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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3윤복현 조회수 385



고구려와 백제를 만든 한민족사의 여걸 소서노



고추모와 고구려를 향한 소서노의 사랑과 헌신은 위대하여라!비류.온조와 백제를 향한 소서노의 사랑과 헌신은 위대하여라!스스로 헌신하고 양보하니 한민족사에서 큰 영광이 되었도다!민족사도 모르면서 정치한다면서 권력욕에 눈 먼 졸장부들은 소서노의 통 큰 정치행위를 본받으라!대의와 원칙만이 대장부의 길이다.


동아시아 바다와 동아시아 대륙을 차지하는 위대한 고구려.백제라는 2개의 나라를 세운 통 큰 여걸은 우리 민족사에서 없었다.


한 남자를 향한 사랑과 자식들을 크게 만들기 위한 위대한 모성을 배우려거든 소서노에게서 배우라!기득권을 포기하는 위대한 통합정신을 배우려거든 소서노에게서 배우라!


고추모를 도와 고구려를 세운 소서노는 유리와 예씨부인이 고추모에게 돌아 오자,형제들끼리 피비림내나는 권력투쟁을 피하고 고추모와 자신이 일군 고구려를 유지시키기 위해 소서노는 비류.온조를 데리고 고구려를 떠나 단군조선 당시 진조선과 번조선의 경계지역인 지금의 대릉하 지역으로 이주하여 10년간 무역를 하여 크게 돈을 벌어 비류에게 주기 위해 나라를 세웠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고구려국 본기에서는 소서노가 추모왕의 신하되기를 청하여 '어하라'로 책봉되었다고 하였다.

어하라는 소서노 땅에 내려진 고구려 제후국이다.



고구려 추모왕이 소서노의 땅을 고구려의 속국으로 인정했다는 말이 된다.이 어하라의 왕에 오른 이가 비류다. 그리고 소서노는 온조와 함께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와 마한왕의 승인을 얻어 서울에 도읍하고 십제라 한 것이다.[삼국사기]비류가 어하라 왕이 되자 백성들이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한단고기]아마도 유리때문에 고구려왕이 되지 못한 비류의 분노의 칼이동족인 고구려에게 향했기 때문에 고구려개국에 동참했던 신하들이나 백성들이 비류를 따르지 않았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비류가 죽자 비류의 신하들과 백성들이 온조를 찾아와서 땅과 나라를 바치게 되었다.그래서 백제가 되었다.[한단고기]

백제사에서 근초고왕때 백제는 갑자기 강성해져 마한과 가야를 일거에 복속하고 요서로 진출하게 된다. 북방 기마세력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온조왕통속으로 기마세력이 들어 왔다는 반증이다.그 시기가 바로 중앙집권화를 실현한 고리왕 시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사로국의 경우도 4-5세기 동해안을 타고 들어온 기마세력(모용선비족)으로 인하여 망하고 신라로 교체된 것이다. 신라는 통합차원에서 박혁거세를 개국시조로 삼은 것이다.


백제도 마찬가지다.온조왕통속으로 들어온 부여의 기마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온조를 개국시조로 인정해 준 것이다.제사의 대상인 시조가 동명왕에서 구태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이를 명백히 증명한다.


구태백제(仇台百濟)는 부여왕 위구태가 부여 무리를 거느리고 한반도로 이동하여 세운 나라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百濟本紀)에는 구태(仇台)가 대방고지(帶方故地)에서 백제(百濟)를 세웠다고 적혀 있다. 방송에서 비류왕이 대방고토는 백제땅이다라고 선포한 이 대방고토는 후한의 요동태수 공손탁(公孫度)의 아들 공손강(公孫康)이 A.D 204년경에 지금의 황해도 지방에 있던 조선유민의 나라 대방국을 무너뜨리고 설치한 대방군(帶方郡)이다. 강성해진 고구려와 전쟁을 벌이던 후한이 고구려의 후미를 치기 위해 조선유민의 나라 최씨 낙랑국 지역에 설치한 군이 낙랑군이다. 이런 후한의 군을 전한의 한4군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한이 위만조선이 망한 요서지역의 한4군과는 무관하다. 후한의 요동태수 공손탁 역시 자신의 딸을 구태와 혼인시켜 서부여왕이라 칭했던 구태세력을 고구려를 견제하고 공격에 이용했던 것이다. 당시 고구려가 그 만큼 성장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구태백제는 광개토태왕비에 '이잔'와 '왜' 로 기록되어 있고, 온조백제(비류백제와 통합)는 [백잔]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광개토태왕비문과 한단고기 기록에 따르면 광개토태왕은 백제한성과 웅진(공주)을 중심으로 충청도지역을 수군으로 공격하고 속리산에서 하늘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백제한성은 온조백제세력의 중심지고, 웅진은 구태백제세력의 중심지임을 알 수 있다. 구태백제는 웅진을 중심으로 전라도지역과 일본열도를 복속시켰고, 온조백제까지 통합하여 온조왕통이 구태백제계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근초고왕부터 강력한 정복국가의 특성이 나타나고 백제왕의 성씨가 부여씨로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이후 백제의 정치조직 안에는 유목국가에서 흔히 보이는 직제(좌·우현왕제)라든가 ‘어라하’, ‘건길지’ 같은 북방 유목민 계열의 호칭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를 본다면 백제는 부여의 분국 또는 남부여 그 자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덤양식의 변화 또한 이를 확실히 반증한다. 고구려에서 나온 온조세력의 무덤이 적석총이라면 구태세력의 무덤은 전방후원분이다. 한반도서남부 해안지역과 일본열도가 전방후원분으로 분포되어 있다. 일본왕들의 대형 무덤이 전방후원분이다. 서울 강동구 한강변에서도 대형 전방후원분 10여기가 발견되었으나 산이라며 은폐하고 있다.



