서 불교가 되고 곤륜산으로 가서 선교의 명(明)이 되었다ㅡ(봉우권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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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31김정훈 조회수 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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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1984년 소설 `단`의 실제주인공이며 일명 우학도인으로 널리 알려졌던분입니다... 

 어릴때부터 단전호흡을 배웠으며 천문 지리 의학에 도통하셨음. (1900~1994년 작고)


 

ㅡㅡ봉우권태훈옹 말씀 ㅡㅡ 


 ㅡㅡㅡㅡ 하늘이 종교를 탄생시킨 이유 ㅡㅡㅡㅡㅡ


옛부터 지금까지 유사 이래의 일들을 살펴보건대

그때 그때 그 지역에서 정치를 장악한 인물이 반드시 성현군자도 아니요,역시 영웅호걸도 아니다.

당시당시의 인물 정평을 하자면 등급으로 보아서 4류,5류의 인물들이 흔히 정권을 잡고 호령천하하는 일이 상례가 된다.

간혹 가다가 등급으로 보아 우수한 인물이 집정할 때에는 성세니 치세니 하는 것이다.

 

유사이래로 치사가 그다지 많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고대는 군주정치라 더 말할 것도 없으나, 근대의 민주제에도 그 선거라는 것이 가장 유능한 인재를 선출한다고 누가 확정할 것인가.

 

그저그런 제도로 그저그런 인물이 선출되어 그 지역 그 민족의 역사를 장식하는 것이다.

그 나라 그 민족의 운이 전개되려면 좀 우수한 인물이 집정하게 되고 그 운이 비색하다면 부족한 인물이 집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보충하기 위해서 하늘이 간간이 성자를 내시어 현 정치법률권을 초월해서 도덕으로 인간의 양심을 복돋워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라고 한다.

 

그러나 말류지폐(말세의 폐단)는 그 종교라고 하는것이 정치에 이용되어 양육강식하는 도구화할 수도 있는 것이요, 

또 그런 예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종교의 본의는 동서고금의 인목(임금을 이르는 말)들의 부족을 정신도덕으로 보충해서 인간으로서 죄과의 와중에서 벗어나 

선량한 인간으로 각자가 스스로 수양하면 비록 인목의 부복이 있더라도 자연적으로 태평극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인데, 

아직 그 본의에 도달하지 못해서 각파 종교들은 혜안으로 우주사를 통관지 못하고 각립일호(서로 하나의 문호를 세움)하고

각축장벽(각기 장벽을 세움)종주론과 배타론으로 자시(자기가 옳음)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그래서 인목들의 부족을 보충하는 것보다 각자의 부족도 시정 못하는 것 같다.이것이 말세의 인간으로서 누구나 당하는 일이다.

 

만약 세계에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그 민족 그 국가에서 최고로 우수한 인물들이 선출되어서 

자상달하(위로부터 아래로 통달함)로 각자의 정치에 진출한다면

세계는 자연 평화스러워질 것이나, 현 세계 어느 나라나 그 선출이 오십보 백보의 차에 불과해서

전인류는 다 같이 불안 속에서 태어나 불안 속으로 사라지고 잇는 것이 현실이며 그런 때이다.

그러니 이 세상을 고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현 종교만 믿고 세계인류의 평화를 고대할 수 없어서

종교를 초월한 전세계 인류 공통의 도덕 함양 정신을 선전해야 할때이다.

 

미국식 자유주의의 자본 만능으로 인류를 마비시키는 것이나

소련의 전체주의적 공산 만능으로 전인류를 공포속에 허덕이게 하는 양대 오점을 단연 배격하고

세계일가로 평화극락의 대동정치를 도덕으로 통일해서 우주 재창조를 선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유뮬유심 이원론을 시정해서 물심합일론을 주로 하여 정신과 육체가 다 평온하게하여 영생할 수 있는 이념을 확립하고

미소 양대 조류의 왜곡을 시정시키는 것을 우리민족의 책임으로 전인류에게 선포하자는 것이다.

 

계묘(1963년) 11월28일 봉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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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각각의 종파(宗派)들이 가르침의 문을 열고 "내가 가르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아전인수(我田引水)를 하니 

누가 그들의 올바름과 그름을 알 것이며 비록 올바르다 하여도 우리가 걷는 방향과 같은 방향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길의 종류는 천지개벽(天地開闢)에서 다음 개벽까지 몇 차례를 지나도 변하지 않을 길이 있고 가다가 몇 번이고 변할 길이 있다.

 

  대륙간에 통하는 길이 있고, 육대주 오대양의 공로(公路)가 있고, 국가간에 통하는 깃이 있으며,

한 나라에는 그 나라의 국도(國道)가 있는 것이다. 도(道), 군(郡), 면(面), 리(里)에 각기 모두 통로가 있으니 어느 길이 길 아니며, 

어느 길로 가든지 못 갈 길이 있으리요만 내가 말하는 것은

태양의 적도(赤道)와 달의 황도(黃道)와 같은 불변의 길을 말하고자 함이다.

