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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말 발굽 아래 짓 밟히게 될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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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1장의순 조회수 3221

“수양대군”의 비참한 최후(말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와 운명의 수레바퀴]




역사의 말 발굽 아래 짓  밟히게 될 인간들...



계유정란 1453년(단종 1년 계유년)에 일어 난 피비린내 나는 정변 즉, 정권 찬탈 사건이다.


이 정란은 당시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수양대군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 칠삭둥이 한명회(자준)를 그 “설계자”로 하여 구상하고 실현, 성공했던 정치변란 사건, 요즘 말로 “쿠테타 사건”이었다.

  

수양대군은 우리 역사의 성군으로 기록되고 있는 세종대왕(조선 제4대 임금)의 둘째 아들이며 조선 제5대왕 문종 임금의 큰 동생이다. 수양대군의 형 문종(조선 제5대 임금)은 아버지 세종의 맏아들로써 세종의 뒤를 이어 30년간 유지한 세자 지위를 벋고, 조선 제6대 임금이 되었으나 늘 병약하였고 사실상 왕권은 매우 약했었다. 결국 문종 임금은 재위 2년 만에 어린 단종(당시 11살)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승하하였다. 너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큰 숙부였던 “수양대군”에게 많은 정사를 의논하고 늘 정신적으로 의지하였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이런 어린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고,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하여, 희대의 모사꾼 칠삭둥이 한명회(자준) 등과 공모하여 결국 피 비린내 나는 “계유정란”을 일으켰고, 결국 그는 뜻을 이루어 조선 제7대 임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 계유정란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억울한 피가 땅과 강물을 적셨고 그 원한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나 이렇듯 온 세상에 피를 뿌리고 뜻 하였던 임금 자리에 오른 수양대군의 앞길은 그야말로 피눈물 나는 가시밭길 이었다. 그의 맏아들이었던 의경세자는 아버지 수양대군의 반란도모를 처음부터 반대하였으며, 아버지와 맞서다가 수양대군의 미움을 받았고, 그는 결국 20세를 다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남겨진 부인은 훗날 소혜왕후가 되시는 유명한 인수대비)


수양대군의 둘째아들 해양대군(의경세자 동생)이 “수양대군”(세조)의 뒤를 이어 조선 제8대 임금(예종)이 되었지만 그 또한 병약하여 늘 병석에 누워서 왕권을 유지하다 결국 재위 13개월 만에 형인 의경세자와 같은 나이 20세를 다 채우지 못하고 요절하였다.


지나친 욕심과 권력욕으로 어린 조카의 왕위를 무력으로 찬탈한 수양대군(세조)의 비극은 어린 두 아들의 요절(죽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세조 임금은 재위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운명적인 그의 가족사 비극은 끊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성 피부병으로 온 몸에 부스럼이 돋고, 피고름을 짜내며 괴로워하였고, 또 밤이면 밤마다 꿈속에 나타나서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어린 조카 단종의 혼령, 그리고 그의 형 문종과 문종비 현덕왕후의 혼령, 수양대군의 광기로 사지가 찢겨 죽어갔던 사육신(성삼문,하위지,박팽년,이개,유성원,유응부)의 저주에 찬 원혼들의 환영에 시달리다가 괴로운 비명을 내 지르며 비참한 최후,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뒤를 이어 조선 제9대 임금에 오른 이는 수양대군의 손자 자을산군(성종)은 그의 맏아들 의경세자와 소혜왕후(인수대비) 차남이었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성종은 그의 어머니 인수대비의 수렴청정을 받으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했다. 


그러나 그의 치세와는 별개로 수양대군 가족사의 비극 “폐비윤씨”와 “연산군의 비극”이 잉태되고 있었음을 그 당시는 잘 몰랐다. 결국 “폐비윤씨의 사사”라는 가족 간의 살육이 또 일어났고, 이 사건은 성종 임금이 죽고 조선 제10대 임금이 된 연산군을 미친 폭군으로 만들어 버리는 단초가 돼버렸다. 

 

결국, 폭군이 된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에 분개하여 수도 없는 대소신료들을 죽이고 급기야 자기 할머니인 인수대비를 머리로 치받아 죽게 하는 폐륜을 저질렀다.

결국 수양대군의 증손자인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를 당하고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 교동(喬桐:江華)으로 유배되어 살다가 두 달 만에 역병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수양대군의 반란 쿠테타로 시작된 조선 이씨왕조의 비극은 이렇게 5대 임금에 걸쳐서 엄청난 피바람을 불러 일으켰고, 조선 왕조 오백년 동안 있었던 대표적인 4대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중 3개의 사화 [무오사화. 갑자사화 그리고 중종조에서 발생한 기묘사화(연산조의 폭정과 관련)}가 이 계유정란의 비극으로부터 비롯되는 등 “조선왕조 역사 중 비극 중의 비극”으로 우리 역사는 기록하고 있고 지금도 사극 드라마의 핵심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로부터 5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500여 년 전, 그 사건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그와 거의 유사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고 온 나라는 온통 벌집 쑤셔놓은 나라가 되었다.

 

작년에 일어 난 “병신정란(?)” 그 설계자는 과연 누구였을까?  오백년 전에 부관참시 되었던 “계유정난”의 설계자 한명회가 현세에 다시 환생하여 이 변란을 일으킨 것일까? 5개 6개 정권에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이 시대의 한명회는 과연 누구 였을까?


이번 소동 “변란의 설계자”... 과연 누구 였을까?

박쥐 할배? 고민우? 최순실? 문제의 인물? 언론사?... 정말로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우리역사와 세계역사를 통틀어 수많은 반란과 쿠테타,그리고 역성혁명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그러나 그 때와 지금은 다른 점 이 하나 있다. 과거의 수많았던 반란과 쿠테타가 일어날 때는 국민들이 권부의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못 되었다.


그러나 지금 21세기의 환경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르다. 수많은 매스미디어, 신문, 인터넷 미디어 등이 홍수처럼 넘쳐흐르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점이 그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언론 등을 통하여 사전에 미리 막을 수도 있었고, 또 중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중심에는 그런 자정기능을 해야 할 언론사들도 들어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왜냐하면 오백년 전이나 천 년 전보다 과학문명은 더욱 더 발전하고 최첨단 시대에 살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 그것은 바로 “권력의 속성”과 “정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수양대군”.... “계유정란”....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의 변란”..... 광화문과 시청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 촛불 그리고 태극기의 물결........


아이러니 하게도 수양대군의 아버지 이셨던 바로 그 분, 바로 “세종대왕”께서는 이 모든 광경을 광화문 높은 곳에 앉아서 말없이 내려다보시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우리가 익히 많이 들어왔던 익숙한 이야기이다.

 

또 성경말씀 갈라디아서 6장 7절에는 이런 말씀 구절이 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아무튼 이번 대한민국 변란사태의 설계자가 누구였든지 간에 피를 부르는 복수전, 그 끊임없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휘말리는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되겠지만, 아무도 이를 장담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2017년 3월 4일


“수양대군”의 비참한 최후(말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역사와 운명의 수레바퀴]


역사의 말 발굽 아래 짓  밟히게 될 인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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