소서노를 국조모로 삼은 온조는 시조을 동명왕으로 삼고 제사지냈다. 동명왕은 부여5대 왕 고두막이다. 고두막은 소서노의 할아버지다. 보통 소서노를 상인 연타발의 딸로 인식하고 있는데, 소서노는 고두막의 아들 고무서의 차녀로서 남편 우태와 사별한 여성이였다. 우태는 해모수의 손자로 동부여(가섭원 부여)의 개국시조 해부루의 서손이다.


동부여에서 골본(환인)으로 망명해 온 고추모은 고무서 단군에게 아들이 없었음으로 남편과 사별한 차녀 소서노와 혼인을 하고 부여7대 단군에 직위하게 되고 온조도 낳게 된다.
비류는 사별한 남편 우태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고추모는 남하하여 압록강지류 혼강(비류강)위 골본성(지금의 오녀산성)을 수도성으로 삼고 조상의 나라이름인 고리라 하였다. 고리는 코리.구려다.고려다. 고씨의 나라다 보니 앞에 고를 붙여 고고리,고구려가 된 것이다. 통상 고구려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때문에 광개토태왕비문에는 "북부여에서 나왔다."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북부여는 단군조선을 이어 고추모 할아버지 해모수가 세운 나라다.이후 한나라침략을 물리치고 민심을 얻은 고두막이 해모수왕조를 접수한 것이다. 그리고 해모수 손자 해부루는 부여의 동쪽지역에 부여제후로 봉해진 것이다. 이 제후국이 바로 해부루의 동부여다.

고추모의 혈통이 해모수의 손자이다보니 부여의 단군 고무서가 자신의 딸과 혼인을 시켜 부여단군에 직위시킨 것이다. 그러나,고무서는 고두막의 아들로서 고추모에게 단군직을 물려 주었으나,고두막을 개국시조로 삼는 부여인들은 고추모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래서 고추모를 부여에서 내쫓으려 했던 것이다.그러니까 고추모가 고구려를 개국하기까지 여정을 보면 동부여(길림)=>골본부여(환인)=>상춘으로 천도를 한 것이다. 반고구려 부여세력은 북진하여 길림에서 부여를 재건하니 한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에 대항한 부여이며 선비족에게 망한 부여다.이 부여왕 구태세력이 남진하여 온조왕조를 빼앗아 동아시아 해상강국을 건설한 백제다.

고추모는 해모수의 손자이며 옥저의 제후였던 불리지의 아들로 태어나 미혼모 유와와 함께 고생 고생하다가 친척나라되는 동부여 해부루에게 찾아가 의탁하게 된다. 이후 해부루의 양아들 금와왕이 즉위하게 되자,금와왕의 자식들인 대소왕자가 혈통적으로 부여황통을 잇고 있는 뛰어난 고추모를 죽이려 했다. 그래서 동부여를 떠나 골본부여(북부여)로 오게 된 것이다.



나이차이에도 소서노는 고추모가 첫눈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떠돌이 고추모에게는 큰 세력이 없었다. 그래서 나라를 세운다는 자체가 어려운 여건이였다.그러나 소서노는 부여의 공주로서 가능했다.그리고 부여단군에 오른 고추모 또한 정통성이 있었기에 동부여를 떠나 환인지역으로 내려 올 때도 무리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동부여와 고구려의 적대관계는 그래서 생긴 것이다. 결국 고구려 대무신왕 당시 동부여는 고구려에 복속되었다.


온조 십제를 통합한 부여기마세력이 바로 동명(고두막)의 후예로 지나문헌에 기록한 구태의 세력이다.그래서 고구려와 백제가 부여의 정통성을 놓고 치열하게 싸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비류.온조.구태세력은 고두막의 손녀 소서노를 중심으로 단결할 수 밖에 없었다.

유리와 예씨가 고추모를 찾아 왔다. 소서노는 형제끼리 권력투쟁으로 고추모와 세운 고구려가 망하기를 원치 않았다. 아들들을 데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다.그리고 10년간 발해만 지역에서 크게 무역을 하여 부자가 되었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그 나라가 바로 비류에게 물려 준 어하라이다. 그리고 소서노는 고추모에게 제후국이 되겠다고 간청을 하게 된다. 그러니 고추모가 기뻐하고 어하라가 했던 것이다. 소서노는 사랑하는 남자 고추모에게 모든 것을 바친 여성이였다. 소서노는 고추모의 꿈을 이해했기 때문에 고추모가 잘 되기를 바랬다. 자신이 양보하고 헌신했던 여성이다.한국의 여성들이 배워야 할 사랑의 표본이다.



어하라를 비류에게 준 소서노는 다시 온조와 함께 마한땅으로 들어와 한강변에 나라를 세우니 십제다. 소서노는 두 아들에게 모두 나라를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어머니로서도 최고의 여성이라 할 것이다./저작권자 윤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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