 

  오천 년 전의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우주 역사 이래 처음으로 동방(東方)의 임금이 되신 단군성조(檀君聖祖)께서 백두산에 내려오셔서 

혼원천지(混元天地, 하늘과 땅의 질서가 아직 서있지 않은 혼돈 상태)의 민족의 첫 임금이 되시고

"위로는 하늘을 받들고, 아래로는 땅을 내디디며, 그 가운데 사람이 존재한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가르침을 베푸셨으니

이것은 천부경(天符經)의 '일시무 무종일(一始無 無終一하나는 없음에서 비롯했고 없음은 하나에서 그친다)이요,

 

  단군 성조의 이러한 가르치심이 

 

■ㅡ중국에 가서 유교(儒敎)가 되어 "가운데에서 사망으로 흩어져 만물을 이루고,끝에서 다시 모여 

하나의 이치가 이루어진다(中散爲萬象 末復合爲一理)" 라고 유정유일(維精維一, 오로지 하나로 사무침)로 가르치는 법이 되니

 역시 천부경(天符經)의 '일시일종(一始一終)'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ㅡ이 가르치심이 남방(南方)으로 나가서 불교(佛敎)가 되니

이 천부경의 '무종일(無終一)'이라는 것을 그대로 가르치심이요, 허무적멸(虛無寂滅)이 모두 그 무(無)자를 일컬음이다.

 

■ㅡ또 그 가르치심이 곤륜산(崑崙山)으로 가서 선교(仙敎)의 명(明)이 되니 이 명(明)은 또한 천부경의 본태양(本太陽)의 앙명(昻明)이라는 뜻이다.

 

 

  그 외에 많은 길들이 있으나 모두 아전인수(我田引水)하는 가르침이요,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점이 많을 것이다...

(특히 기독교의 아전인수(내가 내요하는 고집)가 정말 심각함ㅡ본인생각)


다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가장 걷기 쉬운 길, 오천 년이나 우리 조상들이 걸어오신 길, 알고도 걷고 모르고도 걷는 이 길을 유(儒)라고도 하고,

선(仙)이라고도 하며 불(佛)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이 가르치심의 근본은 바로 삼일신고(三一神誥)였다.

이 가르치심을 억지로 이름 붙여 수도(修道)라 한 것이다. 

그러나 이름이 생기면 장단(長短)이 생기니, 그저 우리는 도(道)라고만 해두자.

이 가르치심을 가지고 말씀하신 이가 성조단군(聖祖檀君)이니 단군은 우리의 대황조(大皇祖, 큰할배)요, 우리의 종교상 교조(敎祖)는 아니시다.

 

(참고로 일제때 임시정부 독립투사들이 거의 다 단군을 모셨던 대종교 출신들입니다)

 

  우리의 교조(敎祖)로는 일기화삼청(一氣化三淸) 하고 삼청화일기(三淸化一氣) 하는 혼원일기(混元一氣, 무엇이라고 형용할 수 없는 태초의 한 기운)를 숭배하고, 

이 교를 받드신 대황조(大皇祖)는 여전히 대황조로 우리가 같이 숭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세상에서는 대황조를 대종교(大倧敎)의 교조(敎祖)로 모시나 우리는 대황조를 당시의 사람으로서 하늘의 가르침을 받드신 분이요,

우리 민족종교의 교조라면 당연한 태극, 무극, 유극(太極無極有極)의 원리인 혼원일기라고 본다.


우리의 교리는 삼일신고를 주로 하되 우리가 보고 알게 해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 교(敎)는 우리만이 걷는 노정(路程)이 아니요,

우주에서 움직이는 군생만물(群生萬物)들이 모두 걷는 대도(大道)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그 가르치심은 과거만도 아니요, 현재만도 아니요, 미래만도 아닌 과거무량수겁(過去無量數劫) 전에서 시작한 것이요,

미래무량 수겁(未來無量數劫)에도 그 끝이 없을 대도라는 것을 거듭 이야기해 둔다.

 

 

  이 교리는 문자화하지 않는 것이 종리(宗理)이나, 부득이 세상 사람을 상대할 교리가 멀지 않은 장래에 세상에 나올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민족종교는 이 가르침으로 정하고 종교의 믿음은 당연히 자유인 것이다. 비록 믿음의 자유가 있어서

이 길 저 길로 가더라도 평탄한 길과 험난한 길이 있는 것이고, 누구나 장래에는 모두 평이한 길로 올 것이니

이 길 저 길의 차이를 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걷는 길이나 황폐하지 않도록 옛사람의 큰 도를 다시 우리의 손으로 수도(修道)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가 과거에 태어났다면 이런 대도(大道)의 갱생(更生)을 보지도 못하였을 것인데 다행히 오천 년 개벽 대운(大運)에 났고,

우리가 남쪽이나 서쪽이나 북쪽에 나지 않고 바로 이 동방(東方), 그것도 대황조를 받듦이 있는 데서 나고 시기적으로도 우리 마음대로 

이 길을 걷더라도 왜 그 길로 가느냐고 책할 사람 없는 이 때, 이 때에 난 것만이 우리의 다행한 일이요,

우리가 이 다행한 자리에 났거든 누구든지 이 길을 다시 닦아서 우주화(宇宙化)시키는 것이 우리가 이 땅, 이 때에 난 값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 때에 났더라도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있다가 가면 무슨 다행한 일이라고 할 것인가.

우리가 여기서 맹세코 단결하여 이 길을 닦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 길이 가장 큰길이라 우주에서 상대가 없는 큰길이니

이 길을 걸어 보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걸어온 길이 대도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이 길은 육해공(陸海空)을 물론하고

우주의 역사가 있는 이래로 그 크고 넓음을 측량할 수 없는 길이다. 이 길을 걸어보면 내가 목적하는 곳을 못 갈 리 없는,

성공 못할 리 없는 평탄한 길이요, 다른 길과 같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찾기 힘든 길이 아니요, 한 길로 가서 묻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대도(大道)가 아니고 무엇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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